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781화 (781/818)

781화. 탈출

혼탁은 온 힘을 다해 염력 방어벽을 펼쳐 자신의 몸을 덮치는 파멸의 힘을 막아냈다.

하지만 여덟 개나 되는 천지의 불꽃이 융합된 화련의 위력을 버티는 것은 그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쾅!

팔색 화련의 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고, 거대한 산이 가루가 되어 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엄청난 고온에 의해 완전히 녹아내리고 말았다.

화련이 연달아 폭발을 일으키자, 이준은 약로와 약족의 마지막 남은 강자들을 붙잡은 뒤 분홍색 화염 장막 속으로 몸을 숨겼다.

파멸의 힘은 한참동안 대지를 휘젓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거대한 산의 중심에는 깊은 구덩이가 뚫린 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속에는 검은 기체에 뒤덮인 혼탁이 쓰러져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혼탁의 모습에 신농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린 채 이준을 바라봤다. 설마하니 이준이 정말로 7성 투성 고급 수준의 강자를 이렇게 만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가슴에서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에 이준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고 있을 틈조차 없었다.

“공간이 이미 갈라졌어요. 빨리요!”

신농 노인과 약천에게 이화를 되돌려준 이준이 창백한 얼굴로 다급하게 외쳤다. 그는 이미 8색 화련을 시전하기 위해 거의 모든 염력을 쏟아부은 상태였다.

이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사람들은 허공 위에 수 미터의 공간균열이 생겨난 것을 발견했다.

“빨리!”

이준이 저장반지에서 옥병을 꺼내 그 속에 들어있는 약물을 가슴 위에 마구 뿌리며 재촉했다.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거대한 청홍색 날개를 펼쳐 빠르게 공간균열로 날아갔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정말로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저들을 잡아라!”

혼탁이 흐릿해진 눈으로 이준을 노려보며 외쳤다.

쾅! 쾅!

혼탁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허공에 균열이 생겨난 것을 발견한 약족의 강자들이 또다시 미친 듯이 자폭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약족의 핏줄이 완전히 끊기고 말리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약단과 결투를 벌이던 혼경은 이 광경을 보고는 얼굴이 완전히 흙빛이 되어버렸다. 이준이 혼탁을 이 지경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반면 약단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준, 고맙다…….”

그 말과 함께 팔색 화련에 맞먹는 무시무시한 힘이 폭발하며 천지가 무너질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거대한 폭풍이 천지를 휩쓰는 순간, 약계에 남아있던 사람들 중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폭풍의 여파로 인해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저 미친 영감이!”

이준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으려던 혼족의 강자들은 새파랗게 질린채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심지어 혼경과 혼탁도 이 순간만큼은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폭풍은 몇 분 동안 지속되다 서서히 사라졌다. 공간이 일그러질 만큼 강한 파동이 사라지고 나타난 광경은 참혹하기 짝이 없었고, 대지 위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구덩이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혼경과 혼탁은 멍한 표정으로 사라져가는 공간 통로를 바라봤다.

“이런 젠장!”

분노한 혼경이 욕설을 내뱉으며 약단이 자폭한 곳을 향해 손을 강하게 뻗자, 자폭 지점에서 미세한 빛이 자석에 이끌리듯 혼경의 손 위로 올라왔다. 그것은 바로 이준의 손에 있던 태령황제의 옥과 똑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팔색 화련에 당한 혼탁이 날아와 핏기 한점 없이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결코 살려두어서는 안 되는 놈이다. 5성 투성인데 벌써 이 정도 실력이라니……. 저놈이 더 성장한다면 이현 이상으로 껄끄러운 존재가 될 것이 분명해.”

“저들을 그냥 나가게 둬선 안 됩니다. 더 이상 고족을 경계할 필요는 없지만 저 녀석 손에 태령황제의 옥이 있습니다.”

혼허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선 약족의 일을 먼저 해결하지. 우리의 임무는 약족의 피를 수집하는 것이다. 혼석과 혼도가 밖을 지키고 있으니 그들에게 반드시 이준을 죽이라고 전하거라.”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혼탁이 이준이 사라진 검은 통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말게. 두 사람이 밖을 지키고 있는 이상 결코 무사히 빠져나갈 수는 없을 테니까.”

혼경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대지를 바라보며 섬뜩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의 계획만 성공하면 족장님은 수천 년 만에 나온 첫 번째 투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투기대륙 전체가 우리 혼족의 것이 되겠지…….”

“흥, 이현 놈의 방해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저희 계획을 완성할 수 있었을텐데……. 정말 분할 따름입니다.”

혼허자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됐다. 이족을 없앤 것만으로도 잘한 일이다. 이후에 놈들이 고족과 손이라도 잡았다면 더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이현’이라는 이름을 꺼낸 것만으로도 그때의 참혹한 전투가 떠올랐는지 혼경의 눈이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낸 혼탁이 연금비약을 입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자, 이제 족장님을 위해 피의 힘을 모아보지.”

* * *

신농산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공간균열이 생겨나더니 지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이 줄줄이 산 위로 떨어졌다. 단단한 대지에 발이 닿고 나서야 그들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느냐?”

약로가 식은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와 이준의 실력으로도 혼족의 공간 봉쇄를 뚫고 빠져나온 것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괜찮습니다.”

이준이 분홍색 화염이 피어오르더니 손으로 상처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처부위에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상처부위로 파고들었던 검은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준은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 한숨을 내쉬며 연금비약을 집어삼킨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천천히 시선을 돌리던 그의 얼굴이 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푸른 들판 위에는 시체가 가득했고, 들판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준을 따라 약계를 빠져나온 약족의 청년들은 슬픔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제는 멸망해버린 자신의 고향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궜다.

십여 명의 생존자들 중 그나마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약천과 약영연이었다.

“이준 선생님. 이 은혜는 반드시 저 약천의 목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약천이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자, 곁에 있던 약영연 역시 말없이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약족의 선배님들이 아니었다면 저도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손을 저으며 말했다. 하루아침에 일족을 잃어버린 그들의 심경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미 몰락해버린 이족의 후예인 그이기에 그들의 마음이 더욱 절절하게 와닿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약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에 중주에서 온 수많은 종파 장로들과 종주가 모두 혼족의 손에 죽었으니, 이 일이 세상에 퍼진다면 누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힘으로 혼족에 대항해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이죠.”

이준이 깊은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결국 투기 대륙에서 혼족을 상대할 세력은 고족 밖에 없습니다. 혼족을 이기려면 반드시 그들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그리고 염족과 뇌족 역시 이 일을 알게 된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눈앞에서 목도한 혼족의 힘은 이준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어 있었다. 만일 혼족 놈들이 염족과 뇌족을 멸족시키려 마음을 먹는다면 그들 역시 약족과 같은 운명에 처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는 천부연맹이라고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스승님. 먼저 연맹으로 돌아가 방비를 단단히 해주십시오.”

약로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이준 곁에 있어봤자 큰 도움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농산은 안전하지 않으니 우선 자네를 따라 천부연맹으로 가겠네. 연금탑의 그 요괴도 그곳에 있다고 들었네. 오랜만에 얼굴 좀 봐야겠어.”

신농 노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약족이 사라진 마당에 신농산에 남아있어봤자 자신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준의 입장에서도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6성 투성 강자이자 투기대륙 최고 수준의 연금술을 가지고 있는 신농 노인이 함께 한다면 천부연맹 역시 더욱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약천님과 약영연님은 저와 함께 고족으로 갑시다. 당신들이 직접 말을 한다면 고족의 장로들도 조금 더 믿어주실 겁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우선 천부연맹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이준이 약천과 약영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준 선생님의 분부대로 모두 따르겠습니다.”

이준의 제안에 약천과 약영연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출발합시다.”

그때, 고계로 출발하려던 이준의 예민한 영혼 탐지 능력에 예사롭지 않은 기운 하나가 포착됐다.

이준의 시선이 향한 곳은 멀리 떨어진 산의 정상으로, 그곳에서는 새빨간 칼을 든 사내 하나가 나무에 기댄 채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들켰네.”

이준의 시선을 느낀 그는 저승에서 올라온 악마처럼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혼족 사람이다.”

산봉우리 위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낯빛이 순간 크게 일그러졌다. 설마 약계 밖에도 혼족 강자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을 줄이야…….

“혼석이다. 혼족의 4마성 중 한 사람으로 혼경, 혼탁과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자야.”

사내의 기운을 느낀 신농 노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약족을 없애기 위해 혼족의 최강자들이 모두 나선 것인가…….”

“하하, 재미있군. 정말로 허무대인이 설치한 공간봉인을 뚫고 나오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멀리서 이준을 지켜보고 있던 사내가 야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네가 혼탁을 쓰러뜨린 이준인가? 역시 이족을 완전히 없애버리길 잘했군.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 너 같은 녀석들이 계속 나타나 우릴 방해했을 테니까.”

“스승님. 제가 저 사람을 따돌리고 있을 테니 먼저 가세요.”

이준이 이를 악문 채 약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이준의 말에 약로는 놀란 표정으로 이준을 쳐다봤다. 지금 이준이 혼자서 저 자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저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떠나 기운을 숨기세요. 전 저 자를 막고 있다가 바로 고계로 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옥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옥병 속에는 강한 에너지가 수정처럼 맺혀있는 연금비약이 가득 들어있었다.

“9레벨 흑주비약……!”

그제야 딱딱하게 굳어있던 약로의 표정에도 조금 여유가 돌아왔다. 하지만 흑주비약이 있다고 해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9레벨 흑주비약은 흡수를 도와줄 연금비약이 따로 필요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그런 연금비약을 만들 시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걱정되어도 약로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연맹으로 돌아간다면 살 수 있을 것이고, 이곳에 남는다면 이준에게 짐이 되어 결국 모두 혼족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고 말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