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2화. 대전 시작
어디를 둘러보아도 암흑만이 가득한 용족의 이공간 속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전설의 용족 뿐이었다. 용족을 제외한다면 설령 투존 강자라 하더라도 시커먼 허공에 가득한 공간 균열에 잘못 발을 들이는 순간 무시무시한 공간의 힘에 의해 온 몸이 갈갈이 찢겨 죽음을 맞이할지도 몰랐다.
오로지 암흑만이 가득한 공간 속, 신비로운 불빛 하나가 반짝였다. 그 불빛이 향한 곳에는 거대한 섬 하나가 우뚝 서있었다.
쿵쿵!
거대한 섬 안에서 격렬한 폭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미칠 듯이 날뛰는 에너지 폭풍은 천 미터 이내에 있는 모든 것을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격렬한 에너지 폭풍이 몰아치는 섬 주위에는 스무 명이 넘는 용족의 강자들이 줄줄이 늘어선 채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쉭-!
“누군가가 접근하고 있다. 조심하라!”
용족의 강자 중 하나가 시커먼 공간을 뚫고 날아오는 빛줄기를 가리키며 외쳤다.
“흑치웅? 동룡도 녀석들이다. 공격!”
“예!”
흑치웅을 발견한 투존 강자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많은 그림자가 일제히 그 빛줄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하지만 그들의 몸이 빛줄기에 닿기도 전에 빛기둥에서 무시무시한 힘이 폭발하며 스무 명에 가까운 용족의 강자들을 날려버렸다.
“푸흡!”
그들의 갑옷은 일격에 산산조각이 났고, 9전 투존 전성기 최고급의 실력을 갖춘 사내 하나만이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서 있었다.
“이게 무슨…….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당혹감으로 물든 사내의 목소리가 텅 빈 공간을 뚫고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눈부신 빛줄기가 서서히 잦아들며 이준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참하게 망가진 동룡도의 모습을 발견한 이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보람이는?”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자 이준의 얼굴이 더욱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때, 멀리 떨어진 허공에서 에너지 파동이 폭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에너지 파동을 느낀 이준은 고개를 들어 에너지 파동이 시작된 곳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는 네 개의 빛줄기가 어지럽게 허공을 수놓으며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보라색 머리칼을 흩날리는 아름다운 여인의 뒷모습이었다.
보람 앞에 있는 세 사람은 모두 중년의 사내들로, 그들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폭발하고 있었다.
“저들이 삼대 용왕인가…….”
삼대 용왕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2성 상급 투성인 요명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농후하고 강렬했다.
하지만 보람은 자신의 몸보다 두꺼운 금색 장창을 휘두르며 홀로 세 사람의 용왕에게 맞서고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용황의 피가 완전히 각성하는 순간 투제 강자에 맞먹는 힘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지금 보람의 모습을 보면 그 전설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준이 멀리서 벌어지는 전투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의 눈앞에 서있던 9전 투존 전성기 최고급 수준의 용족 강자가 번개처럼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죽고 싶구나!”
하지만 이준이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자, 순식간에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폭발하며 그의 몸이 고기덩어리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이 녀석이 보낸 신호에 강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우리는 당장 보람을 도우러 가죠.”
촉이 장로의 말에 이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보람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들을 잡아라!”
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용족의 강자들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이준 일행을 향해 날아왔다.
이준은 그들을 보고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화륵-
이준의 손이 허공을 가르자, 자갈색의 화염이 폭발하며 삽시간에 거대한 화염 장벽이 만들어졌다.
반투성 강자라 해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열기에 용족의 강자들은 분노로 이를 갈며 저 멀리 사라지는 이준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준이 동룡도의 상공에 도착하기 무섭게 천둥 같은 고함소리가 고막을 때리더니 이내 거대한 사내 하나가 나타나 무지막지한 기세로 주먹을 휘둘렀다.
“이준. 조심하거라! 저 자는 서룡도의 대장로인 2성 투성, 현모다.”
촉이가 굳은 얼굴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준은 부드러운 힘을 소환해 다른 사람들을 대전으로 밀어 보낸 다음 곧바로 금강유리체를 시전했다.
“꺼져!”
다음 순간, 눈부신 금빛 섬광을 뿜어내는 거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현모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챙!
하늘 위에서는 거대한 두 개의 그림자가 맞부딪히며 무시무시한 에너지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꽤 하는구나.”
자신과 부딪히고도 쓰러지지 않는 이준을 보며 현모는 조금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용족과 정면으로 육탄전을 벌이고도 무사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니, 대체 어디서 이런 강자가 나타났단 말인가?
“감히 누가 용족의 일에 끼어드는가!”
현모가 이준을 바라보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순간, 두 개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날아와 그의 곁에 우뚝 멈춰섰다.
“현모! 이 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네! 셋이서 힘을 합쳐 이 자를 제압하면 그만이야!”
현모의 곁에 나타난 것은 청색, 황색 의복을 입은 노인들이었다.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준은 그들의 실력이 현모보다 더 강한 2성 투성 중급 수준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허, 우리 동룡도를 너무 우습게 보는구나!”
두 노인이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전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폭발하더니 백발의 노인 둘이 번개처럼 날아왔다.
“이준. 이 분들은 우리 동룡도의 대장로와 둘째 장로시다.”
촉이가 황급히 이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장로님들.”
이준은 곧바로 무뚝뚝해 보이는 두 노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너무 격식 차릴 필요 없소. 용황 폐하의 친구라면 우리 동룡도의 귀빈이나 마찬가지요. 게다가 이런 위급한 시기에 때 맞춰 나타나 주셨으니 앞으로 평생 우리 용족의 은인으로 여기겠소.”
용 모양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노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청색 의복을 입은 자는 서룡도의 대장로, 2성 투성 중급의 주무익이다. 황색 의복의 노인은 남룡도의 대장로, 열산이다. 실력은 주무익과 비슷하지.”
촉이 장로가 두 사람의 실력을 설명했다.
“삼대 용왕을 제외하면 저 두사람과 현모가 용족의 최고 강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이준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2성 투성이 무려 세 명이라니. 과연 전설의 용족다운 실력이었다. 이들이 하나가 된다면 혼족이나 고족도 두렵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청산 영감. 일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고집부릴 것이오? 계속 이렇게 가다간 동룡도의 힘을 모두 잃고 말 것이오.”
청색 의복을 입은 서룡도의 대장로가 지팡이를 짚은 노인을 가리키며 비웃듯이 말했다.
“흥, 더러운 배신자 놈이 아직도 입을 놀리는구나.”
청산이라 불린 동룡도의 대장로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흥. 용왕 대인님들이 너희 용황 폐하를 처리하고 나서도 이렇게 떳떳할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꾸나!”
서룡도의 대장로 주무익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곧 봉황족의 지원군도 도착할텐데, 네 놈들이 얼마나 더 버티는지 보자꾸나.”
“더러운 것들. 용족의 내분에 우리의 숙적인 봉황들을 끌어들이다니. 네 놈들과 같은 용족이라는 것이 부끄럽구나!”
분노한 동룡도의 둘째 장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흥, 허황된 전설에 사로잡혀 용족을 분열시키고 있는 너희야말로 용족의 걸림돌이다. 네놈들만 아니라면 봉황족을 끌어들일 일도 없었을 것이야!”
“네 이놈! 용황이 나타났는데 감히 방계인 용왕 따위가 용족의 왕좌를 노려!? 그것만으로도 네 놈들은 대역죄인이다!”
가만히 그들의 말다툼을 듣고 있던 이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봉황족은 기다릴 필요 없다. 내가 돌려보냈으니 말이야.”
이준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시체처럼 축 늘어진 곤황이 나타나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뭐?”
이준의 말을 듣는 순간, 삼대 고룡도는 물론이고 동룡도의 대장로들마저 믿을 수 없다는 듯 일제히 바닥에 쓰러진 곤황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모든 힘을 봉인당한 채 쓰러져 있는 곤황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삼대 고룡도 대장로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잠시 후, 현모가 주먹을 바르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됐다! 봉황족이 나타나지 않아도 동룡도의 용전만 무너뜨리면 우리의 승리야!”
그 순간, 수십 개의 빛줄기가 일제히 동룡도의 중심에 위치한 대전으로 날아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강자들 중 반투성만 해도 넉넉잡아 열은 되어보였고, 나머지 인원들도 최소 5성 투존 이상의 강자들이었다.
“크르릉!”
삼대 동룡도의 정예들이 모두 모여들자, 대전에서 우렁찬 용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그림자가 나타나 이준의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쾅!
양쪽의 강자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또다시 굉음이 폭발하며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죽여라!”
그 소리를 신호로 양쪽의 강자들이 미친 듯이 염력을 폭발시키며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전투가 시작되기 무섭게 이준의 모습이 잔영을 남기고 사라졌다가 삼대 고룡도의 반투성 뒤에 나타났다.
퍽!
이준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반투성 강자의 팔이 단번에 두동강이 나버리고 말았다.
간단하게 용족의 반투성 강자를 제압한 이준은 곧바로 삼대 용왕과 맞서고 있는 보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패한다면 이곳에 있는 삼대 고룡도의 모든 강자들을 죽여 버린다 해도 의미가 없었다.
“요명 족장님, 둘이서 현모를 맡아주십시오. 전 보람에게 가겠습니다.”
생각을 마친 이준이 곧바로 거대한 청홍색의 뼈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저 녀석을 막아라!”
현모를 비롯한 삼대 고룡도의 세 대장로는 곧바로 이준을 막으려 했지만 요명과 동룡도의 대장로, 둘째 장로가 번개처럼 날아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 사이 이준은 번개처럼 삼대 용왕과 보람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 * *
금빛 장창이 포효하는 용처럼 하늘을 가르며 왕관을 쓴 중년 남자의 팔을 내리치자, 무시무시한 힘이 단단한 용의 비늘을 찢어버렸다.
장창이 몸에서 떨어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한 그림자가 장창을 든 그녀에게 귀신처럼 달려들더니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다음 순간, 맹렬한 힘이 폭발하면서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하하. 역시 용황의 힘은 다르구나!”
여전히 멀쩡한 상대방을 보며 남자는 감탄하듯 웃음을 터뜨렸다.
“보람아. 이렇게 고집부릴 필요 있느냐? 만 년에 한 번 나온다는 용황의 몸을 얻었다 해도 넌 아직 우리 세 사람을 이길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다.”
“서 용왕. 위하는 척 하지 말아라! 네 놈도 아바마마가 실종된 틈을 타 왕위를 노리고 있는 반역자들 중 하나가 아니냐!”
보람이 분노한 듯 외쳤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큭. 우리 세 사람도 왕족의 피를 지니고 있으니 당연히 왕으로 불려야지, 어디서 어린 것이 함부로 입을 놀리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중년의 사내가 소리쳤다.
“내분으로 인한 손실이 이렇게 큰데 어찌 한 발짝을 물러설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냐.”
북 용왕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의 미소는 한없이 온화했지만, 실은 이 자리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지옥 이무기나 봉황족과 손을 잡자는 것도 모두 북 용왕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서 용왕과 남 용왕이 손을 잡고 동룡도를 공격한 것도 모두 그의 꼬임에 넘어갔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