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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79화 (779/818)

779화. 식영(食靈)

“끌끌. 영혼의 조각 따위가 감히 나에게 대항해?”

허무의 불꽃이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손을 움직이자, 거대한 손가락이 끊임없이 나타나 약솥을 강타했다.

구웅, 구우웅!!

비처럼 쏟아지는 공격에 결국 약제의 약솥에 빠른 속도로 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든 염력을 대진에 쏟아 부어라!”

약단이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자신의 염력을 남김없이 대진 속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약솥이 다시 찬란한 빛을 발하며 허무의 불꽃과 충돌을 일으켰다.

이에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 간다고 느낀 혼허자는 황급히 허무의 불꽃 뒤로 몸을 숨겼다.

“하하, 이것이 약족의 힘인가? 아주 재미있구나!”

하지만 허무의 불꽃은 당황하기는커녕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대진 밖에서 검은색 광단이 솟아올라 검은색 화염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허무의 불꽃이 흡수한 검은색 광단 속에서는 날카로운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약족의 백성들이야!”

그 광단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약족의 평범한 백성들이었다.

“투사가 아닌 사람들까지 건드리다니…….”

이 처참한 광경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약계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숫자는 최소한 수십만 명은 될 터인데, 지금 허무의 불꽃은 그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먹을 생각인 것 같았다.

“혼족! 이 악랄한 놈들!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네놈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약단이 독기 어린 얼굴로 발악하듯 소리 질렀다. 하지만 허무의 불꽃은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거대한 약솥을 향해 검은 광단을 날려 보낼 뿐이었다.

쾅!

천 미터에 달하는 검은 광단이 약솥과 맞부딪히는 순간, 약족의 모든 힘이 응축된 약솥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삽시간에 약제의 약솥을 없애버린 검은 광단은 멈추지 않고 대진을 향해 돌진했다.

두웅!

곧이어 대진 전체가 부르르 떨리며 그 안에 가득 채워져 있던 액체 형태의 에너지가 엄청난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 끝이야…….”

약족의 사람들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약족의 모든 강자들이 힘을 모아 만든 대진이 허무의 불꽃 하나를 당해낼 수 없단 말인가.

그때, 대진 중앙에 서있던 약제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제 정말 마지막 방법 밖에 남지 않았구나.”

말을 마친 약제의 영혼은 무언가 결심한 듯 일말의 지체도 없이 허무의 불꽃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펑!

묵직한 소리가 고막을 때리며 허무의 불꽃의 입에서 분노에 찬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 네 놈이!”

다음 순간, 검은 화염이 맹렬히 폭발을 일으키며 무언가가 깨지는 것 같은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약족 사람들은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혈관 속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시조님!”

우직!

모든 사람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는 가운데, 거대한 대진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대진이 부서지고 있어…….”

약족의 대진이 파멸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에 약계에 있는 사람들의 모든 이들이 감히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위에는 허무의 불꽃의 본체가 마신처럼 우뚝 서 있었다.

허무의 불꽃이 가진 무시무시한 힘을 느낀 이준은 곧바로 북왕을 소환해 약로의 곁에 붙어 섰다.

약제의 영혼이 사라지는 순간, 약로는 자신의 핏속을 흐르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상황이 좋지 않다. 넌 먼저 떠나거라. 천부연맹에는 반드시 네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네 아버지도 구해야하지 않느냐.”

약로가 비장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준은 한참동안 말없이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다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세요. 스승님.”

그때, 허공에 떠있던 약단이 몸을 서서히 일으켜 세웠다. 약제의 영혼이 사라지며 그 역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족장인 자신이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강대한 적에게 맞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약족의 일원들은 들어라. 지금 약족은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우리의 피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다.”

약단의 목소리가 약족 사람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모든 장로는 나를 따르라!”

그의 외침에 산속에서 수많은 약족의 투사들이 분분히 튀어나왔다. 그 중에는 장로들뿐만 아니라 약족의 젊은 연금술사들도 섞여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각오한 듯 매서운 표정으로 하늘 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투기대륙의 8대 세력이자 연금술계의 정점에 선 존재였던 약족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죽여라!”

약단의 염력이 남김없이 하늘 위로 솟구치며 거대한 염력 폭풍으로 변해 허무의 불꽃을 향해 돌진했다.

쉭쉭!

다음 순간, 약단의 염력 폭풍 뒤에서 크고 작은 수천개의 염력 폭풍이 터져 나왔다.

하늘은 삽시간에 형형색색의 염력폭풍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상대는 허무의 불꽃이었다.

약족의 보호대진을 무너뜨리고 약제의 잔류영혼을 없애버린 것으로 보아 허무의 불꽃의 힘은 8성, 어쩌면 9성 투성 수준에 이르러 있을지도 몰랐다.

‘엄청나군. 영족과 석족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린 것도 이해가 가.’

단신으로 약족 전체를 상대하는 허무의 불꽃의 힘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를 더욱 두렵게 만든 것은, 아직 혼족의 족장은 옷자락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허무의 불꽃 혼자서도 8대 세력 중 하나인 약족을 멸망시킬 수 있는데, 천부연맹이 과연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그때, 검은 화염이 격렬하게 뒤흔들리며 천 미터도 넘는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해 사방으로 만식의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쾅쾅!

만식의 힘이 기이한 흡인력을 토해내는 순간, 수만 미터에 달하는 대지가 무너지며 무수한 균열이 바닥을 가로지르며 뻗어나갔다.

쉭!쉭!쉭!

약족의 염력폭풍이 빨려 들어가자 새까만 소용돌이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허무대인의 몸을 뒤로 밀어냈다.

‘역시 쉽지 않구나. 약제의 영혼을 처지하면서 허무대인도 부상을 입고 말았어.’

혼허자가 허무대인의 몸을 훑어보며 생각했다.

허무대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화염은 처음보다 눈에 띄게 흐릿해져 있었다. 영혼의 파편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투제의 영혼은 과연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영족과 석족에 비하면 실력이 괜찮은 녀석들이군.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너희들의 운명은 정해져있다.”

허무의 불꽃이 차가운 표정으로 읊조리며 알처럼 생긴 둥근 물체를 떨어뜨리자, 검은 화염 주위를 맴돌고 있던 새빨간 빛이 구름을 뚫고 알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펑! 펑!

그 순간 하늘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던 알들이 미친 듯이 폭발을 일으키며 그안에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는 검은색 그림자가 튀어나와 대지를 향해 돌진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약족의 강자들은 황급히 염력을 폭발시키려 했지만, 그들이 염력을 끌어올리기도 전에 눈앞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돌연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보니 그들의 가슴에는 이미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스, 스승님 저게 대체 뭐죠?”

“저건 사람의 피와 살, 심지어 염력까지 모조리 집어삼키는 녀석들이다…….”

약로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그의 발밑에는 검은 그림자에서 검은색 핏덩어리로 변한 살점 같은 것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순식간에 산맥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사방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고통에 젖은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고, 대지가 온통 피로 물들었다.

그때, 약단이 바닥에 널브러진 살점 중 하나를 집어들더니 굳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식영(食靈)……! 어떻게 멸종된 식영족이…….”

약단의 목소리를 들은 혼허자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과연, 약족의 족장다운 눈썰미구나. 왜 우리 혼족이 네놈들을 없애려는지 이제 알겠는가?”

“어쩐지……. 수많은 세력들이 몰락할 때 혼족 너희만이 이토록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약단은 뭔가 무서운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중얼거리더니 약족의 젊은 연금술사들 곁으로 날아가 그들의 손을 꼭 붙잡았다.

“자폭으로 공간을 파괴하겠다. 내가 죽더라도 약족을 위해 꼭 피의 힘을 보존하거라!”

울부짖는 듯한 약단의 고함소리에 약족 강자들은 마음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굳혔다.

그와 동시에 이준 역시 약로의 팔을 붙잡았다.

하늘 위. 수많은 약족 강자들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폭이라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혼허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렇게 많은 강자들이 동시에 자폭한다면 제 아무리 강력한 공간 결계를 펼쳐 놓았다 하더라도 버텨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일단 공간이 무너지면 허무 대인이 아니라 그 누구든 수천에 달하는 약족의 강자들이 달아나는 것을 모두 붙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허. 우리 혼족을 피해 빠져나가는 게 그리 쉬울 것 같으냐!”

혼허자가 신속하게 검은색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찢어버리자, 검은 화염 속에서 거대한 공간 통로가 생겨나더니 시커먼 그림자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허허, 약단. 약족의 힘이 이 지경까지 쇠퇴했을 줄은 몰랐군.”

선두에 선 두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약단의 표정이 흙빛으로 변했다.

“혼경, 혼탁……. 혼족을 대표하는 4대 투성 강자 중 둘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우리 약족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아는 모양이구나.”

약단의 말에 앞에 서있던 노인이 씨익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약족의 연금술은 확실히 쓸모가 있지. 약단, 우리 혼족의 일원이 된다면 약족의 피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닥쳐라! 약족의 마지막 한명이 남을 때까지 너희 혼족 놈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약단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약족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수들에게 무릎을 꿇고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좋다. 그렇다면 모두 죽이는 수밖에.”

노인은 약단의 대답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음산하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한 명도 남기지 말아라.”

“예!”

노인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의 뒤에 서있던 수많은 혼전 강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돌진했다.

“하하하하! 더러운 혼족 놈들! 죽어라!”

바로 그때, 하늘 위에서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와 전진하던 혼족 강자들을 덮쳤다.

펑! 펑! 펑!

첫 번째 폭발을 신호로 연달아 폭음이 울려 퍼지고, 수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며 굳게 봉쇄되어 있던 공간에도 균열이 생겨났다.

“멈추지 마라! 목숨을 바쳐 약족의 핏줄을 지켜라!”

약단이 결연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명령을 내렸다.

족장의 외침에 약족 강자들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폭을 선택했다.

“허.”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혼경이 콧방귀를 뀌며 손을 휘두르자, 하늘을 메우고 있던 검은 먹구름이 거대한 손이 되어 자폭지점에 있던 약족의 강자들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덕분에 수십에 달하는 약족의 강자들이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애꿎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만화 장로!”

약단이 비통한 목소리로 만화 장로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만화 장로는 약단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돌진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염력을 한줌도 남김없이 폭발시켰다. 뒤에 있던 약족의 다른 장로들 역시 만화의 뒤를 따라가며 염력을 터뜨렸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그 순간, 혼허자가 만화 장로를 비롯한 약족의 장로들 앞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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