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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704화 (704/818)

704화. 환상

얼마 후, 하늘 봉황족의 전투도 점점 막을 내려가는 듯했다. 그들의 상대였던 반투성 요괴는 무려 세 명이나 되는 강자를 죽이고 나서야 머리가 터져 쓰러졌다.

“망할 요괴 같으니라고!”

구봉이 요괴의 머리를 있는 힘껏 걷어차며 말했다.

분노를 겨우 가라앉힌 구봉은 바닥에 앉아 연금비약을 입속에 밀어 넣고 수련 상태에 들어갔다.

세 일행은 모두 맡고 있던 요괴를 전부 처리했지만, 어느 누구도 남은 두 진영에 끼어들어 도와줄 생각은커녕 차가운 눈빛으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으악!”

그때, 한 투존 강자가 요괴의 머리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냈고, 나머지 열다섯 명의 강자가 일제히 달려들어 요괴의 머리를 미친 듯이 내리찍었다.

쿵!!

한꺼번에 강한 공격을 받자 그 무시무시하던 반투성 요괴의 머리가 완전히 터져 버렸다. 하지만 그 폭발의 여파로 열 명에 가까운 강자들 역시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잠시 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진영에서도 다섯 명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루고 반투성 요괴를 박살 내는데 성공했다.

마지막 반투성 요괴까지 모두 처리하고 나자 온몸에 힘이 빠져버린 그들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사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준 일행이 평온한 표정으로 두 눈을 떴다. 연금비약 덕분에 그들은 이미 상당히 체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다음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할 거예요. 6성 이하 투존 분들은 이곳에 남는 게 좋겠어요.”

이준이 말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반투성 요괴보다 얼마나 더 위험한 난관에 부딪히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봤자 자신의 실력으로는 죽음만 기다린다는 것을 그들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종주님, 그럼 저희는 설아와 이곳에 남아있겠습니다. 소각주님과 다녀오시지요.”

화종 장로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들 역시 보리심이 탐났지만, 지금은 욕심을 부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진율희를 대하는 이준의 태도로 보아 그녀를 배신할 리는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함께 들어가 봤자 두 사람의 손속만 어지럽힐 뿐이었다.

“그럼……조심하고 있어요.”

진율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그녀는 보리심에 대해 크게 욕심을 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이 보리나무가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준 일행끼리 가라고 하기엔, 아무리 이준의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에 함께 나선 것뿐이었다.

“그럼 가자.”

보리나무가 있는 곳을 바라보던 이준은 갑자기 온몸의 솜털이 전부 일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이은을 비롯한 고족의 강자들도 굳은 얼굴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우리도 움직입시다.”

이준 일행이 먼저 출발하자, 혼옥과 구봉 역시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세 무리가 먼저 보리나무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나머지 강자들도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걸음을 재촉해 최대한 빨리 보리나무로 다가갔다. 하지만 보리나무에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섬뜩한 느낌이 점점 더 목을 옥죄어 왔다.

저벅저벅-.

작은 발걸음 소리가 서서히 울려 퍼졌다. 잠시 후, 혼족과 고족, 봉황족의 강자들이 하나둘씩 보리나무 밑에 도착했다. 자리에 멈춘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이 자리에 서있었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보리나무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쉭!

바로 그때, 백 미터가 넘게 높이 솟아오른 나무 몸통 속에서 눈부신 빛이 번쩍이며 거대한 빛기둥이 되어 모든 사람들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보리 나무 가까이에 있던 강자들은 곧바로 염력을 끌어올렸지만, 지금 그들의 몸에는 단 한줌의 염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휙!

곧이어 그 빛기둥이 점점 사그라들더니 번개처럼 나무속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이준을 포함한 나무 앞에 서있던 모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나설아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 * *

새하얀 빛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이준은 온통 백색으로 가득한 세계에 멍하니 서 있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고, 왠지 모르게 기억이 흐릿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고개를 든 이준의 눈앞에 신비한 빛을 내뿜는 광단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준은 조심스레 앞으로 걸어가 광단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아주 잠깐의 시간이 마치 수십, 수백 년처럼 길게 느껴지더니 눈앞에 돌연 푸릇한 풀이 무성한 초원이 펼쳐졌다.

“여긴……. 보리 나무의 땅?”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던 이준이 넋을 놓은 채 중얼거렸다. 기억이 흐릿했지만,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장소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텅 빈 평원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느껴졌다.

크르릉!

바로 그때, 갑자기 하늘이 무너질 듯한 포효가 울려 퍼지더니 새빨간 마수 떼가 온몸에서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달려들었다.

마수떼를 보는 순간, 이준의 손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터져 나오며 백 미터 이내로 들어온 모든 마수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힘에 이준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마수 떼를 바라보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건……투성의 힘이잖아?”

이준의 눈에서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갈망하던 투성의 힘을 이렇게 갑자기 사용할 수 있게 될 줄이야!

크르릉!

잠시 후, 또다시 무수히 많은 마수들이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이준을 노려보며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흐흐.”

이준은 두 손으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의 손이 바닥에 닿는 순간, 푸른 초원에 엄청난 크기의 손자국이 생겨나며 무시무시한 소용돌이가 바닥을 뚫고 올라와 모든 마수떼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주먹 한 방에 셀 수 없이 많던 마수들이 전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초원 위에 생겨난 거대한 손자국을 바라보던 이준의 마음속에서 순간 이상한 감정이 솟구쳤다. 그는 몸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힘이 주는 쾌감을 참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뜨렸다.

‘영혼의 궁전, 혼족. 모두 없애 버리겠다!’

이준의 마음속에서 강렬한 살의가 샘솟았다. 그 순간, 뒤편에서 공기가 빠르게 일그러지더니 한 무리가 피를 토하며 나타났다.

“혼옥?”

이준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준의 입에서 ‘혼옥’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는 순간, 그의 눈이 순식간에 새빨개지며 그들을 향해 손을 꽉 쥐었다.

“어서 도망쳐!”

이준을 발견한 혼옥이 황급히 소리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을 돌리려는 순간, 주변의 공간이 그의 숨통을 강하게 옥죄더니 염력을 쓰기도 전에 주위의 공간이 무너져 내리며 그의 몸을 빨아들였다.

이준의 무시무시한 힘에 혼옥과 나머지 모든 혼족의 강자들이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이 정도면 복수하기 좋겠어.”

이준이 고깃덩어리가 된 혼족 강자들을 아무렇게 던지며 말했다.

혼족의 강자들을 무참히 살해한 이준은 곧바로 보리구역 밖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흉악한 마수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유성이 된 이준은 무서운 속도로 10분도 채 되지 않아 보리 나무 땅의 변방 지대에 도달했다. 피바다를 지나면서 그의 눈은 꼭 마수의 그것마냥 점점 더 광기 어린 붉은 빛을 띠었다.

쉭!

잠시 후, 이준의 몸이 보리나무의 땅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산봉우리에 나타났다. 그의 눈은 이미 마수의 그것보다 더 붉게 변해 있었고, 이제는 얼굴마저 마수처럼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우웅!

바로 그때, 저장반지에서 갑자기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청량한 기운이 퍼져나와 이준의 팔을 타고 머리까지 전해졌다.

그 순간 이준의 몸이 강하게 떨리면서 흐릿한 기억과 눈앞의 기괴한 풍경들이 눈 녹듯 사라지며 붉게 충혈되었던 눈이 빠르게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내가 평생 원하던 실력을 가지게 된 줄 알았는데, 전부 가짜였구나.’

정신을 차린 이준은 곧바로 손을 들어 자신의 손안에 쥐어진 물체를 확인해 보았다. 그의 손안에 있는 것은 은은한 비취색을 띠고 있는 보리구슬이었다. 조금 전 이 보리구슬이 아니었다면 머릿속을 헤집었던 이상한 것들에 완전히 지배되어 환상 속에 살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이준은 그제야 반투성 요괴들이 왜 생겨났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옛보리나무의 환각에 빠져 영혼을 잃고 몸만 남은 시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준이 보리구슬을 들어 올리자, 천지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깨진 거울처럼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이준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건 초록빛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 공간 속에서는 깨끗한 옥으로 다져진 것 같은 거대한 나무가 수십 미터 높이에서 생명력을 퍼뜨리고 있었다.

이 나무는 외부 세계에서 봤던 보리나무보다 훨씬 작을 뿐, 완전히 똑같은 것이었다.

이준은 굳은 얼굴로 보리나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조금 전 자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던 환각 증세도 여기서 시작된 것이 분명했다.

그때, 초록빛의 보리나무에서 갑자기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더니 여러 개의 광단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가 여러 개의 영상으로 바뀌었다. 그 영상들을 보는 순간, 이준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은과 혼옥, 구봉 등의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이 안으로 빨려 들어오며 환각에 빠져버린 게 분명했다.

“도대체 뭔 생각인 거야?!”

이준이 보리나무를 쳐다보며 분노한 듯 소리쳤다. 저 환각에 빠지는 순간, 무엇이 진짜고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이준이 소리치자 보리나무가 다시 한번 흔들리더니 또다시 광단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거대한 보리나무 하나가 서있었다. 하지만 이준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그 앞에 서있는 한 그림자였다. 흑색 옷을 입은 그의 몸에서는 천지를 압도하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투……투제?”

이준의 눈이 다시 강하게 흔들렸다. 그림자 하나로 영혼까지 뒤흔드는 저 기운은 바로 전설 속에만 존재하던 투제 강자의 기운이었다.

이준에게 등을 돌린 채 나무를 바라보고 있던 검은색 그림자가 돌연 보리 나무에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리나무 안에서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퍼져 나오며 주위의 공간이 빠른 속도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준은 당황한 표정으로 광단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리나무를 공격하던 그림자의 움직임은 약해지기는커녕 더욱 격렬해져만 갔다. 하지만 그 순간, 광단 밖에서 투제의 힘과 맞먹는 파멸의 힘이 불꽃처럼 날아와 모든 것을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쉬이-.

먼지만 남긴 채 폭발해버린 그림자를 바라보던 이준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흥분을 느꼈다. 조금 전 그 공격의 주인공은 틀림없이 흑색 옷의 투제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투제 강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투제 두 명이 동시에 한 자리에……. 말도 안 돼.”

이준은 그들의 그림자밖에 보지 못했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투제의 기운에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나타났던 투제 강자는 흑색 옷의 투제를 없애고 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 허공에서 실처럼 얇은 검은색 기류가 나타나더니 빠르게 보리나무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나무 전체에서 느껴지던 맑은 기운에 서늘한 기운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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