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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91화 (791/818)

791화. 복귀

하늘 위. 이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마지막을 맞는 그의 얼굴은 누구보다 밝았다.

이현이 사라진 뒤 한참이 지나도록 이준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조상님…….”

이준은 서글픈 표정으로 이현이 사라진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투명한 빛덩이가 이준의 손 안에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이현의 생명의 근원이었다.

9성 투성 상급 강자도 느낄 수 없는 생명의 근원은 오직 황제단계의 영혼을 가진 강자만이 볼 수 있었다.

한때 투기대륙을 주름잡던 최강자, 이현은 이제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황제단계 영혼인 이준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 생명의 근원이 있다면 언젠가 이현을 부활시킬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는 황제단계의 영혼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도 투제가 되어야만 이현을 부활시킬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은 아주 멀리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는 법.

이준은 반드시 이현을 부활시키리라 마음먹으며 영혼의 힘으로 이현의 생명의 근원을 감싼 뒤 자신의 미간 안으로 흡수했다.

생명의 인결을 거두어들인 이준은 천천히 숨을 고른 뒤 천상무덤 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는 두 달, 영혼의 근원 안에서는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중주에서는 아직 보름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내 영혼의 힘도 황제단계가 되었어…….”

순간 이준의 마음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치 이 천상무덤 전체가 그의 손 안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준이 손을 뻗어 주먹을 움켜쥐자, 아주 멀리 있던 바위산 하나가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지금의 이준은 생각 하나로 천상 무덤 전체의 영혼의 힘을 움직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황제단계 영혼과 하늘단계 최상급의 영혼의 힘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었다.

“돌아갈 때가 됐어.”

이현도 이미 사라졌으니 이준도 더 이상 이곳에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천상무덤의 영혼을 흡수한 그는 앞으로 고계를 떠난 이후에도 천상무덤으로 통하는 공간통로를 열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공간균열을 열어 천상무덤에 들어오려 해도 반드시 그의 허락을 받아야하니 어떻게 보면 이준은 천상무덤의 주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준에게는 더 이상 천상무덤의 에너지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바로 이곳의 시간이었다. 이곳에 들어와 수련을 하게 된다면 중주에서보다 더욱 효율이 좋을 테니까.

“내 공간까지 하나 더 생겼네.”

이준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투제 강자만의 특권이었다.

이준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허공을 긋자, 커다란 공간균열이 나타났다. 이준은 천상무덤을 다시 한 번 훑고는 공간균열 속으로 사라졌다.

* * *

고계의 깊은 산 속. 하늘 위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파도처럼 일렁이는 공간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고원 족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뇌영은 옆에 있던 고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미 보름이 다 됐네. 이준이 나타나지 않으면 혼족은 정말 이준의 아버지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염신의 표정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이준은 천상무덤으로 들어간 후 전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혼족과 약속한 시간은 다가오니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천상무덤이 닫히면서 이곳의 공간통로도 완전히 막혀 버렸네. 통로를 다시 열어보려 했지만 내 힘으로는 열 수가 없더군……. 아무래도 천상무덤의 주인이 바뀐 것 같네.”

고원의 입에서 나온 말에 사람들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상무덤의 주인은 그곳을 만든 투제 강자였다.

그들 역시 주인이 없는 상태로 남아있던 그 공간을 손에 넣으려 노력해보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공간의 통제권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런 천상무덤의 주인이 바뀌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럼 이준 오라버니는…….”

이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천상무덤에 주인이 바뀌든 말든 그녀에겐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천상무덤 안에는 아직 이준이 있지 않은가. 고원이 공간통로를 열지 않으면 이준은 영원히 그 안에 갇혀버릴지도 몰랐다.

“다시 해보겠네.”

고원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천상무덤에 정말 또 다른 주인이 나타났다 해도 9성 투성인 그의 진입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천지의 에너지가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고원이 손으로 공간을 강하게 움켜쥐자, 거대한 그림자가 주위에 있던 산을 전부 뒤덮었다.

천지 에너지가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손이 그 공간을 강하게 내리치는 순간, 공간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엄청난 파동이 거대한 손을 그대로 없애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 완전히 넋이 나가고 말았다. 대체 그 누가 9성 투성인 고원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이건……영혼파동인가? 이럴 수가…….”

뇌영과 염신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렸다. 영혼파동만으로 고원의 공격을 무용지물로 만들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귀하는 누구신지요? 저희는 고족입니다. 저희는 천상무덤 안에 들어간 저희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뿐, 어떠한 악의도 없습니다.”

고도영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잠시 후, 파도처럼 일렁이던 공간에서 갑자기 공간통로 하나가 생겨나더니 마른 체형의 그림자 하나가 서서히 걸어 나왔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많은 분들이 모여 있는 것 아닙니까?”

“이준?!”

그 순간,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의 낯빛이 크게 바뀌었다.

“조금 전에 한 대인과 족장님 사이에 충돌이 있으셨다. 그래서 우린…….”

고도영은 이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 전 그 사람, 자네인가?”

바로 그때, 고원이 이준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고원의 말에 염신, 뇌영을 포함해 자리에 있던 모든 강자들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준의 대답을 듣는 순간, 그들의 눈이 두 배는 더 커졌다.

“그게……. 그런 것 같네요.”

“황제단계 영혼이라니……. 이게 도대체…….”

단 보름 만에 8성 투성 강자인 염신과 뇌영도 오르지 못한 황제단계에 도달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보름이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투성 강자에게 있어 보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보름은커녕 15년이 지나도 한 계단을 뛰어넘기가 어려운 것이 바로 투성이라는 경지였다.

천상무덤에서 나온 이준은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보았다.

외부 세계는 보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준은 천상무덤 안에 있는 또 다른 무덤 속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기에 황제단계에 등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정을 알 리가 없었으니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한 것이냐?”

참다못한 염신이 질문을 던졌다. 그 역시 오랜 시간 황제 단계에 오르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하늘단계 최상급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현 조상님이 도와주셨습니다.”

이준은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짤막하게 자신이 황제 단계에 오르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염신은 그제야 납득이 된 듯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죽은 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니, 역시 과거 투기대륙의 최강자다운 힘이었다.

“이현이 부활할 방법은 찾았느냐?”

평정심을 되찾은 고원이 천상무덤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준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조상님의 영혼은……사라졌습니다.”

순간 말문이 막힌 고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이현의 경쟁 상대임과 동시에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오랜 친구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에 그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내일이 바로 혼족이 말한 보름 째 되는 날이다.”

잠시 감상에 잠겨있던 고원이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두 형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버지를 반드시 구해야만 했다.

뇌영과 염신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이준의 손에 있는 옥패는 이족의 것이니 선택은 절대적으로 이준에게 달려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실력이 부족해 태령황제의 옥을 잃어놓고, 이제까지 혼자서 태령황제의 옥을 지켜온 이준의 옥조각을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권리가 그들에게 있을리 없었다.

“그럼 내일 바로 움직이자꾸나. 이번에는 우리 모두가 널 따라갈 것이다. 네 아버지를 무사히 구출한 후 혼족의 손에서 옥패를 빼앗거나, 적어도 그들이 태령 황제의 열쇠를 완성할 수 없도록 막아야 한다.”

고원의 표정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혼족이 태령황제의 옥을 모두 모아 태령황제의 신전을 여는 순간, 이 세상은 혼족의 손에 떨어지고 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천부연맹으로 소식을 보내놨으니 그쪽 병력도 내일이면 장천산맥에 도착할 것이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혼족에게 대항해야 해.”

이어지는 고원의 말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네가 천부연맹에 돌아가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바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염족과 뇌족, 고족에 전부 공간통로를 만들어뒀네. 수련에 들어갔던 모든 장로들도 이번 전투에 참여할 예정이고.”

영족, 석족, 약족의 참극을 교훈삼아 이번 전쟁에 쓰일 공간 통로는 모두 고원이 직접 만들었다.

고원이 설치한 공간 통로를 파괴하는 것은 혼천제가 직접 나선다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갖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네.”

고원의 말에 주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내일, 투기대륙의 운명을 건 혈전이 벌어질 것이다.

* * *

어둠으로 뒤덮인 고계에는 맑은 달빛이 부드럽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대나무 숲에 위치한 작은 정원에서는 이준이 뒷짐을 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흑각성을 떠나 중주에 온지도 어느덧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혈혈단신 중주에 발을 들였던 청년은 이제 중주에서 제일가는 연맹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혼족에게 끌려간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일념 뿐이었다.

“아버지…….”

이준의 손 위로 오래된 옥패 하나가 나타났다. 바로 태령황제의 옥이었다. 옥패에서는 신비한 광채가 흐르고 있었다.

“오라버니.”

그때, 등 뒤에서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이은은 이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하늘 위로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께서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

이준은 말없이 뒤로 돌아 이은을 꼭 껴안으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 너를 아내로 들이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 그때 아버지께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셨지만, 이제 고족도 우리를 반대하지 못해. 이번에 아버지를 구하고 나면…….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자.”

이준의 품에 안긴 이은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 * *

다음 날 아침, 조용하던 고계의 하늘 위에 구름처럼 많은 강자들이 모여 들었다.

드디어 혼족과 최후의 일전을 치를 날이 온 것이다.

“아가씨, 이준 도련님. 시간 됐습니다.”

방 앞에는 한 노인이 비장한 표정으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끼익-.

방문이 열리고 이준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끝을 알 수 없는 힘이 깃든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세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가자. 세형님. 다녀오겠습니다.”

이준이 앞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방에서 고족은 물론이고 염족과 뇌족의 최강자들이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말을 마친 이준은 이은의 손을 잡고 빠르게 먼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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