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703화 (703/818)

703화. 반투성 요괴

광활한 초원 위에 수많은 인파가 서로 거리를 두고 일정한 속도로 앞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도련님. 저 나무, 뭔가 심상치 않아요. 저렇게 파릇파릇한데 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걸까요?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인간 같은 느낌까지 들어요.”

예린이 이준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이준은 발걸음을 멈췄다. 자신은 느낄 수 없었지만, 전설속의 뱀의 눈을 가지고 있는 예린은 그 불길한 기운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준 역시 보리나무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조금 전 느껴지던 불길한 기운이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앞서가던 혼옥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 그들은 이미 보리 나무 지척까지 접근해 있었고, 거대한 잎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제야 이준 일행은 그 음산한 기운이 뼛속까지 침투하기 시작했다는 걸 느꼈다.

거대한 나무의 줄기를 유심히 살피던 이준은 보리 나무의 줄기 한가운데서 아주 밝은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광채는 마치 심장처럼 힘찬 박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보리심이다!”

거대한 나무속에서 반짝이는 광채를 보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쏴아아-.

그때, 드넓은 초원 위에 조용히 서 있던 보리나무에서 갑자기 ‘쏴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수많은 나뭇가지들이 하나로 뭉쳐지며 거대한 나뭇잎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나뭇가지가 지면에 닿는 순간, 서서히 갈라지더니 무표정한 얼굴을 한 다섯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갑자기 천지가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숨 막히는 위압감이 퍼져 나왔다.

“반투성이야.”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 다섯 명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모두 반투성 특유의 그것이었다.

반투성 강자들이 등장하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설마하니 전설 속의 보리 나무 안에 반투성 강자 다섯 명이 숨어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부 죽은 사람들이야. 몸속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아.”

이준은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영혼도 없어요. 그냥 요괴일 뿐이에요.”

이은이 말했다.

요괴라니. 반투성 강자가 요괴로 변한 건 분명 저 보리나무 때문일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모든 사람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현재 대륙 최고 강자로 꼽히는 반투성 강자를 요괴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니…….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혼옥도 이준 일행과 마찬가지로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보리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그의 시선이 한 메마른 요괴에게서 멈췄다. 흑색 의복을 입은 그 반투성 강자를 보는 순간,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혼옥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보리나무와 함께 실종됐다던 그 반투성 선조님이잖아……?”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흑색 의복을 입은 요괴에게로 쏠렸다. 텅 빈 동공 속에서는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피부도 모두 갈라져 있었다.

“이제 어떡하지?”

고청양이 말했다. 반투성 강자 다섯 명이라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이준은 보리나무 속에서 반짝이는 빛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에게 보리심을 코앞에 두고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함께 힘을 합치면 한 명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준이 뒤로 돌아 함께 온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갈 사람 있습니까? 더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저 요괴들도 공격하진 않을 것 같군요. 그렇다는 건 아직 도망칠 기회가 있다는 겁니다.”

이준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한번 부딪쳐 봅시다. 우리 쪽에선 한 사람을 맡을 테니 나머지 네 사람은 각자 분담하여 처리하는 걸로 하죠.”

이곳에는 이준 외에 혼족과 하늘 봉황족, 그리고 처음 보는 네 개의 강자 무리가 더 있었다. 그들의 실력은 이준, 혼옥에 비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실력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 쪽도 한 사람을 맡겠습니다.”

혼옥이 얌전히 이준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이 자리에서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단 한 명도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 사람.”

구봉 역시 잠시 머뭇거리다 무뚝뚝한 말투로 이준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남은 사람들이 맡는 걸로 하죠.”

“예.”

아직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네 부대는 모두 보리심이 위치한 곳을 쳐다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럼, 움직입시다!”

이준이 굳은 표정으로 주먹을 쥐며 말했다. 반투성과의 전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요괴의 전투력은 실제 반투성 강자와 비교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투성’이라는 글자가 붙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방심할 수 없었다.

이준이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의 몸에서 천지를 뒤덮을 것 같은 염력이 터져 나왔다.

쿵!

세 번째 발자국이 바닥에 찍히는 순간, 조각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던 요괴들의 텅 빈 눈동자가 이준에게로 향했다.

곧이어 그 중 한 사람이 뻣뻣하게 굳은 것처럼 이상한 걸음걸이로 순식간에 이준 앞에 나타나 무시무시한 주먹을 그대로 내리꽂았다.

그와 동시에 이준의 발밑에서 엄청난 용암 기둥이 바닥을 뚫고 나와 요괴의 몸에 강하게 부딪혔다. 하지만 9성 강자도 피를 토하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용암 기둥에 정면으로 얻어맞았음에도 반투성 요괴는 살짝 비틀거릴 뿐 아랑곳 하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쾅쾅쾅!

반투성 요괴의 공격이 떨어지는 순간, 이준의 뒤에서 열 명의 힘이 합쳐진 염력 폭풍이 솟구치면서 요괴와 부딪혔다.

“움직여!”

전투가 시작되자 혼옥 등의 사람들도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혼족의 반투성 요괴에게 달려들었다.

“선조님의 고통을 저희가 없애드리지요.”

혼옥이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요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순간, 열 명 가까이 되는 혼족 강자들이 빠르게 뒤따라와 반투성 요괴를 강하게 옥죄었다.

구봉과 나머지 부대도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날아가 반투성 요괴 세 명을 가두자, 조용하던 평원은 순식간에 염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 * *

쿵!

고화와 고형이 빛의 속도로 날아가 염력에 휩싸인 주먹으로 반투성 요괴의 등을 강타했다. 하지만 반투성 요괴의 몸에 닿는 순간, 엄청난 힘이 부메랑처럼 두 사람의 팔을 타고 되돌아왔다.

“으윽!”

무시무시한 힘에 고화와 고형의 방어가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입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그들의 뒤를 이어 화종의 장로들이 반투성 요괴에게 달려들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이미 20분이 지나있었다.

화종 장로들은 이미 모든 염력을 소진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준과 고청양, 이은 등 강자들이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는 점이었다.

“머리를 공격해!”

이준이 힘껏 소리쳤다. 이미 생기를 잃은 요괴를 상대로 몸만 공격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금강유리체!”

“태초의 힘!”

이준의 몸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터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거인으로 변한 이준은 고청양을 상대하고 있는 반투성 요괴의 머리를 향해 전력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펑!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지고, 이준의 주먹에 숨겨져 있던 강한 힘이 반투성 요괴의 머리에 전해지면서 놈의 머리에 큼지막한 균열이 생겨났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요괴의 몸은 마치 긴 세월 동안 온갖 비바람을 다 맞으며 말라버린 것처럼 단 한 방울의 피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곧이어 반투성 요괴가 번개처럼 몸을 돌려 강철 같은 팔로 이준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쳤다.

챙!

무시무시한 힘이 담긴 일격에 이준의 몸이 저만치 뒤로 밀려났다. 금강유리체로 변하지 않았다면 일격에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고 말았을법한 위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계속 머리를 공격해야 해!”

이준이 다시 한 번 힘차게 소리치자, 이은과 고청양이 동시에 고족의 1격 무투기로 반투성 요괴의 머리를 노렸다.

뒤이어 고화와 고형 역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1격 무투기를 시전했다.

쿵!

그 순간, 하늘 위에서 오색 번개가 하나로 모여 요괴 머리 위로 내리쳤다. 바로 채린의 공격이었다.

일제히 쏟아지는 투존 강자들의 협공에 반투성 요괴의 몸이 강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준의 공격으로 인해 생겨났던 균열이 더욱 커지며 놈의 머리가 ‘펑’하고 터져 버렸다.

펑!

반투성 요괴의 머리가 터지는 순간, 창백한 살과 뼈도 그대로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우드득-.

얼굴 높이까지 들어 올렸던 주먹 역시 얼어붙더니 가루처럼 흩날리다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후.”

그 사이 이준의 몸도 원상태로 빠르게 돌아왔다. 그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준과 이은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전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 강한 고청양마저도 조금 전 충격으로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중상은 아닌 것 같았다.

“너무 힘드네요.”

이준이 저장반지에서 연금비약을 꺼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며 말했다.

“우선 모두 쉬십시오. 제가 지키겠습니다.”

이준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말 한마디 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연금비약을 입속에 집어넣으며 자리에 앉아 수련상태에 들어갔다. 지금부터는 매순간이 목숨을 건 사투라는 것을 자리에 있는 모두가 직감하고 있었다.

“이준 오라버니. 도와줘야 할까요?”

이준의 곁으로 다가온 아라가 아직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곳 역시 상황이 그리 좋진 않았다. 혼옥 쪽은 혼전 강자 한 명이 심장부가 터져 목숨을 잃었지만, 완벽한 협공으로 반투성 요괴를 완벽히 짓누르면서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늘 봉황족에서도 사상자가 나왔지만 타격이 그렇게 크지는 않아보였다.

하지만 그들과 비교했을 때 나머지 네 무리의 상황은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들 역시 실력은 대단했지만 서로 호흡이 맞지 않아 많은 투존 계급의 강자들이 반투성 요괴의 손에 죽고 만 것이다.

“괜찮아. 우린 우리만 지키면 돼.”

이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떻게 보면 저들 모두 경쟁 상대인데, 자칫 도와줬다가 오히려 그들이 뒤통수를 때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게 바로 그 전설 속의 보리심인 거지?”

이준이 보리나무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거대한 나무의 줄기에서는 여전히 무한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신비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이상해. 이 반투성 요괴들은 생전에 반투성 강자였을 텐데 왜 요괴가 되고 말았을까? 이건 저들도 보리나무를 이겨내지 못했다는 거잖아.’

이준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반투성 요괴도 문제지만, 더욱 골치가 아픈 것은 저 보리나무가 대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일단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겠어.”

쾅!

그때, 멀지 않는 곳에서 묵직한 굉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마침 혼옥이 아무런 감정 없는 표정으로 선조의 머리를 터트리고 있었다.

혼옥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들어 이준을 바라봤다.

이준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 순식간에 온화한 웃음이 번졌다. 마치 순식간에 가면을 바꿔 쓰는 것 같은 표정 변화였다.

혼옥 역시 전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혼족의 강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렸다.

0