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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05화 (705/818)

705화. 투제의 원념

이준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검은색 기류가 빨려 들어간 후로 느껴지는 보리나무의 기운이 보리나무의 땅에서 처음 나무를 봤을 때 느꼈던 기운과 완전히 똑같아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슉!

잠시 후, 광단이 서서히 빛을 잃어가더니 투명한 물체로 변해 이준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눈을 뜬 이준은 무언가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있는 이 보리나무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왔는지 알 순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투제 강자가 존재하던 시절에도 전설로 전해질만큼 오래된 나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 살아온 나무가 어째서 지혜를 갖지 못한 걸까? 지금 보리나무는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자신을 해치려는 자를 공격하기는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이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방금 전 광단 속에 있던 그림자는 아주 오래전에 중상을 입었던 투제 강자였다. 그는 강제로 보리나무의 영기로 몸을 치료하려 했으나, 결국 그의 적과 보리나무의 공격으로 인해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물론 그 투제 강자 역시 10킬로미터가 넘던 거대한 보리나무를 10분의 1만 남겨두고 베어버려 어마어마한 상처를 남겼다. 조금 전 이준이 보았던 환영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러나 보리나무는 큰 대가를 치르고도 그 투제 강자를 완전히 죽여 버리지 못했다. 투제 강자가 죽기 직전, 그의 원한과 살의가 그대로 보리나무 속에 스며들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원한은 수많은 세월을 지나며 보리나무를 조금씩 갉아먹어 나무 전체에 어둡고 음산한 기운을 퍼뜨렸다.

이준이 느꼈던 환각 역시 이러한 이유로 생겨난 것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강자들이 그 환상 속에서 자신을 잃어갔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준 역시 보리구슬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즉, 지금 보리나무 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선한 영혼’이라 할 수 있는 본래의 영혼과 그 투제 강자로 인해 생겨난 ‘악한 영혼’ 말이다.

“내가 그 악한 영혼을 없애주길 바라는 거야?”

이준이 비취색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화악!

이준의 말에 보리나무가 마치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렸다.

“투제 강자가 남긴 걸 없애라니……난 절대 할 수 없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보리나무 마저 당해내지 못한 투제 강자의 원념을 이제 막 9성 투존 강자가 된 이준보고 해결해달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제안이었다. 오히려 잘못 접근했다간 원념과 살의에 의해 정신이 파괴될지도 몰랐다.

솨아-.

그때, 나무 안에 또 다시 광단 하나가 나타났다. 잠시 후, 그 속에서 화염이 하나 나타나더니 보리구슬이 화염에 녹아내리며 맑은 기운이 퍼져 나왔다.

잠시 후, 그 맑은 기운이 보리나무 속으로 스며들면서 음산한 기운이 조금씩 옅어졌다.

“보리구슬로 저 원한을 없애라고?”

이준이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순수한 보리심도 아닌 보리구슬로 도와달란 말이야?”

쏴아-.

보리나무는 고개를 저었다.

곧이어 청록색 빛이 이준의 앞으로 날아왔다. 눈부신 청록색 빛이 점차 흐려지는 순간, 이준은 넋을 잃고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말았다. 그 빛 덩어리의 정체는 바로 스무개도 넘는 보리구슬이 뭉쳐진 것이었다.

“하나, 둘, 셋……스물 넷.”

개수를 세는 이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보리구슬은 보리심만큼 대단하진 않지만 투성 강자가 될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투기 대륙 어디에 가도 최고의 보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런 희귀한 물건이 눈앞에 무려 24개나 있다니, 당장이라도 이 보리구슬들을 챙겨 달아나고 싶었다.

“보리구슬로 원념을 없애는건 너무 손해인데…….”

이준은 보리구슬을 바라보았다. 비록 자신의 것은 아니지만 이화로 이것들을 녹인다는 상상만 해도 배가 아픈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솨아-.

이준이 망설이자, 보리나무는 마치 상대를 재촉하는 것 마냥 강하게 몸을 흔들었다.

이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의 손에 자갈색의 화염이 피어올라 영롱한 빛을 내뿜은 보리구슬들을 집어 삼켰다.

강한 에너지가 가득 들어있는 보리구슬을 연소시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준의 삼천불꽃으로도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보리구슬 속에 반짝거리는 액체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다시 30분이 지나서야 액체가 증발하면서 초록빛의 맑은 기운으로 변했다.

화염 속에서 새어나온 맑은 기운이 스며들자, 보리나무가 다시 한 번 강하게 몸을 떨며 조금씩 검은 기운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후…….”

보리구슬 하나를 완전히 녹이는데 성공한 이준은 힘이 빠진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 되겠어. 좀 쉬어야겠어…….”

이준이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쏴아-.

그 때, 나무 끝부분에서 비취색 방석이 하나 생겨나더니 보리나무가 이준을 들어올려 그 방석 위에 앉혔다.

쿵!

엉덩이가 방석에 닿는 순간, 이준의 몸이 강하게 떨리기 시작하면서 순수 에너지가 폭포처럼 몸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타탁, 탁!

맑은 기운이 끊이지 않고 스며들면서 타닥,타닥 하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지쳐있던 이준의 몸이 순식간에 완전히 회복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잠깐 사이에 염력이 더욱 강해진 것이 느껴진다는 점 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몸속에서 느껴지는 변화에 이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보리나무는 염력의 양 을 늘려주는 것 뿐만 아니라, 염력을 담는 그릇의 크기 자체를 키워주고 있었다.

만약 이 그릇이 계속해서 커진다면 투성이라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솨아-.

그때, 보리나무가 마치 이준을 재촉하는 것처럼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나뭇가지를 흔들어댔다.

“이 정도면 고생할 만한 걸?”

염력을 회복한 이준은 곧바로 다시 자갈색의 화염을 피워냈다. 이젠 염력이 떨어질 걱정도 없으니 염력을 아낄 필요도 없었다.

쉭-

한 시간 후, 보리구슬이 다시 맑은 기운이 되어 청록빛 나무의 몸통에 붙어 있던 검은 기운을 밖으로 배출시켰다.

솨아!

검은 기운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느껴지자 나뭇가지가 더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순수한 에너지가 다시 이준의 몸속으로 주입되면서 이준의 몸과 염력을 다시 최상의 상태로 회복시켜 주었다.

‘계속 해보자고!’

또다시 염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 이준은 보리나무가 재촉하기도 전에 보리구슬을 하나 더 집어 화염 속에 넣었다.

푸르른 나무 아래, 이준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잊은 채 보리구슬을 제련하는 작업을 28번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아직도 보리나무에 깃든 투제의 원념을 완벽하게 제거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28개나 되는 보리구슬을 녹이는 과정에서 염력이 몇 배는 늘어났으니 이준 입장에서는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모든 구슬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몸을 돌려 보리나무를 바라보던 이준은 나무에서 퍼져 나오던 검은 기운이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웅!

검은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자 옥처럼 빛나던 보리나무에서 우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짙은 생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쏴아!

곧이어 생기 가득한 나뭇잎이 마치 사람의 손처럼 이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나뭇잎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은 마치 보리나무의 기쁜 마음을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제거했으면 됐어.”

이준은 씩 웃으며 나뭇가지를 두드렸다. 긴장이 풀리고 나니 피로가 물밀 듯이 밀려오며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소모된 염력을 보리나무가 보충해주긴 했지만 영혼 속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은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이준은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우웅!

이준이 잠들기 무섭게 보리나무에서 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청록색 빛이 퍼져 나와 이준의 몸을 감쌌다.

잠시 후, 기이한 힘이 이준을 조금씩 나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준은 나무 중심까지 밀려들어가 조각상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잠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뭇가지가 다시 흔들리며 나뭇가지가 스친 자리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잠시 후, 이준과 나무로 함께 빨려 들어갔던 사람들이 망신창이가 된 채 검은 구멍 안에서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검은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갔던 사람들 중에는 이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겪었던 모든 일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망연자실해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이럴 수가…….”

신급 혈통을 가진 이은, 혼옥마저 조금 전 일을 떠올리면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리나무?”

그들의 시선은 모두 보리나무에서 멈춰 섰다. 조금 전 환각 증상을 겪으며 그들의 마음속에는 보리나무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가 생겨나 있었다.

“이준 오라버니?”

이은의 시선이 보리 나무에 갇힌 이준에게 향했다. 그 순간, 이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려 버렸다.

“이준?”

곧이어 나머지 사람들도 이준을 발견하고는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은, 충동적으로 행동 하지 마. 이준에게 좋은 일일 수도 있어.”

고청양은 이은을 붙잡으며 말했다.

고청양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이성을 되찾은 이은은 머릿속으로 보리나무와 관련된 기록들을 되짚어보며 애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고대의 기록에 따르면 보리나무에는 세 가지 보물이 들어있다. 바로 ‘보리심’, ‘보리구슬’, 그리고 보리나무의 ‘지혜’이다.

보리심과 보리구슬은 보리나무 안에 숨겨진 보물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겠지만, 그 ‘지혜’라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다만 ‘지혜의 나무’라고도 불리는 보리나무는 백 번의 환생을 경험하게 해줄 수 있는 신기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 * *

‘어떻게 저 녀석이 먼저 선수를 칠 수 있는 거야!’

구봉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구치는 질투에 주먹을 쥔 채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혼옥의 입가에서도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혼옥은 갑자기 구봉을 쳐다봤다. 서로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어두운 눈빛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쾅!

다음 순간, 두 사람의 몸이 빛처럼 빠른 속도로 보리나무 앞에 나타나더니 번개처럼 나무 안에 앉아있는 이준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준을 강제로 수면상태에서 깨울 생각으로 보였다.

“혼옥, 뭐 하는 짓이야!”

이은은 황급히 금색 화염을 폭발시켜 두 사람을 공격했지만, 혼옥과 구봉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은의 공격을 무시하고 온 힘을 다해 보리나무를 내리쳤다.

쿵!

두 사람의 주먹에서 뿜어진 무시무시한 힘이 나무 줄기를 때리며 미세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기도 전에 나무를 내리쳤던 힘이 몇 배로 불어나 다시 그들에게 돌아왔다.

“푸흡!”

무서운 힘이 몸속을 파고들면서 몸을 보호하고 있던 염력이 산산이 부서지고, 이내 두사람의 몸이 실 끊긴 연처럼 바닥으로 힘없이 고꾸라졌다.

이은은 이준에게 아무 일이 없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곧바로 금색 화염이 불타오르는 눈으로 구봉과 혼옥을 노려봤다.

“이은.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해.”

고청양은 곧장 두 사람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는 이은의 앞을 막아섰지만, 그의 눈빛에도 적의가 가득했다. 그 역시 혼족과 봉황족이 손을 잡고 싸움을 벌인다면 수면 상태에 들어가 있는 이준에게 피해가 갈까봐 참고 있을 뿐, 속으로는 당장이라도 혼옥과 구봉을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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