70. Come back @AW
서유라가 돌아왔다. 떠날 때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컴백이었다.
“허. 진짜 좋다. 이 매연 냄새. 이 탁한 공기. 역시 서울이야.”
하늘이 낮게 드리운 날이다. 활짝 열어 놓은 게스트룸의 창으로 흐린 하늘이 보였지만 매연이라고 할 만큼 공기가 탁하지는 않았다.
탁한 매연은 서유라의 손에 들린 담배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서유라는 팔을 활짝 벌리고 크게 숨을 쉬었다.
“평창 진짜 와, 씨. 내가 거기 다시 들어가면 진짜 손에 장을 지진다. 공기 좋은 감옥이지, 그게 사람 살 집이야?”
“그렇게 좋으세요?”
“어. 여기가 감옥인 줄 알았는데, 아니야. 거기가 감옥이야. 여긴 거기 비하면 호텔이지. 야, 닭발은 언제 오냐? 주방에 전달한 거 맞아?”
“확인해 볼게요.”
유라의 짐을 정리하던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동 주방에 호출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이 새삼스러웠다.
얼마 만에 인터폰을 들어 보는 건지.
서문도 전무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닳고 닳아 있었다. 언제까지 집에서 대기를 해야 하는 건지, 이러다 영영 별채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 물어볼 수도 없어서 혼자서 마음만 졸이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새벽, 6시를 조금 넘겼을 때 서유라의 전화를 받았다.
회장이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고 했단다.
아침 먹고 나면 출발할 거니까 대기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서유라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늦게 오면 죽을 줄 알라며 으름장을 놓는 것조차 반가웠다.
간단하게 집 정리를 하고 바로 출발을 했다. 옥수댁 아주머니가 어서 들어오라며 직원 전용의 작은 쪽문을 열어 주었을 땐, 정말 집에 돌아온 것처럼 안도감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아주머니, 별채예요. 유라 씨가. 아, 네. 제가 나갈게요.”
이제 막 조리사 아주머니가 배달 온 닭발을 들고 숙소동 현관을 나섰다는 말을 전해 들은 선우는 인터폰을 내려놓고 주방의 뒷문으로 향했다.
냄비를 들고서 별채로 건너오는 조리사 아주머니가 보였다.
“제가 들게요. 이리 주세요.”
“이그, 아직 점심도 못 먹었지?”
조리사 아주머니가 반찬이 든 찬합을 담은 에코백을 먼저 내밀며 말했다. 선우는 에코백을 손목에 걸면서 대답을 했다.
“괜찮아요.”
점심시간에 도착한 서유라는 오자마자 선우를 호출했고, 막 숙소동에서 점심상을 차리려던 선우는 서둘러 건너오느라 점심을 건너뛰었다.
“배고파서 어째.”
“진짜 괜찮아요.”
조리사 아주머니에게 선우는 웃어 보였다. 왜냐면 정말 괜찮았으니까.
배가 고프면 뭐라도 주워 먹으면 되고, 눈치껏 커피라도 한잔 내려서 마시면 되었다. 이 집, 이 공간에 자신이 다시 왔다는 게 중요했다.
“눈치 봐서 잠깐 들러. 나 없어도 샌드위치랑 주먹밥이랑 있으니까 먹고.”
국물이 있는 닭발 위에 콩나물과 부추를 올린 넓은 냄비를 넘겨주며 아주머니가 말했다.
“네. 그럴게요.”
조리사 아주머니가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선우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에 별채로 돌아왔다. 아일랜드 위의 인덕션에 냄비를 올리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유라 씨. 닭발 세팅했어요.”
찬합을 꺼내 주먹밥도 그릇에 담아 놓고 계란찜도 담은 뒤에 유라를 불렀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소주까지 꺼내니 서유라가 멀리에서부터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서유라가 장갑을 낀 손으로 닭발을 들었다. 입에 넣고서 오물거리더니 작은 그릇에 뼈를 퉤, 뱉었다. 꼴깍꼴깍 소주를 넘기고 캬, 하고 감탄을 한다.
선우는 물을 한 잔 들고 소파에 앉았다.
투둑투둑 밖에서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창 위로 굵은 빗물이 사선을 그리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닭발을 먹는 서유라와 거대한 창. 푸르른 정원과 쏟아지는 빗방울. 비로소 별채였다.
* * *
주차장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문도는 핸드폰을 들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이선우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대기음이 짧게 울린 뒤에 바로 이선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 네, 전무님.
“빨리 받네요.”
문도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말했다.
이틀 전 제주도에 막 도착했을 때 회장이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이선우에게 메시지가 왔었다. 서유라에게 전화가 와서 별채로 가는 중이라고.
“지금 엘리베이터. 이제 막 도착했어요.”
일정이 빠듯해 공항에서 바로 회사로 갔어야 했었다. 남은 일들을 마무리 짓고 나니 늦은 밤이었다.
— 보고드리러 건너갈까요?
보고는 무슨. 문도는 피식 웃었다.
“그래요. 올라와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문도는 중문을 적당히 열어 두고 진열대 앞으로 갔다. 막 시계를 풀 때였다. 똑똑 소리가 들리고 선우가 조용히 안으로 들어왔다. 문도는 눈을 들어 선우를 보았다.
선우가 잠깐 멈칫하더니 문을 닫고서 몇 걸음 안으로 들어왔다. 적당한 거리에 멈춰 서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유라 씨 일과 보고드릴게요.”
“그래요.”
한번 해 봐. 문도는 픽 웃으며 시계를 마저 풀었다. 집에 돌아왔다고 금방 직원 모드가 되는 이선우가 신선하긴 했다.
“오전 6시쯤에 유라 씨한테 서울로 돌아온다는 전화를 받았고요, 저는 9시에 숙소동으로 복귀했습니다. 11시 반 정도에 회장님 도착하셨다는…….”
타이를 풀어 툭 던진 뒤 문도는 선우에게로 걸었다. 선우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잇는다.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서유라 씨 짐 내려서 정리를 하고, 점심으로는 닭발을 먹고 싶다고 하셔서.”
문도는 선우의 바로 앞에 섰다. 선이 고운 턱까지 천천히 눈으로 훑었다. 가볍게 웃으니 선우가 말끝을 줄이며 문도를 올려다보았다.
“닭발 먹고 싶었대요?”
“네. 그래서.”
대답을 하는 선우의 입술에 문도는 입을 맞추었다. 선우가 숨을 삼킨다.
“오랜만이네. 여기서 이러는 거.”
올려다보는 선우의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살짝 어깨를 움츠린 선우가 네, 하고서 대답을 했다.
오랜만이에요. 자그마한 목소리가 문도의 입술 안으로 흘러들었다.
“계속해야지.”
눈에 물음표를 띄우고 쳐다보는 선우에게 문도는 말했다.
“보고. 하러 왔다며.”
“아……. 네. 닭발을…….”
순진하시긴. 더듬거리며 말을 잇는 선우의 입술을 다시 눌렀다. 점을 찍듯이 입맞춤을 하다가 선우를 들어 안았다. 아, 하고 터지는 소리를 듣는데 귀가 찌릿 울렸다.
“올라오고 싶어서 기다렸어요?”
소파의 등받이 위에 선우를 앉히면서 서문도가 물었다.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10시에 퇴근을 하고 나서 침대에 앉아 시계만 보았다. 언제 퇴근하냐는 메시지도 보낼 수가 없었다. 혹시나 기다리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네. 기다렸어요.”
“그래서 전화도 그렇게 빨리 받고?”
입술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서 남자가 물었다. 선우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자가 웃으며 입을 맞추었다. 가볍게 한 번, 다시 한 번. 쪼듯이 이어지던 입맞춤은 어느새 진득한 키스로 변해 갔다.
커다란 손이 원피스의 단추를 풀었다. 몇 개의 단추가 풀어지자 원피스는 선우의 허리춤에 걸렸다. 반쯤 벗은 선우에게 문도가 말했다.
“움직이지 말아요.”
문도는 선우의 가슴을 덮은 브래지어를 하나씩 젖혔다. 가슴을 불빛 아래에 꺼내 놓은 뒤 입매를 비틀어 웃었다.
“그거 아나. 한 번씩 생각하는데. 일하다 말고, 이선우 씨 가슴 빨고 싶다고.”
가슴으로 향하는 눈길에 선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환한 불빛이 쏟아지는 자리였다. 나른한 욕망이 번져 있는 남자의 눈동자가 선우를 쓸어내렸다.
입속으로 선우의 가슴이 삼켜졌다. 뜨거운 열기에 허리가 절로 들렸다. 쓰윽 혀로 쓸어올리는 느낌에 등줄기에 우르르 소름이 돋았다.
싸악 싸악 훑어 올리는 동작이 느리고도 뜨거워서 선우는 바르르 몸을 떨면서 주먹을 쥐었다.
아.
짧은 신음을 터트렸을 때는 흡입하듯이 삼켰을 때였다. 서문도의 입안에서 짓뭉개지는 작은 살점으로 발끝까지 연결된 실들이 한꺼번에 당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문도의 혀가 이리로 저리로 움직였다. 그때마다 찌릿찌릿 전기가 몸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아, 선우는 고개를 저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발가락에는 하얗게 힘이 들어갔고, 손가락은 소파의 가죽을 꽉 쥐었다.
“그리고 또 무슨 생각도 하나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숨만 쉬고 있는 선우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문도가 말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기이하게 다정했다. 이런 목소리를 듣는 날에 어떤 식으로 몸을 겹쳤었는지 이제는 아는 선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싶다고.”
남자가 선우의 귓가에 속삭이면서 가슴의 정점을 비볐다. 소름이 오스스 일면서 털이 한 올씩 서는 기분이 들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속삭인 남자가 선우를 보면서 웃었다.
화사하고도 야한 웃음을 웃은 남자는 서슴없이 선우의 원피스를 들추었다. 허리에 아슬아슬 걸려 있던 원피스가 서문도의 팔에 걸쳐졌다.
선우의 다리 사이로 파고든 손이 쓰윽 물기를 훑어 내듯이 움직였다. 선우는 문도의 어깨를 힘껏 움켜쥐었다.
“전무……님. 그만……. 이제 그만…….”
선우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다리 사이에서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는 손가락과는 달리 남자의 눈동자는 어두웠다. 탁하고 진한 눈을 하고는 비릿하게 웃는다.
“뭐를 그만하라는 걸까.”
“그게 아니라. 아흣.”
말을 하다 말고 선우는 신음 소리와 함께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입술을 아프게 깨물며 다리를 파르르 떨었다.
작은 절정이 몸을 관통하면서 눈이 질끈 감겼다. 감긴 눈꺼풀 사이로 번쩍이는 빛이 터졌다가 사그라든다.
“그게 아니면?”
“이제 그만…….”
쾌락으로 흐려진 눈으로 남자를 보면서 선우는 말을 뱉었다.
“안아 주세요.”
남자의 목울대가 느리게 솟았다가 내려왔다. 열기 어린 웃음을 삼킨 남자가 선우의 얼굴을 쥐었다. 물컹 밀려드는 남자의 혀를 선우도 휘어 감았다. 남자의 입에서 낮은 탄성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당신은 모르겠지.
그러니 나를 안아 줘. 이지를 잃고 욕망에 몸을 던져 줘. 민우의 핸드폰을 찾을 수 있도록, 나를 저 방 안으로 데려가 줘.
“안아 줘요.”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선우는 말했다. 문도가 선우의 몸을 들어 올렸다. 방문이 열린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며 선우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