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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74화 (774/818)

774화. 약전 시작

만기 장로 옆에 있던 약족 장로들은 이 상황이 어색했다. 약선이 계속 약족에 있었다면 약선은 그들을 보는 순간 고개를 숙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은 천부연맹의 맹주인 약선이 아니라 그들이었다.

“약전의 예선전인데, 크게 볼 것은 없다. 약족 젊은이들이 나와 실력을 보이는 정도지. 진짜 대결은 본선부터라고 할 수 있지.”

약로가 거대한 석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지막 시합에서 이기면 투기대륙 제일의 연금술사라는 명예도 바로 네 것이 된다.”

“1등이든 2등이든 저에겐 중요치 않아요. 전 스승님에게 배운 연금술로 저들이 스승님을 버린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 깨닫게 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현재 이준의 연금술은 약로를 거의 뛰어넘었지만 이 모든 것은 약로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가 우승을 한다면, 약로가 약족의 비석에 부모의 이름을 남기는 것에 대해 누구도 왈가왈부 할 수 없었다.

“녀석…….”

약로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약전에서 우승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참가하는 자들은 연금탑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연금술을 가지고 있거든.”

스승의 말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참가하는 연금술사들이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가졌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강할수록 투지가 더욱 불타올랐다.

* * *

이준과 약로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구름 위로 올라와 광장을 채웠다.

묵직한 종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고, 수많은 약족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예를 갖추었다.

“족장님을 모십니다.”

곧이어 산봉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구름이 양옆으로 갈라지면서 한 노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노인은 백발에 새하얀 의복을 입고 있었다. 인자한 모습의 노인을 보자 이준은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에게서 만화 장로보다 훨씬 강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족의 족장, 약단이다. 아마 지금쯤 7성 투성이 되었겠구나.”

노인을 바라보는 약로의 눈빛에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어쨌든 약로에게도 약족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족장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복잡해진 모양이었다.

“7성 투성이라니…….”

“허허, 손님들이 오셨군요.”

약단의 주름진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퍼졌다. 광장을 빼곡하게 채운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올리던 약단과 약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눈빛에서도 약로 못지 않게 복잡한 심경이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약단 족장님.”

한참을 말없이 약단을 바라보던 약로가 먼저 예를 갖추었다.

“약선……. 우리가 널 몰라봤구나.”

약단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허허, 약단 영감. 참으로 오랜만이구려.”

약단이 자리에 앉자, 고상함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더니 짙은 약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곧이어 먼 하늘에서 녹색 빛이 반짝이더니 연녹색 화염 약솥이 허공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냈다. 화염 약솥에는 평범한 베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앉아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약초로 엮은 듯한 지팡이가 들려있었다. 지팡이 위에 걸린 수많은 옥병이 좌우로 흔들리며 쨍, 하고 맑은 소리를 냈다.

“신농 어르신……. 저 분이 바깥 세상에 나올 줄이야.”

약로의 한마디에 이준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갑자기 나타난 노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신농은 약로보다도 까마득히 윗대의 선배로, 오래 전 모습을 감춘 것으로 알려진 전설의 연금술사였다.

‘과연……. 연금대회보다 더 대단하다더니…….’

이준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저런 사람들과 연금술을 겨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허허. 영감, 아직 살아있었나!”

약단은 크게 놀란 기색 없이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한편, 이준을 발견한 신농 역시 놀란 듯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참 동안 얼굴을 안 비친 사이에 중주에서 또 새로운 인재가 나왔구려. 저 나이에 하늘단계 최상급인 영혼이라……놀랍군.”

“신농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이준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신농이 돌의자에 앉으려는 찰나, 저 멀리에서 시커먼 구름이 빠르게 솟아나더니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의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혼족의 혼허자입니다. 초대장 없이 왔지만 너무 언짢게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검은 옷의 남자가 빙긋 웃으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말투로 말했다.

“혼허자…….”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약로의 눈빛이 빠르게 차가워졌다.

“혼허자……. 스승님, 아는 사람입니까?”

이준이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또 혼족 사람이라니, 저 녀석들은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내가 말해줬던 소연금탑 이야기를 기억하느냐? 소연금탑에 잠복해 있다가 자신의 사부를 해치고 도망갔다던 놈 말이다.”

약로의 목소리에서 경멸감이 느껴졌다.

“그 사람이 바로 혼허자입니까?”

“그렇다. 혼멸생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높은 지위를 가진 놈이다. 저 놈이 약전까지 올 줄이야…….”

약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 짐작으로는 혼전이 수많은 영혼을 수집하는 것도 저 놈의 계략일 것이다.”

이어지는 약로의 말에 이준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방심해선 안 된다. 혼허자는 연금술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연금탑 탑주의 제자가 될 수 있었지. 게다가 오랜 기간의 수련으로 그의 연금술은 이미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 * *

“어떻게 온 것인가? 우린 혼족을 초대하지 않았는데…….”

“허, 혼전놈들 손에 죽은 연금술사가 몇인데 감히 이곳에 나타난 것이냐!”

“저런 놈을 약전에 참가시킬 수는 없네!”

약족의 장로들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혼허자를 가리키며 외쳤다.

약단과 만화 역시 초대하지도 않은 혼허자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 했는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최근에 영족과 석족이 멸망하면서 약족, 뇌족, 염족 3대 세력은 혼족과 고족에 대항하기 위한 연맹까지 만든 상태였으니, 혼허자의 출현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허허. 약족 분들이 절 그리 반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멀리서 온 손님을 이렇게 대하는 것이 약족의 예법입니까?”

혼허자가 뒷짐을 진 채 약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허자. 우린 자네를 초대하지 않았다네. 게다가 혼족과 고족은 나머지 고대 세력들과 왕래도 없는데, 이런 행동이 혼족에 대한 우리의 의심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약만기가 잔뜩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캥기는게 없으니 스스로 이런 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 아니겠습니까?”

혼허자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게다가 약전은 투기대륙에서 최고의 연금술사들만 모이는 대회가 아닙니까, 저도 연금술이라면 나름대로 자신이 있으니 한번 와보았습니다. 설마 연금술로는 투기대륙 제일이라는 약족이 약전의 우승자 자리를 뺏길까 두려워 저를 내쫓으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건방지구나!”

혼허자의 말에 약족 장로들이 대노하며 소리쳤다.

그때, 약단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한번 실력을 보여주게. 우리 약족의 규칙만 준수한다면 약족의 손님이지. 하지만 규칙을 어긴다면……. 자네가 아무리 혼족의 수석 연금술사라 해도 당장 이 자리에 묻어버릴 수도 있다네.”

순간 약단의 얼굴에서 매서운 살기가 느껴졌다.

“족장님……. 아무리 그래도…….”

만화가 주변에 있던 약족의 장로들을 대표해 족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약전은 우리 약족에서 가장 성대한 행사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유 없이 내쫓을 순 없지. 혼족을 경계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저놈이 어찌 행패를 부릴 수 있겠는가?”

약단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걱정 말게. 허튼 행동을 보이는 순간 내가 직접 놈을 죽이겠네.”

약단의 말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아량이 넓으십니다.”

혼허자가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석대 위로 몸을 날렸다. 그의 자리는 마침 이준, 약로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약선. 훌륭한 제자를 뒀구나. 우리 혼계에서도 네 제자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더군.”

혼허자가 약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스승을 배신하고 가문을 욕보인 혼허자만큼 유명하겠는가?”

“하하, 웃기는 소리군. 난 처음부터 그 영감을 스승이라 생각한 적이 없네. 그 자가 내 재능을 알아보고 명성을 날리고 싶어 내가 자신의 제자라고 떠들고 다닌 것 뿐이야.”

혼허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게다가 약선, 자네는 나에게 감사해야할 텐데. 내가 자네의 실력을 몰라봤으면 어디 제자가 구하러 올 때까지 살아나 있었겠는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북왕이 번개처럼 튀어나가 혼허자를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허!”

이준이 이렇게 갑자기 공격할 줄은 생각도 못한 혼허자는 놀란 듯 황급히 몸을 날려 저 멀리 달아났다.

쾅!

혼허자를 내쫓은 북왕이 냉담한 눈빛으로 그를 한 번 흘겨보고는 말없이 이준 의 곁으로 돌아와 섰다.

“한번만 더 스승님을 모욕하면 죽여 버리겠다.”

“하하! 재밌구나.”

살기등등한 이준의 한마디에 혼허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순간, 혼허자의 몸에서 무서운 에너지 파동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혼허자. 약전에서 소동을 일으킨다면 즉각 약계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약단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허허. 약단 족장님이 말씀하시는데 명을 받들어야지요.”

혼허자의 입꼬리가 묘하게 뒤틀렸다. 이준이 공격했을 땐 막지 않더니 자신이 반격을 하려하니 개입한다. 이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약족……. 이렇게 나오겠다 이건가.’

혼허자가 말없이 자리를 잡고 앉자, 주위를 둘러보던 약단이 이준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시간이 다 됐으니 약전을 시작하겠소.”

* * *

연금술의 고향으로 불리는 약족은 대륙에서 가장 많은 연금술사를 보유한 세력이었다.

약족의 타고난 혈통 때문일까, 약족의 후손들은 연금술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중주에 있는 연금대사들도 약족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남들보다 연금술을 익히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일 뿐, 모든 연금술사의 정점에 선 존재인 9레벨 연금술사가 되면 약족의 혈통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연금술사는 1레벨부터 9레벨까지 총 아홉 단계로 나뉘며, 9레벨 연금종사는 또 다시 보물종사, 흑주종사, 황금종사로 나뉘었다.

9레벨 보물비약을 제련했었던 이준은 보물종사에 속했다.

흑주종사는 투기 대륙 전체에서도 한손에 꼽을 정도의 숫자 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황금종사는 무려 천 년 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황금종사 다음은 전설로 불리는 ‘황제종사’였지만, 역사상 단 한명도 이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 * *

광장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약전의 예선전이 열리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약족의 젊은 연금술사들은 일반 연금술사들이 엄두도 못 낼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저 석대 위에 올라가있는 약족의 젊은 연금술사들만해도 최소 6레벨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이준에게 6레벨 연금술사는 어린아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예선전에 참가한 이들은 전혀 그의 시선을 끌 수 없었다.

약전의 예선전은 수일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투기 대륙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연금술사들이 모인 대회답게 수일이 지나도 석대 위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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