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8화. 불꽃튀는 싸움
정화의 불꽃은 분노한 사자처럼 계속해서 울부짖으며 난동을 부렸지만, 봉인을 깨뜨리기는커녕 점점 더 힘을 잃고 작아지고 있었다.
“천라의 봉인!”
전주가 자신의 피로 인결을 맺으며 마지막 주문을 크게 외쳤다.
그 순간, 천지를 뒤덮었던 검은색 빛기둥이 눈 깜짝할 새에 신비한 빛을 내뿜는 작은 검은색 구슬로 변화했다.
“성공이야…….”
검은색 빛기둥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이준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전주의 동태를 살폈다. 온몸이 이미 혈흔과 상처로 가득한 것으로 보아 그 역시 이번 전투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 것이 분명했다.
“허허, 정화의 불꽃을 봉인하다니, 다들 고생하셨소!”
전주가 호탕하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전주의 입가에 돌연 서늘한 웃음이 번져 나갔다. 전주의 음산한 표정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스쳤다.
‘혼족 놈들이 무언가 수작을 부렸구나!’
곧이어 사람들이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검은 색 구체가 전주를 향해 날아갔다.
“고맙소. 그럼 정화의 불꽃은 우리가 접수하도록 하지.”
“이 개자식이!”
그러나 전주가 손을 내미는 순간, 돌연 검은 구체가 살아있는 것 마냥 휙 방향을 틀어 보람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너!”
분노한 전주가 맹수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방금 전 너무 많은 염력을 소모한 탓인지 그는 직접 손을 쓰지 못하고 혼풍과 부전주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가만히 서서 뭐하는 거야? 움직여!”
그 순간, 이준이 기다렸다는 듯 청홍색 날개를 펼쳐 검은 구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정화의 불꽃과의 싸움이 끝나는 순간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이놈! 혼족의 물건에 손을 대다니! 죽고 싶구나!”
이준이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부전주 역시 정화의 불꽃이 봉인된 검은 구체를 향해 번개처럼 돌진했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강풍을 느낀 이준은 곧바로 주먹을 펴 손가락을 내밀었다.
“황천의 손가락!”
다음 순간, 허공 위에 거대한 손가락이 나타나며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허공을 꿰뚫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게 정화의 불꽃의 본체야. 빨리 잡아!”
누군가의 외침에 자리에 남아있던 투성 강자들이 앞 다투어 검은 구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쉭!
“하하, 본체는 나의 것이다!”
황색 의복을 입은 고급 반투성 하나가 검은 구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사방에서 형형색색의 염력이 비처럼 쏟아지며 그의 몸을 마구 강타했다. 결국 섣불리 정화의 불꽃에 손을 대려던 반투성 노인은 삽시간에 넝마가 되어 용암 호수 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이준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보람과 고남해를 향해 연금비약이 담긴 약병을 던졌다.
“먹어요, 빨리!”
각 세력의 주요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4성 투성 강자들은 모두 정화의 불꽃을 봉인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직 정화의 불꽃 쟁탈전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이 나서는 순간부터가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한 진정한 승부라고 할 수 있었다.
연금비약을 받은 보람과 고남해는 빠르게 그것을 입속에 털어넣고 염력을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혼란의 전장을 바라보던 이준은 다시 뼈날개를 펼쳐 빛처럼 빠른 속도로 검은 구체를 향해 날아갔다.
이준이 검은 구체를 향해 움직이기 무섭게 영혼의 궁전의 부전주가 귀신처럼 날아와 주먹을 내질렀다. 마치 줄곧 이준의 행동만 주시하고 있던 사람 같은 행동이었다.
“저 녀석을 잡아!”
부전주가 자신의 앞길을 막자, 이준이 곧바로 손을 휘두르며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준의 명령을 받은 것은 조금 전 그가 정화의 불꽃에게서 빼앗은 화노였다. 화노의 주위에는 어느 새 이은과 고청양, 약로가 나타나 있었다.
쉭!
네 개의 그림자가 3성 고급 투성인 부전주를 에워싸자, 기회를 잡은 이준은 다시 검은 구체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그가 뼈날개를 펄럭이기도 전에 이번에는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사내 하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혼풍…….”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이준의 낯빛이 차갑게 굳었다.
“지금까지 내 물건을 뺏어간 자는 없었다.”
혼풍이 이준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오늘부로 한 명이 생기겠군!”
이준이 맹렬한 기세로 주먹을 내지르며 외쳤다.
화염에 휩싸인 이준의 주먹이 인정사정없이 혼풍의 얼굴을 후려쳤다.
“큭큭, 간지럽군.”
하지만 혼풍은 여전히 차갑게 웃으며 이준의 손을 휘감은 자갈색 화염을 바라볼 뿐이었다.
“천지의 불꽃을 융합하는데 성공했다지? 하지만 내 상대가 되기에는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말을 마친 혼풍이 오른손을 강하게 뻗어 이준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쾅!
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치며 하늘 위에 무시무시한 에너지 파동이 퍼져나갔다.
그들과 가까이 있던 반투성 강자들은 두 사람이 격돌하며 발생한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수십 미터나 뒤쪽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게 네 놈이 자랑하는 불꽃인가? 오늘 그것들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 알려주마!”
혼풍의 새카만 두 눈동자에 기이한 자흑빛 광채가 일렁이더니 그의 손바닥에서 온 천지를 뒤흔들듯한 거친 염력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이준은 자신의 불꽃이 혼풍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이게 뭐야.’
놀란 이준은 황급히 주먹을 거두어들인 뒤 힘차게 발을 굴러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상대의 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대로 맞붙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양검!”
“제왕의 권!”
“파멸의 주먹!”
“흑극 붕괴!”
이준이 연달아 매서운 공격을 퍼붓자, 혼풍 역시 물러서지 않고 혼족의 고급 무투기를 쏟아냈다.
“혼풍과 막상막하라니, 이준도 역시 대단한 녀석이야.”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전주가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혼풍의 실력은 2성 고급 투성에 불과했지만 그가 익힌 무투기들은 모두 혼족의 최고급 무투기로, 이미 3성 투성에게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제 고작 2급 초급 투성의 경지에 오른 이준이 그런 혼풍과 막상막하의 승부를 벌이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역시 저 놈을 빨리 죽여 없앴어야 하는데…….”
전주가 날카로운 눈으로 이준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네 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정화의 불꽃은 결국 우리의 손에 들어올 것이다.”
* * *
“황천의 손가락!”
“황천의 주먹!”
이준은 청홍빛 날개를 사용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혼풍의 머리 위로 날아가 두 개의 1격 무투기를 동시에 시전했다.
“소용없다!”
하지만 혼풍이 가볍게 손가락으로 허공을 누르자, 엄지손가락 두께의 자흑색 빛이 손가락을 떠나 이준의 무투기를 막아냈다.
두 공격이 충돌하는 순간, 예상했던 폭음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자흑색 빛덩이가 이준의 1격 무투기 두 개를 빠르게 갉아먹기 시작했다.
“또 먹힌 건가…….”
이준의 눈동자에 한기가 돌았다. 몇 번의 충돌을 통해 이준은 상대에게 만물을 흡수할 수 있는 신기한 힘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것도 천지의 불꽃 중에서도 한 손에 꼽는 위력을 가진 정화의 불꽃의 화염을 집어삼킬 정도로 강력한 힘 말이다.
“네가 가진 게 이것뿐이라면 이번 전쟁은 여기서 끝이겠군.”
혼풍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풍의 두 눈동자에 또다시 기이한 자흑색 광채가 맴돌기 시작하더니 빠른 속도로 그의 이마에 혼족의 족문이 떠올랐다. 족문을 해방하는 순간, 혼풍의 기운은 눈 깜짝할 새에 3성 투성까지 치솟았다.
이에 맞서 이준은 이족의 족문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영혼의 힘을 이용해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분신을 만들어냈다.
“영혼 분신이잖아…….”
영혼 분신이 나타나는 순간, 혼풍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준이 꺼내든 영혼 분신의 힘은 이준 본인의 힘과 거의 동일했다. 이 정도 수준의 영혼 분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이준의 영혼의 힘이 이미 하늘 단계 최상급 수준에 도달했다는 증거나 다름이 없었다.
“오륜이화법!”
이준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혼풍을 향해 피식 웃음을 지은 뒤 빠르게 다섯 개의 불의 정령을 소환했다.
그와 동시에 이준의 영혼 분신이 굳은 얼굴로 빠르게 인결을 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영혼 분신의 몸이 수십 배나 부풀어 오르더니 무시무시한 영혼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준의 영혼 분신이 시전한 것은 다름 아닌 황천의 분노였다!
영혼분신이 시전한 황천의 분노는 이준의 본체가 시전한 것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불파도가 몰아치는 하늘 위에서는 다섯 마리의 화염 정령이 빠르게 회전하며 에너지를 끌어 모으고 있었다.
눈앞에서 일렁이는 무지막지한 에너지에 제 아무리 혼풍이라도 더 이상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할 수 없었다.
혼풍이 굳은 얼굴로 자흑색의 염력을 폭발시키기 시작하자, 주위에 있던 강자들은 산불에 쫓겨 달아나는 짐승들마냥 뿔뿔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혼풍은 낯빛이 완전히 굳은 채 자흑색 염력을 빠르게 퍼뜨리기 시작했다.
“오륜이화반!”
이준의 손가락이 혼풍을 가리키자, 다섯 개의 화염이 뭉쳐 만들어진 거대한 원반이 빠르게 회전하며 용암 호수의 표면에 거친 풍랑을 일으켰다.
“황천의 분노!”
그와 동시에 영혼분신이 입을 벌려 천지가 뒤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영혼 파동을 내뿜었다.
우웅!
“탄천의 거울!”
혼풍도 뒤질세라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거울처럼 반짝이는 자흑색 빛장막이 혼풍의 앞에 펼쳐졌다. 이화든 에너지든 그의 빛장막에 닿은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자흑색 빛장막에 닿는 순간,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뿜어내던 화염 원반이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흑색 빛장막 역시 격렬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쾅!
뒤이어 강력한 영혼의 파동이 이준의 화염을 막아내고 있는 자흑색의 빛장막 위를 강타했다.
“억……!”
마침내 혼풍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준의 공세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했고, 그가 자랑하는 최강의 방어용 무투기인 탄천의 거울마저 그 힘을 온전히 받아낼 수 없었다.
“터져라!”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탄천의 거울을 바라보던 이준이 다시 한번 인을 맺자, 영혼 분신의 입에서 또 한번 더욱 강렬한 영혼의 파동이 터져 나왔다.
우웅!
온몸을 덮쳐오는 영혼의 힘에 혼풍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곧이어 혼풍의 몸이 뒤쪽으로 튕겨나가며 자흑색의 빛장막이 와장장 깨져버리고 말았다.
“하하, 내 승리군.”
혼풍을 물리친 이준은 곧바로 하늘을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 뒤 검은색 구체를 손에 쥐었다.
이준의 손이 검은 구체에 닿는 순간, 강한 박동이 손끝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럴 수가……. 이건 불꽃이 아니라 꼭 살아있는 생물 같잖아.’
봉인된 정화의 불꽃에서 느껴지는 힘찬 움직임에 이준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그때, 강한 파동과 함께 검은 그림자 하나가 번개처럼 날아와 이준의 퇴로를 봉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