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786화 (786/818)

786화. 함정

“음?”

이준의 몸에서 새어나오는 여섯 개의 불꽃의 힘을 느낀 염신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몇 번이나 상대의 몸을 훑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7성 투성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 하구나.”

“뇌영 족장님.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인화일체를 사용한 이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뇌영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뇌영의 실력은 약단보다 강하면 강했지 못하지는 않아보였다. 이런 강자를 상대로는 전력을 다해 선공을 퍼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후욱!

어느새 이준의 손에는 여섯 가지 색을 가진 연꽃이 피어나 있었다.

연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파멸의 힘과 열기에 염신과 고원마저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놀란 것은 뇌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마치 큰 선물이라도 받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인결을 맺었다.

“뇌족의 번개 무투기를 구경시켜주마!”

곧이어 그의 손 위에서 작은 구름이 피어나더니 새까만 번개를 토해냈다.

쾅!

하늘이 떠나갈 듯한 굉음이 고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무시무시한 충격에 이준은 수백 미터나 날아가 버렸지만, 뇌영은 살짝 뒤로 밀렸을 뿐 여전히 철탑처럼 허공에 우뚝 서있었다. 역시 8성 투성다운 무시무시한 실력이었다.

“이준이 받아냈어!”

하지만 이준도 큰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멀쩡한 이준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뇌영이 사용한 ‘낙뢰장풍’은 뇌족의 1격 고급 무투기로, 천 리 안에 있는 모든 생물을 파괴할 정도로 강한 위력을 갖고 있는 극강의 무투기였다.

하지만 이준은 부상조차 입지 않고 그저 수백 미터를 밀려났을 뿐이니, 그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두 사람의 충돌로 인해 생긴 에너지 폭풍이 미친 듯이 훈련장을 휩쓸자, 고원이 거대한 공간 균열을 만들어 상황을 정리했다.

“뇌영……. 아무리 봐도 반이 아니지 않은가.”

고영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숙을 비죽이며 말했다.

“하하. 역시 이현의 후배답게 대단하구나!”

하지만 뇌영은 고원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또다시 고개를 젖힌 채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바로 그때, 무언가를 느낀 고원이 험악한 표정으로 빠르게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혼천제. 그렇게 숨어있을 필요가 있는가?”

고원의 말에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은 채 하늘 위로 고개를 들었고, 이준을 둘러싼 채 전투를 구경하던 흑연군들도 일제히 염력을 터뜨렸다.

“혼천제?!”

이준의 귓가에 고원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이족을 완전히 파멸시킨 장본인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경계 태세!”

고족의 3대 신선이 명령을 내리는 순간, 고족의 모든 강자들이 일제히 무시무시한 기운을 쏟아냈다.

사방에서 화산처럼 터져나오는 염력에 이준마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8대 세력의 수장 자리를 꿰찰만한 전력이었다.

한편, 고원은 지극히 평온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뒷짐을 진 채 그곳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고원 족장. 무슨 일인가?”

곧이어 염신과 뇌영이 고원의 곁으로 날아와 똑같은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표정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로 혼천제가 왔단 말인가? 설마……. 고족과 전쟁이라도 벌이려는 심산인가?”

염신이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하지만 고원은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무거운 적막 속에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소리가 마치 북 소리처럼 고막을 강하게 때리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혼천제가 이곳에 왔다면 약계에서 벌어진 전투와는 비교할 수 조차 없는 처참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다시 몇 분이 지났을 때, 텅 빈 공간에서 드디어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옅은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끌끌. 고원, 오랜만일세. 여전히 예리한 탐지 능력이군.”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온 몸에 바짝 힘을 준 채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곧이어 일렁이던 공간에 소용돌이가 생겨나더니 그 속에서 회백색 옷을 입고 30세 정도 되어 보이는 훤칠한 외모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짝이는 두 눈에 기품 있는 외모는 책 하나만 들면 영락없는 서생(書生)처럼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서생처럼 연약해 보이는 그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뇌영과 염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저 사람이 정말 혼족의 족장 혼천제라고?”

이준이 당황한 표정으로 혼천제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부드럽고 기품 있어 보이는 혼천제의 외모와 지금까지 혼족이 벌인 끔찍한 일들이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소용돌이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약족에서 봤던 허무대인이었고, 그 뒤로는 혼족의 최강자라는 4마성이 서있었다.

“끌끌. 사람들이 많이 모였군. 고원, 뇌영, 염신. 우리 넷이 한 자리에 모인 것도 수천 년 만 아닌가?”

회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혼천제. 이곳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다.”

고원이 그를 노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지 못할 곳은 없다.”

혼천제가 대답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일상 대화처럼 지극히 평범했다.

“혼천제. 영족, 석족, 약족 실종사건 모두 너희 혼족의 짓인가!”

뇌영이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네도 알고 있을 텐데.”

혼천제는 당당히 대답하며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혼천제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 몸에 한기가 드는 것을 느꼈다.

“역시 네 놈들 짓이구나!”

혼천제의 대답을 듣는 순간 뇌영과 염신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허무의 불꽃이 식영족의 마지막 족장인 식영왕을 잡아먹은 것 아닌가? 그게 바로 혼족이 지금까지 피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고 말이야.”

고원은 온몸이 검은색 화염에 휩싸인 허무 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그때 널 없앴어야 했군.”

“끌끌, 고원. 네 실력이 훌륭한 건 사실이지만 나를 없앨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혼천제 뒤에 있던 검은 화염이 용솟음치며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나는 이미 천 년 동안의 수련으로 9성 투성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빠르게 바뀌었다. 9성 투성이라니, 그렇다면 혼족에는 9성 투성이 무려 두 사람이나 있다는 것 아닌가?

“9성 투성…….”

이준이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9성 투성 2명이라면 고족조차 상대가 될 수 없는 전력이었다. 이 정도라면 혼족이 다른 8대 세력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 것도 이해가 갈 지경이었다.

“네가 약계를 멸망시켰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9성 투성이 둘이라 해도 우리 고족을 멸망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고원의 목소리에는 한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흠……. 확실히 조금 부족하긴 하지.”

혼천제는 고원의 말을 인정하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연자약한 혼천제의 태도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대체 뭘 위해 고계까지 찾아왔단 말인가.

“고원, 조심하게 틀림없이 뭔가 함정이 있을 거야.”

고원의 곁에 있던 염신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한 전력을 이끌고 고계까지 왔다는 것은 틀림없이 무언가 감춰놓은 패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작 혼천제는 아무 말 없이 뒷짐을 진 채 고원과 대치만 하고 있었다.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이준은 말없이 이은의 손을 꼭 붙잡았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혼족이 무엇 때문에 고계까지 왔는지 고민하던 이준의 머릿속에 번쩍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태령황제의 옥은 아버님이 가지고 계신거야?”

“아뇨. 태령황제의 옥은 신주를 모셔둔 사당에 있어요. 그곳이 고족에서 가장 경비가 엄격한 곳이니까요.”

“그 사당을 지키는 강자들도……. 대부분 다 이곳에 와있을 거 아니야?”

이준이 하늘에 있는 고족 강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순간, 이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셔버렸다.

“설마……!”

이은의 표정을 본 이준이 크게 외쳤다.

“아버님, 놈들의 목적은 태령 황제의 옥입니다!”

그 순간, 혼천제와 대치하고 있던 고원의 낯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그가 소리를 치기도 전에 산속 깊은 곳에서 적의 침입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사당이 있는 장소였다.

땡! 땡! 땡!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고족 강자들의 얼굴이 완전히 사색이 되고 말았다.

“혼천제!”

그 순간 하늘에 빠르게 어둠이 드리우더니 무시무시한 천지의 에너지가 허공을 헤집으며 고원의 등 뒤에 거대한 회오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천지의 에너지로 형성된 회오리는 보통 천지이변이 있을 때만 형성되며,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이런 회오리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원의 실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무시무시한 압력에 혼탁을 비롯한 4마성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러나 혼천제와 허무대인은 9성 투성인 고원의 힘을 눈앞에서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있었다.

“족장님. 고양 장로가 사당에 있는 장로들을 공격하고 옥패를 훔쳐갔습니다!”

그때, 산속 깊은 곳에서 한 사람이 허겁지겁 날아와 고원을 향해 소리쳤다.

“뭐라고?!”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고양 장로가 어떻게…….”

이은 역시 적잖이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야? 설마 그 고양 장로가 혼족의 첩자였던거야?”

이준의 질문에 이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답했다.

“고양은 사당의 둘째 장로로 백 년 동안 사당을 지키면서 우리에게 큰 신임을 받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옥패를 훔쳐 달아나겠어요?”

“너희 짓이냐?”

고원이 차가운 눈빛으로 혼천제를 노려보며 물었다.

혼천제는 가만히 미소를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원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가 이곳에 있는 이상 고원도 차마 이곳을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고원이 자리를 비우는 순간, 이곳에서 혼천제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가운 표정으로 혼천제를 바라보던 고원이 다시 입을 열어 명령을 내렸다.

“고계를 봉쇄하라! 고도영! 자네 세 사람은 흑연군을 배치해 수색을 시작하라. 고양을 잡아와라!”

“예!”

고원의 명령에 3대 신선은 곧바로 몸을 돌려 고양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몸을 움직이기 무섭게 혼천제의 뒤에 있던 4마성이 날아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고원. 그렇게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은가?”

혼천제가 씩 웃으며 말했다.

“흥! 어디 막아보거라!”

고원이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회오리가 솟구치며 수천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손이 혼천제를 향해 힘껏 날아갔다.

“음, 해보겠다는 것인가.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걸 알 텐데 말이야.”

곧이어 혼천제의 손에서 생겨난 검은색 작은 점이 순식간에 거대한 검은 색 구체로 변해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영혼마저 산산이 부서져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만 같았다.

거대한 손과 검은 구체가 강하게 부딪히는 순간, 공간이 유리처럼 깨지며 파멸의 힘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수천 년에 걸쳐 공간이 단단하게 굳어졌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고계는 이미 완전히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 순간, 염신과 뇌영이 눈을 마주치며 동시에 앞으로 몸을 날렸다. 고족이 무너진다면 염족과 뇌족이 무너지는 것 역시 시간 문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