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화. 해결
봉황족의 강자들이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자, 가만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요명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천하의 봉황족이 달아나는 꼴을 보게 될 줄이야! 이준군! 정말 대단하오!”
이준은 씩 웃으며 자신의 발아래에 있던 세 사람을 지옥 이무기족의 장로들에게 넘겼다.
“투성 강자 둘이라면 봉황족도 함부로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이제 어떡할 생각이오?”
요명이 물었다.
“동룡도로 가야죠.”
이준이 웃음을 거두고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봉황의 말대로라면 동룡도는 이미 삼대 고룡도에게 포위된 상태였으니, 보람을 구하려면 한시라도 빨리 동룡도에 도착해야 했다.
“얼른 움직이죠.”
말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유성처럼 빠르게 날아갔고, 아라와 예린, 요명과 지옥 이무기족의 장로들도 모두 그의 뒤를 따라 동룡도로 향했다.
* * *
“이 속도라면 몇 분 안에 동룡도가 있는 구역에 도착할 수 있겠소.”
요명이 고개를 돌려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그럼 조금만 더 속력을 높이죠.”
하지만 이준은 한시라도 더 빨리 동룡도에 도착하기 위해 더욱 속도를 높였다.
“잠깐…….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
그렇게 어두운 공간을 가르고 계속해서 날아가던 그때, 이준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서 왼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 * *
펑!
새까만 공간 속에서 무시무시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곧이어 그의 주위에 열 개가 넘는 그림자가 솟아났다.
그림자들을 이끌고 있는 두 노인에게서는 반투성 최고 수준 강자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히 겁도 없이 용황 폐하에게 손을 대다니!”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그들에게 저항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준과 안면이 있는 ‘촉이’ 장로였다.
“흐흐, 촉이.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를 잡것을 왕으로 내세워 용족을 통합하려 해? 우리가 그리도 만만해 보이더냐?”
갑옷을 입은 반투성 강자 하나가 촉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천현.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 없네. 동룡도의 저항이 생각보다 거칠어. 빨리 합류해서 용왕 대인들을 도와야 해”
그의 곁에 있던 노인이 초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더러운 반역자 놈들! 용황대인이 각성하는 순간 너희들은 모두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촉이의 곁에 쓰러져 있던 흑치웅이 분을 못 이기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큭, 각성하기 전에 죽여 버리면 그만 아닌가?”
붉은 얼굴의 노인이 흑치웅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뻗으며 말했다.
“푸흡!”
반투성 강자의 공격에 투존 최고급 강자인 흑치웅의 입에서 곧바로 선혈이 터져 나왔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전부 죽여라!”
흑치웅을 날려버린 붉은 얼굴 노인의 말에 참다못한 촉이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염력을 폭발시켰다.
“네가 감히!”
촉이의 주먹에서 터져 나온 염력이 순식간에 거대한 용으로 변해 붉은 얼굴의 노인을 덮쳤다.
“크르릉!”
그 순간, 갑옷을 입은 노인의 몸에서 단단한 비늘이 돋아났다.
온 몸이 비늘로 뒤덮인 노인은 번개처럼 몸을 날려 간단하게 촉이의 공격을 막아냈다.
쾅!
그와 동시에 붉은 얼굴의 노인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며 동룡도의 강자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노인이 염력을 뿜어낼 때마다 동룡도의 강자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삼대 고룡도의 강자들이 줄줄이 달려들어 그들을 제압했다.
“아직 안 끝났어!”
하지만 분노한 흑치웅이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두르자, 동룡도의 강자들을 공격하던 삼대 고룡도의 강자들의 입에서도 새빨간 피가 터져 나왔다.
“흥, 끝까지 귀찮게 구는구나.”
붉은 얼굴의 노인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쾅!
다음 순간, 단단한 비늘로 뒤덮인 노인의 주먹과 흑치웅의 주먹이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노인의 주먹과 부딪히기 무섭게 흑치웅의 주먹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새하얀 뼈가 드러났다.
“쯧쯧, 그러게 곱게 무릎을 꿇지 그랬느냐.”
붉은 얼굴의 노인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바닥에 쓰러진 흑치웅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화전! 흑치웅에게 더 이상 손을 댄다면 용황 폐하가 절대로 널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갑옷을 입은 반투성 강자에 의해 완전히 제압당한 촉이 장로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외쳤다. 하지만 아무리 분해도 그의 실력으로는 결코 반투성 강자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하하하! 용황, 용황! 그 놈의 용황! 이제 들어주기도 지겹구나!”
붉은 얼굴의 노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바닥에 쓰러진 흑치웅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렸다.
“걱정 말거라. 곧 네 놈들이 그렇게 충심으로 받들어 모시는 용황 폐하도 저승으로 보내줄 터이니.”
하지만 노인이 흑치웅의 머리 위에 올린 발에 힘을 주려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의 힘이 쇠사슬처럼 그를 옭아맸다.
“저승으로 가는 건 너야.”
텅 빈 공간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흐려져 가던 흑치웅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 이준?”
이준의 손이 이미 노인의 정수리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 흑치웅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누구시오? 나는 북룡도의 화전 장로일세.”
붉은 얼굴의 노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 했다. 정수리에 올려져있는 손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힘이 머리를 관통하는 순간 자신의 머리가 수박처럼 깨질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어디서 온 괴물이야? 왜 나에게 다가올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
“그 발 떼.”
이준이 붉은 얼굴의 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셋을 셀 테니 함께 떼는 것이 어떻소?”
“이준, 죽여라. 이 자는 북룡도의 반투성 강자로 지위가 아주 높은 인간이다! 난 괜찮으니 죽여라!”
흑지웅이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붉은 얼굴의 노인은 당장이라도 흑치웅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정체 모를 투성 강자의 기세에 눌려 아무 것도 하지 못 했다.
“어떻소?”
“그렇게 하지.”
이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좋소, 그럼. 하나, 둘, 셋!”
붉은 얼굴의 노인은 마지막 숫자를 외치는 순간 머리 위에 올려져있던 차가운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고는 흑치웅을 밀치며 황급히 물러났다.
“어디서 오신 분이오? 이는 우리 용족의 일이니 신경 쓰지 않았으면 하오. 가까운 곳에 삼대 고룡도의 용왕 대인이 계시는데, 그분들이 온다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오.”
노인이 씩씩거리며 용왕의 이름을 들먹였지만, 이준은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흑치웅을 일으켜 연금비약을 먹였다.
“괜찮습니까?”
“정말 고맙네…….”
흑치웅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준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며 말했다.
“나를 구하기보다 저 자를 죽였어야지. 저 녀석 하나만 죽였어도 북룡도엔 타격이 컸을 거야.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라고.”
흑치웅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는 용황이 된 보람을 위해 언제든 목숨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화전, 무슨 일이오?”
촉이 장로를 붙잡고 있던 갑옷을 입은 장로가 화전 장로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문제가 생겼소.”
화전은 이준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차마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고 입만 벌려 갑옷을 입은 장로의 말에 답했다.
쾅!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장로는 곧바로 이준을 노려보며 험악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보게, 자네가 누군지는 몰라도 용족의 일에 개입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닐 텐데.”
“이준?”
흑치웅 곁에 서있는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촉이 장로의 얼굴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이 일은 자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네! 내가 목숨을 걸고 저들을 막을 테니 흑치웅을 데리고 달아나게!”
“촉이! 닥쳐라! 이 녀석이 누군지는 몰라도 용족의 일에 끼어 든 이상 무사히 돌아갈 수 없다!”
화전이 이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중급 반투성 주제에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거지?”
화전의 말에 이준은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준의 몸이 홀연히 자리에서 사라지자, 화전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그가 채 한걸음을 떼기도 전에 새하얀 손이 허공을 뚫고 날아와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죽는다.”
화전은 귀신에 홀린 듯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나타난 사내를 바라봤다.
“투…… 투성 강자?”
그 순간, 화전뿐 아니라 흑치웅, 촉이 장로까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준이 동룡도를 떠날 때 그의 실력은 5성 투존에 불과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에 반투성도 아니고 투성이 되어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 이었다.
특히 흑치웅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바보처럼 입을 벙긋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투존 최고급의 경지에 머물며 아직 반투성의 경지에도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건만 5성 투존이었던 이준이 자신을 앞질러 이미 투성이 되어버렸으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준이 창백해진 화전의 이마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밀자, 그의 이마에서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더니 이내 기이한 문양이 떠올라 그의 모든 염력을 봉인해 버렸다.
이준은 그제야 그를 놔주고 다시 흑치웅의 옆에 나타났다.
“이렇게 잡으면 목숨을 내놓을 필요가 없지요.”
너무나도 간단하게 화전을 제압해 버리는 이준의 모습에 흑치웅은 완전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게 대체…….”
바로 그때, 먼 곳에서 이준과 화성을 지켜보던 북룡도의 장로가 황급히 공간을 가르고 그 안으로 달아나려 했다.
화전을 거뜬히 잡을 정도라면 상대는 최소 1성 투성 이상의 실력자였다. 반투성인 그의 실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투성 강자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이준, 저 녀석들을 놓치면 안 된다!”
촉이 장로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대로 그가 달아나게 놔둔다면 북룡도의 용왕과 다른 강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이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 그를 막지도, 쫓지도 않았다.
갑옷을 입은 장로가 공간을 가르고 사라진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십여명의 강자들이 달아난 북룡도의 강자들의 목덜미를 붙잡은 채 공간을 가르고 이준이 서있는 곳에 나타났다.
“허허, 교활한 놈 같으니. 하지만 중급 반투성의 실력으로 내 손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더냐?”
요명은 정신을 반 정도 잃은 장로를 이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장로를 받은 이준은 그의 염력을 봉인시켜 흑치웅에게 넘긴 뒤 촉이장로에게 다가가 웃으며 요명을 소개해주었다.
“이 분은 지옥 이무기족의 요명 족장님입니다.”
“지옥이무기?”
촉이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요명을 훑어보며 되물었다.
“용왕들이 지옥 이무기족과 손을 잡았다고 들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허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삼대 고룡도와 동맹을 맺은 것은 저의 동생입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이미 황천길을 떠났고, 지금 지옥 이무기족의 족장은 저입니다.”
요명이 웃으며 말했다.
“만일 동룡도만 괜찮다면 저희 지옥 이무기족은 용황 폐하의 편에 서려 합니다.”
“예?”
촉이 장로는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이준과 요명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동룡도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이준이 물었다.
촉이 장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주 좋지 않네. 삼대 고룡도는 동룡도를 완전히 포위하고 용황 폐하가 완전히 각성하기 전에 끝장을 볼 생각이야.”
촉이 장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준의 눈에 섬뜩한 살기가 내려앉았다.
“지금 당장 동룡도로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