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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17화 (717/818)

717화. 장로 선발

이후 3일간 이준과 약로는 연금탑 안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는 이준보다 윗세대의 연금술사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약로와 안면이 있었다.

삼일동안 약로는 중주에서 명성이 높은 연금술사들을 이준에게 소개해 주었다. 연금술사에게는 인맥이 가장 큰 재산이었으니, 3일이라는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쓰는 방법은 유명한 연금술사들과 교분을 쌓는 일 이었다.

이제는 투성이 되었고 연금술 경연대회의 우승자이니 나이든 연금술사들도 기꺼이 이준과 안면을 트려했다.

4일 째 아침이 밝는 날. 조용하던 협곡이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평소에는 한산하기 짝이 없던 광장에 오늘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대부분은 하얗게 머리가 센 노인들로, 중주에서도 손에 꼽는 훌륭한 연금술사들이었다.

약로와 이준이 3대 수장의 안내에 따라 광장 안으로 들어오자, 연금술사들이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약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약선, 아직 죽지 않았군.”

약로가 빙긋 웃으며 그들과 인사를 주고받던 그때, 멀리서 그리 정답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사람들이 양쪽으로 물러나면서 기다란 길이 만들어졌다. 그 길의 끝에는 회색 의복을 입은 노인 하나가 서있었다.

“허허, 호 영감. 자네도 아직 살아있는데 어찌 내가 먼저 가겠나?”

“저 사람이 그 호 선배님입니까?”

약로의 말을 들은 이준이 회색 의복을 입은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흥, 제발로 소연금탑을 나가더니 무슨 바람이 불어서 장로 자리를 노리는거지?”

회색 의복의 노인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번엔 내가 참가할 게 아니네. 나와 그렇게 겨루고 싶다면 우선 내 제자를 뛰어넘어 보게. 마침 이번 경선에 참가하거든.”

“제자?”

회색 의복의 노인의 시선이 약로의 곁에 있는 이준에게로 향했다. 이준의 외모를 보는 순간,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이 꼬맹이가 경선에 참가한다고? 약선.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다만 여긴 중주가 아니라 소연금탑이야!”

주위의 나이든 연금술사들 역시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이렇게 젊은 녀석이 소연금탑의 장로 시험을 볼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준은 이번 연금대회 우승자인데 어찌 자격이 없겠는가?”

현공자가 호 노인을 흘겨보며 말했다.

“연금대회 우승자?”

현공자의 말에 호 노인의 표정이 곧장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연금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은 그의 평생의 한이었는데, 스승에 이어 제자까지 연금대회의 우승자 자리를 거머쥐다니,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연금대회 수준이 많이 떨어졌나보군.”

“글쎄요. 이번 연금대회에서 이준은 오색 비뢰로 우승을 거뒀습니다. 그 정도라면 당신과 약선이 겨뤘던 그 때보다 훨씬 나은 결과인 것 같은데요.”

현공자의 곁에 있던 현이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오색 비뢰?”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 있는 연금술사들 정도라면 오색 비뢰 연금비약을 제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준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이는 실로 믿을 수 없는 실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흥, 오색 비뢰? 어린 놈 치고는 제법이다만, 어리다고 대장로 시험의 기준이 낮아지는 것은 아닐 텐데?”

하지만 호 노인은 끝까지 이준을 인정할 생각이 없다는 듯 계속해서 그를 비웃었다.

“약선. 네 놈이 무슨 생각으로 여기 왔는지 알고 있다. 내가 장로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너희는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야!”

말을 마친 호 노인은 또다시 콧방귀를 뀌며 몸을 돌려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나 약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온화한 표정을 유지한 채 이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 장로가 될거라는 저 늙은이의 꿈을 산산이 짓밟아줘야겠구나. 할 수 있겠느냐?”

“걱정 마십시오.”

* * *

따사로운 햇빛이 두꺼운 구름을 뚫고 산 정상을 밝게 비추고, 오래된 종소리가 서서히 울려 퍼졌다.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공간이 빠르게 일그러지더니 일곱 개의 그림자가 석대 위에 나타났다. 그들이 나타나는 순간, 광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수많은 인파 사이에 섞여있던 이준은 일곱 명의 노인을 천천히 훑다 네 번째에 위치한 사람에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자리에 나타난 일곱 명의 장로 중 그에게서 가장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급 반투성 두 명, 상급 반투성 한 명. 게다가 이 사람은 2성 초반의 투성 강자라니……. 이게 연금탑의 진짜 실력이었구나. 이 정도라면 영혼의 궁전과 싸울 때 엄청난 도움이 될 거야.’

“저 베옷을 입은 노인이 소연금탑의 대장로다. 큰 어르신을 제외하면 소연금탑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분이지. 나도 저 분에게는 새까만 후배에 불과하단다.

약로가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이준의 시선을 느낀 노인은 바다처럼 깊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동안 이준을 지켜봤다.

대장로와 눈이 마주치자 이준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주변 공간이 알 수 없는 힘에 강하게 눌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느낌은 오직 당사자만 알 수 있었다. 딱히 적대적인 의도가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상대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중압감이었다.

이준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서있자 대장로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소연금탑에서 보기 어려운 활기찬 날이오. 장로 선발은 모두 처음이 아닐 테니 규칙은 설명하지 않겠소. 이 산에 있는 약재를 채취해 가장 좋은 연금비약을 제련하는 자가 오늘의 승리자가 될 것이오.”

“질문이 없으면 참가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시오.”

대장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상황을 진행시켰다.

“예!”

잠시 후, 여러 사람이 광장 앞으로 나와 나란히 늘어섰다.

“그럼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준도 약로에게 인사를 건넨 뒤 광장으로 걸어나갔다.

이준이 출전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어떻게 이렇게 어린 사람이 소연금탑의 장로 시험에 나왔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준은 약선의 제자이자 연금대회의 우승자일세. 때문에 규칙에 따라 장로 선발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지.”

대장로가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군…….”

“약선이 또 제자를 받아들일 줄이야.”

광장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금대회 우승자라는 간판은 확실히 대단했지만, 오늘 이 자리에 나타난 연금술사들 중 대부분은 투기대륙 최고의 연금술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과연 이준이 그들의 상대가 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준은 그들의 시선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준비가 모두 끝났으니 바로 시작하겠소.”

대장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광장의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 시험에 응한 연금술사들이 하나 둘 약솥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들의 약솥에서 형형색색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준은 약솥을 꺼내지 않고 오른손을 들어 하얀 불씨가 날리는 자갈색 화염을 피워 올렸다.

쿵!

다음 순간, 화염으로 빚어진 자갈색 약솥이 그의 눈앞에 생겨났다.

“불을 다루는 능력이 아주 뛰어난 걸? 하지만 화염으로 만든 약솥에서 연금비약을 제련하겠다니, 과연 가능할까?”

주위의 연금술사들은 놀란 듯 웅성거리며 이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이자, 화염으로 이루어진 약솥에서 자갈색의 화룡 한 마리가 나타났다.

약솥이 완성되었지만, 이준은 연금비약 제련을 시작하지 않고 또다시 두 눈을 감았다.

‘도대체 무슨 연금비약을 만들어낼 생각인 거지?’

현공자마저 이준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하지 못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이준이 눈을 부릅뜨며 손가락 두 개를 서로 맞대자, 그 위로 청록색의 진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리구슬? 보리단을 제련한다고?”

청록색 구슬을 보는 순간, 모든 연금술사들이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떴다.

“보리단이라면 9색 비뢰를 소환할 수 있다 해도 꽤 어렵겠구나.”

현이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현공자와 진태자 역시 미심쩍은 듯 미간을 좁혔다.

“다 계획이 있을 것이오.”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준이 보리단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이준이 보리나무의 지혜를 받아 백 번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약로만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쉭-!

이준의 저장반지에서 빠져 나온 약재들이 그의 머리 위를 빼곡하게 채웠다. 얼핏 봐도 천여 종이 넘는 어마어마한 약재에 주변에 있던 연금술사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준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볍게 누르자, 수많은 약재들이 빠르게 나뉘더니 약솥 안으로 날아가 화룡의 아가리로 들어갔다.

얼마 후, 강한 에너지 파동이 퍼져 나오면서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약재 수가 이미 보리단을 제련할 양을 넘었는데, 설마 보리단이 아닌가? 하지만 어째서 보리단에 들어가는 약재와 같은 거지?”

현공자가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약로를 비롯한 나머지 세 사람 역시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이준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들은 이준을 믿었기에 더 이상 불필요한 말을 늘어놓지 않고 조용히 시합에 집중했다.

이곳에서 이준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은 사람은 바로 호씨 성의 노인이었다. 약로와 연금대회 우승자의 자리를 놓고 싸울 정도라면 그의 연금술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심지어 타고난 재능에 오랜 경험까지 더해졌으니, 소연금탑 내에서도 그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호 노인은 모든 정신을 약솥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선 약재가 끊임없이 회전하며 빠르게 약솥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한편, 나머지 7명의 장로 역시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고 있었다.

“이번엔 호치영이 승리할 확률이 높아 보이는군.”

한 장로가 호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장로들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장로는 호 노인이 아니라 이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근 십 년간 그는 자신의 눈으로도 실력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을 보지 못 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청년은 그의 눈으로도 도통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고급 연금비약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그들의 제련이 완성되기까지 지루한 시간이 계속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흥미진진한 눈으로 시합을 주시하고 있었다.

* * *

그렇게 눈 깜짝 할 사이에 5일이 흘러갔다.

5일 동안 수백, 수천 개의 약재가 약솥 안에서 액체나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그 사이 이준은 무려 세 번이나 제련에 실패했지만, 누구도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 수준의 연금비약을 제련하는데 한 번에 성공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이준의 손놀림에도 점점 속도가 붙었다.

5일이 지난 뒤, 모든 도전자의 실패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렇게 다시 5일이 더 지나자 여러 장로들의 약솥에서 비약 모양의 둥근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주변의 공기가 점점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광장 안은 멀리 떨어진 사람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해져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가장 멋있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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