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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814화 (814/818)

814화. 투제 강자의 힘

연맹 총부.

“혼천제가 투제가 된 것 같네.”

고원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방어막 밖을 가득 메운 핏빛 구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가 터져 나왔다. 그 무시무시한 힘 앞에서는 9성 투성인 고원이나 촉곤마저 벌레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모두 기뻐하라! 만 년 만에 투기대륙에 투제가 탄생했으니!”

곧이어 섬뜩한 목소리가 피바람을 타고 중주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혼천제!”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겁에 질린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와 동시에 연합군의 강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각자의 위치로 날아갔다.

수천, 수만 개의 그림자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광경은 보기만 해도 장관이었으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혼천제가 투제가 된 이상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전군! 마지막 결전에 대비하라!”

결의에 찬 고원의 목소리가 핏빛 하늘 위에 울려 퍼졌다.

“예!”

연합군 강자들의 목소리가 온 하늘을 뒤덮었다.

“이준은 소식이 있나?”

“아직.”

뇌영의 물음에 고원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난 그 아이를 믿네.”

“그래. 이제 우리가 모두 죽더라도 그 녀석이 투제가 되어 복수를 해주리라 믿는 수 밖에 없겠군.”

뇌영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삼대 세력의 젊은이들은 이미 몰래 대피시켜뒀다네. 오늘 우리가 패배해도 이준이 투제가 된다면 우리의 핏줄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이야.”

고원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알고 있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건 그를 위해 1분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이겠지.”

염신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 *

모든 준비를 마친 연합군의 강자들이 긴장된 얼굴로 모두 자신의 자리에 위치했지만, 핏빛 구름은 도통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무거운 적막이 한 시간 가량 계속되고 나서야 반 년 동안 중주를 집어삼켰던 핏빛 구름이 드디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섬뜩한 빛을 내뿜는 핏빛 구름이 천천히 갈라지며 새까만 형체들이 속속 방어막 앞으로 날아들었다.

“혼족, 드디어 왔군.”

하늘을 가득 메운 대군을 보는 순간, 연합군 강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니 마음속에서 공포와 절망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잠시 후, 혼족의 진영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검붉은 연꽃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꽃 위에는 귀신처럼 산발을 한 사내 하나가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돌연 온 하늘이 검붉은 먹구름으로 뒤덮이더니 역겨운 피비린내를 가득 머금은 검붉은 액체가 하나 둘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혼천제!”

고원이 연꽃 위에 앉은 혼천제를 노려보며 외쳤다.

“고원, 네가 졌다.”

혼천제의 머리칼은 피에 담궜다가 꺼낸 듯 역겨운 붉은 색을 띄고 있었고, 그의 눈동자는 그보다 더 진한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혼천제! 투사가 아니라 평범한 백성들까지 모두 죽여 투제가 되다니! 너는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다!”

“웃기는 소리.”

혼천제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늘도 나를 막을 수는 없다. 내가 바로 투기 대륙의 신이다.”

말을 마친 혼천제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천부연맹의 강자들이 펼친 보호막을 가리켰다.

“나는 투기 대륙의 신이며, 유일한 지배자이자, 마지막 투제이다.”

그가 주먹을 쥐자, 하늘에서 쏟아지던 피비가 날카로운 바늘로 변해 방어막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들기 시작했다.

쾅! 쾅!

피비로 만들어진 바늘과 맞부딪히는 순간, 연합군의 강자들이 만들어 둔 방어막이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말았다.

수만 명의 강자들이 모여 만든 최후의 방어선이 가벼운 손짓 한번에 뚫리는 광경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절망으로 가득 찼다.

너무나 압도적인 힘 앞에 연합군의 대군은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투제의 힘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절망하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고원이었다.

“결진(結陣)!”

고원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소리쳤다. 그 역시 투제가 된 혼천제를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투제가 될 이준을 위해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었다. 그의 목적은 1분이라도 더 이준이 투제가 될 수 있도록 혼천제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와아아!”

고원의 명에 절망에 빠져있던 연합군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앞으로 뛰쳐나갔다

“가자! 마지막까지 싸우자!”

“죽을 때 죽더라도 너 같은 악마에게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이다!”

“죽여라! 저 악마같은 혼족 놈들을 하나라도 더 길동무로 삼아라!”

몇몇 연합군의 투사들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뛰쳐나가 장렬히 전사하자, 분노한 전사들이 분분히 몸을 일으켜 그들의 뒤를 따랐다.

“황제의 거울!”

곧이어 고원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거대한 거울이 하늘 위에 솟아났다.

삼대 세력 뿐 아니라 천부연맹, 중주 곳곳의 실력자들을 모두 끌어 모아 만든 황제의 거울. 그것이 지금 연합군이 꺼내들 수 있는 최강의 무투기였다.

고원이 팔을 그어 자신의 피를 흩뿌리자, 거대한 거울에서 더욱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쾅!

다음 순간, 거대한 에너지 거울에서 수천 미터에 달하는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와 붉게 물든 하늘을 가르고 혼천제를 향해 날아갔다.

빛기둥이 스치는 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먼지 한 톨조차 남기지 않고 지워졌고, 반년 동안 한 점 빛조차 들지 않았던 중주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빛기둥의 위력에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작은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수만 명의 염력을 모은 공격이라면, 투제가 된 혼천제라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그런 작은 희망.

수만 명의 시선이 모두 한 곳으로 모인 가운데, 마침내 빛기둥이 혼천제의 지척까지 날아갔다.

“끌끌. 참으로 버러지 같은 것들이구나. 무릎을 꿇고 자비를 빌었다면 노예로라도 살아가게 해주려 했더니…….”

혼천제는 수만 명의 염력이 모인 빛기둥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펑!

혼천제의 손과 빛기둥이 맞닿는 순간, 거대한 빛기둥이 소리없이 부서져 내리더니 수천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빛기둥의 잔해가 힘없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고원.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나의 발을 핥으며 용서를 빌어라. 그렇게 한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마.”

절망과 공포로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로 혼천제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핏물이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며 온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게 바로 투제의 힘인가…….”

효과가 있으리라 확신했던 공격이 혼천제의 손에 가볍게 부서져 버리자, 고원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력감을 느꼈다.

만년이나 나타나지 않았던 투제의 힘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진정한 투제 앞에서는 지금까지 투기 대륙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던 고원과 중주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벌레나 다름이 없었다.

“그 실력으로 구세주가 되어보겠다는 것인가?”

혼천제가 새뻘간 눈으로 고원을 쳐다보며 비웃었다. 핏빛이 혼천제의 손에서 폭발하는 순간, 발밑에 있던 수많은 강자들이 반항할 새도 없이 그대로 핏덩이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순식간의 일이었다. 혼천제의 악랄한 행동에 자리에 있던 모든 강자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고원, 내가 줬던 기회를 차버리다니, 참으로 아쉽군.”

혼천제가 고원을 노려보며 말했다.

“지겹고, 시시하구나. 이제 그만 사라지거라.”

연합군의 모든 힘을 모은 공격을 막아낸 순간, 혼천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탈함과 지루함을 느꼈다.

지금 그는 절대강자만이 느끼는 허무함과 고독을 실감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하찮고 시시했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강자들이 모두 버러지로 보였다.

혼천제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고원을 가리키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천지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짙은 피비린내를 머금은 섬광이 고원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낀 고원은 황급히 온 몸의 천지의 에너지와 자신의 염력을 모아 혼천제의 공격에 대적하려 했다.

“멈추어라!”

하지만 혼천제가 고함을 지르는 순간, 고원을 향해 모여들던 천지 에너지와의 연결이 거짓말처럼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투성 강자가 위대한 이유는 염력뿐만 아니라 천지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지금, 혼천제의 말 한마디에 고원과 천지 에너지 간의 연결이 끊겨버린 것이다.

그러나 천지의 에너지를 이용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할 고원이 아니었다.

“황제의 주먹!”

고원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염력을 폭발시키자, 거대한 금빛 주먹이 솟아나 혼천제의 붉은 빛과 맞부딪혔다.

펑!

곧이어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거대한 손가락은 그대로 부서져 사라졌지만, 핏빛은 여전히 매섭게 고원의 염력 방어막 위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단단해 보이던 염력 방어막은 썩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듯 힘없이 부서져 버렸고, 섬뜩한 핏빛 섬광이 단숨에 고원의 몸을 강타했다.

“푸흡!”

고원의 입에서 곧장 새빨간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혼천제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날아가던 고원은 촉곤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간신히 자리에 멈춰 설 수 있었다.

“내 앞에서 천지 에너지를 가지고 놀 생각을 하다니, 우습구나.”

혼천제가 씨익 웃으며 핏빛 구름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쥐자, 붉은 낙뢰가 허공을 가르며 연합군을 향해 내리쳤다.

“결진!”

고원이 황급히 소리쳤다. 저 핏빛 낙뢰와 부딪히는 순간 연합군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연합군은 고원의 명에 따라 다급하게 염력을 집중시켜 거대한 용을 만들어냈다.

쾅쾅!

용이 나타나기 무섭게 하늘 위에서 핏빛 번개가 떨어지며 태양이 지상에 내려온 듯 눈을 찌르는 강한 빛이 중주 전체를 가득 채웠다.

“푸흡!”

그와 동시에 거대한 용이 산산이 부서지며 연합군 강자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더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선혈을 토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투제의 힘에 고원과 촉곤마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투제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설마하니 이 정도 숫자를 이토록 간단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절망한 염신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제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인다 해도 혼천제를 이기기는커녕 그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준이 나오기 전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고원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하지만 염신을 비롯한 다른 강자들은 이미 절망에 빠져 저항할 의지조차 잃은 상태였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요. 이준의 몸에 새겨진 용의 인결에서 엄청난 힘이 느껴져요. 이건 절대 투성 강자가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에요.”

그때, 옆에 있던 보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 역시 이준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순 없었지만, 그와 연결된 용의 인결을 통해 대략적이나마 그가 투제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절망에 빠져있던 사람들의 시체같은 눈동자에 조금이나마 빛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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