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우스
클럽은 삼성로에 있었다.
4성급 호텔 지하에 위치한 클럽에 붙어 있는 간판이라곤 영어 대문자 ‘Z’가 전부였다.
문도는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찰칵, 불을 붙인 뒤 첫 모금을 깊게 마셨다.
공복의 담배가 잠깐의 아찔함을 선사하며 속을 훑었다. 후우, 내뱉는 하얀 연기 사이로 클럽의 입구가 보였다.
문도는 무심한 눈으로 클럽을 바라보며 담배를 깊이 빨아 마셨다가 길게 내뱉었다. 그때마다 빨간 불이 타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
담배의 길이가 반으로 줄었을 때, 하늘에서 먼지 같은 눈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경을 쓴 보통 체격의 남자가 클럽 정문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문도는 반으로 줄어든 담배를 끄고 걸음을 옮겼다. 그를 발견한 남자가 묵례를 했다.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은 문도는 클럽의 정문 입구를 지나쳐 걸었다. 남자도 합류하며 같이 걸었다. 두 사람은 건물을 돌아 뒤편의 VIP 전용 입구로 향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문도의 말에 미리 연락을 받았던 보안 팀장이 아닙니다, 깍듯이 대답하며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안으로 내부로 향하는 회색 계단이 보였다.
쿵, 쿵, 쿵, 쿵 진동이 울리는 계단을 내려가며 문도는 자신을 깨웠던 전화를 떠올렸다.
* * *
반쯤 잠에 걸쳐 있는 느낌이었다. 간혹 그런 날이 있긴 했다. 피곤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은 날.
꿈도 상념도 아닌 어지러운 어딘가를 헤매고 있던 찰나에 벨 소리를 들었다.
어둠을 날카롭게 가르는 벨 소리에도 쉽게 잠에서 벗어나지지가 않아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였다.
— 박소영한테 전화가 왔구나.
박소영은 아흔을 목전에 둔 조부의 애인이시다. 서명구 회장이 협심증으로 쓰러져 입원을 하자 마음이 힘들고 우울하다며 여동생이 사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제 한 달쯤 되었나.
‘그런데요.’
— 유라한테 문제가 생겼단다.
문도는 눈을 감은 채 잠시 웃었다. 서유라는 박소영이 낳은 회장의 막내딸이다. 그에게는 세 살 어린 고모님이기도 했다.
문도는 느리게 눈을 문지르며 물었다.
‘죽었대요?’
—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약을 좀 한 모양이야. 어미 된 죄라며 사정사정을 하는데, 한번 들여다봐야 하지 않겠나. 배는 다르다만 어쨌든 내 동생이고 서씨 집안 핏줄인데 회장님 건강 생각해서라도 챙겨야지.
문도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천장에 길쭉한 마름모 모양의 달빛이 어룽거렸다. 희미한 빛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케미컬 1분기 실적 발표 며칠 안 남은 거 아시죠.’
— 알지.
‘제이엔 바이오 인수 추진 중인 것도 아시구요.’
— 그래.
‘솔루션 상장 준비 중인 것도 아시고.’
— 그래서, 가기 싫다는 거냐.
문도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알고 계시라구요.’
그 말에 서중호가 다시 웃었다. 알지, 알지, 우리 서 전무가 고생이 많아. 조금만 참아라. 얼마 안 남았다. 부드럽게 말하면서.
‘서유라, 어디래요.’
— 삼성동에 있는 클럽이란다.
그곳이 어딘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게 웃겼다. 개미굴 같은 밀실들이 벽 너머에 숨어 있는 곳.
반년 전쯤인가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의식을 잃은 서유라를 처리하러 다녀온 적이 있다. 그날 이후 몇 달 잠잠하다 했더니, 쯧.
— 많이 피곤하냐. 내가 갈까.
굳이 깨워 놓고는 뒤늦게 입에 발린 소리 하시기는.
‘제가 갑니다. 주무세요.’
4시 14분.
협탁 위에 놓인 디지털시계의 숫자를 확인하며 문도는 몸을 일으켰다.
* * *
클럽 ‘제우스’는 두 개의 지하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하 2층에 메인 스테이지와 테이블이, 위층인 지하 1층에 스테이지가 보이는 VIP룸이 있다. 원형 경기장과 비슷했다. 좌석 대신 VIP룸이 있을 뿐.
건물 뒤편의 후문은 VIP 회원 전용 출입구였다. 스테이지를 지나지 않고 지상에서 VIP룸으로 바로 이어진다.
빠르고, 쉽게,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드나들 수 있도록.
좁은 계단도 아닌데 내려갈수록 특유의 탁한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소음을 막는 두터운 문을 밀고 들어가니 공간이 확 트이며 귀가 터질 것 같은 음악 소리가 덮쳐 왔다.
어둠을 번쩍번쩍 가르는 강렬한 조명. 어지럽게 도는 레이저빔. 몸을 흔드는 DJ와 환호하며 머리를 흔드는 관객들. 아래층의 관객들이 단체로 접신이라도 한 듯 들썩거렸다.
몇 걸음을 걷자 보안 요원이 지키고 있는 아치형 입구가 바로 나타났다. 특정 회원이 아니면 예약할 수 없다는 VVIP 전용 룸의 입구였다.
“레드룸에 계십니다.”
CCTV도 달지 않은 곳. 문도는 어둑한 복도 안으로 뚜벅뚜벅 걸었다. 안경을 쓴 남자도 문도의 뒤를 따랐다.
창문 하나 없이 꽉꽉 닫혀 있는 문들을 지나며 명패를 훑어본다. 블랙, 화이트, 블루를 지나 레드.
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열렸다.
* * *
룸의 내부는 호화스러웠다. 푹신한 소파와 대리석 테이블. 맞은편 벽은 전부 거울이고 천장에는 조명 핀이 돌고 있다. 바깥과 같은 음악이 내부를 울린다.
퇴폐의 냄새가 나는 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서문도는 커다란 룸을 가로질렀다. 2층으로 올라가는 안쪽의 계단을 밟았다. 좁고 가파른 계단이 끝나는 곳에 2층의 홀이 나왔다.
아래층과 비슷하게 소파와 테이블이 있고, 역시 빈 술병과 먹다 남은 안주들이 보였다.
문도는 무심히 계속 걸었다. 가장 안쪽, 벽처럼 보이는 비밀의 문이 나올 때까지.
쿵쿵.
문을 두드렸지만 안쪽에서는 기척이 없다. 손잡이를 돌려 보았다. 잠겨 있었다. 문도는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세 번의 통화음이 울리자 안쪽에서 희미하게 벨 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온 남자가 귀를 기울여 벨 소리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쥐구멍에 숨은 것처럼 웅크리고 있을 서유라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줄 인내심 따위, 문도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핸드폰을 쥔 채, 문도는 발을 들어 그대로 문을 걷어찼다. 쿵 소리와 함께 얇은 합판에 불과한 문짝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비틀렸다.
안에서 들려오는 서유라의 비명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 더 발을 내리꽂는다. 반쯤 비틀린 문이 활짝 열리며 안쪽의 풍경이 보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던 문도는 하아, 탄식을 뱉으며 말 그대로 뒷목을 쥐었다.
씨발.
욕설을 뱉으며 눈을 꾹 감았다 떠 보았지만 보이는 장면은 똑같았다. 바닥에 두 명의 남자가 누워 있었다.
한 명은 똑바로, 또 한 명은 엎드린 채로.
그 옆으로 깨진 샴페인 병도 보였다. 나직하게 욕을 씹으며 눈을 들자 커다란 침대 구석에 웅크려 있는 서유라가 보였다. 불안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침대 발치의 베드 벤치에 앉아 긴장한 얼굴로 그를 보는 또 다른 남자도 보였다. 서유라가 끼고 노는 남자인 듯했다.
뚜벅뚜벅 걸어간 문도는 바닥에 누워 있는 남자들 앞에 멈추어 섰다. 이제 막 스물이나 넘겼을까. 새파랗게 어린 남자애들이었다.
“장 변호사님, 확인해 주시죠.”
문도가 말하자, 함께 룸으로 들어온 남자가 무릎을 굽혀 앉아 두 사람의 숨을 확인했다.
“죽었습니까?”
“네.”
남자가 문도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에선 쿵, 쿵, 쿵, 쿵 요란한 음악이 울리는데, 룸에는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문도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유라가 입을 틀어막았다.
킥.
웃는 소리에 문도는 눈을 들었다. 눈이 풀린 서유라가 킥킥 웃고 있었다. 문도와 눈이 마주치자 웃는 듯 우는 듯 일그러진 얼굴로 몸을 떨며 말했다.
“대박이지? 존나 웃긴 게 먼 줄 알아? 자기들끼리 처 싸우더니 그냥 뒤졌어. 그으냥. 끽- 하구.”
목이 잘리는 손동작을 하며 유라가 낄낄 웃었다. 숨이 넘어가게 웃더니 뚝 그치고는 부르르 고개를 털며 몸을 흔들었다.
“완전 무섭드라, 와씨, 내 인생 다 조지면 어떡하지? 응? 문도야, 서문도, 쉬잇. 아빠한테 비밀. 우리 아빠 죽으면 어뜨케? 그럼 안 되지, 그지? 그러니까 우리만의 약쬭. 오케이?”
서유라가 새끼손가락을 흔들며 중얼거렸다. 침대 위에는 빈 주사기가 뒹굴고 있었다.
“약속은 씨발.”
문도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서유라와 엮여 인생 골로 가게 생긴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제가 도착했을 땐 이미……. 이미,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정말이에요.”
“어, 정말이야. 이 새끼들 지들끼리 약 찌르고 싸우다가 저렇게 된 거야. 우린 아무 상관 없어. 지짜야. 얜 지짜 방금 왔거든. 아무 상관 없어. 쟤들이 서로 나랑 자겠다구 그러다가 막 싸우고.”
서유라가 횡설수설 중얼거렸다.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었다. 조사는 경찰이 할 테니. 그의 역할은 조용히 서유라를 병원에 보내 버리는 일이다.
시선을 돌리니 장 변호사가 허리를 굽혀 남자들의 핸드폰을 수거하고 있었다. 문도는 장 변호사에게 말했다.
“일단 신고부터 하시죠.”
장현성 변호사는 알려지면 곤란한 일들이 발생할 때 서중호가 뒷수습을 위해 종종 부르는 남자였다. 장 변호사가 일어서서 찬찬히 비밀의 공간을 훑어보더니 잠시 생각을 한 뒤에 말했다.
“예. 그게 낫겠습니다. 어쨌든 사람이 죽었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문도는 서유라를 향해 걸었다. 서유라가 시선을 피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문도는 아래로 수그러드는 유라의 턱을 한 손으로 잡았다.
“고모님.”
악력에 서유라의 입이 으,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유라는 고개를 비틀어 빼려 했지만 빠져나올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야지.”
서문도가 다른 손으로 툭툭 뺨을 치자 벌어진 유라의 입가에선 침이 흘러내렸다.
“그래야 집에 가지.”
부드럽게 말하는 문도의 눈에는 조금의 웃음기도 없었다. 미친 새끼. 그렇지만 유라는 서문도가 무서웠다.
유라가 눈알을 굴리며 시선을 피하자 서문도는 그녀의 턱을 놓고서 몸을 바로 세웠다. 눈앞의 미친놈이 사라졌다고 안심하던 찰나, 유라의 뒷목이 잡혔다. 그대로 몸이 딸려 간다.
“놔, 이 씹새끼야, 놔, 안 놔?”
질질 끌려가던 서유라는 테이블 뒤의 소파에 던져졌다.
“너.”
침대 발치에 있던 남자에게 말하며 문도가 저리 서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남자는 주춤주춤 걸어 서유라의 근처에 섰다. 두 사람을 한곳에 모아 놓은 문도는 휴대폰을 꺼냈다.
“뭐, 뭘 하려는…….”
남자가 말을 하기도 전에 문도가 말했다.
“기념 촬영.”
찰칵. 휴대폰 소리와 함께 밝은 빛이 터졌다. 산 사람 둘과 죽은 사람 둘이 사진 안에 같이 담긴다.
남자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떠지는 순간, 문도는 건조한 눈으로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쿵, 쿵, 쿵, 쿵 울리는 것이 바닥의 진동인지, 자신의 심장 소리인지 남자는 구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