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똑바로 살자
서문도 전무가 선우에게 전화를 거는 시간은 보통 밤 11시에서 자정 사이였다. 선우는 벨이 울리는 핸드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이선우입니다.”
— 건너오세요.
언제나처럼 무심한 어조였다.
“네.”
선우는 전화를 끊고서 정원을 건너 별채로 향했다. 주방 쪽 뒷문을 열고 거실 끝, 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2층이 나왔다.
긴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확 트인 거실이 나오고, 한쪽으로 커다란 중문이 있었다. 선우는 반 뼘 정도 열려 있는 중문에 노크를 했다.
“전무님, 이선우입니다.”
“들어오세요.”
대답을 들은 뒤 선우는 양쪽으로 열리는 짙은 녹색의 중문을 열었다. 중문 뒤엔 어지간한 50평대 아파트 같은 공간이 나온다.
서문도 전무의 공간이다.
선우를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넓은 거실이, 오른쪽에는 보통의 아파트에서는 주방으로 쓸 법한 커다란 공간이 있었는데, 서문도 전무는 그 공간 전체를 드레스룸으로 쓰고 있었다.
6인용 식탁과 크기가 비슷한 커다란 원목 진열장을 가운데 두고, 벽을 따라 빙 둘러서 시스템 옷장이 설치되어 있는 오픈형 드레스룸이었다.
“보고해요.”
진열장 앞에 선 서문도 전무가 시계를 풀며 말했다. 어느 날은 어깨를 비틀어 재킷을 벗을 때도 있었고, 어느 날은 타이의 매듭을 끌어 내릴 때도 있었다.
보고의 내용은 간단했다.
서유라가 일어난 시간, 먹은 것들, 빈둥거리며 한 일들을 알려 주면 되었다. 선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유라 씨는 12시 반에 기상하셔서, 3시쯤 떡볶이와 핫도그 드셨습니다. 핸드폰으로 영상 찍으셨고, 10분 정도 라이브 방송도 하셨습니다.”
남자는 뒤에 서 있는 선우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건조한 표정으로 커프스링크를 풀며 보고를 듣고 있었다.
“이후에 방에서 전화 통화를 하셨고, 낮잠을 주무셨습니다. 저녁에 TV 보셨구요. 야식으로 무뼈 닭발이랑 주먹밥 시키셨습니다. 반주로 소주 한 병 드셨습니다.”
그때그때 먹는 메뉴만이 달라질 뿐,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서유라였다. 선우가 보고를 마치자 서문도가 짧게 감상을 날렸다.
“닭발에 소주.”
남자는 피식 웃었다. 아주 제대로 드셨네. 조소를 하고는 선우를 보며 말했다.
“그게 전부입니까?”
물론 아니었다.
서유라는 오늘도 선우에게 아이스커피를 듬뿍 부었다. 그녀가 선물로 가져온 레오타드를 가위로 갈기갈기 찢었고, 주기적으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었다.
괴롭힘은 나날이 심해졌지만 스스로 견뎌 내야 하는 일일 뿐, 서문도 전무에게 보고할 일은 아니었기에 선우는 답을 했다.
“네. 그게 전부입니다.”
서문도가 알았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가 보세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자 답인사 대신 남자는 피곤한 표정으로 셔츠의 단추를 툭툭 끌렀다.
선우는 중문을 닫고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며 서문도 전무에게 자신은 아마 담벼락에 심긴 정원수 한 그루만도 못한 존재일 거라 생각했다.
존재가 아닌 존재이며, 사람이 아닌 사람이 아닐까. 존재하기는 하되, 존중해야 할 가치는 전혀 없는 그런 사람.
그러니 철저히 자신의 편의에 따른 밤늦은 시간에 전화 한 통으로 불러내 옷을 벗는 동안 보고를 듣는 거였다.
다 합쳐 3분도 안 되는 시간을 따로 내어 줄 가치조차 없다는 듯.
그렇다 해서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쓸데없는 관심과 친절보다 차라리 이편이 나았다.
선우에게도 남자는 그저 별채의 주인이며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서유라의 괴롭힘도, 서문도의 무관심도 선우에겐 문제 되지 않았다. 서유라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 * *
샤워를 마친 문도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컵을 꺼내 냉장고의 디스펜서에 댔다. 투둑투둑 얼음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말도 마, 매일 난리도 아니에요. 주스, 커피, 물 아주 돌아가면서 퍼붓지를 않나, 막말은 기본이고, 옷도 찢었다 하고.’
오늘도 장 여사는 그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서유라의 트레이너가 별채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일들을 당하고 있는지.
문도는 지극히 건조하고 차분하게 보고를 하던 트레이너를 떠올렸다.
제게 벌어진 일들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간략하게 보고를 마쳤던 여자는 색다르긴 했다.
똑똑한 걸까. 미련한 걸까.
보고를 해도 그가 막아 줄 리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거라면 똑똑한 거고, 참고 견디다 보면 나아지겠지, 희망을 갖는 거라면 미련한 거고.
문도는 얼음이 절반 정도 차오른 컵에 물을 받았다. 절반 정도를 마신 뒤 다시 물을 가득 받았다. 2층으로 가지고 올라가려는데 복도를 살금살금 기어 나오던 서유라와 눈이 마주쳤다.
“으악!”
놀란 서유라가 균형을 잃고 기우뚱거렸다.
“뭐야, 썅!”
욕설을 문장부호쯤으로 생각하는 서유라를 보며 문도는 웃었다.
“가능하면 내 눈에 띄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무, 물 마시러 나왔어!”
서유라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닭발에 소주는 맛있게 드셨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서유라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떻게 알긴. 매일 보고를 들으니까 알지.
매일 밤 여자가 자신에게 보고를 하러 올라온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어떻게 아는 것인지 단번에 캐치하지 못하는 멍청한 서유라가 뒤늦게 깨닫고 욕을 했다.
“아 씹……. 그년이.”
“고모님.”
문도는 무감한 눈으로 서유라를 내려다보았다.
“똑바로 살자고 하지 않았던가요. 제가.”
웃으며 말을 했는데도, 유라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 * *
경찰서를 나왔을 때 불이 꺼진 사설 구급차가 보였다. 끌려가지 않으려 온갖 저항을 다 했지만 상대는 서문도였다.
유라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악을 악을 썼다. 온갖 욕을 퍼부었고, 손톱으로 아무 데나 할퀴었다.
‘핸드폰 내놔! 나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 강 비서 불러! 울 아빠 부르라고 해! 아빠가 알면 너 그냥 둘 것 같아? 내가 전부 다 이를 거야! 내가 니 고모야!’
반항이 무의미하게 유라는 문도에게 목덜미를 잡힌 개처럼 끌려가 구급차 안으로 던져졌다.
바닥에 엎어지며 유라는 간이침대의 받침대에 머리를 박았다. 아찔한 통증에 아프다고 울부짖는 유라를 문도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나 멀쩡하다구! 멀쩡한데 왜 자꾸 병원엘 가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유라의 말에 문도가 훌쩍 구급차 안으로 뛰어올랐다. 그녀가 어, 하는 소리를 낼 겨를도 없이 서문도가 유라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젖혔다.
‘잘못한 게 없어?’
‘그깟 약 좀 한 거 그게 뭐? 그 새끼들 뒤진 거? 누가 뒤지래? 재수 없어서 그렇게 된 걸 어쩌라구!’
한껏 뒤로 젖혀졌던 유라의 고개가 순식간에 앞으로 처박혔다. 쾅 소리와 함께 쇠로 된 지지대에 머리가 부딪쳤다.
‘사람이.’
유라의 머리를 짓이기듯 누르며 문도가 말했다.
‘둘이나 죽었는데.’
문도가 꾸욱 힘을 주었다.
‘상황 파악이 그렇게 안 되나?’
침대에 고개를 처박힌 채 유라는 나직한 문도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기서 끝내 줄까? 응?’
유라의 고개가 다시 들어 올려지며 문도의 섬뜩하리만치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와 마주 보게 되었다.
‘가, 갈게. 가, 간다구. 가면 되잖아.’
유라는 깨진 이마를 하고서 빌었다. 병원에 갈 테니 제발 놓아 달라고. 유라는 제 발로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비참함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문도가 후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바로 했다.
‘유라야.’
툭, 툭 옷매무새를 정리한 서문도가 풀린 소매의 단추를 잠그며 유라를 불렀다.
‘똑바로 살자. 응?’
옷깃을 바로 하며 태연히 자신을 보던 그 얼굴을, 유라는 꿈에서도 잊지 못한다.
고모님, 하고 문도가 유라를 불렀다.
“똑바로 사시고, 트레이너 말 잘 들으시고. 쉽잖아요?”
그 쉬운 걸 못 하겠지. 문도는 알고 있었다. 서유라는 너무나 예상 가능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조종하기도 어렵지 않은 건 장점이려나.
“아, 괴롭히지도 말고요.”
참을성이 없는 서유라는 재깍 반응을 보였다.
“걔가 그래? 내가 괴롭혔다고?”
문도는 대답을 늦추었다. 서유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가만두지 않겠지. 어떻게 드잡이를 할지 머리를 팽팽 굴리고 있는 게 훤히 보였다.
“아니요. 안 했습니다.”
서유라가 그의 말은 듣지도 않고 쿵쿵거리며 게스트룸으로 돌아갔다. 문도는 가볍게 웃었다.
늦은 대답은 서유라의 의심에 확신을 더할 것을 안다. 그렇게 서유라는 일곱 번째 트레이너가 두 손을 들고 포기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한 달, 일곱 명.
고모님을 갱생시켜 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입증하기에 이 정도면 훌륭한 수치 아닌가.
‘유라가 너는 무서워하잖니. 사람답게 만들어 놓아야 회장님 볼 낯이 서지. 유라 인간답게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건 문도 너밖에 없으니 이제 그만 퇴원시켜서 잠시만 데리고 있어 보거라.’
약에 취해 사고를 친 서유라를 병원에 던져 넣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한 그에게 한 달 전, 아버지 서중호가 했던 말이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회장은 오냐오냐 받아 주기만 하고, 어미인 박소영은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했으니.
회장에게 잘 보이고 싶은 아버지는 어린 막내 여동생에게 너그러운 오빠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가 덜된 인간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회장이 퇴원할 때까지라고 했지만, 아흔이 목전인 양반이 언제 퇴원할 줄 알고. 한 달이면 넘치도록 충분했다.
자신이 참을 만큼 참아 주고 있다는 건 아버지도 이미 알고 있으니, 이제 서유라의 트레이너가 나가 주기만 하면 되었다.
‘네, 그게 전부입니다.’
문도는 담담히 말했던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다른 식으로 만났더라면, 그러니까 회사에서 부하 직원으로 만나게 되었더라면 눈여겨보았을지도 모르지.
딱 그가 선호하는 스타일이었다. 성실하고 변명 없고 일 잘하는. 아, 거기에 인내심도 추가.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서유라의 트레이너였고, 짧은 인연은 곧 끝날 터였다. 안타깝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문도는 2층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