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화. 격파
챙!
해일과도 같은 에너지 파동이 하늘을 집어삼킬 듯 날뛰고, 분전을 둘러싸고 있던 공간 장벽에 거미줄처럼 금이 생겨났다.
쾅!
무시무시한 힘에 산봉우리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준은 원상태로 돌아온 화염을 다시 몸속으로 회수하며 대천존의 손에 들린 검은 장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칼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대한 영혼의 힘은 이준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준의 영혼이 천지의 불꽃의 보호를 받지 못했더라면 분명 크게 다치고 말았을 것이다.
“아랫것들이 널 잡는데 계속 실패한 이유가 있군.”
이준을 바라보는 대천존의 눈빛 역시 사뭇 진지해져 있었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2성 투성이 되다니, 그 재능은 나도 인정해야겠구나. 네놈이 영혼의 궁전에 들어온다면 언젠가 내 자리를 이어받을지도 모르겠어. 어떠냐? 우리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
대천존의 말에 이준은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대천존! 그런 농도 치실 줄 아십니까? 아니면 갑자기 머리가 이상해지기라도 하신 겁니까?”
이준의 조롱 섞인 반응에 대천존의 이마에 곧바로 깊은 주름이 생겨났다.
“흥, 지금 내 제안을 거절한 것을 곧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게 네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어!”
말을 마친 대천존이 험악하게 웃으며 다시 검은 장검을 꺼내들었다. 장검에서 퍼져 나오는 파동이 대천존의 몸에 닿는 순간, 그의 장검과 손이 들러붙으며 하나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인간과 칼의 융합이라…….”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들러붙어있는 검은 안개가 마치 끈적한 액체처럼 대천존의 팔에 들러붙는 끔찍한 모습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후후, 수백 년의 수련 끝에 마침내 몸과 골황도(骨皇刀)를 융합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적에게 사용하는 건 처음이구나. 영광인 줄 알거라!”
대천존이 가볍게 팔을 휘두르자, 새까만 칼날 위에 미세한 붉은 혈관 같은 것이 돋아나며 더욱 기괴한 모습을 띠었다.
쉭!
다음 순간, 골황도가 강하게 흔들리며 대천존의 형상이 귀신처럼 자리에서 사라졌다.
‘빨라!’
대천존의 무시무시한 속도를 확인한 이준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쉭-!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새까만 칼날이 이준의 코앞을 스쳐 지났다.
“허, 반응이 꽤 빠르구나!”
그때, ‘웅’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검은 기운이 이준의 주위를 완벽히 둘러쌌다.
숨통을 조여 오는 압력에 이준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준은 결국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검은 송곳을 꺼내들어 온몸을 빠르게 감쌌다.
“육합자의 검!”
챙챙챙!
날카로운 칼날이 검은 송곳 위로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면서 새빨간 불꽃이 꽃잎처럼 흩날렸다.
쉭쉭쉭쉭!
갑옷처럼 단단한 방어에 대천존은 다시 한 번 있는 힘껏 골황도를 내리쳤다.
쾅!
갑자기 느껴지는 매서운 힘에 이준은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피했다.
펑!
그와 동시에 매서운 빛이 그대로 이준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챙-!
골황도가 이준의 어깨를 향해 깊숙이 파고들자, 마치 단단한 금속에 부딪힌 듯 불꽃이 튀어 올랐다. 이준의 피부 아래 숨어있던 용황갑옷이 발동된 것이다.
탕-.
이준은 곧바로 대천존의 목을 향해 검은 송곳을 휘둘렀다. 그의 어깨에서는 옅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육합자의 검과 용황갑옷을 동시에 뚫어버리다니, 이토록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공격은 처음이었다.
“몸이 제법 단단하구나.”
대천존이 음험한 미소를 띠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렇게 느려서야 내 몸에 손이라도 댈 수 있겠느냐?”
이준은 굳이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확실히 2성 고급 투성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후…….”
이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거미줄처럼 복잡한 인결을 그리자, 영혼의 힘이 거대한 환영으로 변해 그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
“황천의 분노!”
쩌억!
거대한 환영이 입을 벌리는 순간, 무시무시한 영혼의 파동이 사방을 휩쓸었다.
쾅!
주변에 있던 수많은 영혼의 궁전의 강자들은 폭풍을 맞는 순간 뻣뻣하게 굳으며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위기를 느낀 대천존은 곧바로 골황도를 휘둘러 영혼의 파동을 막아냈다.
챙!
거대한 골황도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의 팔에 들러붙어있던 칼이 곧장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황천의 손가락!”
강제로 골황도와 분리된 대천존이 입에서 피를 쏟으며 뒤로 물러서는 순간, 이준이 번개처럼 손가락을 들어 대천존을 가리켰다.
이준의 손가락이 대천존을 향하자, 엄청난 에너지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그의 팔을 짓뭉개며 새빨간 핏줄기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황천의 주먹!”
곧이어 거대한 주먹이 솟아나 대천존의 몸을 강타했다.
무시무시한 힘을 머금은 주먹에 강타당한 대천존은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여파로 대지 위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황천요성의 무투기들이 이준의 손에서 완벽한 합을 이루면서 발휘된 위력은 2성 고급 투성을 쓰러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준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안에는 겨우 숨이 붙어있는 대천존이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죽어.”
이준이 대장로의 숨통을 끊기 위해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막대한 에너지파동이 대전 안을 휩쓸기 시작하더니 검은 그림자 하나가 이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준. 겁도 없구나!”
그 목소리를 들은 이준은 씨익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려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부 전주. 드디어 왔군.”
이준 앞에 나타난 그림자는 검은 안개로 완전히 뒤덮여있었다. 오직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싸늘한 눈빛만이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는 바로 천부연맹이 편성될 때 나타났던 영혼의 궁전의 부전주였다.
“이준. 아버지의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지?”
검은 안개가 일렁이면서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얼굴로 봤을 때는 소년처럼 젊어보였지만, 목소리는 절대 어린 소년의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말했지. 아버지의 손끝만 건드려도 태령황제의 옥을 고족에게 넘기겠다고.”
하지만 이준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영혼의 궁전 놈들에게는 조금만 약점이 잡혀도 바로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머릿속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됐다.
“너에겐 그럴 기회도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널 끌고 가 네 아비와 함께 가둘 테니까 말이다.”
부전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느낀 이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 뜨거운 화염을 뿜어냈다.
하지만 부전주는 용의 형상으로 응집된 검은 안개를 이용해 간단히 자갈색 화염을 집어삼킨 뒤 거대한 쇠사슬을 내던져 이준을 공격했다.
“2성 투성이 되었어도 내 앞에선 애송이일 뿐이다!”
부전주의 실력은 3성 고급 투성으로, 그 정도 실력이라면 능히 이준을 시체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준은 눈썹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대천존이 떨어진 구덩이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화염에 휩싸인 거대한 주먹이 벼락처럼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죽고 싶구나!”
이준이 자신을 거들떠 보지도 않자, 부전주의 손이 분노로 가늘게 떨렸다.
곧이어 검은 쇠사슬이 이준의 몸을 강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챙챙!
그때, 공간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에너지 폭풍이 불어와 쇠사슬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누구냐!”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부전주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흥! 어디서 3성 투성 따위가 건방을 떨어!”
청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우아한 여인이 부전주와 이준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네 년은 누구냐!”
부전주가 보랏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여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
“하! 년? 영혼의 궁전의 부전주 따위가 나를 년이라고 불러?”
보람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부전주를 노려봤다. 용족의 힘이 가장 강성하던 시절에는 혼족조차 그들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영혼의 궁전의 부전주 따위가 용황인 자신을 년이라고 부르니 머리 끝까지 화가 치미는 것이 당연했다.
“입을 잘못 놀린 것에 대한 대가는 목숨으로 받겠다.”
“이 건방진 것이!”
자신을 무시하다 못해 하찮은 벌레처럼 여기는 듯한 보람의 말에 부전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 사이 이준은 화염에 휩싸인 거대한 손으로 대천존을 건져 올렸다. 대천존의 팔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온 몸이 피로 뒤덮여있었다. 심지어 황천의 분노로 인해 영혼마저 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이준은 반항할 힘도 없어 보이는 대천존을 바라보다 그를 천천히 끌어당겼다. 그 순간, 흐리멍덩하던 대천존의 눈이 매섭게 변하더니 그의 몸이 빠르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쾅!
하지만 그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무섭게 이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던졌고, 결국 대천존의 몸은 이준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허무하게 폭발하고 말았다.
쉭!
그 순간, 산산이 터져버린 대천존의 몸에서 검은 빛이 빠져나와 부전주를 향해 미친 듯이 달아났다. 검은 빛의 정체는 바로 대천존의 영혼이었다.
“어딜 가려고?”
하지만 이준이 그를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었다.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무형의 화염으로 만들어진 그물이 대천존의 영혼을 가두어 버렸다.
“네가 감히!”
영혼만 남은 대천존이 달아나는 것을 발견한 부전주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검은 안개를 뿜어냈다.
“어딜!”
그와 동시에 보람의 몸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번쩍이더니 눈 깜짝할 새에 그녀의 몸이 거대한 용으로 변했다. 용으로 변한 그녀는 커다란 입을 쩍 벌려 부전주의 검은 안개를 모조리 집어삼켰다.
“용족?!”
부 전주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이리 와!”
이준이 불로 만든 그물에 갇힌 대천존의 영혼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대천존은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이준의 손으로 돌아왔다.
검은 안개가 일렁이며 드러난 대천존의 얼굴엔 고통이 가득했다.
이준은 독기 어린 대천존의 눈빛을 무시하고 무형의 화염으로 옥병을 만들어 그 안에 대천존의 영혼을 집어넣었다. 영혼의 궁전의 대천존인 만큼 알고 있는 비밀도 상당히 많을 것이니, 이대로 죽여버리기에는 아까웠던 것이다.
“용족까지 끌어들일 줄은 몰랐구나.”
이준이 대천존의 영혼을 봉인하는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부전주가 실성한 사람마냥 헛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4성 투성이라면 영혼의 궁전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의 강자였다. 그런데 용족의 4성 투성 강자를 데려오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부전주가 빠르게 후퇴함과 동시에 은색 옥조각 하나를 꺼내 반으로 쪼개자, 짙은 공간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공간의 돌을 깨뜨렸음에도 공간 통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발악을 해봐도 소용없을 거야. 이미 이곳 주위에는 용족의 공간 결계가 쳐져 있거든.”
보람이 점점 일그러지는 부 전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원군을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부전주의 몸이 공포와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이준……. 진작에 널 죽여 없앴어야 했는데……. 하지만 자만하지 마라. 곧 혼족이 모든 세력들을 쓸어버리고 투기 대륙의 진정한 왕으로 거듭날 터이니……. 그 때가 되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될 것이다.”
부전주는 긴 숨을 들이마시며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대전을 바라보았다. 인전을 지키고 있던 강자들은 이미 대부분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그때……. 이씨 가문과 천부연맹은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부 전주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의 몸이 갑자기 폭발하더니 검은 안개를 퍼뜨리며 공간 결계를 뚫고 빠르게 사라졌다. 그렇게 부 전주는 인전에 남은 모든 사람들을 포기하고 혼자서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