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4화. 죽음의 문
이준을 한 번 노려본 혼풍은 곧바로 몸을 틀어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네 명의 혼족 장로가 이준을 똑바로 노려보며 빠르게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 화려한 불꽃 네 개가 이준의 손에서 머리만한 불연꽃으로 변해 번개처럼 혼족 장로들에게 날아갔다.
“죽여라!”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뿜으며 날아오는 불연꽃을 발견한 장로들은 곧바로 검은 쇠사슬을 내뿜어 그것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화련과 검은 쇠사슬이 맞닿기 무섭게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는 검은 사슬이 빠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쾅!
당황한 장로들은 황급히 쇠사슬을 끊어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화염은 점점 더 뜨겁게 타오르며 그들을 덮쳤다.
펑!
곧이어 지옥불과도 같은 화염이 혼족 장로들의 손을 타고 흘러들어와 몸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장로들의 옷가지는 눈 깜짝할 새에 불에 타 재로 변했고, 분홍색 불씨가 그들의 모공을 뚫고 나와 온몸을 태웠다.
“으아악!”
이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혼족 장로들의 입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리더니 그대로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이 지상에 떨어지기 무섭게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족, 뇌족, 염족이 그들의 숨통을 끊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혼풍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속도를 올려 황급히 이준에게서 달아났다.
“내가 말했을 텐데, 너희는 내 손을 못 벗어난다고.”
하지만 곧 그의 귓가에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낀 혼풍은 잽싸게 몸을 돌려 이준을 향해 검은 화염을 날려 보냈다.
펑!
그 순간, 거대한 굉음과 함께 혼풍의 손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목구멍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왔다.
이준의 실력을 확인한 혼풍의 심장이 미친 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상대는 이미 자신과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준의 손이 자신의 목덜미를 향해 뻗어오는 것을 느낀 혼풍의 목구멍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조상님, 살려주십시오!”
“조상님?”
이준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혼천제와 허무의 불꽃, 혼족 사마성은 모두 연합의 강자들을 상대하고 있는데, 혼풍을 도와줄만한 인간이 누가 남아있단 말인가?
쾅!
이준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하늘 위를 휩쓸던 검은 구름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마른 나뭇가지처럼 빼빼 마른 노인 하나가 서서히 내려왔다. 그의 몸에서는 고족의 흑연왕 못지않은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8성 투성?!’
이준의 눈동자가 바늘구멍처럼 작아졌다. 혼족에 이런 강자가 숨어있었다니!
“젊은이, 내 모자란 후손을 용서해주는 게 어떻겠나?”
순식간에 이준의 눈앞에 나타난 노인이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구야?”
이준이 물었다.
“혼원천일세. 허허, 과거 이현의 손에 죽었던 쓸모없는 노인이지.”
‘이현’이라는 두 글자가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죽은 사람 같지 않은데.”
이준이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여태 한 번도 나타나지 않던 강자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혼족에 얼마나 더 많은 강자가 숨어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몇 명만 더 있다 해도 이 전쟁은 혼족의 승리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혼원천은 허허, 하고 웃으며 말꼬리를 돌렸다.
“그 아이를 넘겨주게나. 자네 실력으로 혼족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이는데.”
“그래?”
이준의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혼풍을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혼풍의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혼원천의 몸에서 서서히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며 메마른 손에서 코를 찌르는 썩은 내가 퍼져 나왔다.
“좋게 말해도 듣지를 않는구나……. 그럼 그냥 죽거라.”
“그게 과연 네 뜻대로 될까?”
혼원천의 살기등등한 말에도 이준은 흔들림 없이 혼풍을 붙잡은 손에 힘을 더할 뿐이었다.
혼풍의 얼굴은 이미 보라색이 아니라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준. 조상님이 널 용서치 않을 것이다!”
분노한 혼풍이 독기 어린 얼굴로 이준을 바라보며 외쳤다. 곧이어 그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체내의 염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자폭하려고?”
이준은 싸늘하게 웃으며 빠르게 혼풍의 목을 꺾어버렸다. 하지만 그의 몸은 계속해서 빠르게 팽창하다 결국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고 말았다.
새빨간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자, 영혼의 힘으로 만든 장벽에 둘러싸인 이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단계에 이른 영혼의 힘으로 혼풍이 자폭하며 일어난 폭발을 그대로 상쇄시킨 것이다.
그 순간, 혼원천이 번개처럼 날아와 죽음의 기운이 짙게 묻어있는 주먹을 이준의 가슴팍을 향해 내지르며 반대쪽 손을 가볍게 휘둘러 새빨간 안개 속에서 영혼을 끄집어냈다.
“오늘 너를 뼈까지 잘게 부숴주마!”
혼풍의 영혼을 거둔 혼원천이 이준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살 만큼 살았으니 이제 가야하지 않겠나? 내가 저승으로 보내주지.”
이준이 말했다. 지금의 이준은 황제단계 영혼과 6성 투성 중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으니 8성 투성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끌끌……. 자네를 보고 있으니 자꾸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군. 자네가 더 강해지기 전에 끝장을 내야겠어. 이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지.”
말을 마친 혼원천이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이자, 무형의 그물이 이준이 등 뒤를 덮쳤다. 그와 동시에 노인의 몸이 번개처럼 이준을 향해 날아와 썩은 내가 진동하는 주먹을 내질렀다.
펑!
하지만 이준의 흉부를 강타하기 바로 직전, 보이지 않는 장막이 혼원천의 주먹을 막아냈다.
“내 앞에서 영혼의 힘을 사용하려 하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이준이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이자, 무시무시한 영혼의 힘이 폭발하며 무형의 그물을 없애버리더니 눈 깜짝할 새에 이준의 몸이 분홍빛 수정으로 뒤덮였다.
‘인화일체’를 시전하는 것과 동시에 이준의 몸에서 해일과도 같은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며 그의 손 위에 여섯 가지 색의 알록달록한 불연꽃이 피어올랐다.
우웅!
이준의 실력은 여전히 6성 투성에 머물러 있었지만, 영혼의 힘이 황제단계에 접어들며 화련의 위력은 이전과 비할 바 없이 강해져 있었다.
“죽음의 문!”
그때, 혼원천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솟아나 기이한 기운이 느껴지는 거대한 문으로 변했다. 거대한 문이 열리자,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쉭!
화련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 죽음의 문 앞에서 폭발을 일으키는 순간, 무시무시한 파멸의 힘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허, 어림없다!”
하지만 거대한 문은 수천 미터의 거대한 화염폭풍을 그대로 집어 삼켜버렸다.
‘이게 죽음의 문인가…….’
이준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혼원천이 손쉽게 화련을 막아낸 것이 아니라, 그의 손에 이런 기괴한 무투기가 있다는 것에 놀랐기 때문이다.
“하찮은 녀석이 내 앞에서 재롱을 부리다니, 투제 강자가 창조한 이 죽음의 문은 천지만물을 전부 삼킬 수 있다!”
혼원천이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이 죽음의 문은 일반적인 무투기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영혼의 힘과 염력을 이용해 또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문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죽음의 문을 수련하기 위해 혼원천은 수백년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이 문 속은 죽음의 기운이 가득 차있는데, 그 위력은 7성 투성 강자도 모두 갉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게다가 이 안에서 죽은 강자의 피가 양분이 되어 죽음의 문의 위력은 끝없이 강해질 수 있었다.
“괜찮은 물건이네.”
이준이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중얼거렸다.
“네 영혼은 이 죽음의 문에게 아주 좋은 양분이 될 수 있겠구나.”
거대한 문 앞에 나타난 혼원천이 자리에 앉아 인을 맺자, 거대한 문 속에서 검은색 빛기둥이 뿜어져 나오더니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이준의 몸을 덮쳤다.
“이준, 너도 이현 곁으로 가거라!”
곧이어 죽음의 문에서 엄청난 흡인력이 폭발하며 이준을 끌어당겼다.
이준이 죽음의 문 안으로 사라지자, 혼원천의 입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껏 죽음의 문에서 살아 나온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문 안에 있는 죽음의 기운이 먹이의 염력을 모조리 흡수한 뒤 빨려 들어간 사람의 생사는 온전히 혼원천의 손에 달려 있었다.
“으하하하! 감히 혼족에게 대항하려 한 놈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알려주마!”
* * *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 속,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이곳에서는 염력조차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새까만 죽음의 공간에 빨려 들어온 이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내려앉아 있었다.
“혼원천, 이 보물은 내가 대신 가져가겠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화의 불꽃이 타오르며 텅 빈 공간속에 가득한 죽음의 기운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준의 미간에서 영혼의 힘이 빠져나와 눈 깜짝할 새에 새까만 공간 전체를 뒤덮었다.
칠흑 같은 공간의 중심에는 죽음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검은색 바위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그 위에서 영혼의 힘이 미미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혼원천이 죽음의 문 안에 남겨둔 영혼인결이었다.
혼원천이 죽음의 문을 시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영혼인결 때문이었다.
즉, 그 인결이 사라지면 혼원천은 죽음의 문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검은색 바위를 바라보는 이준의 얼굴에 더욱 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펑!
혼원천의 공격 한 번에 고족 투성 장로가 영혼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곧이어 그의 손에서 작은 문이 나타나 투성 장로의 기운을 모두 흡수했다.
“아주 짜릿하구나.”
죽음의 기운이 점점 더 짙어지는 게 느껴지자 혼원천의 얼굴에는 점점 더 흉악한 미소가 번져갔다.
하지만 혼원천이 다시 목표를 지정하려는 순간, 갑자기 죽음의 문과의 연결이 빠르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안 돼…….”
그리고 그가 무언가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돌연 죽음의 문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겨버리고 말았다.
쉭!
잠시 후, 새까만 문에서 거센 에너지가 폭풍처럼 몰아치더니 한 청년이 불쑥 솟아났다.
“선물 고맙군.”
거대한 문 앞에 앉아 빙긋 웃는 이준의 얼굴을 보는 순간, 혼원천의 온몸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죽음의 문을 빼앗긴 혼원천은 자신의 행동을 땅을 치고 후회했다.
사실 혼원천이 이준을 거대한 문 안에 가둬놓고 전력을 다해 공격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준의 염력이 바닥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힘을 흡수하려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덕분에 이준은 정화의 불꽃으로 죽음의 기운을 저지하고, 문 안에 숨겨진 영혼 바위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영혼바위는 죽음의 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사방에 자욱하게 깔린 죽음의 기운으로 인해 보통의 강자들은 바위가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영혼의 힘이 이미 황제단계에 오른 이준에게 있어 영혼 바위를 찾는 것은 제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동전을 찾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준의 영혼의 힘으로 영혼바위에 새겨진 혼원천의 영혼인결을 없애는 것쯤이야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황제 단계 영혼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니 혼원천이 이런 일을 당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