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전부 다
선우는 새벽같이 숙소동을 나섰다.
대체로 별채에서의 서문도 전무의 식사 시간은 오전 6시 반 정도.
서 전무가 식사를 하고 조리사 아주머니가 상을 치우고 물러가면 옥수댁 아주머니가 건너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비었다.
어떤 날은 조리사 아주머니가 길게 수다를 떠는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서유라가 8시쯤 기상을 하는 날도 있어서 들쭉날쭉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7시 전후로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그 이유로 선우는 꾸역꾸역 아침 일찍 숙소동을 나섰다. 대강의 눈치를 살펴 괜찮겠다 싶은 날에는 서 전무가 출근을 한 뒤에 2층으로 올라갔다.
조금씩 대범해지는 자신을 느끼는 동시에 이러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모든 걸 들킬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 상상은 점점 구체적으로 변하여 어떨 때는 들키는 연습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선우는 현관문을 열기 전에 크게 숨을 마시고, 하루를 지낼 전의 같은 것을 다졌다. 오늘도 들키지 않게, 잘리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하루를 보내자고.
“안녕하세요, 전무님. 좋은 아침입니다.”
다이닝룸에 서문도 전무가 보일 때면, 예의를 다해서 인사를 했다.
서문도는 건조하고도 서늘한 눈빛으로 인사를 받았다. 그럴 때면 가슴이 쿡쿡 쑤셨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꼬박꼬박 인사를 건넸다.
그래도 아주머니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서문도 전무의 존재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아질 때면 선우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였다.
“벌써 오셨어요?”
“응, 선우 씨, 마침 잘 왔다. 나 부탁 하나만 할게.”
“네.”
“나 잠깐 숙소동 가서 김치 새로 가져올게. 새로 담은 걸 가져왔어야 하는데 묵은지를 가져왔지 뭐야. 이거 국 데워지면 전무님 좀 드려. 괜찮지?”
괜찮지 않았다. 가능하면 그와 가까이 있고 싶지 않았다. 가까이에 있으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서늘한 눈빛으로 무심히 스칠 때면 가슴이 지끈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아주머니의 부탁은 들어줄 수밖에 없어서, 선우는 선선히 대답을 했다.
“네, 다녀오세요.”
아주머니가 나가자 다이닝룸의 공기가 싸늘하게 내려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문도 전무는 묵묵히 밥을 먹고 있을 뿐인데, 괜히 그랬다. 시리고 차가워서 세상에 홀로 남은 기분이 든다.
어색함 속에 숨만 쉬고 있는데 띵, 소리가 나며 전자레인지가 멈추었다.
선우는 그 안에서 국그릇을 꺼냈다. 쟁반에 올려놓고 서문도 전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서문도는 핸드폰을 보면서 국 없이 먼저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가볍게 숨을 들이마신 선우가 국그릇을 들고 서문도 전무에게 걸어갈 때였다.
“이선우 씨.”
서문도 전무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선우를 불렀다.
“네.”
“출퇴근 시간 조정할게요.”
네? 라는 물음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눈만 깜빡이며 서 있는데 서문도 전무가 냅킨으로 입을 닦은 뒤에 말했다.
“8시 출근 9시 퇴근. 일찍 건너오지 마시고, 늦게까지 남아 있지 마시고. 시간 지켜서 이동하세요.”
선우는 망연해진 표정으로 서문도를 보았다. 8시에 출근해서 9시에 퇴근이라니. 내가 왜 아침 일찍 건너오는데.
8시면 옥수댁 아주머니가 출근하는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발밑의 땅이 꺼지면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선우는 휘청이지 않기 위해 쟁반을 단단히 잡았다.
태연하게 밥을 먹고 있는 서문도가 원망스러웠다. 어쩜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주저앉히는 것인지 야속하기도 했다.
“꼭 그래야 할까요?”
해서 조금은 울컥했다. 이제까지 일찍 와서 늦게 간다고 한 번도 뭐라고 한 적 없으면서. 왜 이제 와서. 왜.
“네.”
단답형의 대답에 어딘가 쓱 베이는 느낌이었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대답을 한 서문도는 핸드폰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저는……. 잘 납득이 되지 않아서요.”
가능한 멀리 있었고, 메일로 보고를 하라고 해서 매일같이 메일로 보고를 했다.
원래대로 돌아가자고 하기에 서유라를 돌보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노력도 했다.
인사를 제외하고는 그에게 말 한마디 붙이지 않았고, 그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는데. 왜.
선우의 말에 서문도가 고개를 들었다. 단단한 눈동자가 선우를 본다. 잠자리를 그만하겠다는 말에는 항의를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서유라 씨 돌보는 일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잘하고 싶어서 일찍 와서 늦게 가는 건데, 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문제가 될까요?”
속상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하루에 10분, 15분. 그 정도도 안 되면 어떻게 하라고.
선우는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고만 있는 서문도를 보았다. 무표정에 가까운 서늘한 얼굴이었다.
“문제가 되죠.”
남자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담담히 말했다. 무슨 문제가 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바라보았더니 서문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마주치는 게 싫거든.”
날카롭고 서늘한 칼날이 가슴을 쓱 그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뒤늦게 통증이 일면서 숨을 쉬기가 어려워진다.
“오늘부터 그런 줄 아시고, 아, 국은 됐습니다.”
재킷을 팔에 걸친 서문도가 서 있는 선우를 스쳐 지났다. 선우는 질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지끈거리는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 *
이선우를 못 본 지 사흘이 지났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더니 서유라였다. 문도는 씹, 하고 욕을 씹었다.
허구한 날 점심까지 처자더니 왜 오늘은 새벽같이 일어나 사람 헷갈리게 하는지.
“하암. 장 여사, 나도 물 한 잔만.”
하품을 크게 하면서 식탁 맞은편에 앉는다. 문도가 노려보듯이 눈을 들었더니 서유라가 움찔하면서 몸을 뒤로 물렀다.
“뭐야, 아침부터. 왜 성질이야.”
들으라는 듯 구시렁거리고는 또다시 크게 하품을 했다.
모르겠다. 다 짜증이다.
이선우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좀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진짜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문도는 예쁘게 부쳐진 프렌치토스트를 칼로 그었다. 긋고, 다시 그었다. 너덜거리는 조각으로 만들고 있는데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진다.
“아니, 왜 빵을 그렇게 조잘을 내셔요?”
장 여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문도를 보고 있었다. 하아. 문도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메이플 시럽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저그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시럽 잘 들어가라고요.”
줄줄 흘리듯이 부었더니 장 여사가 더 의아하게 보면서 묻는다.
“아니, 당 오르게 뭔 시럽을 그리. 단거 좋아하시지도 않는 분이.”
“좋아해요.”
“언제부터요.”
“오늘부터?”
삐딱선을 탔더니 장 여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또 심기가 비틀리셨대. 눈빛으로 말하고 있는 게 다 보이는데 대꾸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단 토스트를 입에 넣고 씹었다. 멍하니 앉아 있던 서유라가 장 여사가 내미는 물컵을 받더니 꿀꺽꿀꺽 마셨다.
“선우는 좀 어때요?”
이선우의 이름을 말하는 서유라였다. 생지랄을 해 댈 땐 언제고 친한 척 이름으로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절로 고개가 들리고 귀가 세워졌다.
장 여사가 아일랜드를 행주로 훔치면서 대답을 한다.
“자기 말로는 괜찮다는데, 불편하지, 뭐. 아프기도 하고.”
“어으 걘 한 번씩 멍하드라.”
뭐가 불편하고 뭐가 아픈 건데?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한데 물어볼 수도 없으니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그러게 조심을 했어야 하는데. 걔가 다치니까 내가 넘 불편해.”
다쳤다는 말이 귀에 박히듯이 들렸다. 조금만 틈이 나면 이선우가 어쩌고저쩌고했던 장 여사는 왜 아무 말도 안 했나.
문도가 바라보는 것을 알았는지 장 여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문도에게 말했다.
“아, 선우 씨가 좀 다쳤어요. 어제저녁에 끓는 물에 손을 데었는데, 병원 가서 약도 바르고 처치는 다 했고요. 그래도 펄펄 끓었던 물이라서 많이 뎄지, 뭐. 물집이 잡힐 것 같아요.”
부지런히 오갈 때는 멀쩡하기만 하더니 눈에 안 보이는 날에 다쳤다고.
펄펄 끓는 물은 왜 손에 부어. 하얗고 가는 손가락에 끓는 물이 부어졌다 생각을 하니 명치 근처가 욱신거렸다.
“그래도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주셔서 푹 쉬고 있어요. 그건 잘하셨어. 어차피 일찍 와도 할 일 없었는데.”
잘하긴. 등신 같은 짓이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눈에 안 보이니 이렇게 답답하고 갑갑할 줄이야.
차라리 신경에 거슬리게 알짱거리는 게 나았다.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을 때가 나았다.
적어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는데. 따박따박 보내오는 메일을 제외하면 이선우는 마치 이 집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아오……. 그럼 난 다시 자러 가요. 이선우 오면 깨워 달라구 해죠. 오늘 오면 머리해 주기로 했는데, 망했네. 망했어.”
서유라가 툴툴거리며 다이닝룸을 나갔다. 문도는 긴 잔에 따라 놓은 자몽즙을 마셨다. 씁쓰름한 맛이 입에 남는다.
“막내 아가씨가 많이 정상으로 돌아왔죠?”
저게 정상인가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생산적인 활동 없이 하루를 잠과 쇼핑으로 보내는 인생이 정상이라고 보긴 힘들지만 적어도 난동을 피우지는 않으니.
“선우 씨가 애 많이 써요.”
왜 안 나오나 했다. 이선우 칭찬. 뭘 그리 딱하고 안쓰럽고 애틋해.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비딱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문도는 장 여사를 불렀다.
“여사님.”
“네.”
얼마나 다쳤냐는 질문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어쩌다 다쳤냐는 물음도 그 뒤를 이어 올라왔지만 참았다.
“맘에 안 드는 직원은 어떡해야 할까.”
“네?”
“장 여사님은 아니니까 걱정은 말고요.”
문도의 말에 장 여사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요?”
“글쎄. 뭐가 마음에 안 드냐면.”
조각나 버린 프렌치토스트를 칼로 쿡쿡 찌르다가 문도는 말했다.
“전부 다. 다 마음에 안 들어.”
그럼 다른 데로 보내요, 장 여사는 간단히 대답을 했다. 그래야 할까. 이젠 정말 그래야 할 때인가. 문도는 고개를 젖히면서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