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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52화 (752/818)

752화. 분리

정화 세계 안의 공간은 이미 새하얀 화염으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작열하는 화염이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열기에 정화세계는 5성 투성 강자조차 버틸 수 없는 불지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은은 천지의 불꽃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제왕의 불꽃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기에 이곳에서도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에 의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이은의 시선이 저 멀리 불바다의 중심으로 향했다. 불바다의 중심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을 머금은 불연꽃이 계속해서 붉은 색과 흰색으로 번갈아 물들며 사방으로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불연꽃과 멀지 않은 곳에는 ‘이준’이 여전히 뒷짐을 진 채 서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낯선 기운은 그가 아니라 바로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희미한 형체에게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우웅!

잠시 후, 회전하던 불연꽃이 하얀색으로 변하며 그대로 자리에 멈춰 섰다.

연꽃잎 위에는 사람의 혈관처럼 가느다란 붉은 선이 가득했다. 이따금씩 반짝거리는 붉은 빛에 이은은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 지는 것을 느꼈다.

“널 처음 만났을 때, 네 몸은 아기처럼 순수했지. 그 이후 내가 너에게 영기를 불어넣어 영혼을 가지도록 만들어줬다. 하지만 지금까지 네가 걸어온 길은 너무나도 실망스럽구나.”

이준의 몸을 지배한 정화성자가 불연꽃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 놈이 뭔데 내가 갈 길을 정한단 말이더냐!”

연꽃 주위에서 빛이 반짝거리더니 정화의 불꽃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전해졌다.

“난 그저 네가 스스로를 소멸시켜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이제 내 손으로 이 모든 걸 끝내야겠구나.”

정화 연꽃을 바라보던 정화성자가 인결을 바꾸자, 거대한 화염진이 중심을 향해 빠르게 모여들며 연꽃을 가두었다.

“내가 네게 줬던 영기와 기억을 다시 가져가겠다. 이제 넌 내가 널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정화성자! 그것이 그리 쉽게 될 것 같더냐!”

다시 한 번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연꽃이 빠르게 회전하며 화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장막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손으로 키운 너를 차마 죽이지 못해 널 봉인해 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네 마음속에 가득한 분노와 살의를 없앨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내 생각이 잘못되었던 것 같구나.”

정화성자가 미친 듯이 발버둥치는 정화의 불꽃을 보며 말했다. 곧이어 수만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진이 바깥부터 빠르게 붕괴되며 정화의 불꽃을 더욱 강하게 옥죄었다.

쾅쾅쾅!

위기를 느낀 정화의 불꽃은 미친 듯이 빛 장막을 공격했고,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연천진법, 분리!”

이준에게 빙의된 정화성자가 인을 맺자, 거대한 화염장막이 단단한 사슬로 변해 정화의 불꽃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으아악!”

그 순간, 연꽃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불꽃을 폭발시켜도 그를 옭아 맨 화염 사슬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연천진법은 수천 년 동안 네 에너지를 흡수했다. 완전히 폭발하면 너도 버티지 못할 것이야. 그러니 순순히 나와 함께 가자.”

정화성자가 정화의 불꽃의 기억과 영기가 담긴 핏빛 기운을 본체에서 조금씩 끄집어내며 말했다.

“웃기는 소리! 기억도, 영기도 없어지면 앞으로 정화의 불꽃이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게 날 죽이겠다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이냐? 네 놈이 날 만들어 놓고 이제는 나를 죽이겠다고? 네 놈이 대체 뭔데 나를 죽이겠다는 것이냐!”

머릿속이 서서히 비어가는 것을 느낀 정화의 불꽃은 미친 사람처럼 발광을 해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봉인이 풀리는 순간 네 놈은 온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겠지. 모두 나로 인해 시작된 일이니 내가 끝내겠다.”

정화성자는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고 손을 들었다. 그의 손끝에서 다시 한 번 인결이 만들어지자 화염 사슬이 연꽃을 더욱 단단히 조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악!”

그 순간 꽃잎에서 짙은 핏빛 안개가 흘러나오며 연꽃 위에 새하얀 형체 하나가 솟아났다.

자신의 본체가 연꽃에서 뽑혀나가기 시작하자 다급해진 정화의 불꽃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주인님, 주인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화의 불꽃을 연꽃에서 뽑아내는데 성공한 정화성자는 한숨을 내쉬며 이준의 몸에서 벗어나 정화의 불꽃 앞으로 날아갔다.

“이준 오라버니!”

정화성자가 이준의 몸에서 빠져 나가기 무섭게 이은이 황급히 이준에게 날아가 그를 붙잡았다.

“바보야! 왜 안 갔어?”

이준은 정화성자에게 영혼을 지배받았던 것뿐이었기 때문에 정화성자가 몸을 빠져나가는 순간 곧바로 정신이 돌아왔다. 게다가 그는 조금 전 이은이 고남해와 약로를 밀어내는 장면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이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이은은 막무가내로 그의 품을 파고들며 뚝뚝 눈물을 떨궜다.

“난 널 미워하지 않는다. 네가 결국 날 집어삼켰지만, 그래도 난 널 원망하지 않았다. 너는 일평생 제자도, 자식도 없이 살아온 나에게 있어 자식과 마찬가지였다.”

정화성자가 정화의 불꽃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왜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냐!”

정화의 불꽃이 고개를 치켜들고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정화성자를 노려보며 외쳤다.

곧이어 놈의 몸에서 핏빛 기운이 폭발하더니 정화성자의 몸을 빠르게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준과 이은의 낯빛이 빠르게 변했다.

“그 날과 똑같구나.”

정화성자가 슬픈 눈으로 한숨을 쉬며 주먹을 쥐었다.

“자식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으려 하는데 그것을 내버려두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적어도 저승가는 길이 외롭게 하지는 않으마.”

정화성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거대한 화염진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쾅!!

이준은 뼈날개를 펼쳐 이은을 붙잡고 빠르게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폭풍이 천지를 휩쓸고, 용암 호수가 빠르게 갈라지며 사방으로 불꽃이 튀어 올랐다.

* * *

거대한 에너지 폭풍이 가라앉고 난 뒤, 이준과 이은은 황급히 폭발이 일어난 지점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정화성자와 정화의 불꽃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텅 빈 공간만 남아있었다.

“정화의 불꽃 본체는…….”

이준이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이곳까지 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정화의 불꽃이 사라졌단 말인가?

“망할!”

정화의 불꽃을 위해 십 년 동안 고대지도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고, 3년을 기다려 이곳에 왔다. 그런데 이런 허무한 결말이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준 오라버니, 저길 봐요!”

그때, 이은이 용암 호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녀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는 순간, 이준의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용암바다 위에는 분홍빛 혈관이 가득한 하얀색 연꽃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용암바다 속 에너지가 전부 연꽃 속으로 흡수되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화의 불꽃…….”

이준이 흥분으로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게다가 지금 그의 눈앞에 놓인 정화의 불꽃은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흉포한 기운이 완전히 사라져 두 사람이 가까이 가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까 전의 그 정화의 불꽃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이은이 의아하다는 듯 불연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화성자가 기억과 영기를 모두 제거하면서 막 태어난 아기와 같은 상태가 된 거야.”

사실 정화성자가 이 흉포한 기운을 빼내주지 않았더라면 이준의 실력으로는 정화의 불꽃을 절대로 흡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투제에 가까운 강자였던 정화성자마저 집어삼킨 정화의 불꽃을 고작 2성 투성에 불과한 이준이 어떻게 길들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화성자의 잔영과 포악한 정화의 불꽃은 이미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지금 그의 눈앞에 놓인 것은 아기처럼 순수한 정화의 불꽃이었다.

“정화의 불꽃이 가진 능력에도 영향을 준 건 아니겠죠?”

이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천지의 불꽃이 진정한 보물인 이유는 바로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능력을 상실한다면 그저 다른 불꽃보다 조금 더 온도가 높은 불꽃에 불과했다.

“정화성자가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겠어. 원래 정화의 불꽃이 아니었던 것들을 다시 가져간 것뿐이지.”

이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정화의 불꽃은 순수 그 자체야.”

“정화성자가 우릴 정말 크게 도와줬네요.”

이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 여정은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정화성자가 직접 나타나 정화의 불꽃을 이토록 순수한 상태로 만들어 주리라고는 감히 그 누가 상상했겠는가.

“이제 어떡하죠? 공간통로도 이미 사라져서 우리 힘으론 열 수도 없어요.”

이은이 말했다. 정화성자가 만든 이 공간엔 아직 봉인이 남아있어 두 사람의 힘으로는 밖으로 나갈 도리가 없었다.

그녀의 말에 이준은 턱을 문지르며 불연꽃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나갈 수 없다면 여기서 정화의 불꽃을 흡수해 실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지.”

“할 수 있겠어요?”

이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제 아무리 순수한 상태로 돌아갔다 해도 정화의 불꽃은 모든 불꽃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절대로 쉽게 흡수할 수 있는 불꽃이 아니었다.

“성공 확률은 반도 안 돼.”

이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정화의 불꽃을 손에 넣을 생각에 가슴이 뛰었지만, 막상 그 위력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나니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겼다. 게다가 정화의 불꽃을 완벽히 연소시킬 자신이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하지만 이곳이야말로 정화의 불꽃을 흡수하기 가장 좋은 곳이야. 이 불꽃을 밖으로 들고 나간다면 혼족 놈들이 절대 우릴 가만두지 않을거야.”

이준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이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 마. 스승님은 보람이 나와 연결된 용의 각인으로 내 생사를 알 수 있으니 천부 연맹 쪽에서도 우리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거야.”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이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 대로였다. 바깥으로 나가면 셀 수 없이 많은 강자들이 이 불꽃을 손에 넣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들 테니 불꽃을 손에 넣었다 해도 흡수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 생각이에요?”

“하하. 아직 급하지 않아. 정화의 불꽃을 흡수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니 먼저 몇 가지 물건을 좀 준비해야겠어.”

* * *

한편, 정화 세계 밖에서는 공간 통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정화의 불꽃이 내뿜던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며 완전히 녹아내렸던 주위의 돌과 모래들이 차갑게 식으면서 새하얀 사막이 만들어져 있었다.

여러 사람들은 통로가 사라졌음에도 차마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텅 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일단 공간통로가 사라지고 나니 어떤 방법을 써도 그 공간이 다시 나타나기는커녕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준과 이은은 어찌 아직도 안 나오는 것이오?”

화운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아가씨…….”

이은을 정화 세계에 두고 나온 고남해의 얼굴은 완전히 흙빛이 되어 있었다.

“장로님,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은이 이준과 있겠다 자처한 것 아닙니까. 붙잡았다 해도 소용없었을 겁니다.”

고청양이 한숨을 내쉬며 그를 위로했다.

“이준이 곁에 있으니 이은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만에 하나 있으면 어찌하느냐?”

고남해가 주먹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지요.”

그때, 두 사람의 곁에 있던 약로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정화세계는 이미 닫혔고, 그들이 들어갈 방법은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조용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약로의 말에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큭큭, 고족이 꽤 큰 걸 잃었나보군요. 결국 정화의 불꽃을 얻지는 못했지만 골칫덩어리 두 명이 없어졌으니 나쁘지는 않은 결과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약로를 지켜보던 혼전(魂殿) 부전주가 말했다.

“이준의 몸에 정화성자의 잔영이 있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자신할 수도 없는 일이지.”

전주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녀석은 번번이 우리 혼족을 물 먹여 왔으니……. 죽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옆에 있던 혼풍 역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곳에서 며칠만 기다려보지.”

혼모 노인의 말에 남은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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