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화. 혼천제의 야심
혼천제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고원과 촉곤은 물론이고 허무대인마저 넋을 잃고 말았다.
제 아무리 황제비약이 탐나도 그렇지, 어떻게 투제가 될 수 있는 열쇠를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린단 말인가.
“뭐 하는 짓이냐!”
“혼천제, 죽고 싶구나.”
고원과 촉곤이 새파랗게 질린 채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하하하하하!”
하지만 혼천제는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고, 그의 몸에서 화려한 빛이 터져 나오며 빠른 속도로 고원과 촉곤에게 입은 상처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곧이어 혼천제의 몸에서 여태껏 느껴본 적 없던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황제비약의 에너지가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엄청난 속도로 실력이 급상승하겠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영혼까지 모두 터지고 말 겁니다.”
고원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촉곤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제비약을 흡수할 시간을 주어선 안 된다. 저 녀석을 빨리 잡아야만 황제비약을 몸속에서 빼낼 수 있다.”
촉곤이 조용히 말했다.
“공격!”
우렁찬 외침과 함께 또다시 고원과 촉곤 두 사람이 혼천제를 향해 미친 듯이 몸을 날렸다.
치익!
“하하, 너희는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두 사람을 발견한 혼천제가 크게 웃으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펑!
그러자 주먹만 쥐었을 뿐인데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폭발하며 두 사람을 수백 미터 뒤로 날려 보냈다.
그와 반대로 혼천제는 여전히 하늘에 우뚝 서있었고, 그의 몸에서 퍼지는 파동도 점점 더 강해졌다.
갑자기 상황이 역전되자 연합군의 표정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전설속의 황제비약의 위력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먹자마자 이토록 강해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직 그 안에 담겨있는 에너지를 제대로 흡수하지도 못한 상태인데, 만일 황제비약 안에 담긴 에너지를 흡수한다면 정말로 투제 강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원. 결국 내가 이겼구나!”
혼천제는 고원과 촉곤을 바라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 몸이 못 견딜 텐데? 기뻐하긴 이르다.”
고원이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견딜 수 있겠나?”
뒤에 있던 허무대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혼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혼천제가 황제비약의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폭사하기라도 한다면 수천 년에 걸친 고생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무모하지 않은가!”
허무대인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이 혼천제가 이렇게 대책 없이 황제비약을 집어삼켰기 때문인지, 황제비약을 그에게 빼앗겼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마라.”
혼천제가 말했다. 지금 그의 몸속에서는 염력이 미친 듯이 팽창하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계속해서 추궁해봐야 달라질 것이 없으니 허무대인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난 이제 무얼 해야 하나?”
허무대인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조용히 떠나면 된다.”
“어딜 가려고!”
혼천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고원과 촉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혼천제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혼천제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두 사람의 몸이 저만치 멀리 밀려나고 말았다.
쾅쾅쾅!
보기만 해도 아찔한 염력 폭풍이 허공을 뚫고 혼천제의 방어막 위로 쏟아지며 방어막 위에 거센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혼천제는 그들을 무시하고 혼족의 강자들을 강제로 끌어올려 공간 균열 속에 집어넣었다.
펑펑!
계속되는 두 강자의 맹공에 혼천제의 얼굴이 파르르 떨리더니 입에서 선혈이 실처럼 흘러내렸다.
“너…….”
허무대인이 놀란 듯 눈을 치켜뜨며 혼천제를 바라봤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는 있었지만, 혼천제의 몸은 그가 말한만큼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황제비약을 흡수했다고는 하나 고원과 촉곤의 협공을 견디는 것이 그리 쉬울 리가 없었다.
“고원. 이번 싸움은 내가 이겼다고 말했지……. 황제비약을 연소시키자마자 고족, 뇌족, 염족, 그리고 천부연맹과 용족 모두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겠다.”
혼천제가 입속에 고인 피를 꿀꺽 삼키며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가자!”
혼천제가 허무대인을 붙잡고 공간 균열을 향해 몸을 날리며 외쳤다. 그러자 허무대인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서며 다급하게 말했다.
“안돼! 아직 내 것을 챙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혼천제의 목에서 실핏줄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에 허무 대인은 이를 악문 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다가 균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크르릉!
그때,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태산처럼 거대한 에너지가 혼천제의 뒤를 덮치며 그의 온몸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혼천제는 온몸에서 피를 쏟으면서도 그대로 공간 균열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쉭!
고원과 촉곤은 황급히 혼천제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지만,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거대한 공간 균열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제길!”
두 사람은 분을 참지 못하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은 뒤 몸을 돌려 광장 위로 내려앉았다.
보람이 말없이 서있는 이준을 바라보며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 저놈이 정말로 황제비약을 흡수하는데 성공한다면…….”
“지금 당장 혼계로 가서 죽여 버려야지!”
뇌영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자리에 있던 강자들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것 외에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봤자 결말은 영족이나 석족처럼 멸족을 당하는 것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혼천제도 바보가 아니니 분명 자신이 회복할 때까지 혼계로 돌아가지 않거나, 돌아간다 해도 혼계 자체를 감춰버릴 것이다.
공간을 감추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혼천제의 능력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혼족은 이 일을 위해 이미 수천 년을 준비해왔으니 분명 무언가 계획이 있을 것이다.
“일단 황제비약을 흡수하지 못하길 빌어야지.”
이준이 고개를 들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혼천제가 투제로 등극하는 순간 이 세상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서둘러 혼계로 가야겠다. 혼천제가 황제비약을 흡수하지 못하도록 방해만 한다면 스스로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고원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음……. 잠깐.”
그때, 돌연 촉곤이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지. 물러서라. 광장과 석상을 좀 처리해야겠다.”
이준이 의아하다는 듯 촉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에는 천지의 불꽃들이 가득했지만 에너지가 없이 모양만 남아있는 불꽃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태령황제의 조각상도 황제비약이 떠나고 나니 텅 빈 껍데기 밖에 남지 않아 쓸모라고는 없어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상황이 다급하다고 판단한 고원은 손을 휘젓고는 그대로 공간통로를 향해 날아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이준은 곧바로 고원의 뒤를 따라가지 않고 촉곤을 몇 번이나 바라봤다.
과거 용황이었던 사람이 의미 없는 행동을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야 했지만, 도통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생각해도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자, 이준도 고원의 뒤를 따라 광장을 벗어났다.
연합군의 병사들은 고원의 뒤를 따라 음산한 바람이 부는 산속에 도착했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는 간신히 형태만 남아있는 거대한 석문 하나가 서있었다.
고원이 일그러진 얼굴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거대한 문 앞에 선 채 씁쓸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혼계로 가는 공간 통로가 완전히 붕괴됐다.”
잠시 후, 고원이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혼계의 존재를 느낄 수가 없구나. 이미 공간을 숨긴 것 같다.”
이준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혼계를 완전히 숨긴 이상 고원이라 해도 그들의 위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나타나는 것은 아마도 혼천제가 투제가 된 이후일 것이다.
“이미 혼계로 통하는 다른 공간통로가 없는지 찾고 있는 중이오.”
염신이 말했다. 하지만 고원은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혼족이 수천 년에 걸쳐 준비한 일을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어떡하나?”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뇌영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운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고원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뭘 기다린다는 말인가?”
“황제비약 연소에 실패하는 것을 기다리자는 말일세.”
순간 자리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고원의 말은 사실상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감시자를 두고 우리는 철수하세.”
고원이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우선 난 최선을 다해 혼계가 숨겨진 위치를 찾겠네. 운이 좋으면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준 역시 하늘을 향해 긴 한숨을 내쉬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고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채린과 이은의 손을 잡고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가자.”
뒤이어 산속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던 연합군들이 빠르게 산속에서 사라졌다.
* * *
태령황제 신전으로 향한 여정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연합군들은 흩어지지 않고 천부연맹 총부로 돌아왔다. 황제비약을 얻은 혼천제가 투제에 오르기 전까지는 아직 미약하나마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연합군 부대들은 모두 천부연맹 총부 주변을 지키면서 중주 곳곳으로 강자들을 파견해 혼족의 움직임을 찾으려 애썼다.
수많은 사람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가운데, 시간은 하루하루 빠르게 흘러갔다.
고원조차 사라진 혼계를 찾아내지 못했고,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 * *
성운계에 도착한 이준은 먼 하늘 위에 떠있는 거대한 광장을 바라보았다. 저 광장은 바로 촉곤이 신전 안에서 옮겨온 것이었다. 그 위에는 여전히 거대한 석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혼천제가 황제비약을 가지고 달아난지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한 달 동안 혼족이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종적을 감추었고, 그들과 관련된 단서는 먼지 한톨 남아있지 않았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혼족이 연합군들의 손에 멸망했다고 착각을 할 지경이었다. 이에 우습게도 수많은 세력들이 성운계로 찾아와 축하의 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오라버니.”
뒤에서 들려온 부드러운 목소리에 이준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버님 쪽에서 뭔가 찾아낸 건 없어?”
이준의 질문에 이은은 말없이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가만히 앉아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은 나날들이 벌써 30일째였다.
이은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청년을 조용히 바라보다 말없이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손으로 이준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러 피로가 풀리도록 해줬다.
“이렇게 오랫동안 노력했는데 결국 실패인 건가…….”
“오라버니는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누구도 오라버니만큼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이은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이준을 위로했다.
“하지만 실패했어.”
하지만 이준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혼족을 거기까지 몰아세우지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결국 혼천제가 투제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
“걱정 말아요.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