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9화. 하늘 봉황족의 삼황
“저 녀석은 수련할 때마다 며칠은 걸리네.”
아라가 암석 위에 앉아있는 이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준이 수련 상태에 들어간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보름 동안 그는 안개구름같이 일렁이는 에너지에 싸여 깨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채린 언니도 소식이 없네요.”
그녀의 곁에 있던 예린이 지옥 호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열흘 가까이 계속 끓어오르던 호수의 수면은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지만, 채린은 여전히 그 안에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채린은 지금 물 만난 물고기일 거야. 칠색 이무기가 한기로 가득한 호수에 들어갔으니 말이야.”
아라가 웃으며 말했다. 긴 세월을 걸쳐 지옥호수에 모인 에너지는 끊임없이 깊은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아마도 그 거대한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채린이 있을 것이다.
“계속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어요. 요명 족장님이 봉황족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괜찮아. 이준도 곧 깨어날 것 같고.”
예린의 말에 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준을 쳐다봤다. 기운을 서서히 거두는 것으로 보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수련이 끝날 것이 분명했다.
예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바위에 앉아 이준이 성공적으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이 골짜기 주변은 요명 족장이 이미 봉쇄해두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방해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다시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3일째 아침이 밝자, 이준의 몸을 감싸고 있던 구름 같은 에너지가 거대한 회오리처럼 미친 듯이 한곳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준의 눈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앞에 있던 절벽에 거대한 두 개의 동굴이 생겨났다.
쾅!
이준이 고개를 들어 입을 벌리자, 백 미터가 넘는 에너지 폭풍이 그대로 이준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엄청난 기세로 몰아치는 에너지 폭풍에 단단한 절벽에는 빠른 속도로 거미줄 같은 금이 생겨났고, 거대한 바위가 단숨에 굉음을 내며 무너졌다.
쉭!
산골짜기에서 시작된 엄청난 에너지는 지옥 이무기족 강자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지만, 족장이 된 요명의 명령이 있었으니 누구도 지옥호수 근처로 날아오지는 않았다.
오직 요명과 몇몇 측근 장로들만이 호수근처로 날아와 놀란 눈으로 이준을 지켜볼 뿐이었다.
“곧 2성 투성이 되겠소.”
한 장로가 방대한 천지의 에너지를 집어삼키고 있는 이준을 보며 말했다.
“요성의 피가 있다고는 하나 투성 단계에서는 1성을 올리는 것조차 아주 힘이드니……. 1성 투성 상급만 되어도 괜찮은 성과일세.”
요명이 말했다. 그 역시 2성 투성 상급 강자이니, 투성 강자의 승급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쾅!
요명과 장로들이 대화를 나누던 사이, 이준의 머리 위에 있던 에너지폭풍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이준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
“허허. 이준 군, 1성 투성 상급에 접어든 것을 축하하오. 2성 투성이 되는 것도 이제 코앞이구려.”
하늘 위에 있던 요명이 땅으로 내려와 웃으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준은 쑥스러운 듯 씨익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채린은 아직도 수련중인가 보네.”
수련을 마친 이준이 지옥 호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민감한 영혼 탐지 능력으로는 지옥호수 속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는 채린의 위치를 아주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하늘 봉황족 쪽에서 무슨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습니까?”
이준이 요명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있었소.”
그의 말에 요명은 웃음을 거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며칠 안에 고룡도로 강자들을 파견할 것 같습니다.”
“역시 예상대로군요.”
이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용황의 피를 얻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몇 명이나 움직일 것 같습니까?”
“이번에 파견된 강자들은 대부분 투존이오. 우리가 주의해야할 자들은 세 사람 밖에 되지 않소. 세 사람 모두 봉황족의 태상장로로, 마수계에서 악명이 높은 자들이오.”
“태상장로요?”
“그렇소. 하늘 봉황족의 삼황이라고 불리는 봉황, 곤황, 응황이 고룡도로 간다고 하더군.”
요명이 말했다.
“그들은 각각 2성 투성 중급, 1성 투성 상급, 1성 투성 중급의 실력을 갖고 있소.”
“투성이 3명이라…….”
이준의 낯빛이 살짝 바뀌었다. 투성을 셋이나 보내다니, 하늘 봉황족도 이번 일에 사활을 건 모양이었다.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 3성 투성과도 겨룰 수 있소. 만일 그들이 세 개의 고룡도와 손을 잡는다면 제 아무리 용황이라 해도 쉽지 않을 것이오.”
“그들은 언제 움직일 예정입니까?”
이준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3일 후에 출발한다고 들었소.”
“요명 족장님. 약속을 지켜주실 수 있겠지요?”이어지는 이준의 질문에 요명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자이니.”
* * *
다음 날 아침.
이준은 뒷짐을 진 채 말없이 지옥 호수를 바라봤다.
“시간이 다 됐어. 출발해야 해.”
먼 곳에서 날아온 아라가 이준의 곁에 착지하며 말했다.
“응.”
아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준은 손을 휘둘러 지옥호수 근처의 공간을 모조리 봉쇄하기 시작했다. 이 공간 결계가 있다면 어지간한 실력의 강자들은 감히 채린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공간결계를 공격하면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든 이준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채린아, 마음 편히 수련하고 있어. 요명도 이곳에 강자들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려놨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수련이 끝나면 바로 성운각으로 돌아가.”
말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예린, 아라와 함께 공간을 가르고 사라졌다.
쏴아아-.
이준과 아라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옥 호수에서 강한 물소리가 울려퍼졌다.
지옥호수에 들어온 이후, 그녀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는 느낌을 받았다. 보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그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아득히 먼 호수 바닥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목소리를 따라 그녀는 이미 이준과 요명이 만났던 호수의 바닥보다 더욱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었다. 그곳은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이준조차 감히 발을 들일 수 없을 정도로 한기가 가득한 곳 이었다. 이 세상에서 그런 장소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 채린 뿐이었다.
* * *
“이준 군. 하늘 봉황족은 분명 공간 균열을 통해 고룡도로 갈 것이오. 우리가 먼저 도착해야 그들을 중간에서 막을 수 있소.”
요명이 이준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번엔 나도 장로 여섯 명과 함께 가겠소. 수적으로는 우리가 밀리겠지만 봉황족의 삼황만 처지하면 우리의 승리요.”
이준은 요명이 말한 여섯 명의 장로를 쳐다봤다. 그 중 하나는 중급 반투성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다섯은 9성 최고급 투존이었다.
“요소천과 대장로의 배신만 아니었다면 우리에게도 투성이 셋은 있었을텐데…….”
요명이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하늘 봉황족과 지옥 이무기족의 실력차가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명 족장님, 걱정 마십시오. 이번 일이 끝나면 지옥 이무기족은 봉황족보다 더욱 강성해질 것입니다.”
웃으며 요명을 격려하던 이준의 시선이 아라와 예린에게로 향했다. 그녀들은 아직 반투성이 되지 못 했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면 1성 반투성 강자를 상대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싸움을 할 수 있었으니 상대가 봉황족의 삼황이라 해도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시간이 다 되었소. 움직입시다.”
말을 마친 요명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그의 손을 따라 새까만 공간균열이 나타났다.
“가세.”
* * *
텅 빈 공간 속……. 돌연 강렬한 공간파동이 터져 나오더니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쉭!
곧이어 그 균열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봉황족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아내죠?”
“허허, 걱정 마시오. 봉황족에 우리의 첩자가 있소. 그 자의 몸에 공간 각인을 새겨두어 놈들이 어디로 가든 느낄 수 있소.”
요명이 웃으며 북쪽을 가리켰다.
“지금은 저쪽에 있구려.”
말을 마친 요명은 곧장 눈앞의 새카만 공간을 향해 몸을 날렸다.
“따라갑시다.”
이준 일행과 여섯 장로 역시 빠르게 요명의 뒤를 따라 텅 빈 허공에 몸을 던졌다.
* * *
이준 일행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봉황족의 강자들을 기다린 지 이틀 째,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공간 통로가 생겨났다.
20명 정도 되는 무리를 이끌고 있는 것은 세 명의 투성 강자로, 그들의 뒤에 있는 자들은 감히 그들의 뒷모습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뒤를 따르고 있었다.
“드디어 용족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으니 모두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라.”
세 사람 중,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태상 장로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녀의 뒤에 있던 봉황족 강자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그 사이에는 두 명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보리 나무의 땅에서 이준과 마주쳤던 구봉과, 중주에 들어온 이후 쭉 악연으로 엮여있는 봉연이었다.
봉황족 내에서 제법 높은 지위를 자랑하는 그들도 태상장로 앞에서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흥, 용족……. 이번에야말로 너희를 끝장내고 봉황족이 마수계의 정점에 설 것이다.”
칼날 같이 뾰족한 그녀의 웃음소리가 텅 빈 공간속에 울려 퍼졌다.
* * *
쥐 죽은 듯이 조용한 허공 속.
쉭!
갑자기 귀를 찌르는 바람소리가 들려오더니 수 십 개의 유성과도 같은 빛 덩어리가 암흑을 뚫고 번개 같은 속도로 지나갔다.
“큰 누님, 오늘이 삼대 고룡도가 동룡도를 공격하는 날 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있으면 한 번에 동룡도를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붉은 옷의 여자의 곁에는 까만 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따라붙어 있었다. 노인이 입을 열 때 마다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노인의 이름은 바로 ‘곤황’으로, 마수계에서 악명이 자자한 봉황족의 최고 강자 중 하나였다.
“그렇게 조급할 필요 없다. 우선 그들끼리 싸우게 둬야지. 많이 죽으면 죽을수록 우리에게는 좋은 일 아니겠느냐?”
“흐흐, 삼대 고룡도가 우리에게 지원 요청을 하다니, 오래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군.”
곤황의 반대편에는 음산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하늘요괴 삼황 중 ‘응황’이었다.
“동룡도를 멸망시키고 용황의 피를 얻게 되면, 삼대 고룡도도 완전히 뿌리를 뽑아 버리겠어.”
붉은 옷의 여자가 음산하게 웃으며 속도를 높였다.
바로 그때, 그녀의 아래쪽에서 매서운 염력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어떤 놈이 감히 하늘 봉황족을 공격하느냐! 죽고 싶구나!”
주위에 나뒹굴고 있는 봉황족의 강자들을 보는 순간, 여자의 눈에 섬뜩한 살기가 돌았다.
분노한 여인이 주먹을 움켜쥐자, 주위의 공간이 무너져 내리며 굉음이 폭발했다.
“하하, 이거 몇 백 년 만에 만나는 건지 모르겠군.”
그때, 우렁찬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까만 그림자 하나가 하늘 봉황족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