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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49화 (749/818)

749화. 이신

“이준! 정화의 불꽃을 내놔라!”

귓가에 울려 퍼지는 살기등등한 목소리에 이준의 등골에서 주르륵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전주? 벌써 회복했단 말이야?’

고개를 돌리자, 성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달려드는 전주의 모습이 이준의 시야에 들어왔다.

갑작스런 공격이었지만 이준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지금껏 몇 번이나 목숨을 건 아수라장을 헤쳐 나왔는데, 겨우 이런 일로 당황할 이준이 아니었다.

이에 이준은 뼈날개를 펼쳐 뒤쪽으로 몸을 날리는 동시에 빠르게 불 연꽃 화련(火蓮)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주는 문자 그대로 번개처럼 이준을 향해 날아왔지만, 그를 바라보는 이준의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냉정했다.

“받아라!”

검은 염력으로 뒤덮인 전주의 팔이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순간, 이준의 몸이 화살처럼 위쪽으로 솟구치며 자그마한 빛덩어리 하나가 전주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죽어라!”

“이 놈이!”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전주는 욕설을 내뱉으며 빠르게 뒤쪽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가 몸을 돌리기도 전에 연꽃이 빠르게 부풀어 오르며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쾅!

두 귀가 모두 멀어버릴 만큼 커다란 굉음이 하늘 전체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방금 전 울려 퍼진 폭음이 모두 거짓말인 것처럼 세상이 고요해지고, 하늘과 용암 호수를 잇는 거대한 화염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자리에 남아있던 투성 강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이것이 정말 인간이 만들어 낸 광경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혼풍 역시 굳은 얼굴로 이준이 만들어 낸 재앙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 소족장님, 설마, 전주님이 어떻게 되시지는 않겠지요?”

부전주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융합된 화염의 위력은 강력하지만 이준의 실력으로 전주님을 죽이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혼풍이 무덤덤한 말투로 답했다.

“그보다 저희는 기회를 노려 정화의 불꽃을 빼앗아 와야 합니다.”

이어지는 혼풍의 말에 부전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거대한 화염폭풍은 십 여분 정도 하늘을 헤집고 나서야 서서히 사라졌다. 폭풍이 사라지고 나자 용암바다 위에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가 나타났다.

쉭-!

곧이어 멀지 않은 곳에서 낯빛이 살짝 창백해진 이준과 보람이 나타났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화련을 폭발시키면 어떻게 해! 저 안에 들어갔으면 너도 잿더미가 되었을 거야.”

보람이 이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준은 말없이 화염폭풍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한 사람이 허공을 밟으며 서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역시 안 죽었어.”

이준은 실망한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과연……. 실력이 대단하구나.”

뿌연 연기를 뚫고 걸어 나온 전주의 입가에는 새빨간 혈흔이 낭자해 있었고, 낯빛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쉭쉭!

전주가 아직 살아있는 것을 발견한 이은과 약로 등은 재빨리 이준을 중심으로 원형의 진을 만든 채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끌끌. 설마 조금 전 공격으로 나를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섬뜩한 눈으로 이준을 노려보던 전주의 시선이 보람과 고남해에게 옮겨갔다.

그의 손이 번개처럼 기이한 인결을 맺자, 기운이 미친 듯이 폭등하며 순식간에 5성 투성의 벽을 돌파했다.

“5성 투성……?”

이준의 낯빛이 빠르게 일그러졌다. 지금 전주의 실력은 비술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증폭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힘을 감추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5성 투성? 혼족 놈들! 8대 세력 간의 협약을 무시하는 것이냐!”

고남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하, 난 그저 5성 투성 전반기에 살짝 걸친 것뿐이지, 아직 진짜 5성 투성이라 할 순 없다네. 그러니 협약을 어긴 것은 아니지.”

하지만 전주는 뻔뻔한 표정으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곧바로 이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화의 불꽃을 내놓아라.”

“꿈 깨시지!”

보람이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발을 내딛자, 눈부신 금빛이 거대한 용이 되어 전주를 덮쳤다.

“어림없지!”

하지만 전주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허공을 한번 누른 것만으로 거대한 용은 그에게 닿지도 못한 채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윽-!”

그 순간, 보람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쯧쯧, 용족이 아무리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실력차가 이렇게 나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정화의 불꽃을 넘기면 조금 전까지 협력했던 정을 봐서 조용히 보내주마. 곱게 물러나거라.”

전주가 뒷짐을 진 채 싸늘하게 이준 일행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의 뒤에는 혼풍과 부전주가 이미 정화의 불꽃을 손에 넣은 듯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이준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전주가 피식 웃으며 가볍게 발을 굴렀다.

“여우처럼 교활한 놈이란 건 예전부터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하늘이 뒤집어져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주의 몸이 귀신처럼 사람들을 통과해 그대로 이준의 앞에 나타났다.

“죽어라!”

“흥, 어딜 감히 이족의 후손에게 손을 대느냐!”

그러나 전주의 손이 이준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드는 찰나, 텅 빈 허공을 뚫고 바위처럼 단단한 주먹이 날아왔다.

이준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던 전주의 주먹이 허공에 그대로 멈춰 섰다.

이준의 뒤에는 평범한 인상의 사내 하나가 서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넌 누구냐!”

전주가 어두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지금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중주 전체에서 이름을 널리 떨쳤던 이족의 핏빛 도끼, 이신이었다. 그러나 이신이 살아있던 것은 너무나도 오래 전이었던 탓에 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이족의 핏빛도끼, 이신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이준이 환히 웃으며 자신의 선조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전주를 노려봤다.

“저 놈도 혼족의 사람이냐?”

이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죽여야지.”

그의 짤막한 한마디에 이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생각해보니 여태까지 그의 진짜 실력을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이신은 환상 속에 빠져 있을 때도 보람과 고남해를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이준은 그의 실력이 4성 최고급, 혹은 5성 전반기 정도는 될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이신의 말을 듣는 순간, 이준은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족 사람인가?”

전주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이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

“이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랜데, 어떻게 투성 강자가 살아있는 건가?!”

이신의 모습을 보니 이준처럼 몇 십 년 만에 투성이 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족에 투성 강자가 남아있었다면 어찌 혼족이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이신은 전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마치 계단을 오르듯 그의 기운도 점점 상승했다.

4성 중급, 4성 최고급, 5성 중급…….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이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기운은 눈 깜짝할 사이에 4성을 완전히 벗어나 혼전 전주보다 강한 5성 중급 투성이 되어 있었다.

“네 놈은 누구냐!”

이쯤 되니 전주의 낯빛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뒤에 있던 혼풍과 부전주 역시 갑자기 일어난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선배님이 정화세계의 환상 속에서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실력이 이렇게나 강했기 때문이었군.”

이준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아직도 재잘거리는구나!”

전주의 외침에 이신은 눈썹을 찌푸리며 손으로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거대한 핏빛 도끼의 섬뜩한 날이 허공을 가르며 혼족의 세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다.

“후퇴하라!”

황급히 혼풍과 부전주를 후퇴시킨 전주가 입에서 검은 빛덩이를 내뱉었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검은 광단 안에서는 수많은 영혼들이 처절한 비명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쉭!

그때, 거대한 도끼가 나타나 검은 광단을 두 개로 갈라버렸다.

“푸흡!”

영혼이 가득 담긴 검은 광단이 부서지는 순간, 전주의 입에서 새빨간 피가 터져 나왔다. 당황한 전주는 창백해진 얼굴로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딜 가느냐!”

이신이 다시 거대한 도끼를 힘차게 휘두르자, 피처럼 새빨간 빛줄기 세 개가 빠르게 전주의 등 뒤로 날아들었다.

“혼장술(魂葬術)!”

다급해진 전주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영혼을 소환했다.

우웅!

소환된 영혼은 곧바로 자신의 두 팔을 폭발시켰고, 터져나간 두 팔에서 검은 안개가 솟아나 하늘 전체를 빼곡하게 가렸다. 하늘 전체를 뒤덮은 검은 안개에서는 날카로운 영혼의 파동이 터져 나왔다.

“가소롭구나!”

하지만 이신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검은 도끼를 휘둘러 검은 안개를 갈라버렸고, 새빨간 섬광이 빠르게 전주의 몸을 강타했다.

“푸흡!”

그 순간, 전주의 입에서 한 번 더 붉은 선혈이 터져 나오며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검은 안개가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구름이 사라지고 시야가 트이자 그 안에 있던 전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피범벅이 된 채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그의 어깨부터 복부에 걸쳐 커다란 도끼 자국이 나 있었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전주의 모습에 이신은 조금 놀란 듯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으으…….”

전주는 싸늘한 눈빛으로 이신을 노려보다 황급히 옥병을 꺼내 그 안에 들어있는 약물을 상처 부위에 뿌렸다. 그러자 약물이 닿은 부위에서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곧이어 전주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검은색 빛 장막이 감옥처럼 그와 이신을 둘러쌌다.

“제법이구나……. 만일에 대비해 놓길 잘했어.”

전주의 말에 빛 장막 밖에 있던 이준의 낯빛이 빠르게 바뀌었다.

“허, 혼멸생. 실망스럽구나.”

그때, 허공에서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준은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곳에서 고급 반투성 밖에 되지 않는 노인 한 명이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얼굴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기다란 눈썹이 아래로 축 쳐졌다.

노인의 얼굴이 변화를 끝마치자, 고남해를 비롯해 8대 세력의 다른 장로들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혼모! 혼족 놈들! 처음부터 협약을 지킬 마음이 없었구나!”

“약조라……. 정화의 불꽃 앞에서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혼모라 불린 노인은 빙긋 웃으며 이준과 함께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텅 빈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도 나왔으니 소연금탑의 늙은이도 이제 그만 나오지 그러시오?”

혼모의 말에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봤다. 정말 이곳에 그들이 모르는 강자가 더 있었단 말인가?

‘소연금탑의 늙은이?’

이준 역시 혼모가 바라본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혼모가 말한 사람이 그 신비한 소연금탑의 선조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준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휴, 혼족 놈들이 일을 꾸밀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대놓고 8대 세력과의 협약을 어길 줄이야. 정말 간악한 놈들이구나.”

모든 시선이 쏠린 가운데, 조용하던 공간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나이가 지긋한 목소리와 함께 청색 소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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