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밤의 시작
이선우의 집은 5층짜리 주공 아파트였다.
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 남아 있었나 싶은, 곧 재개발이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낮고 커다란 단지에는 아파트만큼 키가 큰 플라타너스나무들이 무성했다.
304동. 이선우가 알려 준 동 앞에는 자그마한 모래 놀이터가 있었다. 문도는 놀이터 옆쪽으로 차를 댔다.
차창을 내리자 열린 창문으로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느리게 들어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폭염주의보 알람이 밀려들었다. 틀어 놓은 뉴스 채널에서는 열대야가 이어지는 한 주가 될 거라고도 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지는 사흘이 지났다.
그사이에 문도는 이선우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사장단 보고를 끝내고, 이어지는 임원 회의도 성실히 임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을 했다.
그사이 본관에서 부모님과 저녁 식사도 하고, 장 여사가 건네주는 붕어즙도 꼬박꼬박 마셨다. 텅 비어 있는 별채의 불을 끄고, 다시 켰다.
그러는 동안 마음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들뜸도 설렘도 없었다. 담담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보고서를 읽고, 회의를 했다.
마치 이선우는 잊은 것처럼 그렇게 살다가. 밀려 있던 업무들을 모두 마친 뒤에. 그런 뒤에.
402호.
문도는 눈으로 층을 세면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한 대를 태울 시간이 지나고, 다시 한 대를 피울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불 켜진 창과 그 앞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볼 뿐이었다.
눈에 담고 있던 창문의 불빛이 꺼졌다. 무슨 일일까 싶어서 문도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잠시 후 계단의 불이 켜졌다.
4층, 3층, 2층, 1층.
센서등이 하나씩 켜지며 통로가 밝아진다. 그때마다 계단의 코너에는 걸음걸이조차 춤을 추듯이 우아한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옅은 풀색의 원피스. 긴 머리. 가는 몸과 연한 얼굴.
통로를 나오는 이선우의 모습이 보였다. 문도는 시동을 껐다. 옆자리 놓았던 작은 쇼핑백을 들고 문을 열어 차에서 내렸다.
그를 발견한 선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자신을 향해 있는 선우의 눈동자에 시선을 맞춘 뒤 문도는 열기가 남아 있는 밤의 더운 공기를 가르며 걸었다.
미지근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로 불어왔다. 거의 열흘 만의 재회였다.
* * *
차에서 내리는 남자를 본 순간, 선우는 걸음을 멈추었다.
딱 떨어지는 슈트를 입은 문도가 선우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목 끝까지 물이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도 같았다.
꿈은 아닐까.
멈추어 선 채로 겨우 그 생각을 했다. 담담하게 걸어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현실 같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면 사라질 환영 같아서 선우는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문도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왜 나와 있어요?”
마치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한 번도 틀어진 적 없었던 사이처럼, 혹은 아직 아무런 사이가 아닌 것처럼 남자는 말을 건네 왔다.
선우는 일렁거리는 마음을 마른침과 함께 넘겼다. 수없는 말들을 준비했었는데 머리가 까맣게 비워졌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을 땐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게 들려오기까지 했다.
“늦으시는 것 같아서요.”
남자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더니 선우에게 작은 쇼핑백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선물.”
아, 하고 작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생각도 못 했던 것을 받아 들며 선우는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별건 아니고.”
“아니에요. 잘 쓸게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커피라도.”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데 잘 쓰겠다는 말이 나왔다. 쇼핑백을 꽉 쥐고서 선우는 허둥거렸다.
잘 다녀왔냐는 인사도, 저녁은 먹었냐는 질문도 잊어버렸다. 생각으로는 자연스러웠던 일들이 막상 서문도를 마주하자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마음이.
“저녁 먹었어요?”
“아, 아뇨. 저도 아직.”
“그럼 저녁이나 같이 먹죠.”
서문도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먼저 돌아서서 차를 향해 걷는다.
왜 이렇게 가슴 밑바닥이 시큰거릴까. 선우는 뒤따라가며 명치를 가볍게 눌렀다. 목 끝까지 무언가 울렁거리는 기분이 멎지를 않는다.
“근처에 괜찮은 곳 있어요?”
“아. 네. 찾아볼게요.”
문도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선우는 감사하단 인사를 하고 조수석에 탔다. 냉기가 남아 있는 차 안에서 남자의 향기가 났다.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운전석에 오른 문도에게 선우는 물어보았다. 문도가 시동을 켜며 대답을 한다.
“아무거나.”
선우는 핸드폰을 부여잡고 검색 어플을 열었다. 동네 이름을 치고 맛집으로 검색을 하였다.
그것만이 살길이라는 듯이 리스트를 아래로 아래로 내렸다. 김밥 말고 떡볶이 말고, 너무 멀지도 너무 허름하지도 않은.
전에 괜찮은 파스타집이 있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이……. 6월이었나. 7월?
‘July’ 네 글자를 치려는데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영어로 쳐야 하는 자판을 한글로 치는 바람에 다시 버튼을 눌렀다. 검색을 돌리니 근처에서 아직 영업 중이었다.
“근처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어요. 파스타하고 피자가 괜찮아요.”
쓱 넘어온 손이 선우의 손을 치웠다. 핸드폰에 띄워져 있는 가게의 이름을 보더니 내비에 입력을 했다. 7분이면 도착을 하는 곳이다.
도착지 설정을 한 뒤에 남자는 벨트를 맸다. 선우도 서둘러 벨트를 맸다.
서문도가 기어를 바꾼 뒤, 운전대에 손을 올렸다. 출발을 기다리는데, 남자는 그대로 멈추어 앞만 보고 있었다.
남자가 가만히 앞을 응시한다. 숱이 많은 속눈썹이 눈동자 아래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늘게 웃는다. 선우는 목이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차 안의 공기가 부풀다 못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개같네.”
문도는 자조하듯 웃으며 말했다. 눈을 꾹 감았다 뜬 뒤 빠르게 기어봉을 툭 당긴 뒤 사이드 브레이크 버튼을 눌렀다.
문도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는 선우에게로 몸을 기울이면서 선우의 입술을 삼켰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말캉하게 입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선우의 체취가 물큰 밀려들었다.
이거였는데. 이걸 두고서 나는.
“벌려요.”
가쁘게 숨만 쉬는 선우에게 문도는 낮게 말했다. 여자의 입술이 벌어진다. 그 안으로 혀를 밀어 넣자 선우의 신음이 몸을 울렸다.
뒷목이 바짝 서면서 욕이 나오게 좋았다. 문도는 목이 꺾어지는 선우의 뺨을 쥐고서 혀를 얽었다.
숨도 못 쉬게 밀어붙이자 옷깃을 쥐고 있던 선우가 팔을 풀어 문도의 목을 감았다.
문도는 정신없이 선우의 입술을 빨았다. 귀를 비비고 목덜미를 쥐었다.
저녁 식사가 이선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샅샅이 발라먹고서 뼈만 남겨 둘 텐데.
고작 한 달이었다. 여자를 안지 않은 시간은. 긴긴 시간 중에 한 달. 그런데 입맞춤이 달았다. 달아서 미칠 것 같았다.
공기 방울처럼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를 삼키며 문도는 거듭 선우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전무님.”
목덜미로 입술을 내렸을 때 선우가 문도를 불렀다. 뿌옇게 습기가 찬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만…….”
그만해야지. 문도도 알았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밥이고 나발이고 집으로 올라가자고 할 판이다.
문도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하얀 목덜미 사이에 입술을 묻고서 깊이 숨을 쉬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향기 섞인 체취에 머리가 아찔해지는 바람에 헛웃음이 나왔다. 눈을 꾹 감았다 뜬 문도는 뜨거운 숨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선우의 입술이 반짝였다. 자신의 타액이 묻은 입술이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래서 내가 미루고 미뤘는데.
“저녁은 나중에 먹죠.”
이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도는 허탈한 웃음을 삼켰다.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기다리게 했고, 잊은 척 모르는 척 신경 쓰지 않는 척을 했다.
떼어 놓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어 결국 무릎을 꿇었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좋아하여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 게, 마음을 빼앗겨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게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바짝바짝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려 했는데.
“많이…….”
이선우가 문도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목을 안으며 그에게 말했다.
“많이 기다렸어요.”
이선우는 왜 늦게 왔냐는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는 말도 없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겁도 없이 안아. 문도는 선우의 턱을 쥐었다. 자신을 보도록 고정시킨 뒤 천천히 입술을 내렸다. 선우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참았나. 문도는 실소하며 선우의 입술을 삼켰다.
* * *
이선우의 집은 좁았다. 현관문 바로 앞이 주방이고, 자그마한 싱크대 뒤로 방이었다.
문도는 현관문을 닫으며 선우의 앞섶을 손으로 젖혔다. 가운 형식의 원피스는 차에서부터 풀어 헤쳐져 있었다. 가슴을 가린 천을 걷어 내자 타액에 젖은 정점이 드러났다.
선우를 현관문에 기대어 놓은 채 문도는 가슴을 빨았다. 오도독하게 솟아오른 부분은 입에 넣어 굴리며 잘근잘근 씹었다. 그때마다 이선우가 파르르 파르르 몸을 떨었다.
이걸 안 하겠다고.
미친놈이 이걸 그만두겠다고.
뜨거운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이후로 틱, 하고 선이 끊어진 느낌이었다. 문도는 이선우가 제발 그만하라고 고개를 저을 때까지 가슴을 탐했다.
사실 그리 크지도 않은 가슴이었다. 한 손으로 쥐면 부드럽게 잡히는, 선홍색의 정점이 환장하게 예쁜 가슴.
아프게 빨았다가 이로 짓씹었다. 힘껏 움켜쥐었다가 짓궂게 비틀었다. 빨갛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괴롭히다가 가운처럼 생겨 먹은 원피스의 자락을 들어 올렸다.
거칠 것 없이 속옷 사이로 손을 넣었다. 이미 축축하게 젖어 부풀어 있는 부분을 세로로 훑었다.
이선우가 짧은 신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전무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아까부터 끝이 갈라져 있었다.
샅샅이 먹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문도는 선우의 몸을 반짝 안았다. 신을 벗고 거실이랄지 주방이랄지 복도랄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공간으로 선우의 몸을 옮겼다. 이선우는 이제 그의 목에 매달린 채로 쌕쌕 숨을 쉴 뿐이었다.
문도는 열려 있는 미닫이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작은 침대 위에 이선우를 눕히고 그 위를 올랐다. 밤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