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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07화 (707/818)

707화. 붕괴

“이준 오라버니. 혼옥은 저에게 맡기는 게 어때요?”

염력 폭풍이 매섭게 다가오는 것을 본 이은이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이준이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리나무에 들어가기 전 그의 실력으론 결코 육전 투존 전성기 강자인 혼옥의 상대가 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간단하게 혼옥의 목을 꺾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봉황족 놈들만 막아줘. 중립을 지키던 다른 강자들은 보리구슬을 받았으니 개입하지 않을 거야.”

“오라버니, 조심해야 해요.”

이은은 고집부리지 않고 이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준이 봉황족과 혼족 강자들이 만든 포위 진영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가자, 이은을 비롯한 다른 강자들이 자연스레 그 뒤를 따랐다.

“태령황제의 옥, 너한테 있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멈춰선 이준을 바라보던 혼옥의 눈에서 검은 파동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탐나? 그럼 가져가 봐.”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이준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혼옥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 앞에선 이런 수작 안 통해.”

이준의 주먹이 좌측 허공을 향해 힘껏 뻗어 나갔다. 그 순간, 공기가 격렬하게 일렁이더니 한 형체가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혼옥이었다.

이준의 주먹 한 방에 중심을 잃은 혼옥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자신의 잔영을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이준의 탐지능력이 이렇게까지 대단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는 표정이었다.

이준은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전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젓더니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무시무시한 기운을 남김없이 뿜어냈다.

이준의 기운이 하늘을 가득 뒤덮는 순간, 실력이 떨어지는 강자들은 곧바로 뭔지 모를 무형의 기운이 가슴을 깊게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구전 투존 전성기?!”

먼 곳에서 중립을 유지하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강자들의 입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혼옥 역시 입술을 파르르 떨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한 달 만에 갑자기 구전 투존전성기라니, 자신이 보리나무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억울해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혼옥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뒤 빠르게 인결을 맺었다. 그러자 그의 이마에 빠른 속도로 혼족의 족문이 나타나며 그의 염력이 미친 듯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팔전이면 아직 부족한데.”

혼옥의 기운을 느낀 이준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흥, 실력이 좀 늘었다고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혼옥의 사악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복잡한 인결이 검은색 염력과 합쳐져 빠르게 주먹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그의 주먹에서는 혼족 강자들이 무투기를 사용할 때마다 울려 퍼지는 특유의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혼의 파멸!”

새까만 주먹 인결이 번개처럼 이준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인결은 크진 않았지만 그 안에서는 섬뜩할 정도로 짙은 살기가 느껴졌다.

“내가 말했지, 부족하다고.”

그러나 이준은 여전히 미소를 띤 채 가볍게 걸어 나와 뜨거운 화염에 휩싸인 오른손으로 그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냈다.

우드드득!

주먹인결과 이준의 오른손이 충돌하는 순간, 혼옥의 모든 염력이 모인 주먹인결이 발에 밟힌 메마른 나뭇잎처럼 파삭 부서져 버렸다.

쾅!

“이럴 수가…….”

혼옥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구전 투존 전성기 강자들도 혼옥의 무투기를 당해낼 수 없는데, 지금 이준은 마치 먼지라도 털어내듯 자신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혼족의 힘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이준이 일그러진 혼옥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준! 네 놈이 감히 나를 무시해?!”

혼옥이 소리쳤다. 만일 이준이 보리 나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절대 자신에게 이렇게 행동할 수 없었으리라.

“하하.”

하지만 이준은 또다시 혼옥을 비웃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그의 손에서 뜨거운 화염이 솟아나더니 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염 손으로 변해 번개처럼 혼옥에게 돌진했다.

혼옥이 이를 악물고 다시 인을 맺자, 검은 안개가 수백 마리의 마수로 변해 화염 손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쾅!

하지만 혼옥이 온 힘을 쥐어짜내 만든 마수 떼는 이준의 화염 손에 의해 순식간에 불타 사라지고 말았다.

“무시할 만하니까 하는 거지.”

이준이 가볍게 웃으며 손을 휘두르자, 화염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이 혼옥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그의 몸을 아래로 짓눌렀다.

쿵!

혼옥의 몸에서 퍼져 나오던 검은색 염력이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지더니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강풍이 그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푸흡!”

염력으로 방어막을 만들기도 전에 당해버린 혼옥은 창백해진 얼굴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멀찍이 떨어져 이 장면을 지켜보던 강자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괜한 욕심에 저 싸움에 끼어들었다면 지금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는 것은 혼옥이 아니라 자신들이 되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준은 고개를 돌려 멀지 않은 곳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손을 올려 전장이 있는 곳을 향해 주먹을 몇 번 휘두르자, 무시무시한 강풍이 허공을 뚫고 혼족과 봉황족 강자들의 몸에 강하게 박히면서 그들의 몸을 단번에 멀리 날려 버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구봉 등의 사람들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혼옥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혼옥이 이렇게 빨리 당했다고?’

구봉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혼옥의 실력과 비슷한 수준인데, 10분도 되지 않아 이준의 손에 반죽음이 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날 직접 상대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었나?”

이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구봉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우웅!

바로 그때, 보리나무에서 갑자기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간이 붕괴되고 있어…….”

텅 빈 허공 위에 거대한 파문이 일렁이기 시작하자, 이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겨났다. 보리 나무는 보리구슬을 토해내고나면 다시 땅속 깊이 들어가 휴식기를 갖게 된다. 일단 땅속으로 들어가면 보리 나무가 세상에 다시 나타나는 것은 언제가 될지 몰랐다.

공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혼족 사람들은 황급히 혼옥을 부축했고, 하늘 봉황족의 강자들도 똘똘 뭉쳐 천천히 뒤로 몸을 물렸다.

“혼옥, 괜찮소?”

구봉이 창백해진 혼옥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혼옥이 날카로운 눈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무언가 중얼거리자, 구봉이 잠시 멈칫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웅!

모든 사람들이 흩어지는 순간, 공간이 더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하늘 위에 거대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눈부신 빛기둥이 그 균열 사이에서 뻗어 나왔다.

뚜두둑!

첫 번째 균열이 생겨나자 이내 하늘 곳곳에 새로운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리 나무가 만든 이공간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 * *

보리 나무의 땅, 깊은 곳.

거대한 보리 나무가 초원 중심에 외롭게 서있다. 보리나무를 중심으로 맑은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보리 나무의 땅과 멀지 않은 곳에는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던 나설아 등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쏴아!

고요하던 초원 위에 갑자기 쏴아,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초원 중심에서 한 달 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보리 나무가 갑자기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

잠시 후, 청록색 빛이 잦아들며 몇 개의 그림자가 그 안에서 튕겨져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스승님?!”

이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나무 밖으로 빠져나온 익숙한 얼굴들을 보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드디어 빠져 나왔네…….”

이준이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정말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위험한 일들을 경험했는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한 달 동안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건 바로 이준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불과 한 달이라는 시간이었지만, 이준은 그 사이 백번의 삶을 살았다가 돌아온 상태였다.

우웅!

마지막 사람까지 모두 빠져나오는 순간, 보리 나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마치 액체가 된 것처럼 천천히 땅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은 보리나무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앞으로 보리나무를 다시 보려면 다시 천 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으니, 적어도 이번 생에는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하, 아쉽네. 보리심을 보지도 못했으니…….”

고청양은 아쉬운 마음이 가득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이준은 씩 웃으며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툭툭 쳤다. 그 속엔 옥처럼 투명하고 맑은 초록색 심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전설 속의 ‘보리심’의 정체였다.

‘보리나무, 고맙다. 다시 만날 수 있길…….’

이준은 땅속 깊이 사라지는 보리나무를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쿵!

보리나무에서 반짝이던 청록빛이 전부 사라지며 초원은 다시 텅 빈 공터가 되어버렸다.

그 순간, 이준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공간이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마치 감옥에 갇힌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주위의 공간이 완전히 봉쇄되며 그 누구도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준은 굳은 얼굴로 공간 파동이 시작된 곳을 바라보았다. 공간 파동이 시작된 것은 바로 구봉의 뒤편으로, 그곳에서는 거대한 하늘봉황의 환영이 천지를 휘젓고 있었다.

“하늘 봉황족의 차기 족장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야겠군.”

이준이 죽일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구봉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혼옥. 안 움직이고 뭐 하시오!”

구봉의 외침에 혼옥은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손으로 강하게 비틀었다. 두루마리가 찢어지는 순간, 더 강력한 공간 파동이 두루마리에서 터져 나와 구봉의 몸속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구봉이 허공에 대고 손을 휘두르자, 커다란 공간균열이 생겨나면서 사나운 기운이 폭풍처럼 공간 속을 헤집었다.

“투성?!”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표정이 굳어버렸다. 이준도 마찬가지였다. 저 끈질긴 녀석이 이곳으로 투성을 소환한 것이다.

“저들을 그냥 둬선 안 돼!”

이준이 번개처럼 손을 휘두르자, 화염으로 만들어진 마수가 나타나 공간균열을 향해 매섭게 달려갔다.

쉭!

하지만 불마수가 폭발하기도 전에 새하얀 손이 균열 속에서 빠져 나와 불마수의 목줄기를 붙잡았다.

“큭큭, 혼옥. 너도 저 녀석을 상대할 수 없다니, 놀랍구나.”

잠시 후, 옅은 회색의 옷을 입은 노인이 모든 사람들의 시야 속에 나타났다.

구부정한 자세로 해골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의 눈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음험한 기운이 가득했다.

“변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공간두루마리를 찢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노인의 말에 혼옥이 눈썹을 찌푸리며 이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녀석이 보리나무 안에서 한 달 동안 수련을 마치고 나더니 구전 투존 전성기 단계가 되었습니다. 저 녀석의 손에는 아직 보리구슬이 남아있으니, 백골 장로님이 직접 잡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보리 구슬?”

백골 장로라는 노인의 초록색 두 눈이 이준을 향했다. 곧이어 수분 없이 바짝 마른 얼굴에 기괴한 웃음이 묻어났다.

“저 아이에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백골의 시선을 느낀 이준은 곧바로 깊은 숨을 내뱉으며 염력을 끌어 올렸다. 아마 오늘 투성 강자와 정면 승부를 하게 될 것 같았다.

“비겁한 놈!”

고화가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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