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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40화 (740/818)

740화. 정화의 불꽃

“후…….”

이준은 생각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영혼의 힘을 꺼내 자신과 똑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켰다. 영혼의 형상은 멀리서 보면 두 명의 이준이 서있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질 정도로 본체와 비슷했다.

“이야, 이준이 둘이네!”

그때, 하늘 위에 커다란 공간의 균열이 생겨나더니 보람과 천부 연맹의 강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대단하군. 본체와 똑같은 영혼 분신을 만들 수 있다니……!”

소연금탑의 대장로가 이준의 분신을 바라보며 감탄하듯 말했다.

“게다가 실력도 본체보다 약하지 않으니 정말 든든한 힘을 얻었구나.”

약로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빙긋 웃었다.

이준은 씩 웃으며 눈앞에 서있는 영혼분신을 다시 미간 속으로 거뒀다.

“허허, 드디어 수련이 끝났구나. 이제 곧 정화의 불꽃이 나타날게다. 출몰 지점은 아직 모르겠지만 곧 알게 되겠지.”

풍존자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어딘지 압니다.”

풍존자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이준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혼으로 밖을 돌아다니다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혼의 궁전의 전주를 만났습니다.”

그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약로의 질문에 이준은 조금 전에 겪었던 일들을 간단히 설명했다.

“놈들이 진작부터 그곳을 지키고 있었나 보구나.”

약로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 강자는 나도 누군지 모르겠다. 그래도 널 도왔다면 적은 아니겠구나.”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주의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정화의 불꽃이 나타나는 순간 8대 세력들도 모두 모여들 테니 말이다. 고족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른 강자들이 전주를 상대할 때 우린 정화의 불꽃을 빼오면 된다.”

약로가 옥병 하나를 꺼내들며 말했다. 옥병 안에는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 암홍빛 연금비약이 얌전히 누워 있었다.

“이건 구음황천단이다. 네가 수련하는 동안 나와 대장로가 함께 제련했단다.”

옥병을 손에 쥐는 순간 한기가 발끝부터 빠르게 올라왔다. 가볍게 숨을 내뱉자, 숨결이 얼음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스승님, 대장로님.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준은 환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웃었다. 구음황천단은 9레벨 보물 수준에 속하는 귀하디귀한 연금비약으로, 이 두 사람이 아니라면 중주의 누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진정한 보물이었다.

약로가 웃으며 말했다.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정화의 불꽃이 나오기를 기다리자꾸나.”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정화의 불꽃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

* * *

정화의 불꽃이 출현할 시기가 임박하자, 천부연맹을 비롯해 중주의 이름난 세력들은 암암리에 강자들을 파견해 투기 대륙 전체를 이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4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성운각의 거대한 나무 꼭대기에 앉아있던 이준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쪽 하늘에서 초승달 두 개가 위, 아래에서 하나씩 떠오르고 있었다.

그 시각, 별하늘에서도 아홉 개의 별이 일직선을 그리며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두 개의 달이 동시에 떠오르고, 아홉 개의 별이 하나가 되어 천지가 움직일 때, 정화의 불이 세상에 나타나리라.’

이준은 조용히 속으로 그 말을 중얼거렸다.

마침내 정화의 불꽃이 출현한 것이다.

아홉 개의 별이 한 줄로 이어지는 순간, 강렬한 에너지 파동이 몰아치더니 엄청난 에너지가 화산처럼 폭발했다.

“천지가 움직이고 있어……. 고대지도에서 본 예언과 완전히 일치해.”

이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 위에 자욱한 안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약로와 몇몇 장로들이 이준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정화의 불꽃이 나타나려 한다.”

이준 옆에 착지한 약로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준이 약로의 말에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주 먼 하늘에서 눈부신 빛이 번쩍이더니 빠른 속도로 성운계 안으로 날아들었다. 얼마나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타는 듯한 열기가 발끝까지 느껴졌다.

“이럴 수가……. 정화의 불꽃이 나온 모양이구나.”

이상 현상의 의미를 알아차린 약로가 말했다.

그와 동시에 이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광단에서 다시 강한 파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후…….”

이준은 긴 숨을 내뱉으며 광단에서 느껴지는 파동을 억제했다.

“지금 바로 움직여야겠어요.”

이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화의 불꽃이 생각보다 빨리 출몰했으니 중주에서 알만한 세력의 강자들이 모두 허겁지겁 그 곳으로 향할 것이다.

약로가 말없이 긴 휘파람을 불자, 소연금탑의 대장로와 화운, 그리고 화종의 두 여인이 번개 같은 속도로 공간을 가르고 이준의 곁에 나타났다.

“중대한 일인만큼 이틀 전에 미리 불러두었다.”

약로가 이준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상대할 수 없는 자를 마주친다면 곧바로 후퇴하십시오. 여러분은 저희 연맹에서 가장 강한 분들이니 절대로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이준이 말했다. 그들은 천부 연맹의 핵심 전력이었다. 그들이 중상을 입거나 죽는다면 혼족과의 전면전에서 결코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

“알겠소!”

그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갑시다!”

이준은 빛처럼 빠른 속도로 성운계를 지나 정화의 불꽃이 출몰한 지역을 향해 공간을 가르고 나아갔다.

* * *

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고막을 때렸다.

“출몰지점까지 400킬로미터 정도 남았습니다.”

이준이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렬한 빛이 여전히 어두운 밤하늘을 낮처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정화의 불꽃과 가까워질수록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강하게 자극하며 전신이 땀으로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6성 이하의 투존 강자들은 버티기 어렵겠어.’

이준은 말없이 뒤편에 사방에서 몰려드는 강자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중주에서 일류 강자로 꼽히는 6성 투존 강자들조차 정화의 불꽃의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이준. 지금까지 마주친 사람들 모두 정화의 불꽃을 향해 가고 있어. 이거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싸움이 될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던 보람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사실 그는 혼족과 고족 외에 다른 세력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이만한 물건을 손에 넣으려면 그만한 실력이 있어야 하고, 자기가 아는 한 그 정도 실력을 가진 세력은 혼족과 고족뿐이었다.

* * *

얼마 후, 이준 일행이 드디어 정화의 불꽃이 출몰한 산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준이 봤던 풀이 무성한 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사막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크던 산을 전부 사막으로 만들어버리다니…….”

이준은 놀란 얼굴로 자신의 화염으로 연맹의 모든 사람들을 감쌌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며칠 전 보았던 눈부신 빛이 끊임없이 대지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정화의 불꽃이 아직 나오지 않은 걸 보니 저 하얀 빛은 정화의 불꽃에서 퍼져나온 열기에 불과한 것 같네요.”

이준이 말했다.

“불꽃에서 퍼져 나온 열기가 이 정도라고?”

보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열기만으로 산 전체를 태워버리다니, 저 공간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쉭쉭!

그때, 곳곳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나 새하얗게 변해버린 사막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도 이곳이 생기가 넘치던 푸른 산이었었다는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정화의 불꽃을 얻으려면 반드시 저 공간으로 들어 가야하는 모양이구나.”

약로가 찢겨진 공간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말했다.

“우리가 앞장서 저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기엔 무리겠네요.”

위험을 감지한 이준이 말했다. 여기서 무작정 들어갔다가는 그 누구라도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약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찌익-

잠시 후, 공간이 빠르게 흔들리더니 새까만 안개가 공간을 뚫고 흘러나와 수많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사람은…… 영혼의 궁전의 전주?”

숨 막힐 듯한 기운이 검은 의복을 입은 사람에게서 퍼져 나왔다. 그를 보는 순간, 약로의 동공이 빠르게 커졌다.

검은 안개 속에서 나타난 세 사람 중 검은 의복을 입은 사내는 지극히 평범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마주쳐도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아무런 특징도 없는 그런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를 발견한 모든 사람들은 감히 숨조차 쉬지 못하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상의 노인이 바로 영혼의 궁전의 전주였다.

신흥 세력으로 급부상한 천부연맹을 제외한 어떤 세력도 그들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했다. 그것은 혼족이라는 무시무시한 세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주’의 무시무시한 실력 때문이기도 했다.

먼 옛날, 전주는 단신으로 수십개의 세력을 피바다로 만든적이 있었다. 심지어 당시 그는 혼자서 다섯이나 되는 2성 투성을 시체로 만들며 중주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었다.

“전주…….”

전주를 바라보던 이준이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전주에게서 느껴지는 영혼파동은 며칠 전 그가 마주쳤던 그 영혼과 완전히 똑같았다.

이준의 시선을 느낀 혼전 전주 역시 고개를 돌려 이준을 바라보았다.

“몰락한 이씨 가문에서 이런 인재가 나오다니, 나의 실수구나.”

“전주님. 지금까지 보낸 강자들 모두가 저 녀석의 손에 죽었습니다. 심지어 그 기회를 노려 실력까지 높였으니, 결코 살려두어서는 안 될 놈입니다.”

그때, 전주의 뒤에 있던 한 부전주가 다가와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제 2의 이현이 될 놈이로다.”

전주가 이준의 재능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부전주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리다가 입을 뗐다.

“그 이현조차 저희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까?”

“끌끌…….”

부전주의 그 말에 전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대지의 불꽃, 구름 불꽃, 바다의 불꽃, 얼음불꽃의 정수, 별의 불꽃 모두 이준의 몸속에 있습니다. 이 정도면 천지의 불꽃에 잡아먹혀야 정상인데, 아무렇지 않을 것을 보면 아마 독특한 수련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혼족의 나머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밝은 빛이 그를 비추자 서른 정도 되는 젊은 얼굴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읽을 수 없었다. 마치 사람 모양을 한 인형이 서있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외모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눈 전체가 검은 빛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흰자위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두 눈은 진한 먹물을 탄 듯 어두웠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섬뜩한 느낌을 풍겼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멀리 보이는 이준을 주시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약선이 고적에서 천지의 불꽃을 융합할 수 있는 수련법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공법 덕에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멀리서 바라만 보았을 뿐인데 그는 이준의 몸속에 있는 천지의 불꽃이 무엇인지는 물론이고 그가 익힌 수련법까지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준은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지만, 전 죽일 수 있습니다.”

“허허, 저도 소족장 님을 이길 수 없는데, 2성 투성 초급 밖에 되지 않는 이준이 소족장 님을 이길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혼족 족장의 자리는 반드시 소족장 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부전주가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 일은 전주님의 뜻을 따라야지요.”

흑색 의복을 입은 남자가 기대 섞인 눈빛으로 전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족장, 족장이 혼족을 관리한 지 천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전주의 말에 흑색 의복의 남자는 말없이 이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 움직일까요?”

“우선 기다리지요. 정화의 불꽃이 봉인을 뚫고 나면 그때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주가 깍지를 끼며 말했다.

흑색 의복의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새까만 두 눈으로 이준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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