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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83화 (783/818)

783화. 혼족의 비밀

한편, 분홍색의 약솥 위에서는 여전히 격렬한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젠장. 어쩌다 이 영감을 만나서……. 이러다 3대 신선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겠어.’

고도영의 몽둥이를 막아내는 혼석의 얼굴이 점점 더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속전속결로 끝내야겠군.’

혼석의 검에서 피처럼 붉은 빛이 폭발하더니 귀를 찌르는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공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꽈앙!

대검과 몽둥이가 맞부딪히며 광활한 평원 위에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고, 거대한 산들이 먼지가 되어 폭삭 주저앉았다.

“죽어라!”

고도영이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더욱 거세게 몽둥이를 휘두르자, 혼석의 몸이 저만치 멀리 튕겨져 나갔다.

다음 순간, 고도영의 얼굴에서 완전히 핏기가 가시고 말았다.

몽둥이에 의해 밀려난 혼석이 엄청난 속도로 분홍색 약솥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하! 고맙다 고도영!”

쾅!

혼석이 새빨간 검을 휘두르자, 분홍빛의 화염 약솥이 산산이 부서졌다.

“죽어라!”

살기가 가득한 혼석의 외침이 고도영의 고막을 때렸다.

하지만 혼석의 검이 막 정수리에 닿으려는 찰나, 이준의 몸에서 이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진 기운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6성 투성?! 그 사이에 9레벨 흑주비약을 연소시켰단 말이냐!”

더욱 강해진 이준의 기운을 느낀 혼석의 낯빛이 빠르게 바뀌었다.

“이거나 먹어라!”

이준이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의 팔뚝 위에 새겨진 금색의 용문양이 눈부신 빛을 토해냈다.

무언가 일이 단단히 틀어졌음을 느꼈지만 몸을 물리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판단한 혼석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이준의 머리를 내리쳤다.

“가라!”

그때, 이준의 팔뚝에 새겨진 용무늬에서 황금빛 번개가 터져 나왔다.

치익!

금빛 번개가 새빨간 염력을 그대로 꿰뚫고 혼석의 몸을 강타했다.

“이건…….”

황급히 혼석을 뒤따라오던 고도영은 금빛 번개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느끼고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제길, 저건 뭐야?!”

혼석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 위에 생겨난 검은색 구멍을 쳐다봤다. 방어해봤자 소용없었다. 이 공격이 머리에 적중했다면……. 상상만 해도 등줄기에 식은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쉭!

그때, 먼 곳에서 고족의 강자들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준. 이 원한은 반드시 되갚아주마!”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고족의 강자들을 바라보던 혼석은 독기 어린 눈으로 이준을 노려보다 황급히 먼 곳으로 달아났다.

이준은 멀리 사라지는 혼석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황금색 번개를 뿜어냈던 자신의 팔로 시선을 돌렸다.

이준의 곁으로 돌아온 약영연은 부리나케 도망가는 혼석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준 선생님. 9레벨 흑주비약을 흡수하신 것 입니까?”

약영연은 어찌된 일인지 너무 궁금했다. 그녀 역시 연금술사이니 9레벨 흑주비약을 단 10분 만에 흡수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설마요. 아주 조금만 흡수한 것뿐입니다.”

이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밝아져 있었다. 극히 일부만을 흡수했을 뿐인데 6성 투성이 되다니, 과연 흑주비약이 다르긴 다른 모양이었다.

‘이 에너지를 전부 흡수한다면 최소한 6성 중급까지는 실력이 오르겠는걸.’

“허허. 다행이군.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네.”

고도영이 이준의 팔뚝으로 돌아온 금색 용무늬를 훑어보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이 아니었다면 전 이미 시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준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한데 대체 어떤 연금비약이기에 자네 정도의 실력자가 흡수하지 못하는 것인가?”

고도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9레벨 흑주비약입니다. 혼석을 따돌리기 위해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9레벨 흑주비약이라니…….”

이준의 대답에 고도영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흑주비약이라면 고족 내에서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진정한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고도영 장로님!”

그때, 저 멀리서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왔다.

무심한 듯 그들을 한 번 훑어보던 이준은 금세 익숙한 얼굴을 하나 발견했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바로 흑영군의 총령, 영천의 얼굴 위였다.

영천 역시 이준을 발견하곤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그토록 무시했던 이준이 불과 몇 년 사이에 감히 얼굴조차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강자가 되어 있었으니, 그저 상대가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있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고도영 장로님. 이쪽에서 격렬한 에너지 파동이 느껴져 곧바로 달려왔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이미 끝났다. 혼족의 4마성 중 하나인 혼석이 왔었다.”

혼석의 이름이 나오자, 영천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혼족의 4마성이라면 고족의 삼대 신선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투기 대륙 최고의 강자가 아니던가.

“고도영 선배님. 고원 족장님을 좀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약족이 멸망한 것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닙니다. 혼족이 무언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준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이준의 한마디에 영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영족과 석족에 이어 약족마저 사라지다니……. 혼족의 힘이 그렇게나 대단했단 말인가?

“고맙네. 자네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우리도 약족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고도영이 굳은 얼굴로 이준 옆에 서있는 약영연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뗐다.

“염족과 뇌족의 족장들을 모셔야할 것 같구나. 다음은 그들의 차례일테니 말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한 고도영은 곧바로 영천 등을 고성으로 돌려보낸 뒤 이준과 약영연을 이끌고 고계로 진입했다.

* * *

약족이 멸망했다는 소식이 고계에 퍼지면서 또 다시 큰 파장이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기에 8대 세력 중 셋을 멸망시켰단 말인가?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는 대전 안에는 이미 수많은 장로들이 모여 있었다.

상석에는 고족의 수장인 고원이 앉아 있었고, 그의 왼편으로는 고도영을 비롯한 고족의 삼대 신선과 장로들이 나란히 서있었다. 그리고 고원의 오른쪽에는 이은을 비롯한 고족의 젊은 강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줄줄이 서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고원 족장님.”

이준과 약영연은 고원을 향해 예의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몇 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군. 정화세계에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지? 조금 갑작스럽지만, 자네는 이미 고족의 일원이 되어버렸다고 봐도 무방한 것 같군.”

고원이 대전 중앙에 우뚝 선 청년을 바라보며 인자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는 편하게 아버지라 부르게.”

그 순간 이은의 두 뺨이 장미처럼 붉게 물들었다.

고족의 청년들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은은 오래 전부터 이준 뿐이었고, 이제 이준은 투기 대륙의 진정한 최고 수준 강자라 할 수 있는 6성 투성의 반열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누구도 둘의 관계를 반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족장인 고원이 이렇게 공식적으로 못을 박아버렸으니, 그 누가 둘의 관계에 불만을 표할 수 있겠는가.

“네?”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은과 고원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이준의 입가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다.

셀 수 없이 많은 사선을 넘은 끝에 드디어 투기 대륙 최고의 세력인 고족에게 이은의 배필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제 약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지.”

고원은 미소를 지은 채 이준을 천천히 훑어보며 말했다.

본론으로 돌아오자, 이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변했다.

“혹시 식영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이준의 한마디에 고족 장로들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식영이라니…….”

고원이 천천히 숨을 고르며 살기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틀림없는가?”

“혼족이 허무의 불꽃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지요?”

“알고 있네. 허무의 불꽃과의 전투에서 허무의 불꽃이 중상을 입은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소식이 사라졌다. 아마 치료에 들어갔겠지.”

고원의 실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약제의 영혼조차 막을 수 없었던 허무의 불꽃에게 요양이 필요할 정도의 중상을 입히다니…….

이준은 놀란 감정을 추스르고 빠르게 약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허무의 불꽃이 어떻게 식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로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모아 물었다.

“아버님. 도대체 식영이 무엇입니까?”

이준의 질문에 고원의 표정이 더욱 어둡게 내려앉았다.

“식영족은 고대에 투기대륙 전체에서 피바람을 몰고 다니던 잔인한 세력이었다.”

고원은 무겁게 한숨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고대 세력들은 피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피의 힘이 고갈되면 일반인과 다를 게 없어지지.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투제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결국 피의 힘은 서서히 사라지게 되지.”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족도 피의 힘이 고갈되었을 때 혼족이 침략하면서 멸망을 맞았다.

“하지만 식영족은 다르다. 놈들은 다른 세력의 피를 흡수하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피의 힘이 사라지는 시기를 늦출 수 있지. 놈들은 자신들의 피의 힘을 지키기 위해 다른 세력들을 노렸고, 수많은 세력들이 놈들에 의해 멸망을 맞았다. 결국 수많은 고대세력들이 연맹을 결성해 식영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기나긴 전쟁 끝에 식영족은 멸망을 맞았다.”

설명을 마친 고원이 갑자기 먼 곳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그리고 내 기억에 식영족의 마지막 족장은 혼족에게 죽임을 당했다.”

“예?”

그의 말에 대전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설마 혼족이 바로 식영족이라는 말씀입니까?”

이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건 아닐 것이다. 기록을 보면 식영족도 혼족을 침략한 적이 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고 적혀있다. 아마도……. 혼족이 식영족의 마지막 족장에게 무언가를 얻어냈는데, 그것을 이용해 자신들의 피의 힘을 이어나가려 하는 것이 아닌가 싶구나.”

고원이 말했다.

“족장님. 투제 강자들이 사라진 이후, 고대 세력들이 하나씩 연이어 몰락하거나 사라졌지요. 그 중 일부 세력들이 이상한 방식으로 사라졌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한데 지금 생각해보니 석족, 영족과 비슷했던 것 같지 않습니까?”

그때, 고도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그것도 모두 혼족의 짓이란 말인가?”

고원이 물었다.

“수만 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고대 세력들이 멸망했는데, 오직 혼족만이 계속해서 그 강성함을 유지해 왔습니다. 마치 그들에게만 피의 힘이 무한한 것처럼 말이지요. 어쩌면 그들의 힘은 이미…….”

“걱정 말게. 저들이 정말 식영족과 같은 능력을 가졌다 해도 당장 우릴 어찌할 수는 없을 거야. 과거 혼족 전체가 이현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수많은 혼족의 투사들이 죽어나가고 혼천제마저 중상을 입지 않았던가. 지금 혼족의 힘은 절대로 그때보다 강하지 않을 걸세.”

고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족장의 모습에 장로들도 조금 마음이 놓였는지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허무의 불꽃이 나타난 걸 보니 그때 내게 당한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모양이군. 혼족이 우리의 감시망을 어떻게 피할 수 있었는지 이제 알겠구나.”

고원이 손가락으로 허공에 동그란 원을 그리더니 그것을 손으로 콱 움켜쥐며 말했다.

“놈이 공간 자체를 전부 잡아먹었기 때문이지.”

고족의 강자들은 순간 온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공간 자체를 잡아먹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잊었는가, 허무대인의 정체는 사람이 아니라 허무의 불꽃이 아니던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만식의 힘을 가진 허무의 불꽃에게는 가능할지도 모르지. 혼족이 모습을 감춘 것은 식영족의 마지막 족장이 사라진 이후였으니…….”

“족장님의 말씀은……. 허무의 불꽃이 식영족의 마지막 족장을 잡아먹고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고도영 옆에 앉아있던 백발의 노인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혼족이 어떤 방법으로 식영족의 능력을 얻게 되었는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고원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두 눈에선 강한 살의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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