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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89화 (789/818)

789화. 투제의 근원

홀로 남은 이준은 조심스레 비석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하하,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다.”

이준이 무릎을 꿇기 무섭게 비석 앞에 장발의 노인 하나가 나타나 온화한 표정으로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6성 투성 중급, 하늘단계 최상급 영혼에 정화의 불꽃까지…….”

이준의 몸을 천천히 훑던 이현이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훌륭하게 성장했구나.”

한때 투기대륙 최강자로 군림했던 선조의 칭찬에 이준의 입가에도 미소가 내려앉았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보거라.”

이현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이준은 간단히 생각을 정리한 후 지금까지 일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현은 아무런 말없이 이준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귀를 기울여주었다.

설명을 마친 이준이 긴 한숨을 들이쉬며 결연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천상무덤에 찾아온 것은 조상님을 부활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조상님이 나서주신다면 혼족도 절대 함부로 날뛰지 못할 것입니다.”

“부활?”

이현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 영혼은 이미 거의 다 사라졌다. 지금 내가 남아있는 것은 오직 천상무덤의 힘 때문이지, 영혼의 파편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 어떻게 다시 부활을 할 수 있겠느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현의 단호한 말에 이준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현이 부활할 수만 있다면 혼족에 맞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겁니까?”

이준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물었다.

“흠, 적어도 나는 내가 부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아마 투제 강자라면 나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지.”

“투제라니…….”

‘투제’라는 두 글자에 힘이 쭉 빠졌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 투제 강자가 있겠는가.

“허허, 나는 이미 죽은지 오래다. 삶에 대한 미련도 없으니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그저 이족의 후손이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쁘구나.”

이준을 바라보는 이현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혼족이 태령 황제 신전의 열쇠를 완성하는 순간 이준은 물론이고 투기 대륙 전체가 그들의 발아래 떨어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준의 성장을 기뻐하며 웃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태령 황제 신전의 열쇠를 완성할 마지막 옥패가 네 손에 있는데, 이 옥패를 혼족에 잡혀있는 네 아버지와 맞바꿔야 하는 상황이구나.”

이현이 무덤비석에 기댄 채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 놈들이 태령 황제의 신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겠지.”

“태령황제의 신전 안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겁니까? 정말 투제가 될 수 있는 방법이 그 안에 있는 것 입니까?”

“투제라…….”

이준의 질문에 이현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그 역시 투제가 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수많은 강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한때 투제에 가장 가까운 사내였으니 더욱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투기대륙에서 투제 강자가 나타나지 않은지도 벌써 만년이 지났다. 하지만 만 년 전의 일을 알 도리가 없으니, 어떻게 투성 최고급에서 투제로 승급할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지. 나 역시 9성 투성 최고급 단계에서 몇 번이나 투제가 되려고 시도했으나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발견한 점이 하나 있었다.

“어떤 것입니까?”

“그때의 난 충분히 투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벽을 뚫으려 할 때마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무언가의 정체를 알 수 있다면 투제가 될 수 있겠지.”

이현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간 이준의 머릿속에 지옥이무기족의 석비 속에서 만났던 황천요성 역시 현재 투기대륙에는 무언가가 빠져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대체 뭐가 빠진 걸까요?”

“아마 어떤 물건일 것이다. 난 그것이 일종의 특별한 에너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에너지가 고대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지. 나는 그것을 투제의 근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투제의 근원이라……. 조상님의 말씀은 투제의 근원이 있어야만 투제 강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입니까?”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바쳐 투제가 될 단서를 찾으려 애썼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런 에너지를 느낀 적이 없었다.”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금 투기대륙에서는 투제 강자가 다신 탄생하지 않겠네요? 혼천제는 태령황제의 신전에 가야만 투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던데, 설마 그 신전 안에 투제의 근원이 있는 걸까요?”

“태령황제의 신전에 투제의 근원이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 신전 안에는 황제 비약이 있다. 혼천제의 목표도 바로 그것이고.”

“황제 비약이요?”

이준의 낯빛이 살짝 바뀌었다. 고대 이후 황제비약을 제련한 연금술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은 황제비약은커녕 흑주비약조차 보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황제비약을 만들기 위해선 마찬가지로 내가 말한 투제의 근원이 필요하다. 이게 없으면 연금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소용이 없다.”

이현이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에 있는 황제비약은 태령황제의 신전에 있는 것 뿐이겠네요. 그걸 얻기만 하면 혼천제는 투제의 근원을 흡수해 만 년 만에 처음으로 투제가 될 수 있겠군요.”

이준이 말했다. 혼족이 그렇게 태령황제의 신전에 집착하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혹시 태령황제의 신전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이준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위치만 안다면 혼족이 옥패를 모아 신전의 문을 열었을 때, 황제 비약을 낚아챌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설령 빼앗지 못한다 해도 황제 비약을 없애는데 성공한다면 혼족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태령황제의 신전에 황제비약이 있다는 것도 태령황제의 옥이 조각조각 나눠질 때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옥패 속에 있는 정보를 완전히 파악하기도 전에 8대 세력이 옥패를 여덟 개로 나누어 버렸지.”

이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찌됐든, 지금은 조금이라도 실력을 키워 놈들이 태령황제의 열쇠를 완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 상태로도 아직 네게 해줄 것이 남아있어서 다행이구나.”

말을 마친 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먼 하늘을 바라보며 쓸쓸한 웃음을 짓더니 텅 빈 허공에 대고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내가 너의 영혼이 더욱 강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마. 하지만 하늘단계에서 황제단계 영혼이 되는 것은 오로지 네 의지에 달려있다!”

“황제 단계…….”

이준이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한 표정으로 이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투제, 황제 등급의 연금비약, 황제단계 영혼.

이 세 가지는 모두 투기대륙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서 투제가 되거나 황제 비약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투제의 근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것이 영혼의 힘을 황제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투기대륙에서 황제단계 영혼을 가진 사람은 단 두 사람, 고원과 혼천제 뿐이었다.

이준의 영혼이 하늘단계 최상급에 들어선 지도 이미 수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어떻게 수련을 해도 황제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 문턱을 넘어설 단초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이준은 너무 놀란 나머지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아주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현은 씩 웃으며 안개가 자욱한 허공을 바라보았다.

“천상무덤에는 혼이 있다. 이 안에 떠다니는 에너지체가 아니라, 천상무덤 그 자체가 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상무덤에도 영혼이 있습니까?”

“천상무덤이 생긴 이후, 이곳에 있는 영혼들이 하나로 응집되어 만들어진 아주 특별한 영혼이 하나있다. 그 영혼이 바로 이 공간의 지배자인 동시에 이곳에 있는 에너지체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잡아먹도록 만든 장본인이지.”

이현은 텅 빈 허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고원이 이곳에 온다 해도 그 녀석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오직 이곳에 있는 에너지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영혼이니까.”

이준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영혼을 가진 공간이라니, 투제 강자의 힘은 실로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너라면 그 영혼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말을 마친 이현의 몸이 천천히 허공 위로 떠올랐다. 곧이어 주변에 자욱하던 안개가 빠르게 흩어지면서 엄청난 위압감이 천상무덤 전체를 뒤덮었다.

강한 위압감을 느낀 에너지체들이 약속이나 한 듯 분분히 고개를 들어 이현을 바라보았다. 텅 빈 그들의 두 눈에서 순간 격렬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현 대인, 드디어 그 녀석을 부르시는 겁니까…….”

혈도성자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공 위에 나타난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는 계속해서 그들이 살아가도록 해주었지만, 이것은 결코 그들이 원하던 삶은 아니었다.

천상무덤의 영혼은 에너지체들의 영혼 속에 서로를 잡아먹고자 하는 욕망을 심어둔 장본인이었다. 때문에 무덤안의 에너지체들은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에너지체들을 잡아먹어야 했는데, 이는 인간으로 따지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과거의 천상무덤은 강자들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상무덤의 영혼이 탄생한 이후, 이 세계는 점점 변질되기 시작했다.

천상무덤의 영혼을 없애려고 시도한 에너지체들도 있었지만, 결국 그들도 모두 천상무덤의 영혼에게 흡수되고 말았다.

이 공간에서 천상무덤의 영혼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단 하나, 천상무덤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이현이었다.

아주 오래 전, 이현에게 천상무덤의 영혼을 없애달라고 간청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현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싸늘하게 식었던 마음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에너지체들은 항상 서로를 잡아먹어야 하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들은 야수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 * *

“그때의 난 나의 사명을 위해 이곳에 남아야 했다. 이제 내 사명을 다 했으니 자네들의 소원을 이뤄주겠다.”

허공 위로 떠오른 이현이 고개를 숙여 넓은 대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현 대인!”

대지 위, 서로를 물어뜯고 있던 에너지체들이 떨리는 눈으로 뒷짐을 진 채 서있는 이현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에너지체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이준 역시 하늘 위에서 에너지체들의 행동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니 저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에너지체들이 모두 천상무덤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콰르릉!

그때, 공간 끝에서 고막을 찢을듯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한 영혼의 파동이 물 밀 듯이 밀려왔다.

영혼파동은 순식간에 세상을 전부 뒤덮었다. 이준은 그 영혼 파동과 닿자 커다란 바위가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잠시 후, 천상무덤 안을 휩쓸던 영혼 파동이 한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뿌연 허공에 거대한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저게 바로 천상무덤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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