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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62화 (762/818)

762화. 서신

이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슬이 빠르게 소애의 몸속으로 녹아들더니 돌연 녀석의 머리에 검은 화염이 피어났다.

“퉤!”

하지만 소애는 당황하지 않고 화염을 실처럼 얇게 만들어 그물을 만든 뒤 검은 화염을 감싸 옥죄기 시작했다. 그러자 잘게 잘라진 화염 조각이 소애의 몸속으로 모두 녹아들었다.

쉭!

곧이어 분홍색 연꽃 위에 불길해 보이는 검은색 문양이 떠올랐다.

“응애!”

검은 빛이 모두 사라지기 무섭게 소애가 손을 뻗어 허공을 꽉 잡았다. 그 순간 천지의 에너지가 소애의 손으로 빠르게 모이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오색찬란한 에너지 결정으로 변해 발이라도 달린 것 마냥 녀석의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

이준은 입도 다물지 못하고 소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얼룩진 에너지 결정체가 소애의 몸으로 들어가자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에너지로 변해 완전히 흡수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애가 에너지 결정을 삼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흡수한 순수한 에너지가 자신의 몸으로도 흘러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이게…….”

“응애…….”

소애는 득의양양하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계속해서 천지의 에너지를 집어삼켰다. 놈이 에너지 결정을 삼킬 때마다 분홍색 화염은 점점 더 밝은 빛을 띠었고, 소애의 힘 역시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이 녀석……. 수련도 할 수 있단 말이야?’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이준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소애가 계속해서 실력을 키워나간다면, 녀석과 연결되어 있는 자신 역시 실력이 성장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뜻밖에 엄청난 수확을 얻었네…….’

이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자신도 어찌하지 못한 허무의 불꽃을 소애가 해결해 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그였다.

“하하, 새끼 불꽃을 어떻게 하려나 싶었더니, 아주 일이 잘풀렸구나.”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약로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스승님, 혼전에서 움직임이 있었습니까?”

“아직은 아무 일도 없다. 심지어 분전에 있던 영호와 영존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있다더구나. 우리가 분전을 칠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철수했다고요?”

이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혼전 놈들이 이렇게 얌전히 물러나니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것보다 더욱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이준의 표정을 본 약로가 씩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놈들은 뭔가 엄청난 것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영혼을 모을 리가 없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다만 우리에게 좋은 일은 아니겠지.”

스승의 말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이번 일은 밀정을 보내 집중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새로운 정보가 있기를 바라야지…….”

약로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진정한 의미에서 혼전을 쓰러뜨리려면, 그 뒤에 있는 혼족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이준의 실력은 어느 덧 5성 투성에 접어들어 있었지만, 혼족에 대항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했다. 9성 투성인 이현마저 혼족을 당해내지 못했는데, 5성 투성인 이준의 실력으로는 아버지를 구하기는커녕 제 목숨조차 건사할 수 없었다.

이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제 빠르게 실력을 올릴 수 있는 지름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화의 불꽃은 이미 얻었고, 천지의 불꽃 중 두 번째로 강하다는 허무의 불꽃은 혼족의 손에 있었다.

첫 번째는…….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

이준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6성 투성들조차 정화의 불꽃을 어쩌지 못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강한 불꽃은 어떻겠는가? 설령 불꽃의 행방을 알아낸다 해도 손조차 대지 못하고 타죽고 말 것이다.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이준은 돌연 저장반지에서 신비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옥조각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준이 갑자기 태령황제의 옥을 꺼내들자 약로 역시 의아한 눈빛으로 이준을 쳐다봤다.

이준은 이를 꽉 깨물고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휘몰아치는 감정을 억눌렀다. 그의 아버지는 이 작은 돌조각 하나 때문에 혼족에 잡혀갔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혼족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도 모두 이 ‘태령황제의 옥’ 때문이었다.

‘태령황제의 옥은 8개로 나뉘어져 다 모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순간 이준은 머릿속에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바로 천화존자를 처음 만났던 가람 아카데미 지하에 있는 용암세계였다.

그곳은 이준이 구름 불꽃을 얻은 곳인 동시에 태령황제의 옥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곳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확실히 이상했다. 용암세계 깊은 곳에는 신기한 생물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무언가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카데미 지하에 다녀와야겠어.’

깊은 생각에 잠긴 이준을 바라보던 약로는 천천히 고개를 젓다가 한숨을 내쉬며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두루마리 하나를 건넸다.

“지옥 이무기족에서 온 두루마리 서신이다. 읽어보아라.”

“요명?”

이준은 의심 섞인 눈빛으로 두루마리를 받아 천천히 펼쳐보았다. 두루마리를 펼치자, 빨간 글씨로 새겨진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하늘 봉황족이 지옥 이무기 족을 습격했네. 지옥호수에 이변이 일어났어.’

서신을 읽은 이준은 곧바로 자리에서 튕겨나듯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무시무시한 기운이 용처럼 솟구치며 거대한 폭포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채린아!”

“무슨 일이냐?”

이준의 격한 반응에 놀란 약로가 황급히 물었다.

이준은 말없이 약로에게 두루마리를 건넸다. 서신에 쓰인 내용을 읽는 순간, 약로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하늘 봉황놈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약로는 눈썹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보람을 돕기 위해 고룡도로 향할 때, 이준은 봉황족의 소족장과 투성 강자 두 명을 인질로 잡은 적이 있었다. 덕분에 용족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지만, 이준과 봉황족의 사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하지만 이준은 크게 무서울 게 없었다. 당시에도 그랬는데, 5성 투성이 된 지금은 더더욱 무서울 리가 없었다. 그러나 봉황족이 왜 하필 이 시기에 지옥 이무기 족을 공격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약로는 이준을 쳐다보며 물었다. 사실 지금 천부연맹의 실력이라면 능히 하늘 봉황족을 찍어 누를 수 있었다.

“연맹 사람들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을 거예요. 게다가 연맹의 강자들을 데리고 지옥 호수로 간다면 혼족 놈들이 곧장 성운계로 쳐들어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냥 아라와 예린만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셋만?”

약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봉황 족을 상대하는데 셋이라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걱정 마세요, 스승님.”

이준은 씩 웃으며 약로를 안심시켰다.

“이신 선배를 데리고 가는 건 어떻겠느냐?”

하지만 약로는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이신을 데려갈 것을 권했다.

“연금탑 선조님도 잘 나타나시지 않는 상황에 연맹 총부의 최고 강자를 데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지금 제 실력으로 6성 투성을 쓰러뜨리진 못해도 빠져나오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하늘 봉황족의 족장도 그 정도 실력은 되지 않는 걸요.”

이준의 단호한 태도에 약로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언제 출발할 생각이냐?”

“빠를수록 좋겠죠. 지금 바로 가야겠습니다. 채린도 수련에 들어간 지 너무 오래 지나 마음이 안 놓였거든요. 이번에 가서 확인 좀 해봐야겠어요.”

“그래. 조심하거라.”

약로의 한숨 섞인 말에 이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아라와 예린을 찾아 공간을 가르고 빠르게 마수구역으로 향했다.

* * *

마수구역은 중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드넓은 면적을 자랑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마수들 중 정점에 선 존재가 바로 용족과 봉황족, 지옥 이무기족이었다.

세 종족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단연 용족이었지만, 그들은 좀처럼 바깥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머지 두 종족 중 숫자로 치면 지옥 이무기족이 앞섰지만, 실력으로 따지자면 하늘 봉황족이 두 수는 위였다. 때문에 마수구역의 실질적인 왕으로 군림하는 것은 바로 하늘 봉황족이었다.

그리고 최근 봉황족이 지옥 이무기족의 영역을 침범하며 마수구역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다.

어느 날 갑자기 봉황족이 지옥 이무기들의 씨를 말리려는 듯 그들의 본거지를 덮쳤고, 단 한 마리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듯 물 샐 틈 없는 포위망을 펼쳐둔 상태였다.

* * *

지하 속 깊은 곳, 지옥지맥.

지옥 이무기족의 총부의 분위기는 전에 없이 무거웠다.

지금 지옥지맥의 하늘 위에서 거대한 날개를 펼친 마수 무리가 빼곡하게 늘어선 채 살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족장님. 봉황족 놈들이 저희의 총부까지 찾아와 협박을 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마수가 우리를 믿고 따르겠습니까?”

지옥지맥 중앙에 위치한 협곡 위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굳은 얼굴로 서있었다.

“문 장로. 이번 일은 결코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닐세. 무려 5성 투성 상급 실력을 가진 봉황족의 족장 황천봉이 직접 왔소. 우리 지옥 이무기족에서 누가 저 자에게 맞설 수 있겠는가?”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허, 그럼 이렇게 두 눈 뜨고 저놈들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짓밟는 걸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이오?”

조금 전 입을 열었던 노인이 반박했다.

“그게 아니지. 봉황족의 목적은 지옥 호수에서 수련중인 그 여인이오. 그 여인을 넘기면…….”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가장 앞에 서있던 건장한 남자가 콧방귀를 뀌며 그를 노려봤다.

“그 여인은 절대로 넘길 수 없다. 그리고 봉황족이 찾아와 시위를 한 것만으로 우리가 보호하기로 약속한 여인을 넘겨준다면 그거야말로 지옥 이무기족이 겁쟁이라고 마수계 전체에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

사내는 잔뜩 인상을 구긴 채 노인을 노려봤다. 그는 바로 지옥이무기족의 족장, 요명이었다.

요명의 단호한 태도에 그를 설득하려던 장로들은 하려던 말을 애써 집어삼킬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봉황족이 제안했던 기한이 끝나는 날입니다. 사람을 넘기지 않으면…….”

“문 장로. 서신은 보냈나?”

요명이 노인의 말허리를 자르며 질문을 던졌다.

“보냈습니다.”

그의 물음에 문 장로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준 선생이 정말 오기는 합니까?”

천부연맹이 혼전을 이겼다는 소식은 이미 마수구역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귀에도 들어간 상태였다.

그 공포스러운 혼전을 꺾은 이준이 온다면 봉황족이 두려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일단 소식을 기다리지……. 그는 반드시 올 것이다.”

요명이 먼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요명. 3일이 지났소. 사람을 넘길테요, 아니면 전쟁을 시작할 것이오?”

그러나 요명이 고개를 드는 순간, 강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퍼졌다.

협곡 위에 서있던 장로들은 낯빛이 빠르게 일그러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금색 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요명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황천봉 족장. 지옥 호수에서 수련중인 자는 이준의 여자일세. 그녀를 건드린다면 이준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하하!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쩔 텐가? 놈은 봉황족의 귀중한 핏줄을 인질로 잡은 데다가 우리 봉황족의 날개까지 훔친 도둑놈인데, 설마 우리가 그 놈을 살려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황천봉의 말에 요명의 미간에 더욱 깊은 주름이 생겨났다.

“1분 동안 고민할 시간을 주지. 확실한 대답을 내놓으시오.”

황천봉이 요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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