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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51화 (751/818)

751화. 정화성자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이은이 이준을 데리고 달아나려는 찰나, 이준이 머리를 움켜잡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라버니, 왜 그래요?”

“으윽, 아니야……. 우리도 달아나자…….”

이준이 이를 악문 채 힘겹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파동이 끊임없이 일렁이며 정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하하. 그러기엔 늦었다. 너희는 모두 나의 화노가 될 운명이야!”

하지만 이준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거대한 화염진에서 새하얀 불꽃이 폭발하며 중주로 통하는 통로를 파괴해버렸다.

탈출에 실패한 혼모는 새하얗게 질린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을 뒤따라오던 혼족의 강자들을 바라봤다.

“어찌해야 하겠나?”

뒤를 따라오던 전주가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겠나? 정화성자가 만든 이 정화세계를 강제로 뚫고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네…….”

“그럼 그냥 죽기를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전주의 말에 혼모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가 연금탑 선조를 바라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함께 하는 게 어떻겠나? 네 놈도 혼자선 저 놈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하늘 쪽을 맡을 테니 너는 땅을 맡아라!”

혼모와 말다툼할 시간조차 없다고 판단한 연금탑 선조는 곧바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다!”

“이신, 용족의 아가씨, 고남해, 너희 네 사람은 나와 함께 하늘로 간다!”

연금탑 선조가 고개를 돌려 이신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예!”

공간 통로도 이미 없어진 마당에 다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 화노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네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 뒤 빠르게 연금탑 선조의 곁으로 날아왔다.

전주에게 뒤통수를 맞았던 다른 4성 투성 강자들도 원한을 잠시 가슴에 묻어두고 혼모에게 가세했다.

“푸하하! 정화 성자 놈이 설치한 대진을 너희 같은 것들이 깰 수 있다면, 내가 이곳에 수천 년 동안 갇혀있었을 것 같으냐!”

정화의 불꽃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소리를 지르며 인결을 맺자, 하늘과 땅을 뒤덮은 두 개의 거대한 화염진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두 대진이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천지의 에너지가 대폭발을 일으켰다. 화염진이 제대로 작동하기도 전에 반투성 강자들의 낯빛이 빠르게 창백해지며 그들의 입에서 새빨간 선혈이 터져 나왔다.

“연천진법! 나의 화노가 되어라!”

다음 순간, 정화의 불꽃의 몸에서 솟구친 새하얀 화염이 화염진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었다.

쾅!

굉음과 함께 천지가 강하게 흔들리며 새하얀 빛줄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 백 미터 크기의 빛기둥으로 변화했다.

“잘 가라!”

정화의 불꽃의 표정은 악마처럼 사악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강하게 찌르자 천지에 자리 잡은 두 화염진에서 새하얀 빛이 폭발하며 각각 연금탑의 선조와 혼모를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연금탑 선조의 손에서 청색과 금색의 빛이 터져 나오며 거대한 광단으로 변했고, 진한 약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의 뒤편에 있던 이준 일행 역시 황급히 염력을 폭발시켜 새하얀 빛기둥을 막아냈다.

콰앙!

귀가 먹은 듯한 굉음이 터져 나오며 용암 호수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하하! 제법이구나!”

하지만 정화의 불꽃이 거칠게 한 번 더 두 손을 휘두르자, 연금탑 선조와 혼모가 만들어낸 염력 보호막이 산산이 부서지며 새하얀 화염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네 놈들 따위가 날 어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수천 년간 정화세계에 갇혀있다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게 된 정화의 불꽃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응?”

하지만 그의 웃음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빛기둥이 방어막을 파괴한 지점에서 여러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살아있다고?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잠시 후, 새하얀 화염이 조금씩 옅어지면서 신비한 구체 하나가 정화의 불꽃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구체 안에는 이준, 연금탑 선조, 혼모 등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쳐보였지만,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정화의 불꽃뿐만 아니라 연금탑의 선조 역시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엷은 빛의 장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빛 장막의 두께는 부드러운 천만큼이나 얇았지만, 정화 성자가 만든 화염진의 공격을 받아내고도 흠집 하나 나있지 않았다.

“이건…….”

갑자기 이준이 만든 보호막 속으로 빨려 들어온 다른 강자들 역시 귀신에 홀린듯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정적을 뚫고 이은의 놀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준이 정신을 잃은 것처럼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은은하게 새하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는데, 그 빛이 천천히 모여 반투명한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정화의 불꽃?!”

갑자기 나타난 반투명한 형체를 본 사람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가 하늘에 있는 정화의 불꽃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정화의 불꽃이 아니다! 정화성자다!”

놀란 눈으로 이준 옆에 서있는 그를 바라보던 연금탑의 선조가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장막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수천 년 전에 죽은 최상급 강자가 어떻게 이준의 몸에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이준의 몸이 강하게 떨리더니 감긴 눈이 스르르 떠졌다. 하지만 새까맣던 그의 두 눈동자는 어느새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모두가 이준을 바라보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약로의 머릿속에 고대 지도를 완성했을 때 이준의 머릿속으로 들어간 광단의 모습이 스쳐갔다.

“어쩌죠?”

이은이 조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화성자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준의 몸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당황하지 말거라. 우리를 구해줬으니 나쁜 마음을 먹은 건 아닐 게다. 그리고 저 자의 목표는 아마도 정화의 불꽃일 것이다.”

연금탑 선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 어떻게 정화성자를 부른 거지? 게다가 영혼체조차도 아닌데 이런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니……. 과연 정화성자의 명성이 헛것이 아니었구나.’

이준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혼모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정신을 잃었던 이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새하얀 빛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정화성자에게 씌인 이준과 정화의 불꽃의 눈이 마주쳤다.

“정화성자?! 어떻게……어떻게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냐!”

이준에게 빙의된 정화성자를 발견한 정화의 불꽃이 분노로 이를 갈며 외쳤다.

“쯧쯧. 수천 년이 지나도 네 포악한 기질은 사라지지 않았구나.”

정화성자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정화성자, 이 배은망덕한 놈! 내가 없었으면 네가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을 것 같더냐! 그런데 은혜도 모르고 날 이딴 곳에 봉인해?”

“너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면 세상은 큰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너를 풀어줄 수 있단 말이냐?”

정화성자에게 씌인 이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허, 정화 성자의 잔영 따위가 감히 내 앞에서 그런 시건방진 말을 내뱉다니! 네 놈이 아직도 그때 그 대단한 정화성자라 생각하는 것이냐?

정화의 불꽃이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팔을 휘두르자, 거대한 화염진이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네가 직접 설치한 이 화염진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느껴보거라!”

말을 마치기 무섭게 파멸의 힘이 담긴 새하얀 빛이 이준이 있는 곳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그 순간 사람들의 낯빛이 빠르게 변했다. 저 빛기둥을 맞는 순간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쉭!

하지만 유성처럼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빛기둥을 바라보던 이준이 가볍게 손을 들자, 그들을 향해 날아오던 빛기둥이 그대로 자리에 멈춰버렸다.

빛기둥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파멸의 힘에 자리에 있던 강자들은 모두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연천진법은 내가 만든 것이니 너보다는 내가 더 잘 알지 않겠느냐?”

정화 성자의 잔영에 휩싸인 이준이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정화의 불꽃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썩을 놈!”

정화의 불꽃의 얼굴은 완전히 흙빛이 되어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연천진법의 통제권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콰르릉!

거대한 화염진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새하얀 화염이 튀어 나와 정화의 불꽃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화염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연천진법의 통제권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네 이놈! 정화성자!”

정화의 불꽃의 눈에 벌겋게 핏대가 섰다. 정화성자가 연천진법을 조종하는 이상 그는 절대로 봉인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파멸의 일격!”

정화의 불꽃의 몸이 빠르게 팽창하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화염이 되어 천지로 퍼져나가며 천지에 떠다니던 모든 에너지가 빠르게 증발했다.

“아악!”

본체의 힘이 완전히 폭발하자 반투성 강자 하나가 고통스런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속에 있던 염력이 깡그리 메마르기 시작했다.

쿵!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강자의 몸이 새까만 잿더미가 되어 용암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온 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쉭!

그때, 이준이 갑자기 소맷자락을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수만 미터나 되는 거대한 화염진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공간통로 하나가 생겨났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라. 정화의 불꽃이 폭발한다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준의 무덤덤한 말에 자리에 있던 강자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간통로를 향해 앞 다투어 날아갔다.

“아가씨, 우리도 가야 합니다!”

고남해가 이은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오라버니가…….”

이준을 바라보는 이은의 눈빛이 빠르게 흔들렸다. 정화성자에게 완전히 지배된 이준을 이곳에 두고 어떻게 자신만 달아날 수 있단 말인가?

“먼저 가거라. 걱정해봤자 소용없다. 이곳에 있어봤자 이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없지 않느냐. 정화성자가 그의 몸을 빌렸으니 아무 일 없을게다.”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던 약로가 착잡한 표정으로 이은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은은 입술을 꽉 깨문 채 한참을 망설였다. 이런 불지옥 속에 이준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탈출하다니…….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새하얀 화염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잠시 후, 새하얀 화염의 중심에서 분홍빛 화염이 서서히 생겨나더니 붉은 연꽃으로 변해 하늘을 서서히 맴돌았다.

연꽃의 등장과 동시에 고남해마저 염력이 빠른 속도로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가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고남해는 이은의 손을 붙잡고 황급히 공간통로로 날아갔다. 뒤에 있던 약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정화성자에게 빙의된 자신의 제자를 다시 한 번 바라보곤 그들의 뒤를 쫓아 통로로 몸을 날렸다.

“장로님. 돌아가면 아버지께 멋대로 구는 딸을 부디 용서해달라고 전해주세요!”

하지만 공간 통로에 막 발을 들이려는 순간, 이은이 고남해와 약로의 등을 떠밀며 반대편으로 화살처럼 튕겨져 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이은의 돌발 행동에 약로와 고남해는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공간 통로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자리에 있던 모든 강자들이 정화 세계를 벗어나자, 이은의 몸에서 눈부신 금빛 화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이번엔 제가 오라버니 곁을 지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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