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3화. 전력
“왕족의 혈통? 흥! 너희 손에 넘어가는 순간, 용족은 끝장이야!”
보람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이렇게 완강하게 거부하겠다면 강제로라도 널 잡아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너도 시간이 지나면 본왕의 선택이 정확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북 용왕이 말했다.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움직이시오.”
북 용왕의 말에 서 용왕과 남 용왕은 잠시 주춤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희를 무서워할 것 같으냐!”
보람이 굳은 표정으로 외치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순간 그녀의 몸에서 백 미터도 넘는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공격!”
북 용왕이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가며 외쳤다. 그 뒤를 서 용왕과 남 용왕이 바짝 따랐다.
“황천의 손가락! 황천의 주먹!”
그때, 거대한 손가락과 주먹이 하늘을 가르며 세 사람의 머리 위로 강하게 떨어졌다.
“어떤 놈이 우리의 일에 끼어드는 것이냐!”
갑작스런 공격에 세 사람은 번개처럼 염력을 퍼뜨려 두 개의 무투기를 박살냈다.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세 사람의 눈에 청홍색 뼈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이 들어왔다.
“죽고 싶어서 안달 났구나!”
남 용왕이 소리쳤다.
“이준?”
이준을 발견한 보람은 귀신을 본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넌 저 녀석들의 상대가 될 수 없어. 어서 도망 가!”
한 눈에 이준의 실력을 읽어낸 보람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2년 사이에 1성 고급 투성이 된 것은 확실히 놀랄만한 일 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삼대 용왕에게 덤볐다가는 눈 깜짝할 새에 목숨을 잃고 말 것이 분명했다.
“비장의 무기가 있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해?”
이준이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담담하지만 단호한 그의 표정에 보람은 무슨 말을 해도 그가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십 분…….”
“알겠어. 나한테 맡겨.”
이준이 가벼운 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
보람은 초조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이준과 삼대 용왕을 번갈아 바라봤다.
서 용왕과 남 용왕만 해도 3성 투성 고급 수준에 이른 강자였다. 심지어 북 용왕은 이미 4성 투성 수준에 오른 강자인데 고작 아직 2성 투성도 되지 못한 이준이 무슨 수로 그들을 당해낸단 말인가?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큰소리를 치는구나!”
서 용왕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준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곧이어 이준의 두 손이 빠르게 합쳐지더니 복잡한 인결을 그리며 영혼의 힘이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간 끌지 말고 한 번에 움직이자고!”
북 용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그는 보람을 죽이는 과정에서 어떠한 변수도 생겨나지 않기를 원했고, 상대방이 고작 1성 투성일지라도 전력을 다해 그를 죽이고 보람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서 용왕과 남 용왕은 북 용왕의 신중한 태도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별 말 없이 동시에 튀어 나가 이준을 향해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쉭쉭!
이준의 미간에서 영혼의 힘이 용솟음치더니 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환영이 나타나 그의 몸을 감쌌다.
이준의 손에서 인결이 완성되는 순간, 환영이 거대한 입을 쩍 벌렸다.
“황천의 분노!”
“크아아!”
그 순간, 거대한 입 속에서 기이한 파동이 폭풍처럼 터져 나와 온 천지를 뒤덮었다.
“조심하시오!”
북 용왕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설마하니 1성 투성 따위가 영혼에 타격을 줄 수 있는 1격 무투기를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우우웅-.
새까만 공간이 거세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힘을 합쳐야 하오!”
이상한 소리가 고막을 울리자 어지러움을 느낀 북 용왕이 소리쳤다. 세 사람은 곧바로 한곳에 모였지만 염력을 끌어올리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영혼의 힘을 가진 음파가 그들을 때렸다.
쾅!
음파가 몸을 뚫고 지나가는 순간, 그들의 입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푸흡!”
서 용왕과 남 용왕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더니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다. 뇌를 도려내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머리를 잘라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세 용왕 중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북 용왕은 나머지 두 용왕만큼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의 얼굴 역시 이미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주겠어!”
분노한 북 용왕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순간, 이준의 몸이 귀신처럼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름다운 오색 연꽃이 눈부신 빛을 토해내며 폭발을 일으켰다.
쾅!
천 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염폭풍이 허공을 휩쓸며 동룡도 전체가 달군 솥처럼 뜨거워졌다.
“화염폭풍이 이렇게 대단하다니…….”
이준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벌이던 사람들도 모두 행동을 멈추고 온 하늘을 뒤덮은 화염폭풍을 바라봤다.
“뭐야?”
현모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1성 고급 투성 따위가 이런 말도 안되는 파괴력을 낼 수 있단 말인가.
“과연 용황 폐하의 친구답군! 굉장해!”
반면 동룡도의 강자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강자의 도움을 받는다면 삼대 용왕을 물리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 같았다.
* * *
이준은 빠른 속도로 후퇴하며 연금비약 한 알을 꺼내 집어삼켰다. 황천의 분노와 오색 화련을 연달아 사용하며 한 번에 너무많은 염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3성 투성이라 해도 아무런 부상 없이 이 공격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저 세 사람을 죽이는 건 어려워…….’
이준이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치는 순간, 거대한 화염폭풍이 강하게 흔들리며 살기 가득한 용의 울음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역시 안 죽었군.’
펑!
잠시 후, 거대한 용 세 마리가 폭풍을 뚫고 나와 독기 어린 눈으로 이준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몸에는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네 이놈!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주마!”
살기로 가득한 용의 울음소리가 천둥처럼 하늘을 가르고 퍼져나갔다.
이준은 망설임 없이 뼈날개를 펼쳐 빠르게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대로 본 모습을 드러낸 삼대 용왕에게 맞서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쾅!
삼대 용왕이 거대한 입을 쩍하고 벌리자, 엄청난 크기의 빛기둥이 굉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이준의 손끝에서 네 가지 색의 화염이 터져 나오더니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거대한 화염판으로 변했다.
쾅-!
거대한 빛기둥과 화염판이 맞부딪히는 순간, 또 한 차례 격렬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푸흡!”
용왕의 입에서 나온 빛기둥은 곧바로 튕겨져 돌아갔지만 화염판에서 전해진 충격에 이준의 입에서도 새빨간 선혈이 터져 나왔다.
쾅쾅!
빠르게 회전하는 화염판이 첫 번째 빛기둥에 이어 날아온 두 개의 빛기둥을 튕겨낸 순간, 화염판이 폭발하며 이준의 입에서 또 다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펑!
그러나 화염판에 의해 반사된 빛기둥이 삼대 용왕의 몸에 적중하며 수 백 미터에 달하는 그들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저 녀석을 죽여라!”
세 사람이 힘을 합쳤음에도 고작 1성 고급 투성 하나를 처리하지 못하자, 줄곧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북 용왕의 얼굴에도 살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이준은 이를 악물고 영혼의 힘을 끌어내 다시 한번 황천의 분노를 시전했다.
크르릉!
무시무시한 음파가 세 용왕의 몸을 덮치는 순간, 그들의 새빨간 두 눈에서 점점 생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죽어라!”
가장 먼저 충격에서 회복된 북 용왕이 번개처럼 이준 앞에 나타나 그의 가슴팍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푸흡!”
이준의 입에서 또 한 번 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의 입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 삼대 용왕의 몸에 상처를 입힌 오색의 화염 연꽃이 들려 있었다.
펑!
이준의 손에 들린 화련이 폭발하는 순간, 북 용왕의 거대한 몸이 폭포처럼 피를 쏟아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 북 용왕을 날려버린 이준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허공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남 용왕과 서 용왕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번개처럼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남 용왕의 거대한 발톱이 머리를 향해 날아들며 이준의 머리에서 새빨간 핏물이 튀어 올랐다.
그 순간, 이준은 자신의 심장에 숨겨져 있던 피가 전신의 혈관을 타고 빠르게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피의 힘이 전신을 훑자, 이미 바닥을 드러냈던 염력이 순식간에 차오르며 납덩이처럼 무거웠던 팔다리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이건…….”
갑작스런 변화에 잠시 멍해져 있던 이준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몸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번쩍이는 금빛 주먹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쉭!
곧이어 남 용왕의 팔이 두 동강나며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보라색 머리칼을 가진 소녀가 금색 장검을 든 채 싸늘한 표정으로 허공 위에 서 있었다.
“이준의 털끝만 건드려도 영원히 용의 감옥에 가둘 것이다!”
지금 보람의 몸에서는 이준마저 두려움에 떨 만큼 강한 위압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위압감은 아마 그녀의 손에 쥐어진 금색 장검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남 용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사라진 자신의 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5성 투성 강자와 겨뤄도 손색없는 용의 팔이 한 순간에 잘리다니……. 그가 알기로 이런 힘을 가진 검은 단 하나 밖에 없었다.
“도용검(屠龍劍)!”
팔끝에서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에 남 용왕은 고개를 번쩍 들고 보람을 쳐다봤다. 그녀의 손에 들린 금빛 장검을 발견한 순간, 그의 낯빛이 공포로 물들었다.
서 용왕 역시 경악한 표정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장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용검(屠龍劍)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용족의 최강 무투기로 불리는 도용검은 왕족의 피를 가장 순수하게 보존하고 있는 용족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염력으로 만들어진 검이었다.
당연히 삼대 용왕 중 누구도 이 도용검을 불러낼 수 없었다. 심지어 선대 용왕마저 6성 투성이 되고 나서야 도용검을 사용할 수 있었다.
“도용검…….”
사람들은 자리에 멈춘 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보람을 바라보았다. 현모 역시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도용검은 용족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였다.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용족이라면 도용검의 칼날에 닿는 순간 두부처럼 잘리고 말기 때문이다.
“용황 폐하가 도용검을 소환하다니…….”
동룡도의 수많은 장로들이 허공을 바라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도용검을 소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정한 용황뿐이었기 때문이다.
“도용검까지 나왔으니 누가 진짜 용황인지 잘 알겠구려. 머리 조심하시오. 그대로 날아가 버릴 수 있으니!”
동룡도 대장로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말했다.
그의 외침에 나머지 전사들은 모두 사색이 되었고, 현모를 비롯한 세 개의 고룡도의 대장로들마저 입조차 떼지 못했다. 도용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그들은 당장이라도 목이 달아날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잠시 후, 삼대 고룡도 전사들이 결국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허공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아 고개를 떨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