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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800화 (800/818)

800화. 재회

“이씨 가문에 연락을 취하라!”

서천우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실력자들이었으니 자칫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가람 아카데미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쉭!

옆에 있던 윤영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저장반지에서 작은 옥패를 꺼내 깨뜨리자, 먼 하늘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바람을 가르며 나타났다.

“서천우 장로님, 무슨 일입니까?”

가장 앞에 위치한 중년의 사내가 검은 군단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들은 가람아카데미에 머무르고 있는 이씨 가문의 호위대이기 때문에 신호를 받자마자 바로 날아온 것이다.

“귀찮은 일이 생겼네.”

서천우가 조용히 중얼거린 뒤 검은 의복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공손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우리 가람 아카데미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러시는 것입니까?”

“원한은 없다만, 너희가 이 구역에 있지 않느냐?”

혼유가 씩 웃으며 말했다.

“허, 건방지구나. 흑각성에서 가람 아카데미를 건드리려면 우리 이씨 가문의 적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이씨 가문의 사내가 소리를 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뒤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염력 날개를 펼쳤다.

“쯧……. 버러지 같은 것들이.”

하지만 혼유가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자 두 개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날아가 쇠사슬을 휘둘렀고, 이씨 가문의 강자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두동강이 나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두 사람의 실력에 사내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투, 투존?”

“투존 정도에 그리 놀라면 쓰나.”

혼유는 두 손을 깍지 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학생들은 하늘 위에서 벌어진 상황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들은 하나 같이 투황을 목표로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고향에서는 투황이라면 모두가 떠받들고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십여 명의 투황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시체로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으아아악!”

“살려줘!”

곧이어 수많은 학생들이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오하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의 실력은 이미 1성 투존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지만, 방금 전 두 사람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오늘이 정말로 가람 아카데미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로들은 나를 따르라!”

오하늘이 결연한 목소리로 외치며 대검을 뽑아들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외침에 밑에 있던 장로들 역시 망설임 없이 염력을 폭발시키며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가라.”

하지만 혼유의 표정에는 여전히 여유가 가득했다.

그가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자, 다섯 명의 투존 강자가 앞으로 걸어나오며 무시무시한 기운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죽여라!”

“끌끌……. 중주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것이 이런 곳에서는 대장 노릇을 하는구나.”

다섯 명의 투존 강자 중 하나가 대검을 휘두르며 날아오는 오하늘을 바라보며 가볍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자 오하늘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날카로운 염력이 산산이 부서지며 그의 입에서 곧바로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망할!”

오하늘이 제대로 손 한번 쓰지 못하고 당해버리자, 서천우가 황급히 날아가 그를 붙잡았다.

곧이어 서천우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바로 그때, 아카데미 깊숙한 곳에서 매서운 기운이 폭발하더니 두 개의 그림자가 빠르게 모습을 드러냈다.

“백로, 천로!”

가람 아카데미를 지키는 두 수호자의 등장에 서천우의 표정에도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백로와 천로의 실력은 7성 투존에 달하니, 상대가 8성 투존이라 해도 승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두 사람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흑각성에 투존이 떼로 나타나다니, 지난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7성 투존 두 명이라, 이건 제법 봐줄만 하군.”

건성으로 두 사람을 훑어보던 혼유가 자신의 옆에 있던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처리해라. 여기저기서 벌레가 기어 나오니 짜증이 나는구나.”

“예.”

혼유의 곁에 서있던 사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순간, 온 하늘에 짙은 어둠이 깔리며 천로와 백로 두 사람보다 몇 배는 더 강한 기운이 폭풍처럼 하늘을 휩쓸었다.

“투……투성?”

천로와 백로의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그들은 평생 동안 투성 강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상대를 보는 순간 그가 투성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직감했다.

“가람 아카데미가……. 정말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서천우가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투성 강자가 나타난 이상, 자신과 백로, 천로 세 사람이 목숨을 바쳐도 가람 아카데미를 지킬 수 없었다.

아카데미 전체가 적막에 빠졌다. 학생들의 실력으로는 하늘 위에 떠있는 검은 옷의 사내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서천우의 표정만 보아도 상황이 얼마나 암담한지 알 수 있었다.

“우리 가람 아카데미가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천로와 백로가 말했다.

“저 녀석과 관련이 있다는 게 가장 큰 죄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도 죄고.”

투성 강자가 이준의 석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저게 아니었어도 달라질 것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됐다. 버러지들을 상대로 말이 너무 길구나.”

“예.”

혼유의 말에 투성 강자는 곧장 고개를 끄덕인 뒤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사내의 주먹에서 터져 나온 염력에 가람 아카데미의 두 수호신마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피를 토하며 날아가고 말았다.

“저 석상은 볼수록 마음에 안 드는군.”

백로와 천로를 날려보는 투성 강자는 불쾌하다는 듯 손을 휘둘러 이준의 거대한 석상을 향해 염력을 날려 보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며 자욱한 흙먼지가 광장 전체를 가득 메웠다.

“오하늘, 이옥. 나와 천로, 백로가 저들을 막을 테니 어서 학생들을 데리고 달아나거라.”

서천우는 창백해진 얼굴로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죽어도 함께 죽습니다.”

하지만 오하늘은 쉴 새 없이 피를 흘리면서도 대검을 움켜쥔 채 달아나기를 거부했다.

이옥 역시 이를 꽉 깨물며 공격당한 이준의 석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상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석상이 멀쩡해…….”

그녀의 말에 모든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이준의 석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공을 빼곡하게 메웠던 먼지가 서서히 걷히자, 정말 거대한 석상이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것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투성 강자 역시 놀란 나머지 눈이 동그래졌다.

“혼적, 도망쳐라!”

석상 위에 나타난 존재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시종일관 여유롭던 혼유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변했다.

“1성 투성 따위가 감히 내 석상을 건드려?”

하지만 혼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다와도 같은 영혼의 힘이 사방을 뒤덮더니 이준의 석상을 부수려했던 혼전의 강자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터져버리고 말았다.

1성 투성 강자가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벌레처럼 죽어버리다니, 저 석상 꼭대기에 서있는 사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준……! 어째서 네 놈이 여기에!”

모두가 넋을 놓고 바라보던 그때, 혼유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고요한 하늘.

제각기 다른 감정이 담긴 시선이 일제히 석상 위로 향했다.

검은 옷과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청년의 뒷모습은 지극히 평범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태산처럼 웅장하고 듬직하게만 보였다.

“이준…….”

서천우의 눈동자가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렸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마음에 한 줄기 광명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정말 이준이야!”

이옥은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십수 년을 보지 못했지만 그 익숙한 뒷모습은 바로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저분이 그 이준 선배님이에요? 천로님과 백로님도 막지 못한 사람을 한 번에 죽이다니…….”

한참 동안 적막이 흐르던 광장에서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옷의 청년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에는 동경과 놀라움이 가득했다.

“퇴각하라!”

혼유는 갑자기 나타난 청년을 보자마자 고민도 없이 퇴각을 명했다. 그는 이준과 싸워본 적이 없었지만, 혼멸생이 그의 손에 죽었다는 것만으로 상대의 실력이 자신보다 몇 수는 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혼전 강자들은 혼유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번개처럼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난리를 쳐놓고 그냥 가시겠다?”

황급히 도망치는 혼전 강자들을 바라보면 검은 옷의 청년이 싸늘하게 웃으며 가볍게 발을 구르자, 굉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검은 무리가 붉은 혈무(血霧:피안개)를 흩뿌리며 사라졌다.

학생들의 눈에는 마치 혼전의 투종과 투존들이 스스로 폭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이런…….”

서천우와 천로, 천백 장로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이준의 앞에서는 투존마저 벌레만도 못한 존재에 불과했다.

“이준, 네가 저놈들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냐! 혼족의 대군이 출동하는 순간 너희는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이 자리에서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은 혼유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으로도 이준의 가벼운 공격 한 번을 받아내지 못해 입에서는 울컥울컥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닥쳐.”

이준이 가볍게 읊조리며 팔을 휘두르는 순간, 혼유의 머리 위에서 분홍색 화염으로 이루어진 주먹이 나타나 그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쾅!

화염 주먹에 얻어맞은 혼유는 날개를 잃은 새처럼 속수무책으로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잠시 후, 혼유가 검은 연기가 되어 날아간 곳에서 돌연 눈부신 빛이 번쩍이더니 흉흉한 기운을 내뿜는 여러 개의 그림자가 빠르게 날아왔다.

“지원군인가?”

먼 하늘에서 날아오는 사람들을 발견한 서천우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투성?”

그들이 가까워질수록 무서운 기운이 숨통을 조여 왔다.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엄청난 기운에 서천우는 물론이고 천우와 백로마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쾅!

그때, 검은 형체 하나가 연무대 위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와 처박혔다.

연무대 위에 떨어진 것은 바로 이미 숨이 끊어진 혼유의 시체였다.

“하하, 서천우. 내가 없어도 아카데미를 아주 잘 관리해줬구만 그래.”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허공을 딛고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원장님?”

환하게 웃으며 내려오는 노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서천우의 입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허허.”

그는 바로 가람 아카데미의 원장, 장천수였다.

그는 아카데미를 천천히 둘러보더니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카데미를 떠날 때보다 아카데미의 규모가 몇 배는 커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일세, 반갑군. 우선 내려가서 얘기하지.”

서천우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 장천수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준. 여기 모두 구면인데 아직도 그렇게 숨어있을 텐가?”

그의 말에 이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뒤 이은과 연합군의 투성 강자들을 데리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대장로님. 잘 지내셨습니까.”

“어떻게 한 번도 기별을 안 할 수 있느냐.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

이준이 인사를 올리자 서천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이준이 아카데미를 빛낼 최고의 인재가 되리라고 진즉부터 예상했던 그였지만, 이토록 엄청난 강자가 되어 돌아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장로님.”

“은아…….”

이준의 뒤에는 이은이 서있었다.

이은을 발견한 서천우는 이준을 만났을 때 못지않게 환히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그때, 뒤에 있던 한 여인이 뛰어나와 이은을 와락 껴안았다.

“여전하구나.”

이은은 순간 당황했지만 자신에게 달려와 안긴 여인을 알아보곤 못 당하겠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넌 정말 갈수록 더 예뻐지네. 아직도 저 녀석의 손에서 못 벗어났고.”

윤영이 이은의 곁에 있던 이준을 흘겨보며 말했다.

오하늘 역시 검을 거두고 이준을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익숙한 얼굴들이 한곳에 모두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이준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돌아왔네.”

늘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이옥의 얼굴에도 보기 드물게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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