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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817화 (817/818)

817화. 투제의 결투 (3)

‘젠장!’

몸속에 담아두었던 허무의 불꽃이 요동치는 것을 느낀 혼천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이준이 모든 천지의 불꽃을 모은다면 지옥의 혈진이 아니라 그 무슨 수를 동원한다 해도 절대로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황급히 정신을 집중해 이준의 영혼의 힘을 막아냈다.

“네가 허무의 불꽃을 삼켰구나.”

혼천제의 몸속에서 강한 파동을 느낀 이준은 혼천제가 끝내 허무대인까지 잡아먹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환멸을 느꼈다.

“허무의 불꽃! 나와라! 너의 원수를 갚아주마!”

펑!

이준이 다시 한 번 영혼의 힘을 폭발시키자, 결국 검은색 화염이 혼천제의 몸에서 빠져나와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혼천제, 감히 날 잡아먹다니. 난 죽어도 너와 함께 죽을 것이다!”

허무대인이 독기 어린 눈으로 혼천제를 노려보며 외쳤다.

곧이어 그의 시선이 이준에게로 향했다. 이준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상대의 몸에서 익숙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염제! 하하하하! 염제가 되다니! 좋다! 너의 명령을 따르마!”

허무대인은 일그러진 얼굴로 웃음을 터뜨리며 마지막 돌기둥 위로 올라섰다.

펑!

마지막 돌기둥 위에 검은 화염이 자리를 잡자, 스물두 개의 화염 기둥이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하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한 곳으로 모여들어 커다란 하나의 불꽃으로 변했다.

“마, 말도 안돼!”

고원의 동공이 바늘구멍처럼 작아졌다.

“염제의 검!”

이준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알아본 촉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서, 어서 핏빛 칼날에 목숨을 바쳐라!”

다급해진 혼천제가 다시 손을 들며 외쳤다.

이번에도 혼족 대군 속에서 큰 소동이 일었지만, 혼천제를 향해 날아오는 사람은 채 백 명도 되지 않았다.

“배신자들!”

분노를 참지 못한 혼천제는 혼족 대군을 향해 거대한 팔을 휘둘러 강제로 혼족의 강자들을 칼날의 제물로 바쳤다.

“자신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을 죽여서라도 투기대륙의 최강자가 되고 싶은 것이냐!”

이준이 차가운 눈빛으로 혼천제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미 나는 수많은 동족들을 희생시켜 이 자리에 올랐다. 그들은 네놈이 아니었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네 탓이야! 네 놈이 날 방해하지만 않았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악마와도 같은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며 혼천제의 머리칼이 피처럼 붉은 빛을 발했다.

다음 순간 혼천제의 몸이 화염 광장 위에 나타나더니 이준을 향해 새빨간 칼날을 휘둘렀다.

챙!

오색찬란한 검과 핏빛 칼날이 맞부딪히자, 화려한 불씨가 사방으로 흩날리며 주위의 대지가 가루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격렬한 폭풍이 몰아치며 화염 광장이 광활한 대지 위로 떨어지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 생겨났다.

잠시 후…….

지상으로 떨어진 화염 광장 위에서 온몸이 피범벅이 된 두 사람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하하, 이준. 오늘 네가 이긴다 해도 날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회복되는 순간 반드시 너와 연합군 놈들을 모조리 죽여 흡수해주마.”

비틀거리며 일어난 혼천제가 이준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콜록콜록…….”

이준 역시 백지장처럼 새하얀 얼굴로 선혈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오늘 반드시 혼천제를 잡아야 했다. 그를 놓친다면 이번에는 중주가 아니라 투기 대륙 전체에 끔찍한 재앙이 닥치고 말 것이다.

“하하. 도망가게 둘 것 같아?”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낸 이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화염 광장이 다시 하늘 위로 떠오르고, 이준의 몸에서 화려한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화염 광장의 중심부에서 화려하게 반짝이는 돌기둥이 솟아났다.

그때, 이준의 몸이 강하게 떨리더니 빠른 속도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투제지신을 태우다니, 네가 죽음을 자처하는구나!”

혼천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한 번 투제지신을 연소시키면 적어도 수백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거쳐야 다시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다급하게 소리쳐도 이준의 몸은 더욱 빠르게 타들어갈 뿐이었다.

“맹주님!”

“염제대인!”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준이 중주를 위해 목숨까지 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나는 스스로 천지의 불꽃이 되어 너를 영원히 봉인할 것이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이준의 몸이 완전히 화염으로 변했다. 광장을 메우고 있던 천지의 불꽃들은 마치 제왕을 모시는 신하처럼 돌기둥 위에서 조용히 타올랐다.

이준의 몸으로 만들어진 화염이 마지막 남은 불기둥 위에 안착하자, 23개의 화염이 모두 모이며 광장 위에 기이한 진법이 생겨났다.

그 순간,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죽음의 기운을 느낀 혼천제가 황급히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쉭!

하지만 도망치기엔 이미 늦었다. 그가 움직이려는 순간 거대한 화염 광장이 허공을 뚫고 혼천제의 발밑으로 이동해 그의 몸을 진법 안으로 빨아들였다.

꽈르릉!

“천 년의 계획이 이렇게 무너지다니, 용납 못 한다, 용납 못 해!”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진법이 굵은 화염선으로 변해 혼천제의 몸을 강하게 옥죄었다. 혼천제의 몸을 둘러싼 화염선은 그대로 영혼광단으로 변했고, 날카로운 비명이 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화염선은 거대한 고치가 되어 화염 광장 위로 떨어졌고, 옅은 빛을 내뿜으며 광장 바닥으로 서서히 스며들더니 광장 전체에 거대한 봉인진이 떠올랐다.

대지 위.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 안에 봉인된 화염고치를 바라보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성공인가?”

중주 전체에 울려 퍼진 환호성을 들은 고원 등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하늘 위에 떠있는 화염 광장을 쳐다봤다. 정말로 이준이 혼천제를 막아냈단 말인가?

“우리가…… 이겼어…….”

“이겼어!”

“살았다! 살았다고!”

“이준…….”

그때,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를 뚫고 두 개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화염 광장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두 개의 그림자가 광장에 도착했을 때 남아있는 것은 거대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기둥 하나뿐이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 기둥을 바라보던 두 여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콜록…….”

그때, 어디선가 허약한 기침 소리가 들려오더니 화염기둥 위로 흐릿한 형체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육체만 사라진 거지 아직 안 죽었어. 몸은 다시 만들면 돼.”

이준이 창백해진 얼굴로 두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청년의 웃음소리에 번쩍 고개를 든 두 여자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다신 그런 짓 하지 말아요.”

“또 이런 짓 하면 죽여 버리겠어.”

두 여자의 말에 이준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약속할게. 이게 마지막이야.”

이준의 시선이 광장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 밑에 봉인된 투제의 영혼은 앞으로 천천히 천지의 불꽃에 의해 연소될 것이다.

쑥대밭이 되어버린 중주를 바라보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드디어 쉴 수 있겠어.”

투기 대륙의 운명을 건 대결이 막을 내렸지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중주에서는 더 이상 예전의 호화로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중주의 절반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이 되어있었다. 앞으로 이곳은 ‘투제의 절벽’이라 불리며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지금 중주는 과거의 화려함을 잃었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면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투기대륙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투기대륙의 명운을 건 결전이 벌어졌었기 때문이다.

혼천제가 봉인되면서 결전은 자연스레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혼족 사람들은 혼천제가 투제로 승급하면서 실력이 크게 상승했지만, 그 힘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열에 일곱은 혼천제가 소환한 핏빛 칼날에 강제로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천제가 이준에게 봉인을 당했으니, 의지할 곳 없이 남겨진 혼족의 강자들은 연합군에 의해 깔끔하게 토벌되고 말았다.

대전이 막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합군은 혼계를 상대로 대대적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혼계에 들어가는 순간 연합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중주만큼이나 처참하게 변해 버린 핏빛 세상이었다.

혼계의 중심부에는 새빨간 피와 백골이 가득한 피의 호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결국 수천 년간 투기 대륙을 호령하던 혼족은 그렇게 어이없고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제 투기 대륙에 남은 고대세력이라고는 고족, 염족, 뇌족에 이준이 투제가 되며 다시 힘을 되찾은 이족뿐이었다.

투제의 피는 이준과 가까운 혈연일수록 더 큰 효과를 보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효과를 본 사람은 바로 이준의 딸인 이솔이었다.

이솔은 이준이 투제가 되는 순간 무려 8성 투성이 되었다. 이솔이 천부적 자질을 지니고 있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이번 일로 한순간에 투기대륙 최강자 반열에 올랐으니 수백 년을 수련만 하던 사람들은 부러운 마음에 피를 토할 것 같았다.

나머지 세 고대 세력은 갈수록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반면 이족에서는 투제가 나왔으니, 이족이 투기 대륙 최강의 세력으로 자리 잡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 * *

대전이 끝나면서 연합군은 자연스럽게 해산되었다.

하지만 천부연맹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또한 연맹에 소속된 어떠한 세력도 천부연맹을 벗어나려 하지 않고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다.

심지어 본래 자신이 어떤 세력 소속이었는지조차 따지지 않았다. 투제 강자가 맹주로 있는 연맹의 연맹원보다 더 매력적인 자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 * *

그로부터 2년 후, 중주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갔고, 수많은 세력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천부연맹은 아무런 개입도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중주의 발전과 번영을 지켜봤다.

중주, 아니 투기대륙의 모든 세력이 손을 잡는다 해도 천부연맹의 상대가 될 수 없으니 어떤 세력이 얼마나 커지든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다.

이준은 이화의 힘을 빌려 2년 만에 다시 몸을 제련해 내는데 성공했다. 가장 다행인 것은 어떤 후유증도 없다는 점이었다.

또한 이준과 이은, 채린은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아주 성대한 결혼식을 치렀다. 이 결혼은 이준이 두 여자에게 했던 약속이기도 했다.

얼마 후, 이준은 천부 연맹의 맹주 자리를 다시 약로에게 돌려주었다.

약로도 이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준은 언제나 조용히 살아가기를 원했고, 천부연맹도 연합군도 모두 혼족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한 것에 불과했다.

이제 혼족과의 싸움도 끝났으니, 늘 싸움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던 제자에게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이준을 놓아준 것이다.

모든 짐을 내려놓은 이준은 드디어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 투기대륙 전체를 떠돌아다니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갔다.

* * *

시간은 떨어지는 꽃잎 따라, 낙엽 따라 흐르고 흘렀다.

동중주, 도시와 수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정자 위에 세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그들의 눈빛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가득했다.

“류지안, 정말 오는 거야?”

잔뜩 미간을 찌푸린 사내가 초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임동수. 그 급한 성격은 아직도 고치지 못한 거야?”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임수혁. 청천성에 네 세력을 세웠다지?”

건장한 체형의 류지안이 웃으며 말했다. 류지안은 그 사이 류씨 가문의 실권을 쥔 강자가 되어있었다.

“취미지, 뭐.”

임수혁이 웃으며 말했다.

“자랑할 정도로 대단한 것도 아니야. 그 녀석과 비교하면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 지경이지.”

“하하, 임수혁. 네가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그때, 정자 안에 익숙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한 청년이 소리도, 인기척도 없이 정자 안에 나타났다. 바로 이준이었다.

“하하, 드디어 왔군.”

세 사람은 반가운 얼굴로 활짝 웃으며 다가가 이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 내가 염제를 때려볼 줄이야. 돌아가서 자랑해야겠다.”

임동수가 말했다.

오랜만에 친한 친구들을 만난 이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쓸데없는 소리 마. 마시기나 하자고.”

“좋지, 이 형님이 같이 마셔주마!”

정자 위. 네 사람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달이 떠오르고, 임동수와 류지안은 고주망태가 되어 땅에 드러누웠다. 오늘은 염력을 사용하지 않고 취기를 그대로 느끼며 거하게 취하고 싶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임수혁이 살짝 풀린 눈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무 오래 돌아다녔더니 이젠 좀 힘드네.”

이준이 고개를 들어 밝게 빛나는 달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한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천부연맹으로 가. 내가 미리 말해뒀어.”

“하하, 내가 너와 가한제국으로 간 게 정말 잘한 짓이었던 것 같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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