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816화 (816/818)

816화. 투제의 결투 (2)

“저건 투제의 몸, 투제지신(鬪帝之身)이다.”

거인으로 변한 혼천제의 모습에 고원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그 역시 8대 세력의 족장이니, 투제 강자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혼천제 못지않게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혼천제의 몸은 에너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육체가 팽창한 것으로, 이런 거대한 몸은 오직 투제 강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고족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에 따르면 투제 강자가 만들어 낸 거대한 육체는 ‘투제지신’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던 이준의 표정은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곧이어 이준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대지가 다시 한 번 반으로 갈라지면서 지하 깊숙이 묻혀있던 용암이 터져 나와 이준의 몸속으로 빠르게 흘러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긴장된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이준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고, 화려한 화염이 모공을 빠져나오며 불의 용처럼 몸 전체를 휘감았다.

“역시, 꽤 하는군.”

혼천제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외쳤다.

“좋다! 내 혈제지신이 강한지, 네 염제지신(炎帝之身)이 강한지 한 번 겨뤄보자!”

혼천제는 커다란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이준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공간을 부수며 앞으로 나아가는 위력에 저 멀리 떨어진 채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온 몸의 털이 거꾸로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하!”

하지만 이준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주먹을 내뻗었고, 이준의 몸을 휘감고 있던 화려한 불꽃이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앞으로 날아갔다.

펑-!

충돌 지점을 시작으로 대지가 파도치듯 차례대로 빠르게 무너졌다. 먼 곳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안전지대를 찾아 황급히 몸을 날렸다.

“조심해!”

고원을 비롯한 강자들은 잽싸게 힘을 합쳐 방어막을 펼쳤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으로는 이준이 만들어 둔 화염장막이 아니었다면 두 투제의 싸움에서 발생한 여파조차 막아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쾅쾅쾅!

다음 순간, 이준과 혼천제의 거대한 몸이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그들이 한 발짝씩 밀려날 때마다 수천 미터 전방의 공간이 까맣게 변해 무너져 내렸다.

두 사람은 자리에 멈추기가 무섭게 다시 앞으로 돌진했다. 그들의 전투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만년 이래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들의 싸움이었다.

이준과 혼천제가 맞부딪힐 때마다 대지가 갈라지며 깊은 계곡이 생겨났고, 모든 생명이 두려움에 떨며 몸을 숨겼다.

그렇게 두 사람의 전투는 반나절 가까이 이어졌다.

그 영향으로 중주 밖에 있는 강자들도 큰 움직임을 느끼고 중주를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중주에 발을 딛는 순간 무시무시한 강풍이 그들을 날려버렸고, 투존급의 강자들조차 피를 토하며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했다.

“염혼(炎魂)의 폭발!”

그때, 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고함소리가 거인으로 변한 이준의 목구멍에서 터져나오며 오색찬란한 화염 폭풍이 하늘을 휩쓸었다.

곧이어 한 형체가 강한 충격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대지 위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을 보며 고원 등 사람들은 환희의 함성을 내질렀다.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은 다름 아닌 혼천제였기 때문이었다.

“역시 연금비약으로 된 투제는 한계가 있군. 6개월 만에 투제가 된 혼천제가 태령황제의 전승을 받아 천상무덤에서 무려 3년이라는 수련을 거친 이준을 상대할 수는 없지.”

촉곤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 역시 크게 환호하며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두려움을 모두 털어냈다.

그에 비해 혼족 측은 그야말로 낯빛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들 역시 이준이 승리하는 순간 자신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쾅!

그때, 절벽 밑에서 거대한 형체가 다시 몸을 일으키며 이준을 노려봤다.

“혼천제. 당신의 혈제지신이 내 염제지신(炎帝之身)만큼 훌륭한 것 같진 않은데?”

이준은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피비린내를 꾹 누르며 짐짓 여유로운 척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제 힘이 빠지기 시작했나봐?”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혼천제의 눈빛이 점점 더 싸늘하게 굳어갔다.

이준과 대결을 이어나갈수록 그는 연금비약과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으로 투제가 된 자신의 힘이 태령황제의 전승과 천지의 불꽃을 흡수해 만들어진 이준의 힘을 당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천 년간 공을 들여 투제가 되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패배할 수는 없었다.

“기뻐하긴 이르지 않느냐.”

혼천제가 중주의 대지를 차갑게 훑어보며 말했다.

“이준. 이건 다 네가 자처한 일이다. 오늘 이 중주 전체를 네 무덤으로 만들어주마!”

곧이어 혼천제의 거대한 손이 하늘을 반으로 가르며 눈부신 핏빛이 솟아나 마치 혈관처럼 대지 전체로 뻗어나갔다.

고개를 돌린 이준은 곧 혈관처럼 가느다란 붉은 선이 엄청난 속도로 중주 전체를 휘감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펑펑펑!

다음 순간, 대지가 격렬하게 뒤흔들리며 검붉은 빛기둥이 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솟구쳤다.

“곳곳에 설치된 종말의 대진이 모두 연결되고 있다!”

촉곤이 무언가 떠오른 듯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그리고 위치상으로 보아 이 진법들이 다 합쳐지면 또 하나의 진법이 완성된다.”

고원 역시 무언가를 눈치 챈 듯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이렇게 큰 진법을 어떻게…….”

염신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진법 하나로 중주 전체를 뒤덮다니, 이게 정녕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이준. 우리 혼족은 천 년에 걸쳐 최악의 상황까지도 대비해 준비를 마쳤다. 네가 투제가 되었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사이 중주 전체에서 솟아난 빛기둥이 빠르게 이어지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대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진법은 혼족의 첫 번째 투제 강자가 만든 지옥의 혈진이라는 것이다!”

혼천제가 사악한 눈빛으로 이준을 노려보며 외쳤다.

“고대의 투제 강자들도 이 진법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지.”

이준은 고개를 들어 중주를 뒤덮은 진법을 바라보았다. 핏빛이 섞인 진법 속에서는 위험한 기운이 가득 묻어나오고 있었다.

“혼천제…….”

순간 반쯤 승리를 확신했던 이준의 얼굴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 진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종말의 대진으로도 모자라 중주 전체를 뒤덮는 또 다른 진법을 준비해두다니, 혼족의 치밀한 준비성에는 정말이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일은 최악의 경우까지 계산해야지. 그것이 바로 혼족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혼천제가 손을 휘두르자, 그의 뒤에서 쏴아, 하는 물소리와 함께 갈라진 공간 사이로 피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지옥의 혈진 속으로 흡수되었다.

“이준. 수천만 백성들의 피로 만들어진 이 진법에서 죽는 것만으로도 투제가 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게다.”

수많은 피가 대진으로 쏟아지며 진법에서 더욱 붉은 빛이 터져 나오고, 그 붉은 빛기둥이 하나로 모이더니 이내 지독한 피비린내를 내뿜는 칼날로 변화했다.

기이하게도 지옥의 혈진으로 만들어낸 칼날에는 칼자루가 달려있지 않았지만, 칼날 위에서는 중주 전체를 단숨에 잘라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핏빛 칼날이 완성되자, 하늘 위에서 쏟아지던 햇빛마저 빠르게 사라지며 천지가 암흑에 휩싸였다.

“명령이다. 혼족은 자신의 몸을 바쳐라!”

혼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먼 곳에 있던 혼족의 대군 사이에서 잠시 소동이 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커먼 그림자들이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칼날을 향해 몸을 날렸다.

쉭!

핏빛 칼날이 다시 한 번 번쩍이며 수천 미터 밖에서 날아오던 혼족 강자들의 몸이 머리만 남긴 채 떨어져 나갔고, 밑으로 떨어지던 몸은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뿌려졌다.

혼족 강자들의 피를 흡수하자, 핏빛 칼날에서 더욱 흉흉한 기운이 새어나왔다.

“이준, 넌 끝이다!”

눈을 부릅뜬 채 칼날을 노려보던 혼천제가 새빨간 피를 칼날 위에 뱉어내며 외쳤다.

다음 순간, 기이한 소리가 허공을 타고 퍼져나가며 섬뜩한 죽음의 기운이 대지를 뒤덮었다.

천지에 적막이 흘렀다. 사람들은 모두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제 아무리 이준이라 해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지, 지옥의 혈진이라니…….”

고원이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그는 고족의 고적에서 ‘참제’라는 혼족 투제 강자가 만든 이 핏빛 칼날에 대한 기록을 수도 없이 봐왔다.

기록에 따르면 혼족은 이 무시무시한 대진을 이용해 투제 강자들을 죽였다고 했다.

* * *

“후…….”

이준의 입에서 처음으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조금도 절망의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혼천제, 나도 준비한 게 있다.”

혼천제를 노려보던 이준이 인결을 맺자, 그의 입에서 화려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하늘 위에 낯익은 광장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태령황제의 신전에 있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광장이 눈앞에 나타나자, 고원을 비롯한 연합군의 강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힘도 없이 그저 장식물에 불과했던 천지의 불꽃들로 지옥의 혈진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곧이어 이준의 몸이 하늘로 떠오르더니 그의 미간에 새겨진 화염인결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기이한 영혼의 힘이 무서운 속도로 투기대륙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나 염제, 이준의 이름으로 천하에 있는 모든 천지의 불꽃을 소환한다.”

잠시 후, 신비한 기운에 둘러싸인 빛이 머리 위로 떠오르며 투기 대륙 전체로 이준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스물세 번째 불꽃. 현황의 불꽃이여, 나의 부름에 답하라!”

이준의 외침과 함께 중주에서 수만 리 떨어진 산으로부터 강한 폭발음이 들려오더니 황토색 화염이 유성처럼 하늘을 가르고 단숨에 날아와 광장 위에 있는 돌기둥 위에 안착했다.

쾅!

그 순간, 돌기둥 위에서 솟아나던 현황화염이 하늘을 향해 거대한 불기둥을 뿜어냈다.

“스물 두 번째 불꽃, 만수의 화염! 나의 부름에 답하라!”

“스물한 번째 불꽃…….”

“…….”

“열아홉 번째 불꽃, 대지의 불꽃!”

“…….”

무수한 사람들이 넋을 잃고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봤다.

이준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천지의 불꽃이 날아와 돌기둥 위에 올라갔고, 이준은 마치 모든 화염의 주인처럼 그것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 이후에 호명된 불꽃들은 모두 주인이 있었지만 이준의 말 한 마디에 곧바로 돌기둥 위로 날아왔다.

“세 번째 불꽃, 정화의 불꽃, 나의 부름에 답하라!”

정화의 불꽃의 차례가 오자, 이준의 몸속에서 소애가 빠져나와 돌기둥으로 올라가더니 분홍색 불기둥을 마구 뿜어냈다.

광장에는 이미 21개의 화염 기둥이 완성되어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혼천제의 눈동자가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렸다.

황제 비약에 담긴 에너지와 혼족 강자들의 에너지, 수백만 명의 인간이 가진 영혼의 힘을 모두 합친다 하더라도 어찌 천지 에너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천지의 불꽃들이 모두 모인 것보다 강하겠는가.

지금의 이준은 말 그대로 천지만물에 흐르는 모든 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그때, 이준의 눈동자가 혼천제를 향했다.

“허무의 불꽃! 나의 부름에 응하라!”

그 순간 혼천제의 몸이 강하게 흔들리며 그에게 잡아먹혔던 허무의 불꽃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