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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09화 (709/818)

709화. 벼랑 끝

“이준. 네 화련으로 원혼의 갑옷을 뚫을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꾸나!”

검은색 해골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불연꽃을 바라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쉬익!

그때, 화련의 회전 속도가 정점에 달하며 거대한 검은 갑옷 위에 강하게 부딪혔다.

……쾅!

화련과 원혼의 갑옷이 충돌하는 순간, 천 미터가 넘는 화염폭풍이 솟아나며 주위의 공간을 모조리 박살 내 버렸고, 무시무시한 강풍이 쏟아져 내리며 대지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먼지로 만들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특히 구봉과 혼옥의 낯빛은 거의 시체처럼 파랗게 질려 있었다. 구전 투존 전성기의 실력을 가진 이준이 이렇게 무서운 공격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파멸의 힘이 가득한 화염폭풍의 힘에 의해 하늘 위를 떠돌던 하늘봉황의 환영이 펑, 하고 터져 버렸다.

“푸흡!”

그 여파로 구봉의 입에서 새빨간 피가 터져 나왔다.

쿵!

파멸의 힘이 담긴 파동이 미친 듯이 하늘을 헤집으면서 확산 범위 내에 있던 모든 생명체들은 엄청난 충격을 견뎌내야 했다. 그로 인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강자들 역시 황급히 도망쳤다.

이준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하늘을 휩쓸고 있는 화려한 화염폭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련의 위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상대는 스승님과 같은 반투성 강자가 아니던가. 그것도 혼족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허공을 휩쓸던 화염폭풍이 점점 약해지며 산산이 부서졌던 공간이 천천히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준은 화염폭풍의 중심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화염폭풍이 점차 약해지면서 십 미터도 넘는 검은색 해골이 다시 사람들의 시야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버텨냈어!”

여전히 우뚝 솟아있는 해골을 발견한 혼족 강자들의 입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반면 이준 일행의 얼굴은 완전히 흙빛이 되어 있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고도 부상조차 입지 않는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우드드득!

바로 그때, 새하얀 뼈 갑옷이 눈 오듯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 모습에 열광하던 혼족들은 모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갑옷이 무너지자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철처럼 단단하던 해골의 몸에는 균열이 가득했다. 가벼운 바람이 하늘을 스쳐 지나가자, 해골 눈동자 속에 있던 초록빛이 슉,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에 흩어졌다.

슉!

그렇게 어둠의 해골은 먼지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푸흡!”

해골이 잿더미로 변해버리자, 줄곧 꿈쩍도 않던 백골 장로의 입에서 갑자기 시뻘건 피가 한움큼이나 터져 나왔다.

백골 장로가 자신의 입술과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말했다.

“좋아. 이준, 확실히 재능이 있군. 하지만 네가 내 손에 죽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슉!

노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부신 황금빛이 유성처럼 날아들더니 황금으로 다져진 것 같은 단단한 주먹이 그의 머리를 그대로 내리쳤다.

채앵!

맑은 금속소리가 울려 퍼지며 거대한 황금색 거인의 몸이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날 죽이기엔 아직 너무 미숙하군!”

백골 장로 역시 이준과 마찬가지로 뒤로 밀려났지만 금방 중심을 잡고 멈춰 섰다.

“더 보여줄 것이 없다면 그만하고 사라지거라!”

분노한 백골 장로가 늑대처럼 사나운 얼굴로 소리쳤다. 까마득한 후배에게 이런 중상을 입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였다. 만일 해골의 몸을 빌리지 않고 본체로 화련에 맞았더라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왔을지도 몰랐다.

노인이 손을 뻗어 힘을 주자, 거대한 손이 이준의 눈앞에 나타나 금강유리체로 진화한 이준을 강하게 붙잡았다.

쉭!

하지만 바로 그때, 이준의 옆에서 공간이 강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익숙한 노인 한 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백골. 후배에게 이러는 게 부끄럽단 생각은 들지 않는가?”

갑자기 나타난 노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백골 장로의 동공이 빠르게 작아졌다.

“약선, 네가 어떻게…….”

“스승님? 어떻게 오신 겁니까?”

약로를 발견한 이준이 두 눈을 껌뻑이며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약로를 소환하는 공간 두루마리를 찢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스승이 여기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생각보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직접 온 것이다.”

이준의 몸을 천천히 훑어보던 약로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몇 개월 사이에 또 성장했구나. 정말 예측할 수 없는 녀석이야.”

먼 곳에 있던 이은과 고족의 강자들도 약로를 보자 마음이 놓인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백골. 중주에서 이름난 강자가 새까만 후배를 상대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군.”

“흥, 웃기는 소리. 저런 위험한 놈을 살려둘 수는 없지. 게다가 저놈은 이미 몇 번이나 우리 혼족의 일을 방해했다.”

“그럼 후배는 괴롭히지 말고 나와 해결하는 게 어떻겠나?”

이어지는 약로의 말에 백골 장로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두 사람 모두 같은 반투성 강자지만 이준을 상대하느라 이미 힘을 뺀 상황에서 약로와 싸운다면 승률은 채 3할이 되지 못했다.

“약선, 너야말로 너무 뻔뻔하군. 우리 혼족의 다른 강자들이 나타나도 네가 그 따위로 떠들어댈 수 있겠느냐? 성운각 따위가 영혼의 궁전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느냔 말이다!”

“흥, 우리 고족도 있다는 걸 잊은 모양이지?”

뒤쪽에 서있던 이은이 공간 두루마리를 빠르게 찢어버리며 말했다.

그녀가 두루마리를 찢어버리기 무섭게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며 그 안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하하. 이렇게 떠들썩할 줄은 몰랐소.”

“통현 장로님?”

익숙한 웃음소리에 이준은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바로 이준이 고계에 갔을 때 만났던 통현 장로였다.

“하하, 또 만났구나.”

이준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던 통현은 그의 곁에 있는 약선을 발견하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약존자 아니시오? 허허, 아니, 지금은 약성이라 불러야 하겠구려.”

통현 장로의 웃음 섞인 말에 약로 역시 웃으며 인사를 올렸다.

“통현 장로님…….”

잠시 후, 고청양이 다가와 인사를 올린 뒤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통현 장로에게 설명했다.

“혼족 놈들의 행패가 갈수록 심해지는구나.”

통현 장로와 약로가 자신을 노려보자 백골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성운각은 혼족의 상대가 될 수 없었지만, 고족은 이야기가 달랐다.

혼옥을 포함한 혼족의 강자들이 백골 장로의 곁으로 다가와 고족의 강자들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백골 장로님, 장로님을 한 분 더 모실까요?”

“보리심을 찾았느냐?”

갑작스런 질문에 혼옥은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못 찾았습니다…….”

백골 장르가 얼굴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물러서자. 아직은 고족 놈들과 전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혼옥은 달갑지 않았지만 그 역시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준과 싸우느라 힘이 빠진 백골 장로가 이대로 통현과 약성을 상대한다면 아까운 반투성 강자만 잃게 될 것이 분명했다.

“흥, 나중에 다시 보지.”

백골이 차가운 눈빛으로 통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통현 장로는 말없이 웃음을 지었다. 이 상태로 맞붙는다면 승리가 거의 확실했지만, 백골과 혼옥을 죽이는 것은 혼족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으니 아쉬워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분명히 또 다른 두루마리가 남아있을 테니 함부로 싸움을 벌이기도 어려웠다.

“흥, 조만간 성운각을 잿더미로 만들어주마.”

“그럴 능력이 있다면.”

백골의 협박에 약로는 천역덕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친 백골 장로는 곧바로 몸을 돌려 사라졌고, 혼옥을 비롯한 혼족의 강자들 역시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떠나자 하늘 봉황족도 오래 머무르지 않고 자리를 떴다.

“백골에게 중상을 입힌 거 말곤 아무런 소득이 없으니 아쉽네요.”

이준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하하. 반투성 강자에게 부상을 입힌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소득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직은 혼족 놈들과 전면전을 벌일 때가 아니다.”

“약선 영감의 말이 맞소. 혼족 놈들은 우리 고족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녀석들이니까.”

통현 장로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보리 나무 일은 이렇게 일단락된 것 같으니 고계로 돌아가 보겠소. 장로들 때문에 이은이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더 시간을 끌었다간 난리가 날 것이오.”

이어지는 통현의 말에 이은은 아쉬운 듯 고개를 떨궜다. 투성이 되기 전까지 이은이 외부세계에 오래 머무는 것을 장로들이 가만히 둘리 없다는 것은 그녀 역시 알겠지만, 또다시 이준과 헤어지려니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오라버니, 늘 몸조심해요. 혼족 놈들은 반드시 또 오라버니를 노릴 거예요.”

“응.”

이은의 말에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운각의 실력이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지만 혼족과 같은 세력을 넘어서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은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돌아가자마자 보리심을 수련해야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성운각은 정말 위험해질 겁니다.”

“하하. 우리 고족이 늘 혼족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으니 그들이 움직이면 곧바로 우리에게도 소식이 전해질 게다. 게다가 성운각을 무너뜨리려면 그들도 최소 반투성 강자 두 명은 보내야 하니 쉽게 쳐들어오진 못할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거라.”

통현장로가 말했다.

“게다가,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고족도 가만히 있진 않을 게다. 네 몸에 있는 옥이 혼족의 손에 넘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지.”

“감사합니다, 통현 장로님.”

“하하. 별 거 아니다.”

이준의 말에 통현 장로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시간도 늦었으니 우린 출발하겠소. 다음에 봅시다!”

말을 마친 통현 장로는 약로를 향해 인사를 올린 뒤 이은 등 사람들을 데리고 먼 곳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고족마저 떠나고 나자 이준은 한숨을 내쉬며 보리나무의 땅 바깥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돌아갑시다.”

보리나무 땅에서의 소동이 대충 마무리되자, 이준 일행은 곧바로 그곳을 떠나 성운각에 도착했다.

보리나무의 출현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단연 이준이었다. 전설 속에서 전해지는 보리 나무의 지혜를 전달받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보리심까지 얻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의 손에는 무려 11개의 보리구슬이 남아 있었다.

특히 이준을 기쁘게 한 것은 혼족 놈들이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는 점 이었다. 온갖 역경을 다 겪으며 힘겹게 보리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빈손으로 돌아간 혼옥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실소가 터져 나왔다.

* * *

성운각.

성운각으로 돌아온 이준 일행은 일주일 동안 휴식을 취하고 나서야 피로를 회복할 수 있었다. 만일 이준이 가지고 있던 보리구슬의 도움으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했더라면 영원히 그 환상 속을 헤매고 다녔을지도 몰랐다. 마치 보리나무 입구에서 봤던 반투성 요괴들처럼 말이다. 이미 성운각으로 돌아왔지만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솜털이 바짝 서는 것만 같았다.

보리심은 너무나도 중요한 보물이었기 때문에 이준은 조금의 실수라도 있을까 싶어 곧바로 수련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후 한 달 동안 그는 최상의 상태로 수련을 시작하기 위해 약로와 함께 온갖 연금비약과 천지 보물을 준비했다. 이준이 반투성으로 승급하는 순간, 천명종과 같은 비밀스러운 세력들도 반투성 강자 두 명이 주둔하고 있는 성운각을 무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 약로는 보름 동안 어딘가에 다녀왔다. 돌아온 약로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이준에게 옥함 하나를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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