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6화. 에너지 쟁탈전
한편, 약천의 옆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을 한 약영연이 서 있었다.
“약성지. 그때 고족에서 봤을 땐 저 정도는 아니었지?”
약영연이 이준에게 약전의 초대장을 건네준 약성지를 향해 물었다.
“그 때는 평범한 투존이었어. 영혼의 힘이 제법 강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고.”
이준을 처음 봤을 때, 그의 실력은 약성지와 비슷했다. 그때는 연금술을 겨뤘어도 막상막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몇 년 새에 두 사람의 격차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이준은 이미 만화 장로님과 같은 하늘단계 최고급 수준이야.”
약영연의 영혼은 태생적으로 강했다. 족장도 약영연을 보며 전설의 ‘황제단계’ 영혼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녀 역시 자신의 영혼의 힘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준을 보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하늘에 떠있던 수백 종의 약재가 모두 화염 약솥 속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이준은 자리에 앉았다.
뜨거운 화염에 휩싸인 화염 약솥은 마치 거대한 화염구체처럼 보였다.
이 후로 몇 분마다 작은 불덩어리가 피어나 약솥 주변을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불덩이들은 모두 완벽하게 제련된 약재들이었다.
한편, 이준과 멀리 떨어져있던 세 사람도 쉬지 않고 약재를 제련하고 있었다. 불꽃의 정령이 없어 이준보다 효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대륙 최고의 연금술사이니만큼 약재 제련에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연금술사들은 물 흐르듯 움직이는 네 사람의 손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 * *
하루 정도가 지나자, 이준의 분홍색 약솥 주위에 빼곡하게 불덩어리가 생겨났다. 이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그 불덩어리들을 하나하나 약솥 안으로 집어넣었다. 곧이어 엄청난 에너지 파동이 미친 듯이 솟아나며 약솥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혼허자 역시 눈을 뜨며 제련을 마친 약재를 화염 약솥에 집어넣었다.
그가 제련된 약재를 약솥에 투여하자 만식의 힘이 주위의 에너지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약솥 안으로 빨아들였다.
순간 주위에 있던 연금술사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연금비약 제련에서 천지에너지를 흡수시키는 것은 자칫하면 귀중한 약재들을 모두 날려버릴지도 모르는 매우 위험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지의 에너지를 융합시키는데 성공만 한다면 그 보상은 어마어마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약족의 장로들과 일부 연금종사, 그리고 약단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천지의 힘을 모은다는 건……. 9레벨 흑주비약을 만들 생각이군.’
그때, 만화 장로 역시 자신의 약솥 주위를 떠다니는 천지의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하하, 두 사람 모두 담이 크군. 그럼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뒤이어 신농 노인 역시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휘둘러 천지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약솥 안으로 집어넣었다.
앞선 세 사람이 흑주비약 제련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자, 이준의 분홍색 화염 주위에서도 돌연 천지의 에너지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럼 저도 함께 해야겠군요.”
‘이럴 수가, 네 사람 모두 흑주비약 제련에 도전하다니…….’
수석에 앉아있던 약단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다른 사람들의 실력은 모르지만 만화 장로의 실력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 흑주비약 제련에 성공할 확률은 고작 2할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흑주비약은 엄청난 양의 천지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약계는 외부세계보다 수십 배는 짙은 천지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흑주비약을 동시에 네 개나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주위에 있는 모든 천지 에너지를 흡수해도 흑주비약 하나를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약단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 네 사람이 모두 제련에 성공할 것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네 사람 모두 실패하고 무승부로 끝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약로의 표정 역시 그리 좋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 이준이 연금탑 대장로에게서 9레벨 흑주비약 조합표를 받기는 했지만, 그것을 벌써 꺼내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륙에서 9레벨 보물비약을 제련할 수 있는 연금술사들은 극히 드물지만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9레벨 흑주비약은 최소 백 년 가까이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을 정도로 제련하기 어려운 비약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약단이나 약로만큼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니 그저 눈을 빛내며 눈앞의 네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네 개의 거대한 폭풍이 넓은 하늘을 휘저었다. 그 폭풍의 끝은 제각각 화염 약솥과 연결되어 있었고, 반대쪽 끝부분에서는 필사적으로 천지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다.
광장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체내 염력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빨려나가는 것을 느끼곤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이상 현상은 자그마치 3일이나 지속되었다. 3일 동안 화염 약솥으로 얼마나 많은 천지에너지가 흡수됐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다만 공기 중에 떠다니던 에너지가 희미해지고 광장 주변에 있던 약재들이 모두 메말라 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9레벨 흑주비약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투성 강자도 놀랄 정도로 방대했다.
고족에 따르면, 9레벨 흑주비약이 출몰한 곳 주위의 백 킬로미터 이상이 전부 폐허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흡수한 연금비약은 영기를 가지게 되지만, 소연금탑의 선조처럼 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소연금탑의 선조는 연금비약을 만든 주인의 영혼 일부가 융합된 데다가 그 이후로 수천 년을 살아오며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투기 대륙 전체에서 그런 존재는 소연금탑의 선조 하나뿐 일지도 몰랐다.
약재들이 메말라가자, 약족의 장로들이 황급히 날아가 진귀한 약재들이 에너지를 흡수당하지 않도록 약재 밭에 봉인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 * *
3일째 정오. 바람소리가 끊이지 않던 하늘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을 때, 거대한 에너지폭풍은 이미 사라져있었고 커다란 화염 약솥 네 개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사방 수 백 킬로미터 내의 천지에너지가 거의 다 사라졌군.’
약단은 말없이 손을 휘저었다. 공기 속에 함유된 천지 에너지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약산에 있는 에너지가 원래의 모습으로 복귀하는 데만 해도 족히 수개월은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엄청난 양의 천지 에너지를 흡수했음에도 아직 흑주비약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이 이 정도 범위 내에 있는 천지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늘단계 최고급 수준의 영혼을 가진 덕분이었다.
영혼의 힘이 더욱 발전해 황제 단계가 되면 영혼의 힘을 이용해 중주의 절반에 달하는 범위내의 천지 에너지를 조종할 수 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하늘 단계 최고급 수준만 되어도 수백 킬로미터 범위에 달하는 에너지를 조종할 수 있었으니, 이 정도만 해도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사람은 굳은 얼굴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신의 연금비약을 바라봤다.
“이번엔 아무도 성공하지 못할 것 같군.”
만화 장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허, 그건 모르지.”
혼허자가 픽 웃으며 말했다. 말을 마친 혼허자가 손을 높이 들어 자신의 약솥을 내리치자, 검은색 화염기둥 세 개가 솟구쳐 올라 이준을 비롯한 세 사람의 약솥에 있는 에너지를 만식의 힘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혼허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세 사람의 낯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연금술 대결 중에 다른 사람의 약솥에 손을 대다니,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생명의 불꽃과 죽음의 불꽃이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저항했지만, 허무의 불꽃이 빠르게 회전하며 두 개의 불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생명의 불꽃은 본래 전투에 적합한 화염이 아니었고, 죽음의 불꽃은 본래 열 번째에 해당하는 불꽃이니 두 번째인 허무의 불꽃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하. 내 불꽃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가? 꿈 깨거라!”
하지만 혼허자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이준 때문이었다.
이준의 약솥 위에서는 분홍색 화염이 검은 화염을 감싸며 만식의 힘을 정화시키고 있었다.
허무의 불꽃에게 만식의 힘이 있듯, 정화의 불꽃에게는 정화의 힘이 있었다. 두 힘은 본래 우열을 가리지 어려웠으나, 불꽃의 정령이 사용하는 정화의 힘이 고작 새끼 불꽃의 만식의 힘을 이겨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선물 감사합니다. 이 속에 있는 에너지는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죠.”
이준은 씩 웃으며 순수 에너지로 정화된 화염을 모조리 자신의 약솥 안으로 옮겨 닮았다.
“이놈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혼허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분노한 혼허자는 이준을 노려보다가 신농과 만화에게서 빼앗은 에너지를 자신의 약솥으로 이동시켰다. 두 사람이 모은 에너지를 흡수하자, 혼허자의 약솥 안에 있던 흑주비약이 점점 모양을 갖춰갔다.
“거의 다 됐어…….”
혼허자는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분홍색 화염으로 만들어진 아기 하나가 번개처럼 그의 약솥 안에 손을 쑥 집어넣어 아직 완성되지 않은 흑주비약을 낚아채 달아났다.
“이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혼허자의 목구멍에서 당혹감과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황은 극적으로 치달았다. 이준 역시 혼허자 못지않게 소애의 행동에 놀란 상태였다. 이건 소애 스스로 한 행동이지, 이준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보던 약단과 약족 장로들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혼허자는 그저 에너지를 빼앗으려 한 건데, 소애는 연금비약을 그대로 가져와 버렸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이었다.
“잘 됐네.”
혼허자에게 분노해 있던 약족 장로들은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후련함을 느꼈다.
약단 역시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니까.”
약로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역시 소애의 행동이 이준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준 앞에 나타난 소애가 포동포동한 얼굴로 헤헤, 하고 웃음을 지었다. 소애의 두 손에는 자신의 몸보다 더 큰 광단이 들려있었다. 그 속에는 혼허자가 제련하던 연금비약이 들어있었다.
“이준. 오늘 널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혼허자가 미친 사람마냥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다. 온갖 진귀한 약재를 사용해 만든 연금비약을 완성조차 못해보고 소애에게 뺏겼으니, 그 분노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검은 화염으로 만들어진 용이 혼허자의 약솥에서 튀어나와 만식의 힘을 뿜어내며 이준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혼허자! 그렇게 에너지가 필요한가? 그럼 내가 주겠다!”
그때, 녹색 화염 안에서 거대한 나무가 순식간에 자라나 검은 화룡을 휘감기 시작했다.
“신농? 네가 감히!”
검은 화룡이 단단히 묶여버린 것을 발견한 혼허자가 소리쳤다.
“내가 능력만 됐어도 스승을 배신하고 연금술사의 명예에 먹칠을 한 자네를 진작에 이 세상에서 없애버렸을 것이네. 게다가 연금술 대결의 규칙을 먼저 깬 것은 자네가 아니던가?”
“네가 날? 푸하하! 건방진 놈! 죽을 날이 다 됐나보군.”
검은 화룡이 녹색 화염을 향해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자, 만식의 힘이 녹색 화염을 전부 집어삼켰다.
우웅!
검은 화룡이 녹색 화염을 먹어치우고 있을 때, 갑자기 검은색 소용돌이가 나타나 혼허자의 화룡을 강하게 내리쳤다.
“만화! 혼족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게 좋을 텐데!”
연이은 방해에 혼허자의 표정이 매섭게 변했다.
“흥, 웃기는 소리! 자네가 먼저 규칙을 어겨놓고 불리해지니 혼족을 들먹거리나?”
“허, 좋다.”
분을 참지 못한 혼허자가 손을 가늘게 떨며 외쳤다.
“네놈들의 실력으로 날 막을 수 있나 한번 보자!”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검은 화룡이 죽음의 불꽃으로 만들어진 소용돌이를 강하게 짓눌렀다.
신농 노인과 만화 장로가 나서는 것을 본 이준은 그간 혼족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원한을 샀는지를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