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화. 제왕의 금빛화염
고청양은 굳은 얼굴로 똑같이 두루마리를 꺼내 찢어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간 두루마리를 찢었음에도 공간 균열이 생겨나지 않았다.
“소용없어요. 이미 구봉이 소환한 하늘봉황의 환영이 공간을 봉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고족의 핏덩이들도 이곳에 있었구나.”
백골 장로가 이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백골 장로님, 저들은 신경 쓰지 말고 변수가 생기기 전에 이준부터 잡아야 합니다.”
“이 영감이 늙은 몸을 이끌고 아주 힘들게 이곳에 왔는데, 재촉하지 마시오.”
혼옥의 재촉에 백골은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느릿한 동작과는 달리 그의 몸은 귀신처럼 빠르게 이준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투제의 피가 완전히 고갈되고도 이런 인물이 나타나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구나. 우리 혼족이 지금까지 네 놈에게 몇 번을 당했는지…….”
노인의 해골 같은 얼굴에 기괴한 웃음이 번졌다.
“나는 백골 장로라고 하네 이 천존이라고도 부르지. 아마 이 이름은 자네도 익숙하겠지. 그래도 난 백골 성자라는 말이 가장 좋더군.”
‘이 천존?’
이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 영감이 바로 혼전의 두 번째 천존이었다니. 그럼 대천존이라 불리는 자는 과연 얼마나 대단할까?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곧바로 보리심을 수련해야겠어. 최소한 반투성은 되어야만 혼족 놈들에게 맞설 수 있겠어.’
이준의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혼족에 맞서기 위해서는 더욱 강해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 소개는 끝났다. 오랜만에 젊은것들을 보니 괜히 나도 혈기가 뻗치는구나. 그럼 이제 나와 혼족으로 가겠느냐, 아니면 나와 좀 놀다 가겠느냐?”
백골 장로가 섬뜩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때, 이준의 등에서 청홍빛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뼈날개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하늘 봉황족 강자들의 얼굴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뼈날개에서 아주 익숙한 느낌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은아, 저 자를 잠시 막을 수 있겠어?”
“네.”
이준의 말에 이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이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곧이어 칠색 족문이 그녀의 이마에 떠오르며 눈부신 금빛 화염이 치솟았다.
“몸조심해!”
이준은 곧바로 뒤로 몸을 날리며 형형색색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저 정도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자신이 가진 최강의 무기를 꺼내들어야 했다.
“허……. 그게 말로만 듣던 그 기이한 무투기냐.”
이준의 행동에 백골 성자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혼족의 강자들이 이준의 화련에 당해 목숨을 잃었으니, 그 역시 화련에 대해 들어본 바가 있었다.
“융합된 천지의 불꽃의 위력이 말로 듣던 만큼 대단한지 궁금하구나!”
말을 마친 백골 장로의 시선이 곧바로 이은을 향했다.
“네가 고족의 신급 혈통을 가진 아이이냐? 더 크기 전에 싹을 자르는 편이 좋겠구나.”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의 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은은 굳은 표정으로 빠르게 몸을 물리며 금색 화염이 퍼져 나오는 손으로 허공을 강타했다.
그러자 주먹이 닿은 곳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구부정한 백골 장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 탐지력이 나쁘지 않구나. 역시 고족이 기대를 걸만한 인재야.”
백골 장로가 기괴하게 웃으며 이은을 향해 번개처럼 두 주먹을 날렸다.
쾅!
그 순간, 뜨거운 열기가 하늘 전체를 뒤덮었다. 백골 성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이은은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으며 비틀거렸다.
빠르게 중심을 잡은 이은이 두 손을 겹치며 빠르게 복잡한 인결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짝이던 금색 화염이 마치 태양처럼 이은의 몸에서 폭발하며 하늘 전체에 퍼졌다.
이은에게서 뿜어져 나온 눈부신 화염을 바라보던 백골 장로는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제왕의 금빛화염을 갖고 있다 이거지…….”
금색 화염이 휘황찬란하게 하늘을 뒤덮었다.
고족이 가진 천지의 불꽃인 제왕의 금빛화염은 정화의 불꽃의 뒤를 이어 천지의 불꽃 중 무려 네 번째로 강한 화염으로, 그 위력은 투성이라 하더라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역시 제왕의 금빛화염이군.”
격렬한 화염파동을 느낀 이준은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엄청난 불꽃을 비밀리에 물려주고 있다니, 역시 고족은 대단해.’
이준의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제왕의 금빛화염은 일명 ‘제왕의 불꽃’으로도 불리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진 불꽃으로, 네 개의 불꽃이 융합된 이준의 불꽃보다도 더욱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준은 빠르게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불꽃 네 개를 한데 섞었다. 그러자 파멸의 힘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냈다.
“제왕의 금빛화염은 염력을 연소시킬 수 있기로 악명이 자자하지.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오늘 정말 그 불꽃이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구나.”
백골 장로가 허공을 밟을 채 녹색 눈동자로 이은을 노려보며 말했다.
말이 끝나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해골 지팡이에서 검은색 안개가 폭발하듯 터져 나와 하늘을 뒤덮었다. 음산한 에너지가 가득한 검은 안개가 하늘로 퍼지자 뜨거워진 공기가 다시 차가워지면서 커다란 해골로 변화했다.
‘어둠의 해골왕을 곧바로 소환하다니, 제왕의 금빛화염이 두렵긴 한가 보구나.’
하늘을 장악한 해골을 바라보던 혼옥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 어둠의 해골은 아주 보기 드문 1격 하급 무투기로, 체내 염력과 천지에너지를 모아 거대한 해골을 만들 수 있었다. 해골에서 퍼져 나오는 음산한 에너지가 피부에 닿으면 겉으론 아무렇지 않지만, 영혼을 순식간에 갉아먹는 무서운 무투기였다.
백골 장로의 실력으로 전력을 다해 소환한 어둠의 해골은 더욱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해 같은 반투성 강자가 와도 방심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자랑했다.
“가라!”
노인이 지팡이로 멀리 있는 이은을 가리키자, 해골의 텅 빈 눈동자에서 초록빛이 맴돌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발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해골은 한걸음에 이은의 코앞까지 날아와 검은 안개가 퍼지는 손을 휘둘렀다.
이은은 재빠르게 후퇴하면서 수십 미터가 넘는 금색 화염을 폭발시켰다.
치익!
거대한 화염구가 해골의 손에 닿자 치익, 하는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찔렀다. 그와 동시에 화염과 해골이 맞닿은 곳에서 역한 냄새가 나는 하얀 안개가 퍼져 나왔다.
“부숴라!”
노인의 메마른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거대한 해골의 손 역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곧이어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금색 화염구가 그대로 부서졌다.
역시 반투성 강자는 달랐다. 이은은 제왕의 금빛화염이 있어 몸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단 한 번의 격돌로 백골 장로가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직감했다. 하지만 다행히 이은의 임무는 백골을 무찌르는 것이 아닌 그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제왕의 진영!”
이은의 하얀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곧이어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하늘을 장악하고 있던 금빛화염이 강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열 개 남짓한 금빛 빛기둥이 하늘에서 쏟아져 이어지며 거대한 화염벽이 생겨났다.
쿵!
화염 벽 안에 갇혀버린 어둠의 해골은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손으로 불장막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장막 위에 해일같은 물결이 크게 일렁였다.
“타올라라!”
이은의 손이 다시 한 번 인을 맺자, 불장막 안쪽의 공간에서 금색 불기둥이 솟아나며 해골의 몸을 쉴 새 없이 강타했다.
진영 속에 가득 퍼진 금색 화염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모두 넋을 놓고 말았다. 저 정도 위력의 화염이라면 구전 투존 전성기 강자라 해도 채 1분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크와앙!
곧이어 거대한 해골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들이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해골의 뼈마저도 제왕의 불꽃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역시 제왕의 금빛화염이구나.”
백골 장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제왕의 금빛화염이 아니었다면 어떠한 무투기로도 어둠의 해골을 이렇게까지 괴롭힐 수 없었다.
“하지만 네 실력으로는 그 불꽃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모양이구나. 제왕의 금빛화염의 첫 번째 주인은 투성 강자가 만든 공간도 모두 불태울 정도로 강력했다고 하던데…….”
노인이 초록빛이 번쩍이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메마른 손으로 인결을 그리자, 금색 불바다에 뒤덮여있던 어둠의 해골이 강하게 몸을 떨더니 사방으로 검은 안개를 뿜어냈다.
곧이어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바로 검은 안개 속에 깃든 수많은 영혼들의 비명소리였다.
쾅쾅쾅!
수많은 영혼들이 금색화염에 닿는 순간 그대로 폭발을 일으켰다. 그 무시무시한 위력에 금색 불바다도 빠르게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금색 화염이 흩어지자 검은색 해골의 몸이 빠르게 줄어들어 십 미터 크기까지 작아졌다. 크기는 훨씬 작아졌지만 마치 음산한 에너지를 농축시켜둔 것처럼 해골의 몸은 더욱 어둡게 변해있었다.
“끌끌……. 네 무투기를 어떻게 깨뜨려야 할지 이제 감이 오는구나.”
곧이어 해골의 입에서 백골 장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자신의 영혼을 해골과 합체시킨 것이었다.
이은은 굳은 얼굴로 백골 장로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백골 장로는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흐릿한 눈으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거대한 해골이 불장막을 세로로 길게 그어버리자 그의 손을 따라 시커먼 공간의 균열이 생겨나더니 불장막 전체가 펑, 소리를 내며 한 번에 주저앉아버렸다.
“끌끌, 네가 반투성이었다면 오늘 승패가 바뀌었을지도 모를텐데, 참 아쉽게 됐구나.”
검은색 해골이 초록빛 눈으로 이은을 노려보며 기괴한 웃음 소리를 흘렸다.
“괜찮아. 난 애초부터 너에게 이길 생각이 없었으니까. 이미 내 임무는 끝났거든.”
말을 마친 이은이 번개처럼 이준의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이준의 손에는 신비한 빛을 내뿜는 화염 연꽃이 서서히 회전하며 사방으로 파멸의 힘을 퍼뜨리고 있었다.
이준의 손에 들린 화련을 발견한 거대한 해골의 목구멍에서 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저게 바로 천지의 불꽃을 융합시킨 그 무투기인게냐? 꽤 오랜 시간을 주었으니 실망시키지 않길 바란다. 끌끌…….”
“걱정 마, 그럴 일 없으니까.”
이준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그의 손에선 다섯 가지 색깔의 이화가 섞인 화련이 점점 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은아, 조금 물러서 있어.”
이준이 고개를 돌려 이은에게 말했다. 화련이 폭발했을 때의 파괴력으로 인해 가까이 있다간 그녀 역시 무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네. 오라버니, 조심해요.”
이은이 빠르게 뒤로 멀어지자 고청양 역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이준과 거리를 벌렸다.
“이준. 투존과 투성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똑똑히 알려주겠다.”
검은색 해골이 눈을 번쩍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순간, 이준의 손에 있던 불연꽃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불꽃이 되어 빠르게 공간을 가르며 새까만 흔적을 그렸다.
“후…….”
백골 장로가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오는 눈동자를 빛내며 공간을 무너뜨리면서 다가오는 화련을 노려보았다.
잠시 후, 거대한 검은 해골의 입에서 짙은 검은 색의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원혼의 갑옷!”
곧이어 끔찍한 비명소리가 새어나오던 검은 안개가 빠르게 응집되며 검은색 광택이 흐르는 갑옷으로 변했다. 수많은 뼛조각과 영혼이 뭉쳐 만들어진 검은 갑옷 위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