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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95화 (795/818)

795화. 강탈

“이준, 널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

혼원천이 이를 갈며 팔을 번쩍 들며 외치자, 검은 안개가 그의 손으로 모여들면서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큭.”

이에 이준은 번개처럼 인을 맺어 천 미터도 넘는 거대한 환영을 소환했다.

“황천의 분노!”

영혼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환영의 형태는 점점 더 또렷해졌고, 덕분에 이제 황천의 분노는 환영이 아니라 실재하는 거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거대한 환영이 입을 벌리는 순간, 무시무시한 영혼의 힘이 사방을 휩쓸었다.

폭풍처럼 몰려드는 영혼의 힘을 느낀 강자들은 곧장 싸움을 멈추고 사방으로 뿔뿔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구우웅-.

거인의 커다란 입이 쩍 벌어지자, 천지에 적막이 내려앉았다가 강렬한 영혼의 힘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혼원천의 몸을 강타했다.

“푸흡!”

사정없이 온몸을 때리는 영혼 파동에 혼원천의 양쪽 귀에서는 곧장 붉은 피가 흘러내렸고,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하며 입에서도 피가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황천의 분노를 피하지 못한 혼족 강자들이 영혼조차 남기지 못하고 잇따라 폭사하고 말았다.

영혼의 음파가 뿜어낸 무시무시한 위력에 전장에 있던 강자들은 모두 행동을 멈춘 채 두려움이 가득 찬 눈빛으로 거인을 바라보았다.

* * *

펑!

하늘 어딘가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세 사람이 동시에 부딪혔다. 그 순간, 검은 화염이 폭발하며 두 개의 그림자가 강하게 뒤로 밀려났다.

그들은 바로 뇌영과 염신, 그리고 허무 대인이었다.

염족과 뇌족의 족장이 협공을 했음에도 허무 대인을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허무 대인의 실력은 9성 투성 초급에 불과했지만, 염신과 뇌영이 손을 잡아도 만식의 힘을 가지고 있는 허무의 불꽃을 제압하기는 어려웠다.

뇌영과 염신은 온 힘을 다해 허무 대인에게 대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열세에 몰리고 있었다.

“우리가 혼족을 너무 얕본 모양이군.”

뇌영이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는 뇌족의 강자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염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태령황제의 옥을 되찾아야 했다.

혼족이 태령황제의 신전을 열고 투제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순간, 염족과 뇌족은 물론이고 고족마저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혼족은 태령황제의 옥을 모으기 위해 수천 년간 준비를 해왔다. 너희들의 힘으로 우리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허무의 불꽃이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바로 그때, 뇌영과 염신의 귓가에 고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수하라. 변수가 생겼다!”

우웅!

두 사람이 무언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어디선가 귀가 먹먹해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음산한 기운이 빠르게 퍼져 나왔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허무 대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우웅!

또 한 차례 고막을 자극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시커먼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

쉬익-

잠시 후, 검은 구름 속에서 세 개의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와 전장 곳곳으로 날아갔다.

“저건…… 관이잖아?”

검은 구름 속에서 나타난 물건을 보는 순간, 사람들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구름을 뚫고 전장으로 날아든 것은 다름 아닌 ‘관’이었다.

음침한 기운을 가득 머금은 관은 빠르게 대지로 날아가 요란한 소리를 일으키며 바닥에 처박혔다.

쾅!

곧이어 관 뚜껑이 멀리 날아가며 뼈만 남은 형체가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관에서 걸어 나온 세 개의 그림자에서는 혼원천을 능가하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혼생천에 혼요까지……? 저 늙은이들이 어떻게 살아있는 것인가!”

뇌영과 염신의 눈동자가 빠르게 작아졌다. 이 세 사람은 혼족에서 혼천제보다도 연배가 높은 자로 이미 죽은 지가 오래인데, 어떻게 살아서 이곳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쉬이이-

거대한 문 앞에 앉아있던 이준 역시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8성 투성이 세 명이라니, 이 정도라면 혼족과의 전쟁은 패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냐, 뭔가 이상해…….’

하지만 이준은 곧바로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세 사람에게서 혼원천보다 몇 배는 더 짙은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 세 사람‥……. 강시 같은데?”

이준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강시는 요괴 같은 존재지만 요괴보다 훨씬 진귀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강시는 기묘한 방법을 사용해 이미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 것으로, 부활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운 데다 성공할 확률도 낮아 강시를 만드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죽은 선조들을 이용해 강시를 만드는 것은 그 어떤 악랄한 세력이라 해도 함부로 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혼족은 자신들의 선조를 되살려 강시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혼원천을 포함해 네 명이나 되는 8성 투성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번 전쟁에서 이준 측이 승리를 거둘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죽음의 대진!”

잠시 후, 세 사람의 입에서 거대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거대한 문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죽음의 기운이 넘쳐흐르는 그 거대한 문은 다름 아닌 죽음의 문이었다.

각각의 자리에 위치한 거대한 문에서 죽음의 기운이 치솟자, 연합군의 강자들은 몸속에서 빠르게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때, 세 개의 대문 사이에 기이한 에너지가 흐르며 거대한 진을 만들어냈다.

“후퇴!”

순식간에 대진의 정체를 알아본 뇌영과 염신은 황급히 퇴각을 명하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혼원천, 복귀하라. 죽음의 문을 합쳐 대진을 완성하라!”

세 명의 노인이 다시 소리쳤다.

“후퇴하라!”

뇌영과 염신의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대진이 완성되는 순간, 연합군의 패배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쉭!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혼원천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먹을 바르쥔 채 중얼거렸다.

“이준 저 녀석에게 죽음의 문을 빼앗겼다…….”

“죽음의 문을 빼앗겨?!”

혼원천의 말에 세 노인 중 하나가 분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혼원천! 지금 네 놈이 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이냐!”

혼원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를 악문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역시 이준에게 죽음의 문을 빼앗기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대진’은 죽음의 문 네 개가 있어야만 펼칠 수 있는 혼족 비장의 무투기로, 죽음의 대진이 완성되는 순간 7성은 물론이고 8성 투성조차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혼족이 준비한 비장의 패는 허무 대인도, 네 명의 8성 투성 강자도 아닌 바로 이 ‘죽음의 대진’이었다. 그런데 죽음의 문을 빼앗기다니, 이는 전쟁의 승패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저 녀석의 영혼이 황제단계에 이르렀네. 하지만 죽음의 문 안에 숨겨둔 영혼바위를 이렇게 빨리 찾아 영혼 인결을 없애버릴 줄은 몰랐어.”

혼원천이 분한 듯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이번 공격이 끝나면 우리에게 남아있는 생기도 전부 사라지고 말 것이네. 그럼 한참이 지나야 다시 나올 수 있을 텐데, 그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제아무리 우리 혼족이라 해도 이길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어!”

한 노인이 화가 난 얼굴로 혼원천을 노려보다 나머지 두 노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외쳤다.

“이미 이렇게 된 거 다 소용없네. 우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태령황제의 신전을 열기만 하면 족장도 투제가 될 수 있을 것이네. 그러면 우리가 부활하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

얼굴에 회색빛이 도는 노인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남은 두 사람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죽음의 대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지금 상황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많은 적을 죽이는 것뿐이었다.

“혼원천, 아직도 안 돌아오고 뭐 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혼풍을 구하라는 명도 내리지 않았을 것인데……. 혼풍을 못 구한 것도 모자라 일까지 그르치다니, 원로만 아니었어도 당장 죽여 버렸을 것이야!”

회색 얼굴의 노인이 혼원천을 보며 소리쳤다.

노인의 호통 소리에 혼원천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지만, 저지른 짓이 있다 보니 차마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한쪽으로 날아갔다.

다음 순간, 자리로 돌아간 혼원천의 손에서 죽음의 기운이 솟구치더니 죽음의 문 세 개와 연결되면서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검은 구름이 산맥 전체를 에워쌌다.

“이준. 이제 넌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끝없는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다!”

* * *

죽음의 기운이 만연한 산 중, 연합부대는 한곳으로 모여 주위를 둘러싼 검은 안개에 대적하고 있었다.

죽음의 기운이 모든 구멍을 통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지만, 염력으로도 영혼의 힘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혼족 놈들이 죽음의 대진을 사용할 줄이야.”

뇌영과 염신, 그리고 고족의 수많은 강자들은 모두 굳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지에 가득 퍼진 죽음의 기운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패배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흑연왕 고열도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7성 투성 단계의 강자 두 명에게 붙잡혀 치열한 대전을 벌이고 온 참이었다.

사마성과 맞먹는 실력을 가진 강자가 셋이나 더 있다는 것은 그 역시 듣도 보도 못한 소리였다.

이는 그간 혼족이 숨겨온 전력이 고족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 염족과 뇌족, 그리고 천부연맹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고족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어렵군. 이미 죽음의 공간이 만들어진 데다 죽음의 기운으로 인해 영혼 탐지 능력마저 사용할 수 없어.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더욱 빨리 죽음을 맞을 것이다.”

염신이 말했다.

“하지만 계속 여기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고도영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원 족장도 혼천제에게 잡혀있을 텐데, 활로가 없습니다.”

염족의 화령 선자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 전에 있던 싸움에서 부상을 입었는지, 그녀의 얼굴은 눈에 띄게 창백해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차마 입조차 열지 못하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평범한 강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조차 어려웠다.

치익치익!

모두가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주위에 퍼져있던 죽음의 기운 속에서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려오더니 섬뜩한 기운을 머금은 검은 색 창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검은색 창에 담긴 죽음의 기운에 의해 염력이 빠르게 부식되었고, 눈 깜짝할 새에 셀 수 없이 많은 강자들이 시체가 되어 자리에 쓰러졌다.

“망할!”

뇌영은 욕설을 내뱉으며 곧장 사방에 가득한 죽음의 기운을 뚫고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검은 색 대문이 눈앞에 솟아났다.

“잠깐만요! 저예요!”

지금까지 봤던 거대한 문과 똑같이 생긴 대문을 보는 순간, 연합군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공격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그들이 막 공격을 퍼부으려던 그때, 거대한 문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준?!”

이준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뇌영 등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모두 따라 오십시오. 제가 죽음의 문을 하나 뺏으면서 저들의 대진에도 분명 약점이 생겼을 거예요.”

이준이 연합군의 강자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준이 죽음의 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뇌영과 염신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상황이 긴박한 만큼 이에 대해 물어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이에 그들은 곧바로 이준의 뒤를 따라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가요!”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혼원천에서 빼앗은 죽음의 문이 주위에 퍼져 있던 죽음의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죽음의 기운이 사라지니 연합군들은 묵직했던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죽음의 문을 뺏어오다니, 역시 대단한 녀석이야.”

뇌영과 염신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준이 죽음의 문을 빼앗지 못했다면 완벽한 죽음의 대진이 펼쳐졌을 것이고, 만일 그랬다면 이곳은 진즉에 피바다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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