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9화. 9레벨 보물비약
“사람의 형태로도 변할 수 있다니, 재밌네.”
이대로 놓쳐버리면 기괴한 물건으로 변해 진귀한 9레벨 연금비약을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크르릉!
그러나 ‘이준’으로 변신한 9레벨 보물비약은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해 그저 계속해서 울부짖을 뿐이었다.
“하하, 정말 성공하다니! 하지만 저게 뭔 연금비약인지 모르겠구만. 9레벨 연금비약은 조합표가 없으면 제련하지 못할 텐데 말이오.”
현공자가 말했다. 그의 말에 약로는 고개를 저었다.
이준이 제련한 이 연금비약은 약로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이 연금비약 속에서 보리단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사실밖에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준이 만들어낸 연금비약은 보리단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준은 막무가내로 따라다니지 않고 기회를 보고 있다가 9레벨 연금비약을 한 번에 낚아챘다. 이준이 가볍게 비약의 머리를 짓누르자, 보물비약의 몸이 빠르게 흔들리며 둥근 연금비약 모양으로 변화했다.
9레벨 연금비약을 손에 쥔 이준은 그제야 밑으로 내려와 얼굴이 하얗게 질린 호 노인을 가볍게 흘겨보았다. 노인의 손에 들린 빨간색 연금비약은 한눈에 보기에도 이준의 연금비약과 비교할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각자 제련한 연금비약을 한 사람씩 밝히시오.”
잠시 후, 소연금탑의 한 장로가 입을 열었다.
“비룡혈단. 9색 비뢰의 8레벨 연금비약으로 불속성 염력을 수련한 사람이 먹으면 염력을 변형시켜 전투력을 높여줍니다.”
호 노인이 손에 들린 연금비약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승패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비룡혈단을 제련한 것 자체만으로 그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준, 자네는?”
이준이 청록색 연금비약을 손에 쥔 채 말했다.
“보리대환단. 9레벨 보물비약으로 보리단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보리단보다 반투성이 될 확률이 두 배 더 높습니다.”
“두 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준의 말에 곧바로 주변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
대장로 역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투존 최고급에서 반투성으로 승급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로, 수많은 강자들이 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렇기에 수많은 투존 최고급 강자들이 이 보리단에 열광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보리단은 대략 5할 정도의 확률로 투존 최고급 강자를 반투성으로 만들어주니, 그 두 배라면 보리대환단을 통해 거의 확실하게 반투성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중주의 모든 투존 최고급 강자들이 성운각 입구에 모여드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사실 보리대환단의 조합표는 이준이 백 번의 환생을 겪으면서 수많은 실험 끝에 만든 것으로, 천지의 불꽃을 통해 보리심을 강화시켰던 경험이 있는 그만이 제련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보리대환단을 제련하기 위해선 반드시 보리구슬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이제 이 보리구슬은 이준의 손에도 단 10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준, 연금비약의 효과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면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장로 한 명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만일 가짜라면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겠습니다.”
이준의 자신 있는 대답에 장로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대장로가 이준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리대환단의 품질이 비룡혈단을 뛰어넘으므로, 오늘의 최종 우승자는……. 이준이다.”
대장로의 한마디에 호 노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약로는커녕 그가 가르친 제자조차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그는 분노로 제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허허. 축하하오.”
현공자가 약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주 대단한 제자를 키웠구려. 그야말로 청출어람 아니오?”
쏟아지는 축하에 약로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몰랐다. 오늘 이준이 보여준 활약은 그가 스스로 호 노인을 이긴 것보다 그를 더욱 빛나게 했다. 수많은 강자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제자를 키우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곤 했다. 훌륭한 제자를 기르는 것은 그 자체로 그의 말년이 훌륭했다는 증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흥!”
약로의 흐뭇한 표정을 발견한 호 노인은 분을 참지 못하고 콧방귀를 뀌며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한편, 석대 위에 있던 대장로는 온화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주에선 나이보단 실력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준은 염력 수준이든 연금술이든 모두 대장로와 맞먹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준. 앞으로 자네는 소연금탑의 장로일세. 자네와 약선은 날 따라오시게. 자네들이 말한 일에 대해 상의해 보도록 하지.”
이준은 들뜬 얼굴로 예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친 대장로는 함께 있던 장로들과 함께 석대 밑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가지.”
* * *
소연금탑 의사당에는 3대 수장을 포함한 열 명의 장로가 각자 자리에 앉았다. 이준과 약로 역시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은 후 가장 앞에 앉아있는 대장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연금탑은 늘 중립을 지키며 여태 단 한 번도 한쪽 세력에 치우친 적이 없소. 이것은 우리 연금탑의 규칙이기도 하오.”
대장로의 평온한 목소리가 대청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번 연맹에 대해 많은 장로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냈소. 연금탑과 영혼의 궁전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긴 하지만, 연맹을 꾸리게 된다면 오랜 시간 지켜온 연금탑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오.”
“대 장로님. 놈들은 그동안 수많은 연금술사들의 영혼을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연금탑은 연금술사들의 성지라 불리는 곳으로서 그들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전이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는 동안 연금탑은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연금술사들의 불만을 피할 수 없을뿐더러 연금탑의 명예가 크게 실추될 것입니다.”
대장로의 말에 이준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연금술사의 성지라는 명성을 잃고 나면, 연금탑이 평범한 세력들과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준의 말에 장로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영혼의 궁전은 거의 대놓고 연금술사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영혼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금탑은 이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해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연금술사들도 참고 기다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연금탑에게서 점점 등을 돌리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한참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대장로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약선. 자네 제자는 염력과 연금술만 대단한 줄 알았더니, 말재주도 뛰어나군.”
“허허. 젊은이들은 주제 넘는 행동을 서슴지 않지요.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제가 대신 용서를 빌겠습니다.”
약로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것도 다 능력이 뒷받침되니 하는 것이겠지.”
잠시 후, 대장로가 이준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뗐다.
“자네도 이제 소연금탑의 장로이니 찬성표가 하나 더해지겠구나. 그럼 과반 이상이 찬성했으니 연금탑도 이번 연맹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지.”
“감사합니다, 대장로님!”
이준은 가슴속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영혼의 궁전이 모든 연금술사들의 적인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니, 함부로 손을 대지 못 했지.”
대장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에는 연맹의 힘을 빌려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군.”
“대장로님, 걱정 마십시오. 그때가 되면 연금탑만 나서 싸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준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대장로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시작할 생각인가?”
“3일 후 성운각으로 모시겠습니다. 그 날 성운각, 불의 협곡, 화종, 연금탑이 모두 모여 정식적으로 연맹을 꾸릴 예정입니다.”
“화종, 불의 협곡도 연맹에 들어왔단 말이냐? 허허. 그 정도라면 영혼의 궁전 놈들에게도 뒤지지 않겠는데…….”
중주에서 이름난 세력들이 모두 연맹에 동참했다는 말에 반대를 표했던 장로들의 얼굴에도 조금 화색이 돌았다.
“그래. 3일 후 내가 직접 성운각으로 찾아가겠다.”
대장로는 오랫동안 얼어있던 피가 갑자기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침내 오랜 세월 꾹꾹 눌러 참아왔던 원한을 풀 기회가 온 것이다.
소연금탑의 문제를 해결한 이준과 약로는 연금성에서 하루를 더 머무른 뒤 성운각으로 돌아갔다. 성운각이 연맹의 주축인만큼 미리 돌아가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성운각 전체가 연맹의 성사로 떠들썩해진 가운데, 이틀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 * *
성운각의 접객 장소가 위치한 곳은 성운계의 거대한 산봉우리로, 이준은 물론이고 약로와 채린 등 성운각과 불의 연맹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연맹에 참여하기로 한 사람들을 맞기 위해 친히 대문 밖으로 나와 있었다.
정오가 지나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종의 강자들이 산봉우리로 날아왔다.
이준은 진율희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의 곁에 서있는 두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중급 반투성, 상급 반투성……. 과연 스승님의 말대로구나.’
“허허, 청 선자, 화 선자. 오랜만이오. 그간 무탈하셨소?”
약로는 여인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바닥으로 서서히 내려온 여인은 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빛으로 약로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오. 그 사이 완전 늙은이가 되었구려.”
그녀의 말에 약로는 멋쩍은 듯 허허 웃었다.
“이곳이 바로 성운각이오? 과연 기세가 대단하군.”
그때, 성운계 안에 폭풍같이 강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새빨간 머리칼을 가진 노인 하나가 공간을 가르고 나타났다.
“화운 영감, 아직 살아있었구려.”
그 노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약로가 빙긋 웃으며 인사를 올렸다.
‘저 분이 바로 불의 협곡의 화운 선배님이시구나.’
이준 역시 긴장된 얼굴로 새빨간 머리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실력은 1성 투성 중급 정도로, 이제 막 투성이 된 이준보다도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약선. 아직도 살아있을 줄 몰랐군.”
화운이 같이 온 당진, 당화연과 함께 약로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그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자네는 정말 투성이 되었군.”
약로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표정으로 보아 둘 사이의 인연이 제법 깊은 듯 싶었다.
“투성이 되려다 목숨까지 잃을 뻔 했지. 자네 뒤에 있는 녀석과 비교하면 팔자가 참 사납지.”
화운이 이준을 바라보며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화운 선배님, 당 곡주님.”
“네가 바로 이준이냐? 역시 인재군, 인재야. 우리 화연이와 잘 어울리겠어.”
이준이 깍듯하게 인사를 올리자, 화운이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가 있는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자, 뒤편에 있던 당화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본래 그녀의 성격대로라면 당장이라도 바락바락 악을 쓰며 할아버지에게 대들어야 했지만, 화운의 체면을 생각해 이를 꽉 깨물며 그의 등을 째려볼 뿐이었다.
이준 역시 갑작스러운 발언에 난감해진 듯 아무 말 없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연금탑 사람들도 모두 도착했군.”
화운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간이 일렁이더니 연금탑의 대장로와 3대 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 임씨. 이 노인네도 왔단 말이야?”
연금탑 대장로를 발견한 화운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뭐요? 내가 못 올 곳에 왔소?”
“허허. 다 모였으니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하세.”
약로는 웃으며 몸을 돌려 성운각 안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역시 모두 대화를 멈추고 약로의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