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화. 혼제
불바다 위에서 나풀거리는 화려한 연꽃을 바라보던 이준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나의 힘을 이어받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단단한 마음이다.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불멸의 의지. 그것만이 투제가 될수있는 열쇠다.”
말을 마친 태령황제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신비하게 빛나는 연꽃이 천천히 이준의 정수리 위로 이동했다.
“후…….”
이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심신을 빠르게 안정시키고 정신을 집중했다.
구우웅!
곧이어 신비한 빛이 천천히 이준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눈부신 빛이 이준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의 몸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전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에 이준의 혈관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고, 엄청난 고통이 전신을 덮쳤다.
잠시 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이준의 두 눈이 터져 나가더니 그의 몸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렇게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이준의 몸은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뭉개지고 말았다.
* * *
‘실패인가…….’
이준의 영혼은 터져버린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나른한 느낌이 전해졌다. 깨어날 수 없는 영원한 잠에 빠져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 안 돼. 여기서 잠들면 모든 게 끝이야.’
하지만 이준은 이를 악물고 눈을 뜨기 위해 애썼다. 여기서 잠든다면 그의 영혼은 소멸할 것이고, 투제가 된 혼천제가 세상을 집어삼킬 것이다.
‘육체가 너무 약해서 힘을 전부 받아들이지 못했어. 그런데 육체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에너지를 흡수하지?’
「나의 힘을 이어받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단단한 마음이다.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불멸의 의지. 그것만이 투제가 될수있는 열쇠다.」
태령황제의 말이 이준의 머리를 스쳤다.
그 순간, 이준의 영혼에서 신비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산산조각 났던 이준의 육체가 영혼을 중심으로 다시 구축되기 시작했다.
다시 생겨난 몸은 이전의 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투기대륙에서 가장 강하다는 용족의 육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단단한 몸에 균열이 생겨나더니 혈관이 하나하나 터져나가고 말았다.
펑!
폭음과 함께 조금 전보다 더욱 끔찍한 고통이 그의 몸을 덮쳤다.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불멸의 의지. 그것만이 투제가 될수있는 열쇠다.」
이준은 다시 한 번 그 말을 되새기며 정신을 다잡으려 애썼다.
그러자 그의 영혼이 또 한 번 빛을 발하며 산산이 부서진 육체를 다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펑!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불멸의 의지. 그것만이 투제가 될수있는 열쇠다.」
펑!
그의 몸은 그렇게 계속해서 폭발과 재생을 반복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태령황제는 그제야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사명도 곧 끝나겠구나.”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 동안 이준의 몸은 쉴 새 없이 폭발을 일으켰다가 재생하기를 반복했다.
이제 이준의 머릿속에는 태령황제가 남겼던 말 외에는 어떠한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수련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처참한 죽음과 부활의 반복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투기대륙에서는 2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두 달간 혼족이 설치한 대진에 의해 중주는 문자 그대로 죽음의 땅으로 변해있었다.
높푸른 하늘은 묵직한 핏빛 구름으로 가득했고, 대지에는 온통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져 버린 시신만이 가득했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시체와 피만이 시야를 가득 채웠고, 산천이 모두 붉게 물들었다.
재난이 막 시작됐을 때만 해도 분노한 중주의 모든 세력들이 힘을 합쳐 혼족에게 대항했지만, 이제 그들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오직 공포 뿐이었다.
이에 수많은 강자들이 천부연맹의 총부로 모여들었다.
중주 전체를 뒤져봐도 종말의 대진에 영혼을 대항할 힘을 가진 것은 천부연맹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천부연맹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고, 무수한 강자들이 모여 거대한 방어막을 설치했다.
하지만 종말의 대진을 막아낼 방어막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투기대륙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던 중주는 그렇게 고작 두 달 만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하늘을 가득 채운 핏빛 구름을 바라보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핏빛 구름이 중주를 장악한 지 어느 덧 3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백골이 가득한 피바다 속에서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비명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혼천제는 투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마저 모두 대진에 집어넣어 흡수하고 있었다. 이는 투기 대륙의 역사에서도 단 한 번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하늘에 떠있는 핏빛 구름이 짙어질수록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절망만이 가득해졌다.
이제 곧 혼천제가 투제가 될 것이고, 중주가 아닌 투기 대륙 전체가 공포로 물들 것이다.
* * *
천부연맹 총부.
높은 석대 위에 여러 사람들이 올라서서 거대한 방어막과 하늘을 가득 채운 핏빛 구름을 바라보았다.
“혼천제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네.”
적막을 뚫고 촉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렇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멸망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지금 당장 나가서 혼천제와 붙어보세!”
참다 못 한 뇌영이 이를 악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시원하게 붙어보고 죽어야 할 것 아닌가. 이런 식의 죽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핏빛 구름 안에 모인 에너지만으로 우릴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혼천제와 싸우겠다는 말이 나오나.”
고원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준이 투제에 오르기를 기도하며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보존하는 일 뿐이었다.
“총부 근처에서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네. 안전지대로 들어오려는 강자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죽이고 있어.”
염신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쓸모없는 놈들. 혼족과의 전쟁을 손 놓고 방관만 하던 것들이 이제 와서 목숨을 구걸해?”
뇌영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리고 목숨을 건 최후의 싸움을 벌이기에는 아직 이르네. 우리에게는 아직 비장의 무기가 있지 않은가.”
고원의 말에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그들에게는 아직 이준이라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이준의 얼굴을 떠올린 고원은 한 번 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 녀석이 반드시 해내리라 믿네.”
* * *
3개월, 4개월, 5개월……. 6개월.
핏빛 구름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짙게 변해갔고, 두터운 구름에 의해 이제는 햇빛마저 대지에 닿지 못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붉은 피뿐이요, 어디를 가도 역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중주의 모든 사람들을 제물로 만들어버린 혼족은 서서히 천부연맹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핏빛이 방어막에 충격을 줄 때마다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이곳은 살아남은 자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
이 방어막이 파괴되는 순간, 그들 역시 끝도 없이 늘어선 시체들 중 하나가 되고 말 것이다.
* * *
대진이 중주를 휩쓴 지 7개월째 되는 날, 하늘 위에 펼쳐진 거대한 피바다가 천천히 회전하며 거대한 연꽃을 뱉어냈다.
연꽃 위에는 붉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사내 하나가 싸늘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래, 이 힘이야.”
사내의 눈꺼풀이 올라가자, 새빨간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쏴아-
혼천제가 눈을 뜨는 순간, 검은 화염에 뒤덮인 사내 하나가 공간을 가르고 나타났다.
“영족, 석족, 약족의 백성들이 모두 피바다에 들어갔다. 혼족의 백성들도 열에 일곱은 제물이 되었지. 덕분에 혼족 내부에서도 자네를 원망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어.”
허무대인이 전신이 피로 뒤덮인 혼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혼천제는 말없이 새빨간 눈동자로 허무대인을 훑어볼 뿐이었다.
“피바다 속에서 무언가 다른 에너지가 느껴지는데?”
순간 허무대인의 눈동자 속 검은 화염이 빠르게 일렁였다.
혼천제가 손을 휘두르자, 붉은 피바다 속에서 검은 색 화염 덩어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걸 흡수했다면 내 에너지를 자네에게 빼앗겼겠지. 감히 이딴 식으로 내 뒤통수를 쳐?”
“네가 자처한 짓이다!”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허무대인은 번개 같은 동작으로 인결을 맺었고, 그와 동시에 붉은 피바다 곳곳에서 검은 색 화염이 솟아올랐다.
피바다 속에 섞여있던 허무의 불꽃은 빠른 속도로 혼천제를 둘러싸며 기이한 진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우습구나! 우스워!”
자신을 둘러싼 검은 화염을 바라보던 혼천제가 돌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그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흡인력이 폭발하며 주위에 가득한 검은 화염을 모두 빨아들였다.
“네놈들도 숨어있지 말고 나와라! 감히 족장인 나를 배신하고 허무에게 빌붙어!?”
혼천제가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이자, 피바다가 격렬하게 출렁이며 그 아래 숨어있던 혼족 장로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펑! 펑!
혼천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만, 혼족의 장로들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설마 투제가 된 것이냐!”
천지를 집어삼킬 듯 몰아치는 혼천제의 기운을 마주한 허무대인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이미 보름이 지났다. 그저 네 놈이 배신자들을 규합해 내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렸을 뿐이지.”
“호, 혼천제! 멈춰라! 내가 네 놈 몰래 혼족 사람들의 몸에 불씨를 숨겨두었다! 나에게 손을 대는 순간 그들을 모두 죽여버릴 것이야!”
허무대인이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자, 혼천제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내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더냐?”
혼천제의 한마디에 허무대인은 온 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남몰래 혼족의 강자들과 백성들에게 자신의 불씨를 심어둔 상태였다.
하지만 혼천제는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던 것이다.
“네 놈은 언젠가 그것을 이용해 나와 거래를 하려 했겠지. 그래서 천 년에 걸쳐 혼족의 투사들은 물론이고 백성들에게도 불씨를 심어둔 것이고. 모두 알고 있었다. 나와 거래를 할 수 있다고 믿어야 네놈이 날 투제로 만들어줄 테니까.”
허무대인은 혼천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이 악마 같은 놈. 처음부터 자신이 투제가 될 생각 뿐, 혼족의 미래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구나.’
하지만 혼천제가 가볍게 주먹을 쥐자 9성 투성인 허무대인마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터져 버리고 말았다.
본래의 모습인 검은 화염으로 변한 허무대인은 자신의 몸을 자그마한 불씨로 만들어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큭큭. 허무, 이 무슨 추잡한 짓거리인가. 놓칠 것 같았으면 내가 여기서 자네를 기다렸을 거라고 생각하나?”
말을 마친 혼천제가 숨을 들이키는 순간, 셀 수 없이 많은 검은색 불씨가 단 하나도 남김없이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허, 됐다. 이제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넣었으니, 감히 나에게 반기를 들었던 버러지들을 청소해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