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2화. 지옥지맥
깊은 못.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몇몇 그림자가 유성처럼 지하를 향해 내려갔다.
“진 총령님. 이번에는 지옥 이무기족의 회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만 동의한다면 동룡도를 완전히 박살내고 승리를 차지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한 남자가 자신보다 앞서가는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하지. 지옥 이무기는 지금 용황의 피를 찾지 못해 안달인데, 우리의 제안을 절대 거절할 수 없을 거다.”
앞서 가던 사내가 말했다. 사각턱에 두꺼운 눈썹을 가진 사내의 얼굴에서는 강인한 느낌이 잔뜩 묻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동룡도는 용황이 지키고 있잖습니까. 우리는…….”
한 남자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왕족의 피는 평범한 용족의 강자들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다른 강자들은 왕족의 피를 가진 사람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흥, 용왕 대인에게도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사내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예.”
‘흥.’
진 총령이라는 사내가 다시 속력을 높이려는 찰나, 멀지 않은 허공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귀신처럼 나타났다.
“지옥 이무기족이 아니군.”
그림자를 발견한 진 총령은 곧바로 주먹을 움켜쥐며 전투 상태에 돌입했다.
“누구냐!”
진 총령이 험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멈추십시오. 물을 것이 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무리 중 가운데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공격하라!”
사내의 눈빛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어낸 진 총령은 곧바로 염력을 폭발시키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주먹을 휘둘러보기도 전에 공간이 굳어버리며 그의 몸이 우뚝 멈춰버리고 말았다.
“누구냐! 감히 우리가 누구인줄 알고!”
진 총령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놀라 소리쳤다. 5성 투존 강자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하는 실력자라니, 대체 어디서 이런 강자가 갑자기 나타났단 말인가.
“알고 있다. 전설의 용족이 아닌가. 네 개의 고룡도 중 어디에서 온 것이지?”
이준이 진 총령을 위 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진 총령의 눈동자가 빠르게 수축했다. 전설의 용족이 네 개로 분열되었다는 것은 오직 용족 사람들만이 아는 일인데, 어떻게 인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단 말인가?
“무, 무슨 소리냐.”
진 총령의 대답에 이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들어 진 총령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주었다. 그러자 진 총령의 어깨에서 돌연 새빨간 선혈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아악! 네, 네놈이 감히!”
진 총령은 고통으로 온 몸을 떨며 분노에 찬 눈빛으로 이준을 노려봤다.
펑펑펑!
하지만 이준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진 총령의 몸을 계속해서 눌러댔고, 그의 손가락이 진 총령의 몸에 닿을 때마다 구멍에서 피가 솟구쳤다.
“이렇게 피를 쏟다간 5분 후에 피가 말라 버릴 텐데. 피가 모두 빠져나간 용족의 최후가 어떤지는 잘 알고 있겠지?”
이준의 말을 듣는 순간 진 총령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우린 북룡도에서 왔소. 대체 누구시오? 당신 같은 강자에게 원한을 산 적도 없는데!”
“지금 용족의 상황은 어떻지?”
“이미 내전 중에 있소. 삼대 고룡도가 함께 동룡도를 공격하고 있소. 하지만 동룡도에서 새롭게 탄생한 용황과 허공 속에서 수련하던 장로들이 돌아오면서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소.”
진 총령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룡도의 상황을 실토했다.
‘역시 전쟁이 시작됐구나…….’
이준의 표정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제 아무리 용황의 힘을 가지고 있다지만 투성 강자 셋을 상대로 그리 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지?”
이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지옥이무기와 동맹을 맺고 동룡도를 칠 생각이오.”
“용족의 내분에 다른 종족을 끌어들이다니, 전설의 마수라는 명성이 아깝군.”
이준은 싸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건 삼대용왕의 결정이오.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오! 게다가 이미 지옥 이무기족에게 연맹의 의사를 전달했소. 우린 확실한 회답을 들으러 온 것뿐이오. 당신들이 우릴 붙잡고 있어도 곧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오.”
“지옥이무기족 외에 다른 곳에도 연맹을 요청했나?”
이준의 질문에 진 총령의 입에 다시 자물쇠가 채워졌다.
“좋아.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이준이 다시 진 총령에게 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
“하, 하늘 봉황족에도 지원을 요청했소!”
진 총령은 몸을 떨며 급하게 입을 열었다.
순간 이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제 아무리 용황의 힘을 얻은 보람이라 해도, 삼대 용왕과 마수계의 삼대 종족 중 나머지 두 종족이 손을 잡는다면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살기로 물든 이준의 표정을 보고 진 총령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보람이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채린이 빠르게 위로 올라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고룡도로 갈까?”
그녀의 질문에 이준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하늘 봉황족과 지옥이무기족이 고룡도로 가기 전까지는 버틸 수 있을 거야.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고룡도에 가는 시간을 늦춰주는 거야.”
그의 대답에 채린은 더 이상 다른 군말을 하지 않고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은 다시 진 총령을 협박해 몇 가지 정보를 얻어낸 뒤 더 이상 알아낼 것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나서야 그를 놔주었다.
이미 반 이상 피가 빠져버린 진 총령은 저항할 힘조차 없는 듯 감히 이준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 했다.
이준은 진 총령을 가볍게 위 아래로 훑어본 뒤 그와 함께 온 용족 강자들의 염력을 봉인시킨 후 시커먼 통로 중 하나로 그들을 집어던졌다. 이곳은 통로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지옥이무기들조차 그 통로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지옥 이무기의 호수로 가자.”
용족의 강자들을 처리한 이준이 다시 공간을 가르며 말했다.
* * *
수천 개의 토굴이 복잡하게 얽힌 지하 세계.
이미 완벽히 준비를 마친 이준 일행은 이곳의 지형이 상세하게 그려진 지도 덕분에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옥이무기족의 총부가 있는 지옥지맥은 뱀인간들의 성지로 꼽히는 장소로, 그만큼 경비도 매우 삼엄하기 때문에 외부인은커녕 평범한 뱀인간은 이곳에 발을 들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마수계의 3대 세력답게 강자가 넘쳐나는군.”
지옥지맥 바깥에 위치한 산봉우리 바닥에 발을 디딘 이준이 넓게 펼쳐진 산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뱀인간 부락을 볼 줄이야. 게다가 우리 부락보다 수십 배는 더 커.”
채린이 놀란 얼굴로 평원을 빼곡하게 채운 부락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록에 따르면 아주 오래 전, 우리 부족만 타르사막으로 이동했다고 하던데……. 우리 부족의 고향이 이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지옥 이무기의 호수는 지맥 깊은 곳에 숨어있어. 이곳에는 반투성 강자들도 많으니 최대한 기운을 완전히 숨기고 이동해야 해.”
“응.”
이준의 말에 채린, 아라, 예린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화악!
이준이 커다란 소맷자락을 휘두르자, 공간이 빠르게 일그러지며 네 사람의 형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지옥지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주변에서 느껴지는 강자들의 기운이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한 번씩은 영혼의 힘이 무언가를 느낀 듯 이준 일행이 숨어있는 공간을 훑으며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투성 강자가 된 이준의 공간 봉쇄 능력을 뚫고 그의 기운을 감지할 정도의 강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덕분에 무사히 지옥지맥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옥지맥 깊은 곳에는 거대한 못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백 미터가 넘는 커다란 못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고, 곳곳에서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평범한 강자라면 이곳에 서있는 것만으로 몸속에 있는 피는 물론이고 염력마저 얼어붙고 말 것 같았다.
이 못의 가장 깊은 곳에는 바로 이준 일행의 목적지, 지옥 이무기의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기가 피어오르는 연못의 주위에는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어떤 경비병도 찾아볼 수 없었다. 깊은 못 속에서 퍼져 나오는 한기 자체가 바로 이곳을 지키는 가장 믿음직한 경비병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쉭!
한기가 서린 세찬 바람이 끊이지 않던 그때, 공간이 빠르게 일그러지며 이준 일행이 나타났다.
이준은 다시 공간의 힘을 소환해 온몸을 감싼 후 싸늘한 바람을 뚫고 검은 못 속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십 분을 내려가자 마침내 바닥에 발이 닿았다. 이준 일행이 도착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거대한 호수가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 것 같은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거대한 호수 속에는 황토색의 물이 고여 있었는데, 호수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피처럼 붉은 빛이 일렁이며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곳이 전설 속의 그 지옥 이무기의 호수야.”
목적지에 도착한 이준은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호수를 향해 다가갔다.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얼음장 같은 한기가 끊임없이 그의 몸을 파고 들었다.
“한기가 너무 심하네. 지옥이무기족의 강자라고 해도 여기서 오래 버티긴 어렵겠어.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누군가 오는 일은 없을 테니 시간도 충분해.”
아라가 말했다. 그녀는 이미 호수의 한기를 버티기 어려워졌는지 호수와 저만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수 앞에 멈춰 몸을 숙였다. 호수에 손을 넣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 위에 황토색 결정체가 생겨났다.
“역시 대단해. 스승님조차 이 호수의 깊은 곳까지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 말이 진짜였어.”
이준이 자갈색 화염을 불러내자, 그의 손을 타고 올라오던 황토색 결정체가 빠르게 녹아내렸다.
“채린아. 내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 황천의 결정을 찾아온 다음에 호수에 들어가. 내가 네 몸을 보호해줄게.”
이준은 손에 묻은 물을 털며 채린에게 말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채린과 이준만이 지옥호수의 물에 손을 댈 수 있었다.
“응. 조심해서 다녀 와. 정 안 되겠으면 바로 올라오고.”
채린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사실 약로가 이곳에 오면 구색이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한 말을 완전히 믿지는 못 했었다. 하지만 직접 이 호수의 음산한 힘을 느껴보니 정말로 구색 이무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호수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모두 숨어있어.”
이준은 두 사람들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당부한 뒤 주저하지 않고 천지의 불꽃으로 온몸을 감싼 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치이익!
무시무시한 한기를 가진 호수와 엄청난 열기를 가진 천지의 불꽃이 만나며 수면 위로 새하얀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채린이 가볍게 손을 흔들어 눈앞을 가린 연기를 날려보내며 말했다.
“너희도 우선 숨어 있다가 이준이 나오면 다시 얘기하자.”
“응.”
그녀의 제안에 아라와 예린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호수 주위에 몸을 숨겼고, 채린 역시 호수 근처의 어두운 공간에 조용히 몸을 숨겼다.
쉭!
탁한 황토색 물속으로 뛰어든 이준은 화염으로 온몸을 감싼 채 빠르게 아래 쪽으로 내려갔다.
‘정말 엄청난 냉기야. 천지의 불꽃이 아니었다면 감히 이 안에 들어올 생각조차 할 수 없었겠어.’
하지만 수심이 깊어질수록 이준의 표정도 굳어졌다. 물속에 담긴 한기에 의해 서서히 몸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속도를 더 내야 해. 오래 버티지 못하겠어.’
한기를 막아내는데 소모되는 염력의 양은 투성이 된 이준에게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평소에는 천지의 에너지를 흡수해 염력을 보충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그것조차 불가능하니 더욱 한기를 몰아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한기가 점점 짙어지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