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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71화 (771/818)

771화. 약족, 그리고 약전

한편, 고룡도의 경비는 이전보다 훨씬 삼엄해져 있었다. 상공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주위를 감시하고 있던 호위병들은 이준을 발견하기 무섭게 경계를 풀고 공손히 인사를 올린 뒤 길을 터주었다.

이준 역시 빙긋 웃으며 가볍게 인사를 건넨 뒤 고룡도 안에 위치한 정원 안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이준!”

정원에 있던 채린과 보람은 놀란 토끼눈을 한 채 기쁘게 이준을 맞이했다.

“두 달 사이에 고룡도가 이렇게 변했단 말이야? 아주 능력 있는 용황인데.”

“쳇. 사라졌다하면 몇 달씩 걸리네. 기다리다 못해서 번개의 못으로 사람을 보내려던 참이었어.”

보람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 위풍당당하던 용황의 모습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만 남아있었다.

“또 승급했어?”

이준에게서 변화를 느낀 채린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역시 채린의 예리한 감각은 피할 수 없었다.

“응. 5성 상급이 됐어. 번개의 못에서 우연히 좋은 기회가 있었거든.”

이준은 웃으며 얼버무렸다. 번개의 못에 있는 흑마비뢰는 평범한 5성 강자 정도는 능히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괜한 이야기를 했다가는 욕심에 눈이 먼 일부 용족의 강자들이 그곳에 갔다가 괜한 화를 입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7성 투성에 가까운 실력을 가진 구현금비뢰가 영기까지 지니게 되었는데, 그런 위험한 곳으로 용족의 강자들을 보낼 수는 없었다.

“용족도 이제 안정 궤도에 진입했으니 이제 우린 돌아가야겠어.”

“가는 거야……?”

돌아가겠다는 이준의 말에 보람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혼전과의 전쟁도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창 떠들썩할 텐데 오래 자리를 비우면 안 되지. 아 참, 그리고 정식으로 천부와의 동맹이 결정됐어. 돌아가서 연맹 관계자들에게 통지해줘.”

하지만 보람의 말에 이준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통일이 됐잖아. 괜찮으니까 지금은 용족의 일에 집중해.”

용족과의 연맹은 천부연맹에게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보람의 입장에서는 연맹이 반드시 올바른 결정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내란이 드디어 끝난 지금, 천부연맹과 함께 혼족에 맞선다면 용족에게 있어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됐어. 네가 우리를 두 번이나 구해줬잖아. 이 은혜는 우리 모두 잊지 못할 거야. 네가 어떤 위험에 빠진다 해도 구해줄 테니 걱정 마. 이건 내 독단이 아니라 모두의 의견이야. 용족은 너의 영원한 친구야.”

보람이 이준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이준은 말문이 막힌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하. 그리고 지금 이 말도 내가 한 게 아니라, 장로들이 말한 걸 대신 전달한 것뿐이야.”

보람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이준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천부연맹에게 강한 힘을 가진 동맹이 필요한 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장로님들께 안부 전해 줘. 시간 있으면 또 올게!”

이준이 웃으며 팔을 휘두르자, 그의 손끝을 따라 기다란 공간 균열이 생겨났다.

“필요한 게 있다면 소식 보내. 우린 언제든 최선을 다해 너희를 도울 테니까.”

보람의 말에 이준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채린과 함께 공간 통로 속으로 사라졌다. 이준과 채린이 떠난 자리에는 보람의 쓸쓸한 뒷모습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 * *

다시 돌아온 천부연맹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준이 떠나있는 동안에도 연맹은 날로 번창하고 있었고, 혼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도 한결 같이 겸손한 태도를 유지해 수많은 세력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 동안 혼전과 관련된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던 혼전과의 마찰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혼전의 이러한 비정상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연맹의 고위층은 더욱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런 수모를 겪고 이렇게 쉽게 물러날 혼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밀정을 보내 혼전의 행동을 감시해도 의미 있는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이준이 연맹으로 돌아왔을 때, 아라와 예린은 이미 마수구역에서 돌아온 지 오래였다.

두 사람의 말로는 이준이 떠나고 하늘 봉황족도 곧바로 철수했으며, 지옥이무기족은 보름 동안의 논의 끝에 천부연맹과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천부연맹과 지옥이무기족의 동맹은 중주와 마수구역 전체에 큰 파장을 몰고 왔고, 지옥이무기족이 천부연맹에 가입하면서 하늘 봉황족은 더 이상 그들을 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실력으로 지옥이무기족과 천부 연맹에게 맞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마수계 3대 부족과의 결맹은 중주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자연스레 천부 연맹의 명성은 하늘을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연맹으로 돌아온 이준이 용족과 동맹을 맺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천부 연맹의 사기는 거의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하지만 연맹의 고위층들은 이 소식을 결코 밖으로 퍼져나가게 하지 않았다. 용족의 힘이 언젠가 천부 연맹에게 있어 예상치 못한 비장의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해야 이제 막 통일된 용족에게도 충분한 휴식기간을 줄 수 있었다.

* * *

혼전과의 마찰이 없어지면서 이준은 생활의 여유를 되찾았다.

오랜 수련을 마친 채린은 이솔을 보자마자 와락 껴안고 한참을 떨어질 줄 몰랐다.

또한 이준은 연맹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구현금비뢰의 힘을 연구하는데 힘썼다.

지금 구현금비뢰는 정화의 불꽃에 의해 주먹 크기만 한 번개구슬로 변해있는 상태였고, 새롭게 생겨난 금색 번개구슬은 소애의 오른팔에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준과 소애가 어떤 방법을 써도 번개구슬을 연소시킬 수 없었다. 이준은 결국 포기하고 금색 번개구슬을 일단 소애의 팔 안에 두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 쉬는 시간이 많아진 이준은 혼전의 분전을 찾으라는 약로의 임무를 받아 연맹 강자들과 함께 분전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한 달 동안 그들이 발견한 분전은 모두 텅텅 비어있었다. 분전 안에 보관해뒀던 영혼과 영혼의 근원까지 모두 가져간 것으로 보아 천부연맹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분전들을 과감히 포기한 것 같았다.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이준은 어쩔 수 없이 텅 빈 분전을 파괴한 뒤 연맹으로 돌아왔다.

“혼전이 우리에게 발각된 모든 분전을 버리고 중요한 물건만 챙긴 후 떠났다고 한다. 다만 놈들이 너무 소극적으로 나오니 되려 걱정이 되는구나. 이렇게 순순이 물러날 놈들이 아닌데 말이다.”

약로가 성운계로 돌아온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옥이무기족에게 조사를 요청하기 위해 마수구역으로 사람을 보냈다. 우리보다 수적으로 우세하니 뭔가 발견할 가능성도 높겠지. 분명히 혼전 놈들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우리끼리 추측해봤자 소용없다. 결과를 기다려보자꾸나.”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돌렸다.

“스승님. 약족의 약전(藥典) 날짜가 거의 되었지요?”

약로의 손에 들린 찻잔이 미세하게 떨렸다.

“한 달 후다.”

약로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다. 그는 약족을 떠난 이후 한 번도 돌아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의 이름을 비석 위에 새기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그곳에 돌아가야 했다.

약족의 비석에는 큰 성과를 기여한 사람만이 이름을 남길 수 있었고, 그 비석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모든 약족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약로는 홀로 대륙을 떠돌면서 큰 성과를 일궈냈으니 당연히 비석에 이름을 새길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약족의 사람들은 약로를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으니, 결코 그의 이름을 비석에 새겨주지 않을 것이다.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약로가 찻잔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스승님은 그 일에만 신경 쓰세요. 나머지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준의 목소리는 느리면서도 평온했지만 자신감과 결연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앞에서 빙긋 웃고 있는 이준을 보자 약로는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네 고집을 누가 꺾겠느냐.”

이준은 씩 웃으며 남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륙에서 제일가는 연금술사들이 모여 있는 약족(藥族). 한 번쯤은 그들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 * *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동안 성운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요했다.

지옥 이무기족의 도움으로 혼전에 대한 조사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지만, 그리 만족할 만한 정보를 얻진 못했다.

지옥 이무기족 정찰병들은 혼전의 분전 일부를 찾아냈지만, 수십 배는 엄격해진 경비 탓에 아무런 소득도 얻을 수 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한 쪽은 중주에서 사라지고 말겠지만, 그것이 혼전이 될지 천부연맹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이 도박과도 같은 싸움에 양쪽 모두 어깨가 무거웠다. 이럴 때는 최대한 상황을 지켜보다가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이렇게 무거운 분위기 가운데 약전의 개최일이 다가왔다.

* * *

성운계.

“이번에는 이준만 데리고 가면 되니 다른 분들은 이곳을 지켜주시오. 계속 혼전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대응할 수 있으니.”

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산봉우리 위에 서있던 약로가 연맹의 장로들을 향해 말했다.

이준과 약로 단 둘이서 약계에 간다는 것이 영 불안했지만, 결국 풍존은 약로의 뜻을 꺾지 못했다.

“연맹을 잘 지켜줘.”

이준이 이솔을 품에 안은 채 서있는 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응.”

채린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중주에서 이신과 연금탑의 선조를 제외하면 누구도 채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런 채린이 연맹을 지키고 있으니 이준도 마음 놓고 성운계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허허, 그럼 다녀오겠소. 멀리 나오지 마시오.”

이준과 함께 천천히 상공으로 떠오른 약로는 시원한 웃음소리와 함께 성운각의 출구를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 * *

중주 남쪽 끝에는 ‘신농산’이라는 산이 자리하고 있다. 신농산은 8대 세력 중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약족의 거처로, 중주의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신농산은 중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에 속하는데다가 흉악한 마수들까지 가득했지만, 약족의 거주지인 약계의 입구가 있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땅이었다.

게다가 신농산 깊은 곳에는 온갖 희귀한 약재들이 가득해 수많은 연금술사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오기도 했다.

약전은 약족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로, 개최 시기는 약족의 사정에 따라 달라졌지만, 연금탑의 경연대회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연금술 대회였다.

약전에는 기본적으로 약족의 사람들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주에서 아주 높은 평판을 가지고 있거나 아주 뛰어난 연금술을 지닌 연금종사들이 초청을 받아 참가하기도 했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도 약전이 모두의 주목을 받는 것은 그만큼 이 대회가 대륙에서 제일가는 연금술사들만이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 * *

성운각은 약족이 위치한 신농산과 아주 멀리 떨어져있지만, 투성에 이른 이준과 약로에게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안개가 자욱한 신농산에 도착했다.

“천지 에너지가 이렇게나 강하다니……. 정말 대단한 곳이군요.”

신농산에 도착한 이준의 입에서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상공에 떠다니는 구름안개는 평범한 구름이 아닌 천지에너지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과연 약족의 거주지답게 수련을 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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