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0화. 영혼 수집
아무런 파동 없이 차갑게 얼어붙은 용과 눈을 마주친 이준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번개의 못 바깥 쪽을 향해 죽어라 날아가기 시작했다.
꽈르릉!
이준이 몸을 움직이기 무섭게 금색 용의 입에서 백 미터가 넘는 금색 번개가 터져나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준을 따라잡았다.
번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한 이준은 곧바로 몸을 돌려 염력으로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든 후 북왕을 앞에 세웠다. 소애 역시 이준의 어깨로 돌아와 보기 드물게 굳은 표정으로 앞을 응시했다.
방어막을 만든 이준이 숨을 고르기도 전에 금색 번개가 엄청난 굉음을 폭발시키며 북왕과 충돌했다.
쾅!
강렬한 충돌에 북왕의 몸이 순식간에 뒤로 밀려났다. 이에 이준은 황급히 손으로 그의 등을 막았지만 강한 힘을 막기는커녕 함께 날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번개의 힘을 흡수하던 북왕의 힘이 다시 나타나면서 금빛 불꽃이 벌레처럼 북왕의 몸에 끊임없이 들러붙었다. 게다가 이준과 북왕이 함께 붙어있었던 탓에 금색 번개가 이준에게까지 번지면서 염력 소용돌이가 빠르게 소멸되고 말았다. 다행히 때맞춰 소애가 만식의 힘을 터뜨리면서 금색 번개를 모두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치익!
거대한 금빛이 이준과 북왕, 소애를 둘러싼 채 끊임없이 번쩍였다. 그러자 이준에게 달려들던 흑마비뢰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소애가 금색 번개를 잡아먹으면서 이준의 몸에서 파괴적인 에너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깜작 놀란 이준은 황급히 정신을 가다듬고 에너지를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에너지가 지나간 자리에서 금색 번개가 번쩍이며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소애를 거쳐 들어온 에너지임에도 이 정도라니.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준은 죽을힘을 다해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광폭한 에너지를 연소시켰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그의 이마에 맺혀있던 식은땀이 점차 사라지며 그 에너지가 순수한 염력으로 전환되어 온몸을 흐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준은 멈췄던 실력이 조금씩 다시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이 상태라면 5성 투성 상급이 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뜻밖의 상황에 이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금색 번개에 둘러싸여있던 북왕의 피부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북왕도 견디지 못할 정도라니…….’
이준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애가 중간에서 에너지를 받아주지 않고 직접 저 에너지를 흡수했다면 자신은 순식간에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준은 황급히 북왕을 저장반지 속으로 회수했다. 북왕이 이곳에서 부서진다면 다시는 투성 요괴를 손에 넣지 못할지도 몰랐다.
이준의 어깨 위에 있던 소애는 그 와중에도 만식의 힘을 최대치로 발휘하며 미친 듯이 금색 번개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때, 금빛 용의 거대한 몸에서 번개가 폭발하더니 매서운 포효가 번개의 못 전체를 가득 메웠다.
“구현금비뢰가 영기를 모으고 있어!”
영기가 모이는 것을 발견한 이준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본래 구현금비뢰는 지능도 영기도 없기에 생명체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기가 모인다면 구현금비뢰 역시 정화의 불꽃이나 다른 천지의 불꽃같은 천지영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준이 생각하고 있는 건 그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영기가 모이고 있을 때 구현금비뢰의 힘이 아주 약해진다는 점이었다.
그 순간, 이준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구현금비뢰의 힘을 직접 경험해본 이준은 그 구현금비뢰가 용에게서 떨어져 나온 전기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번개 하나가 이준을 5성 투성 중급에서 상급까지 상승시켜주었다. 한 달 동안 수많은 흑마비뢰를 흡수하고도 달성하지 못한 경지를 단 한 줄기의 번개를 흡수한 것으로 넘어선 것이다.
이 점만으로 이준은 구현금비뢰의 본체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험이 클수록 보상도 큰 법. 만일 이곳에서 저 구현금비뢰를 획득한다면 6성 투성이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7성 투성 강자를 만나도 이 구현금비뢰가 이준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후우…….”
이준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긴 한숨을 내쉬며 번개의 못의 깊숙한 곳을 응시했다.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겠지만, 구현금비뢰가 약해진 순간에도 거두기 어렵다면 말끔히 포기하고 돌아가야 했다.
결정을 내린 이준은 끊임없이 번개를 내뿜는 금빛 용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구현금비뢰가 날카로운 포효를 내지르자, 이준을 쫓아오던 흑마비뢰들이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황금색 용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퍼펑!
잠시 후, 황금색 용의 주위에서 눈부신 금빛 폭풍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번개를 뿜어내더니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던 용의 눈동자에 조금씩 영기가 깃들었다.
그 순간 이준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이 정도 에너지와 영기라면 저 황금색 용은 보리나무 같은 전설속의 영물로 거듭날지도 몰랐다. 그런 영물의 탄생을 지켜보다니.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구웅!
그때, 흑마비뢰가 어딘지 모르게 구슬픈 소리를 내며 앞다투어 구현금비뢰에게 달려들었다.
수많은 흑마비뢰가 구현금비뢰에게 빨려 들어가며 또 한차례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흑마비뢰가 죽음을 각오하고 구현금비뢰에게 달려들면서 구현금비뢰의 힘이 더욱 강해졌지만, 휘황찬란하게 빛나던 황금빛은 반대로 점점 더 약해져만 갔다.
크릉!
매서운 포효에 흑마비뢰가 또다시 미쳐 날뛰며 구현금비뢰에게 마구 달려들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영기가 모이기는커녕 황금빛 용의 눈에서 점점 더 영기가 사라졌다.
“실패할 것 같네.”
한편, 이 광경을 바라보는 이준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했다.
영기를 흡수해 진정한 영물로 거듭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만일 여기서 영기를 응집시키는데 실패한다면 구현금비뢰는 결코 보리나무 같은 영물로 거듭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구현금비뢰의 몸은 수많은 흑마비뢰를 흡수하면서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고, 황금 빛 용의 눈에서 느껴지던 영기도 점점 더 약해지고 있었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명백했다. 구현금비뢰가 진정한 천지영물로 거듭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에휴…….”
점점 약해져가는 구현금비뢰를 보며 이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구현금비뢰에게서는 더 이상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위협감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했구나.”
이준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번개의 못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금색 용과 수천 미터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구현금비뢰의 흐릿한 눈빛에서는 거의 어떠한 영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콰광!
이준이 등장하는 순간, 구현금비뢰를 향해 달려들던 흑마비뢰들이 다시 방향을 바꾸어 이준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애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공포를 느낀 듯 황급히 자리에 멈췄다.
“네 힘을 나에게 줘. 난 영기를 모아줄게.”
구현금비뢰 앞에 선 이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평온한 그의 목소리에 구현금비뢰의 눈빛에 조금씩 영기가 돌아왔다.
“지나치게 강한 힘이 네가 영기를 모으는 데 있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어.”
말을 마친 이준은 곧장 구현금비뢰의 비늘 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분홍색 화염이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더니 눈부신 금빛 번개가 그의 몸속에서 빠져나와 백 미터도 넘는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변했다.
구현금비뢰는 마치 이준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 영기를 위해 힘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이에 이준은 분홍색 화염으로 거대한 그물을 만들어 금빛 용의 몸을 옭아맸다. 구현금비뢰에 섞인 파멸의 힘은 이준의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이 힘이 몸속으로 흡수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크르릉!
“봉인!”
곧이어 이준의 손가락 끝에서 기다란 혈선이 만들어지고, 그물 위에 기이한 문양이 떠오르며 금빛 용의 몸이 빠르게 축소되기 시작했다.
금빛 용의 몸이 충분히 작아지자, 이준은 곧바로 소애에게 그 용을 넘겼다. 놈에게 담긴 무시무시한 파멸의 힘은 오로지 소애만이 견딜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구현금비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이준이 인결을 빠르게 바꾸자, 천지에 퍼져있던 영기가 빠르게 모여 구현금비뢰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앞으로 너는 영기를 가진 유일한 구현금비뢰가 될 거야.”
이준은 처음보다 수십 배는 작아진 구현금비뢰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번개의 못 밖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구현금비뢰는 그런 이준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번개의 못을 빠져나온 이준은 고요한 못 안을 바라보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숨을 훅 뱉었다.
북왕은 흑마비뢰의 도움으로 6성 투성급의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준은 이미 5성 상급 투성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구현금비뢰의 몸에서 빼낸 파멸의 힘이었다.
구현금비뢰의 힘을 얻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 뜻밖에 큰 수확을 거둔 이준은 미친 듯이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 이준은 곧바로 소애를 불러내 새롭게 얻은 힘을 확인해보고자 했다. 소애의 포동포동한 팔뚝 위에는 파멸의 힘이 느껴지는 금색 용 무늬가 생겨있었다.
“응애!”
소애는 화가 난 듯 맑은 눈망울로 이준을 노려보았다. 이렇게 위험한 물건을 자신의 몸속에 봉인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걱정 마. 괜찮을 거야.”
이준은 빙긋 웃으며 소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기이한 빛을 발하는 용 무늬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7성 투성 강자도 흡수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공짜로 얻다니……. 생각만 해도 입이 귀에 걸렸다.
문제는 그 힘이 정화의 불꽃으로도 연소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난폭하고 강하다는 점 이었다. 언젠가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될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이준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소애를 몸속으로 불러들였다.
‘밖에 나온 지 너무 오래됐어. 이제 고룡도로 돌아가자.’
곧이어 뼈날개를 펼친 이준이 허무공간 끝으로 유성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 * *
고룡도로 복귀한 이준은 새롭게 탈바꿈한 섬을 보는 순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광활한 섬 위에는 협곡들이 우뚝 솟아있었고, 구름 안개 사이로 용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현재 고룡도는 수천 년 동안 흩어져있던 네 개의 섬이 처음으로 합쳐져 있었다. 이전까지는 용족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볼 기회조차 없었다.
고공에서 영혼탐지 능력으로 주변을 훑던 이준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움찔거렸다. 지금 그의 탐지능력에 잡히는 투성 강자들만 해도 최소한 열 이상이었다. 이 정도라면 천부연맹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 세력이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역시 대단한 종족이야.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된다면 고족, 혼족과 같은 고대 세력들에게도 뒤지지 않겠어.’
이준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사대 고룡도가 하나로 통일되며 곳곳에 흩어져있던 투성 강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었다. 이제 하늘 봉황족은 감히 용족의 발끝조차 쫓아올 수 없을 것이다.
용족이 안정을 되찾은 것은 이준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이준과 보람의 관계로 인해 천부연맹과 용족 간에도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