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씻어요, 같이
자정이 넘은 시간, 선우는 별채의 뒷문을 열었다. 주방에만 미등이 켜져 있어, 거실은 어둑했다.
멀리 복도 너머의 게스트룸에서 빛이 새어 나오며 서유라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자정을 넘기고도 한참 동안 전화가 없었다. 서문도 전무의 퇴근이 늦어지나 보다 했다가, 오늘은 그냥 지나가나 보다 싶어서 막 침대에 누웠을 때 벨이 울렸다.
‘올라오세요.’
피곤을 딛고 서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동이 트는 새벽에 나가서 별이 뜨는 새벽에 들어오는 날이 잦은 서 전무였다.
그런 날이면 섣불리 말을 붙이기도 힘들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시계를 풀거나 넥타이를 내리며 이야기를 듣곤 했었다.
어쩌면 오늘은 잠자리를 갖지 않을 수도 있겠다.
선우는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홀의 불은 꺼져 있었고, 중문이 한 뼘쯤 열려 있어 그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똑똑 문을 노크한 뒤 선우는 안으로 들어갔다.
서문도 전무는 진열장 앞에 서서 생수병째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옆에는 대충 던져 놓은 슈트 상의와 핸드폰이 보였다.
사선으로 기울였던 물병을 내려놓는 남자와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순간 선우는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올라왔을 땐 어떻게 인사를 했더라. 보고를 시작할 땐 어떻게 했었지?
갑자기 모든 게 어색해지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을 때였다.
“오랜만이네요.”
서문도가 먼저 말을 건넸다. 선우는 머뭇거렸다. 함께 샤워를 했던 것이 어제였고, 오늘 아침에도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네. 아침에 봤구나.”
피식 웃으며 말하던 서문도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딱히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선우는 네, 하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을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서문도가 물끄러미 선우를 바라보았다. 째깍째깍 흘러가는 초침 소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적막만이 공간을 무겁게 채웠다.
선우는 망설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보고드릴게요. 서유라 씨는 오늘.”
선우가 말을 하는데 서문도가 피곤한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고는 손짓으로 선우를 불렀다.
가까이 와서 보고를 하라는 뜻인가. 선우가 말을 멈추고 바라보자 문도가 입을 열어 말했다.
“이리 오라고.”
선우는 몇 걸음을 걸어 문도의 앞으로 다가갔다. 두 걸음 정도를 남겨 놓고 멈춰 선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기상은 9시쯤 하셨고요.”
남자가 팔을 뻗었다. 아, 하고 소리를 낼 겨를도 없이 선우의 허리가 당겨졌다.
그대로 들어 올려져 진열장 위에 걸터앉혀졌다. 눈높이가 같아진 상태에서 문도가 선우를 보았다.
“보고는…….”
“해요. 계속.”
서문도가 무심히 말했다.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때문일까. 빈틈없이 깔끔했던 아침과는 달리 밤의 서문도는 어딘가 느슨하게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선우가 입고 있는 카디건 스타일의 니트에 남자의 손이 닿았다.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첫 번째 단추가 툭 풀어졌다.
“지금……. 보고를 하라고요?”
“그럼 뭐, 넣고서 할까.”
당황한 선우의 물음에 문도가 대답했다. 눈을 들어서 선우를 보더니 싱긋 웃었다.
“오전에는 쇼핑을…….”
두 번째 단추가 풀렸다. 툭, 하는 소리가 천둥보다 크게 귀를 울리는 것 같아서 선우는 손끝에 닿은 진열장의 모서리를 힘주어 잡았다.
“쇼핑을?”
남자가 세 번째 단추에 손을 대며 물었다. 선우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쇼핑을 하셨고요. 점심은 초밥을 드셨고, 오후에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단추를 남겨 놓고서 문도가 고개를 숙여 선우의 어깨에 입술을 묻었다.
앗, 하는 작은 소리를 내는 선우의 카디건을 어깨 아래로 내리며 문도가 물었다.
“쇼핑은 이선우 씨도 하셨던데.”
목소리가 몸에 닿자, 자르르한 전기가 흐르며 선우의 팔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문도의 간단한 손동작에 나머지 단추가 풀리고, 브래지어의 끈도 옆으로 젖혀지며 팔로 흘러내린다.
“예쁜 거 샀어요?”
브래지어의 컵을 젖히며 서문도가 물었다. 환한 조명 아래에서 한쪽 가슴이 드러났다. 노출된 선홍빛의 정점에 서문도의 시선이 닿았다가 다시 선우의 얼굴로 향했다.
어버버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가, 선우는 간신히 네, 하고 대답을 했다.
얼굴부터 목까지 뜨겁게 익는 기분이었다. 꿈인가 싶기도 했다. 환한 조명 아래 가슴 한쪽을 드러내 놓고 남자와 대화를 해야 하다니.
“뭐 샀는데요?”
남자의 손이 부드럽게 가슴을 쥐었다. 볼을 쓸어 보듯이 엄지로 정점을 가볍게 쓸면서 남자가 묻고 있었다.
자극을 받은 선홍빛의 정점이 단단하게 일어섰다. 선우는 눈을 감아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밀인가.”
남자의 손끝에서 가슴이 뭉개진다. 선우의 아랫배가 움찔거리며 수축을 하였다. 선우는 떨려 오는 목소리를 숨기려 노력하면서 대답을 했다.
“시계……. 시계 샀어요.”
가슴에 머물던 남자의 시선이 선우의 손목에 닿았다.
“잘했네. 다음에 보여 줘요.”
고개를 끄덕이는 선우를 보면서 서문도가 고개를 기울였다. 한 손으로는 선우의 머리를 감싸며 당겼다. 입술이 겹쳐지며 부드럽게 빨려 들어갔다.
부드럽게 치열을 가르며 들어온 혀가 선우의 입안을 누볐다. 키스가 달큰하고 감미로웠다. 부드럽게 훑었다가 강하게 휘어 감는 혀에 아랫배가 아릿하게 조여들었다.
가슴의 정점이 남자의 손끝에서 굴려졌다. 깊게 들어온 혀는 숨을 전부 뒤섞어 놓는다.
선우는 고개를 젓고 싶었다.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아랫배가 욱신거리는 이 감각이 낯설고 싫었다.
미약하게 몸을 빼려는 선우의 몸짓을 느꼈는지 남자가 선우의 뒷머리를 휘어 감았다. 숨이 붉게 달구어질 때까지 키스를 이어 가던 남자가 물고 있던 입술을 놓았다.
하아, 선우의 긴 숨이 허공을 가를 때, 문도가 고개를 내려 그대로 가슴을 베어 물었다.
흡.
짧게 숨을 삼킨 선우는 바르르 몸을 떨었다. 뜨거운 진공의 압력 속에서 정점이 이지러지며 서문도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싫어…….
선우는 눈을 질끈 감으며 진열대의 모서리를 힘껏 쥐었다. 더운 입김에 가슴이 물릴 때마다 다리 사이가 절로 오므라들며 몸에 힘이 들어갔다.
봉긋한 가슴이 문도의 손아귀에서 일그러질 때마다 찌릿찌릿 일어난 전류에 허리가 비틀렸고, 생각이 타들어 갔다.
차라리 정신없이 흘러가는 게 좋은데. 아프고 버거운 거, 그게 나은데. 왜 자꾸만 이렇게 이상한 느낌이 날까.
“전무님.”
선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문도를 불렀다. 가슴에서 입술을 뗀 남자가 선우를 올려다보았다. 짙게 가라앉은 서문도의 눈동자에 선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담겼다.
“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싫은데요.”
“방으로 가서, 방에서…….”
“멀어.”
문도는 고개를 내리며 대답했다. 타액이 묻어 반들거리는 붉은색의 정점이 으깨어 삼키고 싶을 만큼 예뻤다. 이선우가 입술을 깨물며 어깨를 움츠렸다.
톡 튀어나온 부분을 노골적으로 혀로 핥아 올리자 이선우의 귀가 장미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움으로, 당혹감으로 달아오른 이선우를 보자 아래에 빠듯하게 힘이 들어간다.
문도는 고개를 숙여 복숭아를 닮은 가슴을 힘있게 빨았다. 한동안 거실에는 살을 빠는 젖은 소리가 울렸다.
흣.
선우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손등으로 입을 막았어도 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의 입에서 터져 나온 신음 소리가 선우는 더없이 부끄러웠다.
제멋대로 파르르 떨려 오는 속살도 너무나 민망하였다. 몸이, 마음이 어떻게 될 것만 같아 선우는 가까스로 문도의 어깨를 밀어내며 말했다.
“잠깐만요. 잠깐만…….”
밀려난 남자의 눈빛이 타는 듯이 짙었다. 이런 눈빛을 한 서문도 전무를 겪어 보았다. 정말로 여기에서 관계를 가질 수도 있는 눈빛이었다.
이렇게 헐벗기만 하고 방에도 들어가 보지 못하면 어떡하나. 안쪽 드레스룸의 수납장을 매일 한 칸씩은 살펴보자고 계획을 세웠는데.
선우는 남자의 목에 팔을 감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입술을 맞추며 작게 말했다.
“씻어요. 같이. 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유혹이었다. 낮게 웃은 서문도가 선우의 허리를 바짝 당겼다. 아랫배가 빈틈없이 맞붙으며 몸이 들렸다. 뜨거운 키스가 이어지며 방문이 열렸다.
어두운 방 안에서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 * *
활짝 열린 창문으로 밤의 봄바람이 밀려들었다. 정사 후의 나른함이 몸을 감돌았다.
라이터에 불을 켜며 문도는 담배를 마셨다. 창가의 벤치에 앉아 후우, 연기를 내뿜으며 후원과 숙소동을 바라볼 때였다.
달칵 소리가 들리며 파우더룸과 연결된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물기 어린 얼굴로 나오는 이선우가 보였다. 말간 얼굴이 이슬처럼 예뻤다.
다시 벗길까.
그 생각을 하며 문도는 담배를 쥐고 있는 손을 들어 깊이 빨았다. 시선을 이선우에게 꽂아 둔 채로 연기를 뱉었다.
정사 후의 어색함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문도의 시선을 피한 선우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예쁜 건 예쁜 거고.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짚고 넘어가야지.
문도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이선우를 불렀다.
“이선우 씨.”
“네.”
“오늘 서유라가 뭘 했다고요?”
아, 보고를 잊었구나. 이선우가 그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저와 함께 외출하셔서 쇼핑을 하셨구요, 점심으로는 초밥을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들어와서 낮잠을 주무셨구요.”
“왜.”
문도는 선우의 말을 끊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유라가 최지상 만나는 이야기는 자꾸 빼놓을까.”
문도의 말에 선우가 눈을 크게 떴다.
놀라기는. 피식 웃으며 문도는 선우에게 다가갔다.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춘 뒤, 얼어붙어 있는 이선우에게 말했다.
“속이지 말아요. 시계도 사 줬는데.”
여자가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키는 모습이 보였다.
“긴장할 건 없고. 앞으로 잘하면 됩니다.”
바짝 얼어붙은 얼굴의 이선우가 네, 하고 대답을 했다. 순진하시긴. 문도는 웃으면서 선우의 뺨을 쥐었다. 물기를 머금은 입술이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