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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56화 (756/818)

756화. 폭풍전야

높게 솟은 산봉우리 위.

“오라버니. 석족이 사라지면서 고족 내부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을 거예요. 아무래도 확인하러 가봐야겠어요.”

공간을 가르고 사라지는 이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준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은은 고족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였고, 그런 그녀가 자신을 위해 정화세계에서 2년을 보낸 것 자체가 고족에게는 큰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무사히 정화세계를 빠져나온 이상 반드시 고계로 돌아가야 했다.

게다가 석족의 문제로 인해 고족 역시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해있을 것이 분명했으니, 차마 그녀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알았어 은아. 조만간 내가 고계로 찾아갈게.”

두 사람은 그렇게 짧은 작별의 말을 끝으로 다시 각자의 세력으로 돌아가야 했다. 천부 연맹 역시 고족 못지않게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류 대장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천부 연맹과 혼전은 완전히 전면전에 들어간 상태였고, 매일 같이 중주 곳곳에서 두 세력의 강자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혼전……. 드디어 네 놈들을 쓸어버릴 날이 왔구나.”

말을 마친 이준의 몸이 순식간에 공간을 가르고 사라졌다.

* * *

천부연맹의 총부가 위치한 성운각.

성운각의 규모는 예전보다 몇 배나 확장되어 있었고, 총부에 소속된 강자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있었다.

지금은 혼전이 아니라 혼족이라 해도 함부로 성운계에 쳐들어 올 수 없을 정도였다.

천부연맹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몇몇 세력은 자청하여 성운각에게 흡수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고, 각자의 소속 세력이 있던 제자들도 언제부턴가 자신을 ‘천부 연맹의 제자’라고 자칭하고 있었다.

성운계는 2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현재 성운계의 높이 솟은 산봉우리 위에는 거대한 건물들이 들어섰고, 여러 강자들이 그 자리를 지키며 명실상부한 천부연맹의 총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운계의 정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산봉우리의 정상에는 웅장한 대전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연맹과 혼전 놈들 사이에 43번의 전투가 있었다네. 그리고 세 개의 분전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지만, 우리 병력에도 막대한 손실이 있었어.”

대전 안, 풍존자가 약로를 바라보며 한 달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했다.

약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2년 동안 약로의 기운은 한층 더 강해져 있었지만, 연맹의 일로 골머리를 많이 앓은 탓인지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어 있었다.

“그리고 혼족 놈들이 본격적으로 혼전에 강자들을 파견하기 시작한 것 같네. 어쩌면 천부 연맹의 총부를 향해 총공세를 퍼부을지도 몰라.”

풍존의 말에 대전 안에 있던 장로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천부 연맹이 예전보다 강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8대 세력 중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혼족과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혼족에서 파견한 강자에 대한 정보는 있는가?”

약로가 물었다.

“혼천맥……. 6성 투성 강자로, 이현을 죽일 때도 힘을 보탠 자라더군.”

6성 투성이라는 한마디에 대전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실력의 강자를 파견했다는 것은 정말로 천부 연맹을 끝장내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하군. 혼족이 어떻게 그런 강자를 중주에 파견할 수 있단 말이오? 고족과 삼족맹이 가만히 있지 않을터인데.”

화운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로 혼천맥이 나타난다면 우리도 소연금탑의 선배님을 불러와야 할 것이오. 그리고 혼전의 전주와 혼모 중 하나가 우리 연맹의 최강자인 이신 선배님을 상대하겠지……. 문제는 남은 한 명을 누가 막느냐 하는 것이오.”

연금탑 대장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장로의 분석에 대전 안의 공기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천부 연맹의 힘이 아무리 커졌다 해도 혼족에서 6성 투성을 파견하는 순간 총부를 지키는 것조차 힘겨운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아라, 예린이 함께 전주를 막아야겠군.”

약로의 말에 연금탑 대장로가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셋이 힘을 합쳐 5성 투성인 전주를 막는다 해도 다른 투성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보람 아가씨가 있었다면 이렇게 머리 아플 필요도 없을 텐데…….”

대전 안에 있던 장로 중 하나가 짙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삼대 고룡도의 일이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람은 이미 동룡도로 돌아가 버린 상태였다.

“전주는 저에게 맡기시면 될 것 같군요.”

그때, 커다란 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모든 시선이 순식간에 대전 입구로 향했다.

“이준!”

풍존자와 화운, 약로가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이준? 맹주님의 제자?”

대전에 있던 다른 장로들은 이준의 얼굴을 잘 몰랐지만 이준이 어떤 지위를 갖고 있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약로가 천부연맹의 맹주라면, 이준은 천부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었다.

쾅!

2년 만에 돌아온 제자를 보는 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약로의 염력이 폭발하며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천부연맹의 다른 고위층 인사들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약로의 모습에 놀란 듯 눈을 깜빡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혼전과의 혈전 속에서도 단 한 번도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던 그가, 제자를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스승님, 저 왔습니다.”

“허허, 돌아왔으니 됐다. 돌아왔으니 됐어.”

이준의 짤막한 한마디에 약로는 눈물을 닦으며 어린 아이처럼 웃음을 지었다.

“하하. 약 영감. 그러게 단명할 녀석이 아니라 말하지 않았소!”

화운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소맹주, 정말이지 딱 맞춰 돌아왔구려!”

소연금탑 대장로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실력으론 혼자 전주를 상대해도 문제가 없겠구나.”

대장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석에 앉아있던 이신이 입을 열었다.

그의 한마디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천부연맹의 최강자인 이신이 그렇게 말을 했다는 것은, 이준의 실력이 이미 5성을 넘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정화의 불꽃을 흡수하는데 성공한 것이냐…….”

약로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운이 좋았습니다.”

“너 이 녀석.”

이준의 짤막한 한마디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분분히 찬숨을 들이마셨다.

정화세계에서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연금탑의 선조가 나서도 어찌할 수 없던 정화의 불꽃을 흡수하다니.

“하하, 그래. 좋구나! 잘됐어! 참으로 잘됐어!”

약로가 벅차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히 웃으며 외쳤다. 정화의 불꽃은 정화성자 이후 그 누구도 길들이지 못했던 전설의 불꽃이었다. 그런데 이준이 그 불꽃을 흡수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하! 정화의 불꽃을 가진 소맹주가 있으니 이제 혼전 놈들의 공세도 두렵지 않겠소!”

대장로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웃음을 지어댔다.

자리에 있던 장로들은 일제히 이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리에 있던 새로운 장로들 중 대부분은 이준의 실력에 대해 소문으로만 들어왔었기에 그의 실력에 조금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늘 직접 만나보니 이준의 실력은 소문으로 들어왔던 것 이상이었다.

“허허,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모두 돌아가 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시오. 우리 천부연맹과 결전을 치르고자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예!”

약로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 * *

회의가 끝난 뒤, 이준은 여전히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약로와 그동안 천부연맹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성운각 내의 정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정원 안으로 들어오자 익숙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더니 조막만한 어린 아이 하나가 허공을 가르고 이준을 향해 날아왔다.

“하하, 아가. 많이 컸구나.”

이준은 두 팔 벌려 이솔을 껴안은 채 웃음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기가 바로 그의 안식처였다. 바깥에서 수많은 위험 속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지만, 이솔을 안는 순간 마음속에 가득 쌓여있던 피로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까지 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때, 뒤쪽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검은 옷을 입은 채 웃고 있는 아라의 모습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투성이 된 거야?”

한 눈에 아라의 실력을 알아본 이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가 정화세계에 있는 사이 아라는 반투성의 경지를 넘어 진정한 투성으로 거듭나 있었다.

“네가 준 요성의 피 덕분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이준의 모습에 아라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채린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하지만 나와 예린이 한 번씩 지옥구렁이족에 다녀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그 안에서 채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어.”

그녀의 말에 이준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채린이 지옥호수에 들어간 지도 벌써 3년이 지나 있었다.

“이곳의 일이 해결되면 지옥구렁이족에 한 번 다녀와야겠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이준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 * *

이준의 복귀 소식이 전해진지 하루도 되지 않아 천부 연맹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그가 실종된 이후, 성운각 제자들을 포함한 천부 사람들의 사기는 크게 저하되어 있었다.

천부 연맹이 역경에 처할 때마다 홀연히 나타나 혼전의 강자들을 무찔러왔던 이준의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 혼전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이준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퍼져 나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가 멀다 하고 천부 연맹의 도시들을 습격하던 혼전의 공세가 완전히 멈추고 말았다.

물론 천부 연맹의 고위층 인사들은 그 모든 것이 폭풍전야의 고요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약로를 비롯한 천부 연맹의 지도자들은 더욱 방어를 강화하며 중주 전체에 밀정들을 파견해 혼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 * *

숨 막히는 적막은 5일간 지속되었다. 그 사이 천부 연맹과 혼전 모두 각자의 거점을 지키며 방어를 강화할 뿐, 둘 중 어느 쪽도 선제공격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부 연맹과 혼전은 물론이고 다른 세력들도 이것이 최후의 결전을 대비하기 위한 시간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혼전과 천부연맹은 수년 동안 치열하게 대치해왔지만 아직 단 한 번도 최고급 수준의 강자가 나선 적은 없었다.

최고급 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두 세력 간의 전쟁이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천부연맹이 승리한다면 새로운 중주의 맹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패배한다면, 모든 게 끝이었다.

* * *

천부와 혼전의 움직임에 중주 전체가 불안에 떨고 있었지만, 이준은 조용한 정원 안에서 이솔과 함께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딸과 2년이란 시간을 떨어져있었다. 이한이 그와 함께 했을 때를 생각하자 이준은 스스로 아버지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2년 사이에 그의 딸은 훌쩍 커있었고, 아직 어린 나이지만 채린의 미모를 물려받아 인형처럼 예뻤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이솔의 실력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타고난 영혼의 힘에 칠색 이무기의 힘까지 더해졌으니 그녀의 실력은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말수도 적고 늘 무뚝뚝하기만 한 이신도 이솔 앞에서는 자상하기 짝이 없었다. 아라의 말로는 이준이 사라진 2년 동안 이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이솔에게 쏟아부었다고 했다.

며칠 동안 조용히 앉아 그간 못해온 아버지 역할을 하는 동안 이준은 예린과 천화존자를 만났다.

예린은 못 본 사이에 1성 투성이 되어있었고, 평소에 크게 관여하지 않지만 연맹 내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천화존자는 이미 본연의 실력을 모두 회복하고 약로가 제련한 연금비약의 도움을 빌려 투존 최고급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투성은커녕 아직 반투성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크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천화존자는 크게 욕심이 없었다. 이준이 가람 아카데미의 용암 지하세계에서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육신을 되찾고 전성기 이상의 실력까지 찾게 되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나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준이 돌아온 지 정확히 일주일째 되던 날, 혼전이 보낸 편지 한 장이 성운각에 도착했다.

편지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3일 후, 운락산(隕落山) 정상에서 결판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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