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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82화 (782/818)

782화. 혼석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바로 이 옥패를 깨거라.”

약로는 옥패를 이준의 손에 쥐어준 뒤 곧바로 멀리 날아갔다. 뒤이어 신농과 약족의 청년들도 약로의 뒤를 따라 자리를 벗어났다.

“어딜 가려고?”

바로 그때, 혼석이 새빨간 피를 굳혀 만든 것 같은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그 러자 천 미터가 넘는 거대한 칼날이 매서운 바람을 일으키며 약로 일행을 향해 날아들었다.

챙!

거대한 칼날이 약로를 덮치려는 찰나, 검은 그림자가 번개처럼 날아와 칼날을 쳐냈고, 약로 등은 그 틈을 타 잽싸게 지평선 멀리 모습을 감췄다.

“흠……. 조금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어차피 내 목적은 너를 끝장내는 것이니까.”

하지만 혼석은 약로가 달아나는 것을 보고도 더 이상 쫓지 않고 피식 웃으며 이준의 손에 들린 9레벨 흑주비약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준. 그 연금비약을 넘기면 고통없이 죽여주겠다. 만약 내놓지 않으면, 네 영혼을 뽑아 수백 년 동안 고통을 맛보게 해줄 것이다.”

혼석의 협박에 이준은 코웃음을 치며 보란 듯이 옥병 안에 들어있던 흑주비약을 집어삼켰다.

구우웅-

연금비약이 몸 안으로 흡수되는 순간,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준의 피부 위에 기이한 빛을 발하는 용비늘이 빼곡하게 돋아났다.

곧이어 거대한 용이 몸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는 듯 이준의 몸이 강하게 뒤흔들렸다.

크르릉!

이준의 몸에서 솟아난 에너지가 산 전체를 마구 헤집자,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강하게 떨리다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큭, 재밌군. 하지만 무슨 수로 흑주비약의 약효를 녹이려 하는 것이냐?”

혼석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다음 순간, 피로 물든 혼석의 검이 ‘쉭’하는 소리와 함께 이준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준 역시 번개처럼 검은 송곳을 꺼내들어 한치도 물러나지 않고 혼석의 공격을 그대로 막아냈다.

챙!

뒤로 수백 미터나 날아가고 나서야 멈춰 선 이준은 목구멍에서 비릿한 피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에너지를 쓰기 시작하니 폭발할 것처럼 들끓던 몸속의 에너지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덤벼라.”

이준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혼석에게 달려들어 미친 듯이 검은 송곳을 휘둘렀다.

챙챙챙!

갈수록 힘이 붙는 이준의 공세에 혼석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칼 위에 검은 송곳이 닿을 때마다 그의 몸이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뒤로 밀려났다.

“언제까지 설칠 수 있나 보자. 어차피 흑주비약을 연소하지 못하면 그 에너지도 곧 모두 사라지고 말 테니까!”

하지만 혼석은 냉정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이준의 연이은 공격을 막아냈다.

검을 휘두르는 이준의 손에 힘이 붙으면서 신농산의 거대한 산봉우리가 빠르게 폐허로 변해갔다.

챙!

산을 들어 내려찍는 것 같은 힘이 혼석의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팔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낀 혼석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혼석이 저만치 멀리 물러나자, 이준의 등 뒤에서 돌연 청홍색의 뼈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하하. 재미있네. 다음에 또 보자고!”

말을 마친 이준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곧장 방향을 틀어 날아갔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약천과 약영연, 그리고 북왕이 있었다. 그는 혼석을 따돌린 틈을 타 북왕에게 약천과 약영연을 데리고 가도록 미리 명령을 내려둔 참이었다.

쾅!

이준의 공격을 피해 산 위에 착지한 혼석은 이미 잽싸게 달아나는 이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발악하듯 소리쳤다.

“네가 어디에 있든 끝까지 쫓아가 네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

아득한 하늘 위에 꽈르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변을 지나던 강자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눈부신 무지갯빛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후, 돌연 천지에 살기가 맴돌더니 검은 빛줄기 하나가 조금 전 사라진 빛을 따라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정말 끈질기네.”

자신을 뒤따라오는 혼석의 모습을 확인한 이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추격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아직 고족까지 반나절은 더 가야하는데, 점점 우리 속도를 따라잡고 있어요.”

약천이 지친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준 역시 상태가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9레벨 흑주비약의 에너지는 실로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소애가 아무리 열심히 에너지를 연소시켜도 계속해서 솟아나는 무시무시한 힘에 이준의 몸속은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용족의 힘과 피의 힘을 통해 강해진 육체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몸이 터져버려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여기서 흩어지죠.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혼석에게 붙잡히고 말 거예요. 저 자의 목표는 저이니 제가 놈을 유인하겠습니다.”

이준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뇨. 함께 하겠어요.”

하지만 약천은 단호하게 이준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들 역시 이준의 곁에 있으면 더욱 위험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이준을 버리고 달아날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결연한 표정을 확인한 이준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고맙지만 지금은 고집부릴 시간이 없어요.”

바로 그때, 약영연이 돌연 약천의 가슴팍을 거세게 밀쳐 그를 저 멀리 날려 보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다시 방향을 틀어 이준과 약영연에게로 돌아오려던 약천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듯한 약영연의 표정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그대로 고계를 향해 날아갔다.

“아주 단호하네요.”

이준이 약영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약영연은 눈물을 참으려는 듯 이를 꾹 악문 채 억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죄송하지만 오라버니만큼은 살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도 저는 마지막까지 이준 선생님과 함께 싸우겠으니 너무 원망하지 말아주세요.”

눈물을 참으며 애써 담담한 말투로 웃으며 말하는 약영연의 모습에 이준은 말없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찢어진 거야?”

멀리서 이준의 뒤를 쫓던 혼석은 이준과 약천의 뒷모습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가 이준의 뒤를 계속해서 쫓아갔다. 약족의 마지막 후예 따위는 어찌되든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태령황제의 옥을 가지고 있는 이준은 반드시 잡아야 했다.

“언제까지 도망갈 수 있나 보자!”

* * *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됐다. 세 사람은 어느 덧 중주의 절반 가까이를 가로지른 상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준의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고, 온 몸에서 참을 수 없는 격통이 밀려들었다.

이준의 몸속에 가득 찼던 에너지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 결석이 되어 혈관을 모두 막아버린 상태였다.

소애가 안간힘을 쓰며 에너지를 연소시키려 했지만, 결석은 계속해서 늘어나며 단단한 혈관에 끊임없이 상처를 남겼다.

“이준 선생님, 괜찮으세요?”

이준의 영혼의 힘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약영연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내려앉았다.

“당신도 도망가세요. 저와 함께 있으면 죽음뿐 입니다.”

이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달아나라고 말했다.

그때, 약영연이 갑자기 이준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제 피에는 영혼의 힘을 채워주는 효과가 있어요.”

그녀의 말에 이준은 놀란 눈으로 약영연을 바라보았다.

‘황제단계의 영혼이 될 수도 있는 인재라더니, 이것 때문인가?’

잠시 망설이던 이준은 말없이 약영연의 손목을 이로 꽉 깨물었다. 그러자 손목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으며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곧이어 이준의 입속으로 들어간 피가 에너지로 변해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하얗게 질렸던 이준의 얼굴에 빠르게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준의 혈색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약영연은 곧장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녀석의 속도가 더 빨라졌어요.”

“서둘러요. 고계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혼석의 모습을 확인한 이준이 다시 한 번 청홍빛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허, 고계로 달아나겠다? 뜻대로 될 거라 생각하느냐!”

혼석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준의 속도가 느려지나 싶었는데, 다시 속력을 높여 도망갈 줄이야.

다음 순간, 그의 어깨에 수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박쥐 날개가 생겨났다. 혼석이 자신의 혀를 깨물어 날개 위에 피를 뱉자, 거대한 날개가 부르르 떨리며 그의 몸이 자리에서 귀신처럼 사라졌다.

“젠장……!”

혼석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이준은 약영연을 껴안은 채 빠르게 아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쉬익!

이준이 방향을 틀기 무섭게 새빨간 칼날이 대지를 반으로 가를 듯 엄청난 기세로 두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준의 어깨 위에 소애가 나타나더니 금빛 번개를 내뿜었다.

그와 동시에 한 노인의 목소리가 이준의 귓등을 때렸다.

“혼석. 고족의 땅에서 행패를 부리다니, 배짱이 아주 두둑하구나.”

이준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전신에서 비범한 기운을 내뿜는 청색 의복을 입은 노인이었다.

“혼석. 이곳이 고족의 땅이라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노인이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혼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족의 3대 신선, 고도영…….”

노인을 발견한 혼석의 얼굴은 완전히 납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내 목표는 저 놈이다! 고족과는 무관해!”

혼석의 외침에 고도영이라는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허허, 그건 안 되지. 반은 고족의 사람인 이준을 너에게 넘길 순 없다. 혼석, 곱게 물러나거라!”

고도영이 자신을 알아보자 이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리고 반은 고족 사람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선배님. 영족과 석족을 멸망시킨 범인이 바로 혼족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저들이 약족마저 없애버렸습니다.”

순간 고도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역시 너희가 한 짓이구나.”

“흥, 알면 어쩔 것이냐? 고족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혼석은 어떠한 변명도 없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고족의 앞날은 둘째 치고, 혼자서 나를 이길 실력이나 갖추고 있느냐?”

“물론이지. 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고족의 마지막도 얼마 남지 않았고.”

싸늘한 한마디와 함께 혼석의 몸이 사라졌다가 새빨간 섬광과 함께 고도영의 눈앞에 나타났다.

“흥, 네놈들이 감히 우리 고족을 어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고도영이 가볍게 고개를 틀어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칼날을 피하며 말했다.

곧이어 커다란 몽둥이 하나가 그의 손에 나타나 혼석의 붉은 대검과 거세게 맞부딪혔다.

챙챙!

충돌 지점에서 시작된 공간파동이 수천 미터 밖까지 퍼지며 무시무시한 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고도영이 혼석을 막고 있는 사이, 이준은 자리에 앉아 소애를 소환했다.

‘역시 흑주비약을 그렇게 함부로 먹으면 안 됐어.’

소애가 분홍빛이 감도는 화염 약솥으로 변하자, 이준이 잽싸게 그 안에 들어가 앉았다.

정화의 불꽃이 폭발하기 시작하면서 수정처럼 뭉쳐버린 에너지 결석들이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에너지 결석이 순수한 에너지로 변하는 순간, 이준은 꽉 막혀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쏴아아-

이준의 혈관 속을 천천히 흐르던 에너지가 염력으로 변해 그의 사지로 뻗어나갔다. 마침내 9레벨 흑주비약의 에너지가 제대로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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