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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73화 (773/818)

773화. 만화 장로

“이준. 이번 일은 만기 장로도 책임이 있겠지만, 자네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았는가. 각자 한 발짝씩 물러서는 것이 어떻겠는가?”

한 장로가 말했다. 약만기 성격에 사과를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이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이런 도발을 그냥 눈감고 넘어간 적이 없었다. 상대가 약족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비열하고 오만한 놈들은 주먹으로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싫다면 제가 움직여야지요.”

이준의 차가운 한마디에 약만기와 장로들의 낯빛이 바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준이 맹수처럼 약만기를 향해 돌진했다.

“어디서 행패냐!”

약족 장로들이 고함을 치는 것과 동시에 이준에 몸에서 분홍색 화염이 피어올랐다. 이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파멸의 힘을 느낀 장로들이 새파랗게 질린 채 소리쳤다.

“정화의 불꽃?!”

소애가 장로들을 상대하는 사이 이준이 귀신처럼 약만기 앞으로 날아가 손가락을 뻗었다.

“멈추어라!”

바로 그때, 호통소리가 하늘 전체에 울려 퍼지더니 산봉우리 위에서 거대한 화염이 폭발하며 새빨간 머리칼을 가진 노인 하나가 날아왔다.

“만화 장로님이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여기저기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6성 투성?’

미친 듯이 좋아하는 약만기의 표정을 보는 순간 이준의 표정이 빠르게 식었다. 하지만 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약만기를 향해 더욱 빠르게 손을 뻗었다.

“내가 겁먹을 것 같으냐!”

약만기 역시 손을 들어 이준을 강하게 내리쳤다.

“성쇠의 주먹!”

이에 이준은 번개처럼 목표를 바꿔 그의 손바닥을 향해 염력을 내뿜었다.

쾅!

그 순간, 약만기의 주먹에서 몰아쳤던 매서운 강풍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손바닥에서부터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널 죽여버리겠다!”

손과 입이 피범벅으로 변한 약만기가 소리쳤다. 악에 받친 그는 빛처럼 빠르게 이준 앞으로 날아가 새하얀 가루를 흩뿌렸다.

치이익!

새하얀 가루가 바닥에 닿자, 단단한 석판이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펑!

하지만 어느새 분홍색 화염으로 뒤덮인 손이 독가루 사이에서 튀어나와 약만기의 목을 붙잡았다.

“이준!”

붉은 머리칼의 노인이 목에 잔뜩 핏대를 세운 채 소리를 질러댔지만, 이준이 그 말을 들을리 없었다.

분노한 노인은 곧바로 새빨간 염력으로 거대한 창을 만들어 이준을 향해 집어던졌다.

쾅!

그러나 이준이 가볍게 발을 구르자, 거대한 용암기둥이 솟아나 거대한 창을 그대로 녹여버렸다.

창이 사라지기 무섭게 노인의 몸이 잔영을 남기고 사라졌다가 이준의 눈앞에서 나타났다.

노인이 주먹을 날리는 순간,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공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준은 노인을 무시하고 그대로 약만기를 향해 돌진했고, 새까만 그림자 하나가 이준의 곁에서 솟아나 만화 장로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만화 장로와 검은 그림자가 맞부딪히기 무섭게 단단한 광장 바닥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나며 두 개의 그림자가 강하게 밀려났다.

만화 장로가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검은 그림자와 다시 맞붙으려는 찰나, 이준의 손이 약만기의 목덜미를 덥썩 붙잡았다.

“이준, 이곳은 약족의 땅이다!”

이준의 손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약만기를 발견한 노인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저도 문제 일으킬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스승님을 괴롭히는 자들을 가만히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이준이 겁에 질린 약만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준의 말이 떨어지자 소애가 다시 그의 어깨 위로 돌아왔다. 이준의 몸을 휘감고 있는 뜨거운 열기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런 공포스러운 열기를 내뿜는 화염은 난생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소애가 내려오자 이준 옆에 있던 검은색 형체 역시 살짝 자리를 옮겨 노인의 앞길을 막아섰다. 이곳에서 6성 투성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북왕 밖에 없었다.

만화 장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의 앞을 막아선 북왕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조금 전 충돌에서 북왕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몰락한 이족에서 어린 나이에 이런 실력을 가진 녀석이 나오다니…….’

만화는 분노를 삭이고 천천히 이준을 훑어보았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중주에서 이 녀석을 이길 자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이준. 오늘은 약족에 큰 행사가 있는 날이다. 약만기가 잘못했다면 우리 약족을 봐서라도 너그러이 용서해주는 것이 어떻겠나?”

갑자기 부드러워진 만화 장로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이준을 쳐다봤다. 6성 투성인 강자가 이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만화 장로!”

약족의 장로들이 참지 못하고 외쳤다. 만화 장로가 나서 이준을 제압하지 않는다면 오늘 이 소란을 본 수많은 강자들이 약족이 어린 놈 하나에게 망신을 당했다고 떠들어대지 않겠는가?

“입 다물게. 다 생각이 있다네!”

다른 장로들이 끼어들자 만화 장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만화 장로만이 이준 옆에 서있는 북왕의 힘을 알고 있었다. 저런 괴물에다가 정화의 불꽃을 손에 쥔 5성 투성 강자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벌였다가는 약족은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몰랐다.

만화 장로의 말에 장로들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족장을 제외하곤 약족 내에서 누구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놀란 것은 이준도 마찬가지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약족 내에서 엄청난 지위를 가지고 있을 법한 강자가 이토록 부드럽게 나오니 줄곧 굳어있던 이준의 얼굴도 약간은 풀어졌다.

“이준. 약족에 온 이유가 약만기 때문은 아니었겠지?”

이준의 얼굴을 본 만화 장로가 다시 물었다.

“스승님?”

이준은 약로의 생각을 듣기 위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도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약로에게로 향했다.

“만화 장로까지 나선 마당에 눈치 없이 이러고만 있을 순 없지.”

약로가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약족의 땅에서 약만기를 죽인다면 천부연맹과 약족과의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 뻔했다. 게다가 만화 장로가 자존심을 버리고 중재에 나선 것만으로도 약족의 입장에서는 이미 상당한 양보를 한 것이었다.

약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만화 장로는 씁쓸하게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약족에서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취급받던 자가 투성이 된 것으로도 모자라 이런 엄청난 제자까지 키워냈다니,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때 조금만 더 신경 썼어도 지금쯤 상황이 완전 바뀌었겠지…….’

만화 장로는 후회스런 마음이 들었다. 지난 날, 약로를 조금만 더 눈여겨봤어도 지금쯤 천부 연맹이라는 든든한 동맹을 얻었을 것이다.

약로의 말에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만기를 흘겨보고는 쓰레기를 버리듯 그를 집어던졌다.

“저와 스승님은 천부연맹 전체를 대표하여 이곳에 왔으며, 스승님은 연맹의 맹주입니다. 그리고 천부연맹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만만히 볼 존재는 아닙니다. 방금 전에 보았듯이, 저는 앞으로도 스승님에 대한 모욕을 천부연맹에 대한 모욕과 동등하게 취급할 것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준이 만화 장로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6성 투성인 약족의 장로 앞에서도 이준의 태도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연급탑 선조와 이신, 이준, 그리고 북왕이 지키고 있는 천부연맹은 약족과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양측의 전력은 최소한 비슷하거나 천부 연맹이 한수 위였다. 사실 이는 약족의 장로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만기 장로는 성질이 고약해 좋은 말을 할 줄 모르네. 이 점은 내가 앞으로 잘 타이르지. 또한 개인적으로 왔든, 연맹을 대표해서 왔든 약족의 손님이니 우리가 잘 모시겠네.”

만화 장로의 한마디에 다른 장로들도 더 이상 불만을 표하지 못했다.

약만기는 얼굴을 붉히며 씩씩 거렸지만, 차마 다른 말을 보태지는 못했다. 만화 장로가 오지 않았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화 장로가 팔을 들어 손짓을 하자, 반짝이는 빛이 그의 손을 떠나 이준의 공격에 바닥에 쓰러졌던 사람들의 입으로 정확하게 들어갔다.

“너희들은 모두 손님에게 무례를 범했으니 십 년간 귀양을 가야 한다. 데려가거라.”

만화 장로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빠르게 나타나 창백해진 얼굴로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우악스럽게 들어 올리더니 자리에서 사라졌다.

“약 맹주, 이준 군. 이 정도 처벌이면 무례를 용서해줄 수 있겠는가?”

만화 장로가 웃으며 말했다.

“만화 장로님의 공정한 판결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군요.”

이준 역시 웃으며 만화 장로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그 역시 천하의 약족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까지 하는데 더 이상 불만을 토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약전에 참관할 계획이라면 나와 함께 산 정상으로 가세. 허허. 이준 군이 연금대회 우승자라는 이야기는 내 익히 들었네. 얼마나 대단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만화 장로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과연 연금술의 고향이라 불리는 약족의 장로인만큼 말투에서부터 자신감이 느껴졌다.

“제 연금술은 스승님이 전수해주신 겁니다. 하지만 투기대륙 최정상에 있는 연금종사들은 어떨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그들과 대화라도 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하. 분명 기회가 있을 것이네. 실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약전에 참가할 수 있지.”

만화 장로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 뒤 곧바로 몸을 돌려 산 정상을 향해 날아갔다.

만화 장로의 뒤를 따르는 약족 장로들을 보며 이준은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말은 정중하게 했지만, 연금술 대결을 통해 실추된 약족의 명예를 되찾고 싶은 속내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스승님, 저희도 대륙에서 최고라는 연금종사들을 구경이라도 해볼까요?”

이준의 말에 약로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동시에 하늘 높이 올라와 약족 장로들이 향한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 * *

약전이 진행되는 약산 정상. 구름 사이로 퍼지는 그윽한 약향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약산 정상에는 수많은 약재들이 바다처럼 넓게 깔려있었으며, 상공에는 거대한 광장이 떠있었다. 광장 모서리에서는 약향이 퍼져 나오는 거대한 약솥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서 쉴 새 없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석대 위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떠들썩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석대 북쪽에는 돌로 만들어진 의자들이 줄을 지어 놓여있었는데, 그 사이로 아름다운 시녀가 나비처럼 날아와 탁상 위에 놓인 찻잔을 채우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쉭!

이준과 약로가 광장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자, 만화 장로가 돌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으며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약선 맹주, 이준 군. 이쪽으로 오게!”

“약선과 이준? 천부연맹에서도 사람이 왔다고?”

“약선은 본래 약족의 일원이었다더군.”

“정말? 허, 그게 사실이라면 약족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겠구만.”

만화 장로의 말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준과 약로를 향했다. 중주의 맹주로 자리 잡은 천부연맹에서 맹주와 그 수제자가 왔다는 말에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준은 몰려든 사람들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천부연맹을 대표해서 왔는데 우릴 이런 곳에 세워놓으면 안 되지.”

두 사람은 웃으며 만기 장로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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