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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92화 (792/818)

792화. 장천산맥

이준과 이은이 도착하자, 고원이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허허, 왔느냐.”

“고계를 완전히 비우실 생각입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고족의 최고 실력자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모아두었다. 실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데리고 가봐야 짐 밖에 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고원이 무거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은은 주변을 가득 메운 강자들을 둘러보며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고족의 1인자는 고원이었고, 2인자인 흑연왕 고열도 역시 염신이나 뇌영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진 8성 투성이었다.

다시 흑연왕의 아래로는 7성 투성인 고족의 3대 신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5성 투성 강자만 다섯 이었으니, 왜 고족이 8대 세력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쉭!

그때, 먼 하늘에서 격렬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더니 새까만 형체들이 한가득 나타났다.

“허허, 고원 족장, 이준 군. 우리 염족의 정예 병사들도 모두 출동했소.”

염신은 환하게 웃으며 고원과 이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뒤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염신의 뒤에 있는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었다. 여인의 실력은 7성 투성 정도로, 염신을 제외한다면 염족에서 가장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준의 시선을 느낀 여인은 이준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미소만 지었을 뿐인데 정신까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틀림없이 영혼의 힘을 이용해 이준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준은 씩 웃으며 영혼 파동을 확산시켜 여인의 눈에서 발산된 파동을 가볍게 몰아냈다.

치익!

상대의 힘을 느낀 여인은 놀란 얼굴로 이준을 쳐다봤다.

‘황제단계 영혼?’

여인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허허, 이준 군. 이쪽은 우리 염족의 화령 장로일세.”

이준의 강한 영혼파동을 느낀 염신이 씩 웃으며 이준에게 여인을 소개했다.

“크흠, 화령 선인입니다. 이 나이에 황제단계 영혼이 되다니, 대단하군요. 이현에 이준까지, 어쩌면 투제에 가장 가까운 것은 이족일지도 모르겠군요.”

화령이 말했다.

그녀의 말에 뒤에 있던 염족 장로들은 모두 경악한 표정으로 이준을 쳐다봤다. 저 나이에 염족의 족장도 도달하지 못한 황제 단계에 도달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과찬이십니다. 화령 선자님.”

이준이 자신을 선인이라고 부르자 기분이 좋아진 화령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오늘 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테니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혼족의 실력은 모두가 아실테니 모든 힘을 다해 전투에 임해주십시오.”

고원이 입을 열자, 하늘 전체가 조용해졌다.

“그럼, 갑시다.”

고원의 시선이 다시 이준에게 향했다.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휘젓자, 공간이 일렁이며 거대한 공간 통로가 펼쳐졌다.

“출발!”

* * *

한편, 천부연맹 총부에서도 무수한 사람들이 중주 서북부 지역을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천부연맹의 강자들이 총출동한다는 소식에 중주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중주에서 천부연맹이 총 병력을 동원해 출동할 이유는 단 하나, 혼족 밖에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천산맥은 중주 서북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산맥으로, 중주에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고대 세력들은 누구나 장천산맥을 알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중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혼족과 이족의 사투가 벌어진 장소였기 때문이다.

산맥 깊은 곳에는 광활한 평야가 놓여있었다. 이곳은 본래 높다란 산으로 가득했으나 혼족과 이족의 전쟁으로 인해 산이 무너져 내려 이제는 평야로 변해 있었다.

쉬쉭!

잠시 후, 하늘 끝에서 수많은 그림자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평야 안으로 날아들었다.

“도착했다.”

바닥에 가볍게 착지한 고원이 오래 전 폐허가 되어버린 평야를 천천히 훑어보며 명령을 내렸다.

“산을 수색하라.”

바닥에 발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강자들이 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혼족이 먼저 도착해 매복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혼족은 아직 안 온 것 같군.”

염신이 황량한 전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산속에 숨어 벌벌 떨고 있는 마수들을 제외하곤 혼족 강자들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천부연맹도 도착했습니다.”

이준이 고개를 번쩍 들어 북쪽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준의 말에 모든 시선이 북쪽으로 향했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에서 강한 바람소리가 들려오더니 수백 개의 새까만 형상이 줄지어 바닥에 내려앉았다. 언뜻 봐도 세 세력에서 출동한 사람들보다 적지는 않아보였다.

“천부연맹이 모든 병력을 총동원한 것 같군.”

천부 연맹 강자들의 엄청난 실력에 염신과 뇌영 모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허허, 아직 늦진 않은 것 같구려.”

천부 연맹의 강자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약로와 채린, 아라, 이신, 그리고 연금탑의 선조와 신농 노인 등으로, 그들의 실력은 고대 세력에 비해 결코 떨어진다고 할 수 없었다.

특히 연금탑 선조와 신농 노인은 세 세력과 친분이 있어 만나자마자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신은 그들을 힐긋 쳐다 보고 곧바로 이준을 향해 걸어왔다.

“괜찮느냐?”

이신이 부드럽게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예.”

이준 역시 웃음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현에 대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신이 이현의 소식을 접한다면 적잖이 상심할 것이 분명하기에 전투가 끝날 때까지는 그 소식을 밝히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때, 향긋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고개를 돌리자 이준의 시야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채린의 얼굴이 들어왔다.

“채린 언니, 또 만났네요. 솔이는 잘 있죠?”

이준 옆에 있던 이은도 이준을 향해 걸어오는 채린을 발견하곤 빙긋 웃음을 지었다.

“응. 집에도 안 들어오는 누구 이름을 매일 입에 달고 사는 것 빼고는 말이야.”

그녀의 말에 이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한 번 자신의 딸을 만나고 있었으니 좋은 아버지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상처는 다 나았지?”

채린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준을 훑어보며 물었다.

“응. 완전히 나았어. 하지만 이렇게 연맹의 모든 강자들을 다 데리고 와도 되는거야?”

이준이 주변을 둘러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약로님께서 이번 일이 너에게 정말 중요하다고 하셨어.”

채린의 말에 이준은 마음 한 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천부연맹의 병력까지 모두 도착하고 나니 죽음의 땅처럼 적막했던 장천산맥도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간단히 담소를 마친 사람들은 다시 경계 태세에 돌입해 장천산맥 전체를 감시하며 약간의 움직임만 포착되어도 곧바로 이준 등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마침내 해가 중천에 떴을 때, 거대한 바위 위에 앉아있던 이준과 고원이 동시에 눈을 떴다.

“왔다.”

고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늘 위에 검은 안개가 드리우더니 거대한 공간통로 하나가 나타났다.

그 순간, 음산한 기운이 몰아치며 온 천지가 밤처럼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허허, 장천산맥에서 활기가 느껴지다니, 이게 얼마만인가.”

곧이어 검은 안개 사이로 혼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전장을 가득 메운 대군을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혼천제의 뒤를 이어 허무대인, 4마성과 수많은 혼족 강자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혼천제. 뇌족의 옥패를 돌려주지 않으면 혼족을 박살내 버리겠다!”

뇌영은 혼천제를 보자마자 분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끌끌……. 네놈 따위가 그럴 능력이 있느냐?”

하지만 혼천제는 코웃음을 치며 이준에게로 시선을 옮길 뿐이었다.

“결정하라. 네 아버지와 옥패를 맞바꾸겠느냐, 아니면 쓸데없는 발악을 하다가 옥패를 빼앗기겠느냐?”

“먼저 아버지를 보여줘.”

혼천제를 바라보는 이준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의 말에 혼천제는 말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쇠사슬에 묶인 채 철창 속에 갇혀있는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준의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태산처럼 듬직하던 아버지는 이미 백발의 노인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이전의 강인하고 굳건한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이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한 눈에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준은 무거운 쇠사슬에 묶인 노인을 바라보며 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살기에 온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혼천제. 내가 오늘 혼족의 씨를 말려주마.”

이준의 새빨간 두 눈이 혼천제에게 향하는 순간, 거대한 영혼의 힘이 폭풍처럼 전장을 휩쓸었다.

“황제단계?”

이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영혼의 힘에 혼족 강자들의 표정이 빳빳하게 굳었다. 물론 혼천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름 만에 황제단계에 오르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허……. 네 놈을 하루 빨리 죽이지 않은 것이 정말 후회가 되는구나.

“주, 준아…….”

혼천제의 목소리를 들은 이한이 몸을 떨며 흐리멍덩한 눈으로 이준을 바라봤다.

장성한 자신의 아들을 보는 순간, 노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미친 듯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드넓은 평야에 묵직한 적막이 내려앉고, 노인의 서글픈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아버지와 떨어질 때 이준은 나약한 소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수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며 그는 어느새 중주 전체를 호령하는 강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자신을 한없이 사랑해주시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한 눈물나는 투쟁의 결과였다.

“오라버니…….”

이은은 조용히 이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그가 걸어온 길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기에 지금 이준의 감정이 더욱 절절하게 와닿았다.

“준아……. 안된다……. 어서 달아나거라! 나는 괜찮다!”

정신을 차린 이한이 갈라진 목소리로 애타게 소리쳤다.

감옥 속에 갇힌 채 개처럼 살아온 지 어언 수십 년, 이한은 혼족의 무서움을 뼈에 사무치게 알고 있었다.

가한제국에서 영웅으로 불리며 패권을 잡던 투황, 아니 투종 강자마저 평범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곳이 바로 혼족이 아니던가.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군.”

혼천제가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에게 감사해야할 것이다. 네 아버지가 정상적으로 수련했다면 평생을 다 바쳐도 투황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네 아비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수많은 연금비약을 먹여가며 억지로 살려두었지. 우리가 아니었다면 네 아비는 진즉에 죽어 없어졌을 것이다.”

“그래. 오늘 그 은혜를 갚도록 하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준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강자들은 온 몸에 한기가 드는 것을 느꼈다.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만으로도 능히 눈앞의 적들을 찢어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준의 그런 모습에 심지어 혼천제마저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실력으로 치자면 아직 이준은 이현에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이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오래 전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이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래는?”

그 순간, 이준의 손 위에 옥패 하나가 나타났다. 바로 태령황제의 옥이었다. 속임수를 써봤자 혼천제를 속일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진짜 옥패를 꺼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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