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753화 (753/818)

753화. 중주의 변화

그렇게 7일이라는 시간이 빛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7일 동안 하늘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실망한 사람들은 결국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 곳을 떠나야 했다.

“7일째야…….”

고청양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 사이 폭삭 늙어버린 고남해를 바라봤다.

“장로님, 어떡하죠?”

“모르겠구나…….”

고남해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어디론가 사라졌던 보람이 나타나 약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정화세계는 봉인된 장소라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의 낯빛이 더욱 어둡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준은 괜찮아요. 무슨 일이 생겼다면 용의 각인이 사라졌을 거예요.”

보람이 손을 펴 손바닥에 새겨진 각인을 보여주며 말했다.

“고 장로님도 걱정 마세요. 이준이 같이 있는 이상 이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만일 무슨 일이 있었다면 이준이 미쳐 날뛸거고, 용의 각인도 이렇게 잠잠하진 않겠죠.”

보람의 말에 그제야 조금 안도한 듯 고남해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잠시 후, 고남해가 고개를 들어 약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할 수 없지. 나는 고족으로 돌아가 이 일에 대해 보고를 해야겠소.”

“사람을 불러 이곳을 감시하도록 시키겠소. 작은 변화라도 곧바로 고족에게 소식을 전할 테니 걱정 마시오.”

“배려해주어 고맙소.”

약로의 말에 고남해는 정신을 다잡고 그에게 인사를 올린 뒤 고청양과 함께 북쪽을 향해 날아갔다.

* * *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갈 때, 정화세계 안에서는 준비를 마친 이준이 천천히 눈을 뜨고 있었다. 드디어 정화의 불꽃을 흡수할 때가 온 것이다.

“오라버니, 준비 됐어요?”

허공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이은이 이제 막 눈을 뜬 이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응.”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 위에 있는 봉인진을 바라보았다. 그가 만든 봉인진에서는 옅은 한기가 은은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건 얼음 불꽃의 정수의 힘을 이용해 만든 염한대진이야. 정화성자가 설치한 것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정화의 불꽃을 억누를 수 있어.”

이준의 말에 이은 역시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불꽃을 흡수하기 시작하면 잘 지켜보고 있어줘.”

“네.”

이은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화의 불꽃을 흡수하다 잘못되면 그대로 잿더미가 될 수 있으니 이번 수련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수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말을 마친 이준이 인결을 만들자 봉인진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더니 정화의 불꽃을 향해 짙은 냉기가 쏘아져 나갔다. 염한대진의 힘에 의해 용암이 빠른 속도로 굳어갔고, 연꽃 모양을 한 정화의 불꽃의 꽃잎 위에도 얇은 서리가 생겨났다.

자신이 만든 진법이 효과가 있는 듯하자, 이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잠시 후, 그는 분홍색 옥병 하나를 꺼내들어 그 안에 들어있는 액체를 연꽃 위에 부었다.

정화의 불꽃을 흡수하기 위해 그가 준비한 이 분홍색 액체에는 강력한 마취 효과가 있었다. 물론 이 정도로 정화의 불꽃을 완전히 마취시킬 수는 없었지만, 정화의 불꽃의 힘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분홍색 액체가 스며들자 연꽃의 꽃잎이 축 쳐지며 열기가 한층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정화의 불꽃은 더 이상 영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흡수하기에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자.”

이준은 손을 멈추지 않고 다시 연금비약을 하나 꺼내들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가득한 이 연금비약은 바로 약로가 그를 위해 준비해준 ‘구음황천단’이었다.

구음황천단이 날아가 연꽃 위에 안착하자,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꽃잎 위에 살얼음이 생겨났다. 뜨거운 열기에 의해 살얼음이 끊임없이 녹아내리며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후…….”

이준은 긴 숨을 내뱉으며 이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정화의 불꽃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지금 연꽃의 중심에서는 분홍색 화염이 아기처럼 순수에너지를 계속해서 뿜어내고 있었다.

이준은 연꽃의 중심에 위치한 분홍색 화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것이 바로 꿈에도 그려왔던 정화의 불꽃의 본체였다!

이렇게 작은 화염 하나가 6성 투성 강자도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정화의 불꽃 본체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이준의 몸에서 마침내 자갈색의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다섯 개의 화염이 융합되어 만들어 진 그의 불꽃마저 정화의 불꽃 앞에서는 겁을 먹은 듯 계속해서 흔들렸다.

쉭!

이은이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이준이 떨리는 불연꽃 속으로 손을 뻗어 분홍색 화염을 움켜쥐었다.

화악!

이준의 손이 닿기 무섭게 작디작은 화염이 미친 듯이 부풀어오르며 이준의 몸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오라버니!”

갑작스런 상황에 이은의 얼굴은 곧장 사색이 되어버렸다.

온 몸이 타는 듯한 고통에 이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황급히 자신의 불꽃과 염력을 끌어내 뜨거운 열기가 몸속까지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곧이어 이준의 모공에서 새빨간 피가 새어나와 단단한 막으로 변하더니 피갑옷을 입은 것처럼 이준의 피부에 달라붙었다.

“오늘을 위해 지금까지 버텼는데, 이 정도 고통으로 포기할 수는 없지.”

온몸이 피로 뒤덮인 이준이 흐릿해진 시선으로 손 위에 있는 분홍색 화염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몇 번 정도 긴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은 이준은 그대로 분홍색 화염을 입속에 집어넣어 단숨에 삼켜버렸다!

쾅!

정화의 불꽃 본체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준이 입고 있던 옷마저 전부 새까맣게 타버리고, 피부가 빠른 속도로 타들어가며 그 아래 숨겨져 있던 용황 갑옷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단단한 용황 갑옷도 결국 정화의 불꽃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까맣게 변해버렸다.

“으윽…….”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세포 하나하나에 전해지며 이준의 입에서도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천천히 인을 맺자, 그의 염력이 정화의 불꽃을 감싸며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화악, 화악!

그 순간, 정화의 불꽃이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화염의 온도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치솟으며 이준의 몸을 더욱 격렬하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화염 속에서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이준을 바라보던 이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오라버니…….”

꽉 깨문 입술에서 붉은 피가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이준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심장을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

지금까지 이준은 늘 혼자 수련을 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강해져 왔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지켜보니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가다간 정말 죽고 말겠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던 이은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금빛 화염을 뿜어내며 이준을 괴롭히고 있는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너……!”

이은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이준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화염 속으로 뛰어든 그녀는 절대로 떨어질 마음이 없다는 듯 더욱 세게 이준을 끌어안을 뿐이었다.

“은아!”

이은의 품에 가득 안긴 이준은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드는 것을 느꼈다.

“오라버니, 우리가 함께 해야만 정화의 불꽃을 흡수할 수 있어요…….”

이은이 울먹이며 이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녀의 말에 이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두 사람이 흘린 눈물은 모두 정화의 불꽃이 내뿜는 무시무시한 열기에 의해 순식간에 증발되고 말았다.

후웅-쾅!

새하얀 화염이 화가 난 용처럼 공간 전체를 마구 헤집고, 거대한 용암 호수에서 시시때때로 불기둥이 솟아나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용암 호수의 상공에는 백 미터가 넘는 분홍색 화염공이 끊임없이 파멸의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거대한 화염 구체 속에는 이준과 이은이 서로를 강하게 끌어안은 채 뒤엉켜있었고, 금색과 자갈색 화염이 서로를 휘감으며 몸속으로 파고드는 정화의 불꽃을 막아냈다.

이은의 힘이 더해지며 이준의 낯빛도 처음보다 훨씬 좋아졌다. 죽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망가진 몸은 별의 불꽃의 힘을 빌어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이모든 것은 그가 혼자 받고 있던 뜨거운 에너지를 이은이 함께 견뎌준 덕분이었다.

그렇게 정화의 불꽃이 방출하던 에너지가 마침내 두 사람의 몸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하자, 이은과 이준의 기운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화염공은 마치 정화세계에 나타난 분홍빛 태양처럼 허공에서 뜨거운 화염을 내뿜었다.

두 사람은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두 눈을 꼭 감은 채 계속해서 화염을 뿜어냈다.

이준은 강한 정신력과 이은의 도움으로 정화의 불꽃의 본체를 천천히 흡수해 나갔다. 속도는 느렸지만 반격할 힘조차 없던 처음과 비교하면 적어도 지금은 희망이 보였다.

손톱만한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이 공간에서 움직이는 유일한 것은 용암호수에서 한 번씩 솟구치는 거대한 불기둥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금색, 자갈색, 그리고 분홍색이 섞인 불의 고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 가지 색깔이 섞인 화염 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분홍색의 화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금색과 자갈색 화염이 자신들의 영역을 천천히 넓혀나갔다.

또다시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불의 고리가 강하게 흔들리며 세 화염이 완벽하게 동일한 비율로 나뉘었다.

화염속에 갇힌 이준이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인결을 맺자, 하늘에 두터운 구름이 생겨나며 용암 호수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이준은 품속에서 깊이 잠든 이은을 바라보며 빙긋 웃음을 지은 뒤 다시 한번 인결을 만들었다.

그러자 엄청난 에너지가 그의 혈관, 근육, 뼈, 세포 구석 마디마디를 헤집으며 몸 전체를 에너지로 가득 채웠다.

이준이 고개를 숙여 이은의 입술에 입을 맞추자, 폭풍처럼 거센 에너지가 파도처럼 그녀의 몸속으로 쏟아졌다.

쏴아아!

이준의 몸을 지나 이은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던 에너지 중 남은 에너지는 다시 이준의 몸으로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이준의 몸으로 돌아온 에너지는 전보다 훨씬 순수하게 변해있었으며, 조금 전까지 없었던 다른 기운이 섞여 있었다. 그 안에 섞여 있는 것은 바로 이은이 가진 고족의 불꽃인 제왕의 금빛 화염이었다.

에너지는 이준과 이은의 몸속에서 완벽하게 순환하며 두 사람의 몸 구석구석을 씻어냈고, 두 사람의 기운은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쩍쩍-!

정화의 불꽃이 힘을 잃어감에 따라 거대한 화염 공도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그 안에 있던 이준과 이은의 주위에 금빛과 분홍색의 수정이 나타났다.

* * *

중주(中州).

정화의 불꽃이 세상에 나타난 뒤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날 있었던 엄청난 사건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중주 전역에 전해지고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이라는 시간동안 중주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정화의 불꽃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혼전(魂殿)은 천부연맹에 소속된 도시 중 삼분의 일을 공격했다.

당연히 천부연맹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고, 천부연맹이 반격을 시작하며 두 세력 간의 전쟁은 갈수록 격화 되었다.

하지만 혼족은 암암리에 몇몇 강자들을 파견할 뿐, 두 세력의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도 약로는 정화의 불꽃이 출몰했던 곳으로 계속해서 강자들을 파견해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매번 사람을 파견해도 돌아오는 건 깊은 실망뿐이었다.

1년 동안 그곳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람의 손에 새겨진 용의 각인이 아니었다면 이준과 이은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시선이 혼전과 천부연맹에 쏠려있던 사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소식이 대륙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8대 세력 중 하나인 석족(石族)이 영족(靈族)에 이어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