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761화 (761/818)

761화. 검은 구슬

대폭발을 피해 천 미터 가까이 달아난 전주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피를 집어삼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전주, 이번 시합은 당신이 진 것 같은데.”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새카만 그림자 하나가 솟아나 매서운 기세로 주먹을 내질렀다.

“네 이놈!”

하지만 전주는 아직 승부를 포기하지 않은 듯 온 힘을 끌어내 이준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이 맞부딪히는 순간, 에너지 폭풍이 사방을 휩쓸며 두 사람의 몸이 반대방향으로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날 죽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전주가 이준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번엔 너희가 운이 좋았다! 다음엔 내가 직접 찾아가마!”

“그럴 기회는 없을 것 같은데?”

이준의 한마디에 전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열 개의 화련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오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꽈르릉!

거대한 화염폭풍이 하늘을 뒤덮고, 무시무시한 열기에 대지가 사막처럼 바싹 말라버렸다.

“전주가 졌어…….”

산맥 전체가 묵직한 적막에 빠졌다. 이렇게 엄청난 공격에 정면으로 맞았으니,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제 아무리 강한 실력을 자랑하는 혼전의 전주라 해도 목숨을 건지는 것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

중주에서 오랜 시간 이름을 떨치던 강자인 혼멸생이 이제 갓 서른을 넘긴 후배에게 패배하다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앞으로 이준과 천부연맹은 중주 전체에서 모든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천부연맹의 수많은 강자들 역시 벅차오르는 기분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수천 년간 누구도 쓰러뜨리지 못한 중주의 절대 강자 혼전을, 그들이 쓰러뜨린 것이다.

앞으로 중주의 맹주는 바로 천부연맹이 될 것이다.

잔치 분위기인 천부 연맹의 분위기와 정반대로 혼전 측의 분위기는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빌어먹을! 혼멸생 저 놈이……!”

혼모가 주먹을 쥔 채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마지막까지 웃는 사람이 승리자일세. 그 정도 인내심도 없다면 우리 혼족은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오.”

하지만 혼천맥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을 유지한 채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 사이 하늘에서 몰아치던 화염폭풍이 서서히 사라지고 그 안에서 새까만 형체 하나가 튕겨져 나왔다. 모습을 드러낸 전주는 내장까지 드러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어 아직 숨이 붙어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준. 이번 일은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겠다!”

그러나 시체처럼 핏기가 없는 얼굴로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전주의 눈은 여전히 이준을 향해 있었다.

지상으로 추락하는 전주를 바라보던 이준의 눈에 섬뜩한 살기가 내려앉았다.

이번 싸움은 자신의 승리였지만, 혼멸생 정도의 강자와 다시 붙는다면 다음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거 목숨도 이곳에 두고 가지 그래?”

말을 마친 이준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전주를 향해 매섭게 달려들었다.

“이준, 네가 감히!”

갑작스런 상황에 혼전의 강자들은 모두 놀란 듯 눈을 치켜뜨며 이준을 노려봤다. 설마하니 그가 혼전의 전주를 죽이려 들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네 손에 죽은 사람들의 피값을 치러라!”

이준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전주의 정수리를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이미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 전주는 반격을 하기는커녕 피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 날아드는 주먹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준! 감히 혼전의 전주를 죽이려 든단 말이냐!”

바로 그때, 천둥처럼 우렁찬 고함소리가 울려 퍼지며 혼천맥이 나타나 이준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의 주먹이 이준에게 닿기도 전에 또다시 소애가 나타나 혼천맥을 향해 열 개의 불연꽃을 날렸다.

쾅쾅!

그러나 열 개의 화련으로도 혼천맥을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그의 주먹이 이준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푸흡!”

이준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련이 혼천맥의 주먹에 담긴 무시무시한 힘을 줄여주었다는 점 정도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준은 이 일격에 가슴이 터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준은 혼천맥의 주먹에 얻어맞으면서도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의 주먹이 혼멸생의 머리를 내리치며 그의 머리가 부서지는 감촉이 그대로 손을 타고 전해졌으니까.

펑!

어떤 방어도 하지 못하고 이준의 주먹에 얻어맞은 전주의 몸이 순식간에 폭탄처럼 터져버리고 말았다.

전주의 눈이 생기를 잃은 것을 확인한 이준은 입가에 흘러내린 피를 닦으며 빠르게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준! 네 이놈! 감히!”

뼈조차 남기지 못하고 터져버린 전주의 모습에 늘 침착하던 혼천맥의 얼굵에도 처음으로 살기가 깃들었다.

분노한 그는 이준을 향해 몸을 날리며 빠른 속도로 공간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죽어라!”

“혼천맥, 싸우다 보면 다치고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나? 자네들이 정한 규칙에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은 없었을 텐데?”

혼천맥이 이준을 향해 손을 내뻗으려는 찰나, 청색 옷을 입은 소년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네 놈이 정말로 우리 혼족과 한 번 붙어보겠다는 것이냐!”

혼천맥이 연금탑 선조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협박해봤자 소용없네.”

하지만 연금탑의 선조에게 그런 협박이 먹힐 리가 없었다.

혼천맥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연금탑 선조가 막고 있는 이상, 그의 실력으로는 절대로 이준을 죽일 수 없었다.

“이준! 넌 이현보다 백 배는 더 참혹하게 죽고 말 것이다!”

“큭큭. 혼전과 혼족 놈들을 날 볼 때마다 죽이겠다고 소리를 쳐대는군.”

혼천맥의 외침에 이준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천부 연맹도 박살을 내주마!”

몸을 돌려 전주가 폭발한 곳을 바라보던 혼천맥은 분노로 몸을 떨며 전주의 영혼을 흡수한 뒤 곧바로 운락산 밖으로 날아갔고, 혼전 강자들 역시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전주의 영혼까지 완전히 없애야 했는데, 아쉽네요.”

혼전 강자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이준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욕심 부리는 것 아니냐. 혼족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연금탑 선조가 이준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입꼬리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혼족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네가 네 선조인 이현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구나.”

중주를 뒤엎은 운락산에서의 결전은 혼전 전주의 죽음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일로 인해 천부 연맹은 명실상부한 중주의 패자로 자리 잡게 되었고, 오랜 세월 중주를 공포에 떨게 했던 전주를 죽인 이준의 이름이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 * *

이준이 혼전 전주를 꺾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천부연맹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고,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는 데만 장장 보름이 필요했다.

하지만 정작 연맹의 고위층들은 차분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첫 째로는 혼족의 보복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중주의 모든 세력들이 혼전을 꺾은 천부 연맹을 경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세력과 마찰이 일어났다가는 천부 연맹의 독주를 두려워하는 다른 세력들이 또 다른 연맹을 결성해 그들에게 대항할지도 모르는 일 이었고, 이는 혼족과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절대로 피해야 하는 일 이었다.

이에 천부연맹 총부는 연맹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결코 다른 세력과 마찰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으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을 경우 즉시 모든 염력을 빼앗고 연맹에서 내쫓겠다고 선언했다.

중주의 새로운 패자가 된 천부연맹이 다른 세력들을 건드리지 않고 잠잠하게 지내니, 자연스레 더욱 많은 세력들이 연맹에 가입하겠다고 손을 들고 나섰다.

가입을 원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연맹은 더욱 엄격하고 복잡한 심사를 통해 연맹원을 뽑았다.

이렇게 새로운 연맹원들이 늘어나면서 천부연맹은 또 한 번 세를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 * *

성운계 내부의 인적 드문 깊은 숲속. 은빛 폭포가 계곡 밑으로 쏟아져 내리며 시원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폭포가 쏟아지는 호수 중앙에서는 한 청년이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수면 위에 앉아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은 신기하게도 이준과 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다다르자 저절로 사라져 버렸다.

웅-!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이준의 새까만 눈동자에서 기이한 빛이 번쩍였다.

눈을 뜬 이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기이한 흡인력을 뿜어내는 먹물처럼 검은 구슬이 놓여있었다.

운락산에서의 전투가 일어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3개월 동안 천부연맹은 또다시 무시무시한 속도로 세를 불려나가고 있었지만, 정작 혼전 전주를 쓰러뜨려 연맹에 승리를 안겨준 이준은 그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곧바로 수련에 들어갔다.

5성 투성 초급이 된 이준은 3개월 동안의 수련을 거친 후에도 자신의 실력이 전혀 늘고 있지 않음을 느꼈다. 확실히 5성 투성부터는 무언가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더 이상 실력을 키울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천지만물을 집어삼키기로 유명한 허무의 불꽃은 에너지, 심지어 염력도 삼킬 수 있는 존재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손에 넣고 싶어 하는 불꽃 중 하나였다. 게다가 새끼 불꽃만 흡수해도 그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에 이준은 수련 기간 동안 거의 모든 정신을 허무의 불꽃의 능력을 얻는데 쏟았다.

그 결과, 이준의 몸속에는 검은색 구슬 하나가 생겨났다. 이준은 그 구슬 속에서 영혼도 집어삼킬 수 있을 것 같은 흡인력을 느꼈다.

처음 이 구슬을 발견했을 때는 어쩔 줄 모를 정도로 기뻤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구슬을 몸속에 두니 구슬이 그의 염력을 집어삼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무의 불꽃은 이준의 염력 뿐 아니라 생명력도 함께 빨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게다가 허무의 불꽃의 힘으로 흡수한 에너지는 아주 탁해져 천지의 불꽃을 사용해 제련하더라도 순수한 에너지를 모으기가 어려웠다. 즉, 허무의 불꽃의 능력으로 에너지를 얻어도 흡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뭐야…….”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이준은 난감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설의 불꽃이라더니, 이래서야 수련에 방해만 되는 물건이 아닌가.

실망한 듯 고개를 젓던 이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 놓인 검은 구슬을 저장반지에 넣으려 했다.

그때, 그의 손에서 갑자기 소애가 빠져나와 군침을 흘리며 통통한 손으로 구슬을 힘껏 끌어안았다.

“엥?”

“응애……나 줘.”

소애가 입에서 질질 침을 흘리며 말했다.

이준은 넋을 놓고 소애를 바라보았다. 소애의 힘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고, 이제는 짤막하게나마 말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건 가지고 있어봤자 좋을 게 없어…….”

이준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식(萬食)의 힘을 가진 이 구슬은 염력이나 에너지 뿐 아니라 생명력까지 집어삼키는 물건이니 가지고 있어봤자 좋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소애는 작은 머리를 몇 번이나 절레절레 젓고는 화염으로 검은 구슬을 모조리 감싸 숨겨버렸다.

소애가 이렇게까지 떼를 쓰니 결국 이준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소애는 불의 정령일 뿐이지만 위험을 감지하는데 있어서는 이준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검은 구슬이 자신에게 해가 된다면 녀석이 먼저 알아차렸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